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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33화 (133/326)

< 사신 길드 4 >

현석은 전화를 통해 양동욱으로부터 기다리던 보고를 받았다.

-사신 길드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석은 눈을 빛내며 전화를 끊고 바로 양동욱이 일하는 사무실로 향했다.

양동욱은 번듯한 빌딩을 통째로 쓰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수백 명의 직원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이 회사는 던전과 관계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이 정보 쪽으로 채워져 있었다.

류지혜가 이끄는 팀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던전 부산물을 이 회사에서 처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오는 이익을 통해 운영되는 회사였다.

회사 설립에는 현석의 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갔지만, 일단 세워진 다음부터는 저절로 알아서 굴러가고 있었다.

양동욱이 가진 특별한 정보력을 이용해 뛰어나면서도 믿을 수 있는 인재를 잔뜩 모아 꽉꽉 채웠으니까.

양동욱은 회사의 대표이사실에서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회사에 직원이 수백 명이나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바로 양동욱이었다.

현석이 사무실에 들어가자, 양동욱은 기계적으로 문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일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방금 들어온 사람이 현석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제야 일을 손에서 놓았다.

“후우. 일찍 오셨군요.”

현석은 그 말에 힐끔 시계를 쳐다봤다. 아까 연락을 받고 바로 왔지만 4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일찍 왔다니. 아마 중간에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신 길드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고?”

“예. 하지만 직접 움직인 건 아닙니다.”

현석이 눈을 빛냈다. 충분히 예상하던 바였다. 그리고 이 상황을 이용하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다.

“추경훈이 움직였나?”

“예.”

“혼자서 움직인 건 아니지?”

“추광열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추경훈을 따르는 50인의 플레이어도 따로 이동 중입니다.”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예전에 뿌려뒀던 떡밥을 드디어 회수할 때가 된 것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이들의 목표는 천외천 길드입니다.”

“천외천? 그럼 길드 본부로 가면 되나?”

양동욱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아무리 이들이 강해도 천외천 길드 본부에 쳐들어가는 건 어렵습니다.”

천외천은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길드였다. 그런 거대 길드를 고작 50명 남짓한 플레이어가 쳐들어가서 뭘 어쩌겠는가.

설사 정면 대결이 아니라 기습이나, 요인만 치고 빠진다 하더라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들이 노리는 게 천외천 길드 마스터인 모양입니다.”

“길드 마스터?”

“예. 천외천 길드 수뇌부가 지금 이동 중이거든요. 새로 나타난 던전 생성지역에 가는 중이랍니다.”

현석의 눈이 빛났다.

“던전 생성지역이 새로 나타났다고?”

“예. 제가 며칠 전에 보고서 드렸잖습니까. 대전 쪽에 하나 새로 생겨났다고.”

현석은 최근 양동욱이 보내준 보고서를 쌓아놓기만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번 일만 끝내고 나면 그것들도 싹 읽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동욱의 보고서는 이쪽 업계 전반의 정보를 폭넓게 다루고 있었다. 그러니 그걸 한 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럼 지금쯤 대전으로 한창 가고 있는 중이겠군.”

“이제 슬슬 출발할 때쯤 되었을 겁니다. 일정 뽑아내는 거야 일도 아니죠.”

즉, 천외천 쪽은 나름대로 비밀을 유지했지만 그게 새 나갔다는 뜻이었다.

그런 식으로 새는 정보는 양동욱에게는 간식거리나 마찬가지였다.

사신 길드도 그 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양동욱은 얼른 현석에게 패드를 내밀었다. 패드의 화면에는 지도가 떠 있었다.

서울과 대전을 연결하는 길이 표시된 지도였는데, 양동욱은 손가락으로 그걸 능숙하게 움직여 한 지점을 체크했다.

“여기서 기습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양동욱의 손가락질에 따라 붉고 푸른 선이 나타났다.

“이 파란 선이 천외천 수뇌부의 이동경로, 그리고 빨간 선이 추경훈 일당의 이동경로입니다. 물론 예상이기 때문에 다소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동욱의 말투나 표정에는 이게 정답이라는 듯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것이 최적의 경로였다.

“여기 표시된 시간이 기습 타이밍입니다.”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어서 칭찬해 달라는 듯한 표정과 눈빛, 자세를 보니, 아무리 현석이라도 그냥 넘어가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잘했다. 능력 있군.”

양동욱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방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지만 다 걷어찬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 밑에 두고 일하는 거 정말 어려운 겁니다.”

현석이 물끄러미 양동욱을 쳐다봤다. 양동욱은 머쓱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물론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장님, 복 받은 겁니다.”

말하고도 좀 그랬다. 생각해보면 현석 같은 사람과 같이 일하는 자신이 더 복 받은 놈이었으니까.

현석이 아니었다면 이런 번듯한 회사를 어떻게 차렸을 것이며, 또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하고 싶은 일은 다 해 보는 것도 현석 덕분 아니겠는가.

양동욱은 현석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하지만 현석은 자신이 한 말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뭐…… 이런 건 또 이런 대로 괜찮은 법이지.’

현석은 양동욱이 준 패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럼 내가 좀 미리 이놈들을 만나려면 이쯤에서 보면 되는 건가?”

현석이 손가락으로 짚은 곳을 확인한 양동욱은 살짝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확합니다. 거기 손가락으로 문지르시면 예상 시간이 뜰 겁니다.”

한 시간쯤 후에 출발하면 시간이 딱 맞을 듯했다.

“좀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게 낫겠군.”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양동욱이 기겁을 하며 물었다.

“설마 지금 거기에 혼자 가시겠다는 겁니까?”

현석은 돌아선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양동욱이 후다닥 달려가 현석 앞을 가로막듯이 섰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추경훈이 레벨 100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추광열은 120을 넘어섰고요. 추경훈을 따르는 플레이어들도 다들 100에 근접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다들 100레벨을 넘어섰을 수도 있습니다.”

양동욱이 순식간에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현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히 그를 쳐다봤다.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입니까. 그런 놈들한테 혼자 가서 뭘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현석은 그 말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난 무리한 짓은 안 하는 사람이니까.”

양동욱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니.

미국까지 혼자 날아가 렉스턴 에너지와 싸우고 온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신빙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양동욱이 결연한 표정으로 문을 꽉 틀어막았다. 물론 힘으로 하면 현석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힘이 아닌 의지와 정으로 막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현석은 그런 양동욱을 보고 있으니 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양동욱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또 자신을 걱정해 주는 마음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내가 가 있는 동안 너도 할 일이 있어.”

“예? 저도요?”

양동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 사람은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즐거운 일임이 분명했다.

“추경훈을 움직일 방법이 있다.”

“예?”

양동욱은 현석의 말을 얼른 이해할 수 없었다. 추경훈을 움직일 방법이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난 추경훈을 움직여 그들로 하여금 사신 길드를 치게 할 생각이다.”

“예에? 그게 가능합니까?”

현석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담담하니 오히려 현석의 말이 너무나 당연하고 호들갑을 떠는 양동욱이 이상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그들이 대체 왜요?”

추경훈이 왜 현석의 말을 듣고 사신 길드를 친단 말인가. 그들은 분명히 뭔가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여기서 추경훈 일당이 천외천을 포기하고 칼끝을 사신 길드로 돌리면 계약을 위반하는 셈인데, 그럼 뒷일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런 일을 벌인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추경훈은 움직이겠지만, 추광열은 아마 그걸 막아설 거다.”

추경훈과 그 일당은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했지만, 추광열은 아마 현석이 무슨 말을 해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추광열을 움직일 방법도 미리 생각해 뒀다.

“추광열이 내기를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나?”

“그럼요, 이쪽 바닥에서는 정말 유명한 얘기 아닙니까. 이번에 사신 길드랑 얽힌 것도 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인데.”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추광열이 내기 광이라는 건 회귀 전에도 정말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만났을 때도 그런 식으로 도발해 내기를 건 것이고 말이다.

게다가 추광열은 내기에 관한 승부욕도 엄청났다. 아마 현석을 만나면 굳이 현석이 그를 내기로 끌어들이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내기를 걸어올 공산이 컸다.

‘아마…… 우연히 만났을 때를 대비해서 내기 몇 가지는 준비해 뒀겠지.’

추광열은 그런 사람이었다.

양동욱은 현석의 얘기를 모두 들었음에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추경훈이 왜 움직이냐니까요?”

“그럴 이유가 있으니까.”

현석의 어조에 담긴 확신에 양동욱은 입을 다물었다. 현석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럼…… 추광열과의 내기에서 이길 자신은 있습니까?”

“해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양동욱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 파악해서 거기에 매진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이 사신 길드를 친다면…… 전 삼족오와 천외천을 움직여야겠군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끌어들일 수 있는 건 다 끌어들여. 이쪽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는 게 좋을 테니까.”

“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뭐…… 이런 일 처음도 아니고요.”

종로 암시장부터 시작해 정보조직이나 암시장에 얽힌 어설픈 조직들까지 싹 들쑤실 계획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최근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피라밋 암시장 쪽에도 슬쩍 언질을 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수많은 중소 길드들까지 싹 휘저어 볼 생각이었다.

아마 제대로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추경훈이 사신 길드를 제대로 엿 먹이면 엿 먹일수록 사신 길드의 타격도 커질 것이다.

‘아마…… 재기불능에 가까워지겠지.’

이런 와중에 사신 길드의 수뇌부까지 제거되면 아마 사신 길드는 예전 K나이츠 길드와 비슷한 꼴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양동욱이 쓸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한창 머릿속으로 계획을 짜던 양동욱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벌써 이동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난 믿고 움직이는 수밖에 없지.”

양동욱은 마음속으로 현석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 번 단단히 다졌다.

지금부터 그가 할 일은 어지간한 확신이 없고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일말의 의심이라도 남는 순간, 양동욱의 말을 듣는 상대방이 그걸 알아차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동욱의 의도대로 상대를 움직일 수 없다.

양동욱은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다잡았다. 현석에 대한 믿음을 새기는 일은 사실 정말로 쉬웠다.

“워낙 대단한 사람이어야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눈을 뜬 양동욱의 눈빛과 표정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통화 목록을 뒤졌다.

이제부터 진짜 작업에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

< 사신 길드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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