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32화 (132/326)
  • < 사신 길드 3 >

    “이, 이게…… 제 병을 낫게 해줄 거라고요?”

    박승희는 애써 담담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침착할 수가 없었다.

    이 병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자신뿐 아니라 권혁찬도 죽을 고생을 했다.

    이 병 때문에 겪은 몸과 마음의 상처는 이루 형언할 수조차 없다.

    한데 그걸 낫게 해줄 약이 눈앞에 있다고 하니 진정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정확히는 병이 아니라 저주지만.”

    “예. 저주라고 하셨죠. 믿기 어렵지만…….”

    박승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현석의 손바닥 위에 놓인 붉은 구슬을 바라봤다.

    정말 꺼림칙했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거부감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설마…… 삼켜야 하는 건가요?”

    현석은 대답 대신 박승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뭔가 좀 이상했다.

    일단 표정에 드러난 거부감이 엄청났다. 억지로 참고 있는데도 저 정도로 표출이 되려면 최소 똥 묻은 바퀴벌레를 내밀어야 할 것이다.

    그 정도 느낌이었다. 박승희의 눈빛에 분명한 혐오가 드러나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점이라도 있나?”

    현석의 물음에 박승희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엄청나게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이상하네요.”

    박승희는 정말로 난감한 얼굴이었다.

    “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싫어요.”

    현석은 심안과 마력의 감각을 풀가동해서 살폈다. 이게 약이라고 알고 있는데 만일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호의로 시작한 일이 악의로 변하는 건 실수 한 번이면 족하다. 그러니 이런 일일수록 신중한 자세가 필요했다.

    그녀의 몸에 서린 저주의 근원은 예전에 파악해뒀다. 그 근원을 이루는 마력의 분포도 정확히 파악했다.

    그때 자신의 마력 컨트롤 능력을 이용해 특별한 마력 패턴을 만들어 저주를 풀 수 있지 않을까도 고민해 봤다.

    하지만 그건 실행하지 않았다.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풀다가 아차 하는 순간 폐인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켈드라코를 만나 그놈의 심장을 얻고, 그게 저주를 풀 수 있다는 심안의 설명을 읽었을 때 내심 기뻤다.

    한데 저렇게 당사자가 불안하고 꺼림칙하다는 건 아직 현석이 파악하지 못한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현석은 심안을 통해 박승희와 켈드라코의 심장을 동시에 확인했다. 그러면서 집중력을 계속 높였다.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된 순간, 현석은 정신이 붕 뜨는 듯한 고양감을 맛봤다.

    마치 세상은 그대로 있는데, 자신만 한 계단 위로 올라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석의 눈에 보이던 켈드라코의 심장에 대한 정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켈드라코의 심장-켈드라코가 가진 힘의 근원이 깃들어있다. 켈드라코의 저주를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먹을 수 있다.]

    원래의 정보는 이랬다. 그래서 저주를 풀기 위해 먹으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먹을 수 있다고만 했지, 그것이 저주를 푸는 방법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켈드라코의 심장-켈드라코가 가진 마력의 원천. 저주의 마력을 근원으로 하기에 켈드라코가 남긴 저주를 흡수할 수 있다. 복용을 통해 켈드라코의 저주를 걸 수 있다.]

    이것이 바뀐 내용이었다. 현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

    저주를 풀겠다고 저주를 또 걸 뻔했다.

    물론 켈드라코의 심장이 여러 개 있으니 다시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만일 저주에 저주가 중첩되어 더 강력하게 변하면 과연 그걸 풀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심안을 그냥 받아들여선 안 되겠군.’

    한 가지 확실한 건 심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뀌기 전의 설명이나 바뀐 후의 설명이나 좀 더 자세해졌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러니 애매한 문구가 있으면 제대로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 미리 단정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나저나…… 저주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현석은 구슬을 손에서 이리저리 굴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그것을 박승희의 손에 갖다 댔다.

    박승희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려고 했지만 어느새 현석이 그녀의 손이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왜, 왜 이러세요!”

    박승희가 팔을 빼려고 힘을 주었다. 그리고 온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녀가 현석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현석은 박승희가 움직이지 못하게 제압하면서도 마력의 흐름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쪽으로 보내는 집중력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게 유지했다.

    ‘움직인다!’

    박승희의 몸에서 저주가 풀려나는 것이 보였다. 마력 패턴이 변하면서 단순한 저주의 마력으로 바뀌어 켈드라코의 심장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박승희의 몸부림도 잦아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괴로움과 불쾌감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역시 저주 때문이었어.’

    그녀의 본능적인 의식을 저주의 힘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주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다가오자 그걸 거부한 것이다.

    저주의 힘이 풀려나갈수록 박승희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켈드라코의 심장을 이용하는 방법은 정말로 단순했다. 그저 갖다 대기만 하면 알아서 저주가 풀리는 방식이었다.

    1시간쯤 지나자 박승희의 온몸을 장악하고 있던 모든 저주의 힘이 싹 빨려들어왔다.

    현석은 저주의 힘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박승희의 손을 놔주었다.

    박승희는 온몸이 날아갈 것처럼 개운해졌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제가 이제 다 나은 건가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끝났다. 잘 먹고 푹 쉬고,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해서 몸이나 좀 추스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레벨을 더 올려야겠지.’

    현석의 눈이 반짝였다. 박승희도 권혁찬이 겪었던 지옥훈련 코스를 한 번만 경험하면 아마 팀에 낄 정도는 될 것이다.

    박승희는 권혁찬처럼 레벨을 대폭 올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원거리 딜러였다. 게다가 어마어마한 활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저 팀에 합류해서 멀리 있는 적을 견제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정말 괜찮은 팀이 탄생했다.

    일행의 힘을 증폭하고 전체적인 전투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버퍼, 류지혜.

    그리고 어떤 강력한 공격이라도 이를 악물고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탱커, 양세희.

    또한 단숨에 일행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뛰어난 힐러, 류혜연.

    거기에 근거리 딜러와 원거리 딜러가 추가되었으니, 정말 완벽한 팀이 된 것이다.

    “열흘 후부터 팀에 합류해.”

    “예?”

    박승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팀에 합류하라니. 그럼 던전에 가서 마수를 잡으란 뜻인가?

    현석은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하고 금고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천풍섬을 꺼내 박승희에게 내밀었다.

    “이 활의 이름을 아나?”

    박승희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의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활이었다. 언제부터 전해지는 건지는 몰라도 상당히 오래 된 활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알기로는 원래 이름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름을 잃어버린 지도 제법 오래 되었다.

    “천풍섬.”

    “예?”

    “그 활의 이름이다.”

    박승희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자신의 손에 있는 활, 천풍섬으로 옮겼다.

    “천풍섬…….”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이 활에는 바람을 다스리는 힘도 있었다. 물론 아직 박승희의 힘으로는 쓸 수 없지만 말이다.

    현석은 활의 정보를 다시 확인해봤다. 심안이 한 계단 성장했으니 활에 담긴 정보도 달라졌을 것 아닌가.

    하지만 천풍섬의 설명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마 켈드라코의 심장 같은 특별한 아이템이 아니라면 심안으로 볼 수 있는 건 다 비슷한 모양이었다.

    ‘기본적인 정보는 다 비슷하다는 뜻이지.’

    현석은 문득 징표들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황당하게도 물음표, 그러니까 가려진 정보가 있다.

    심안의 단계가 올랐으니 그걸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증표들을 확인한 현석의 표정에 살짝 실망이 떠올랐다. 여전히 물음표였다. 설명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더 단계를 올려야 저걸 볼 수 있을까?’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버렸다. 지금 할 수 없는 것에 미련을 가져선 안 된다.

    “이 활을 제가 지금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박승희가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활은 야생마 같은 녀석이었다. 제대로 길들이기 전에는 목표를 맞추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했다.

    현석은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쓸 수 없다면 쓸 수 있을 때까지 굴리면 된다. 그럼 누구든 다 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현석은 박승희에 대해서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회귀 전에는 만나보지도 못했던 사람이다. 현석이 권혁찬을 만났을 때는 이미 죽은 뒤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니 저 활과 연관되어서 뭔가 특별한 스킬을 각성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특별한 스킬읕 활의 봉인과도 관계가 있음이 분명했다.

    ‘재미있어지겠어.’

    물론 그건 박승희가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다음의 일이다. 현석은 활을 쓰다듬는 박승희를 남겨두고 말없이 방에서 나갔다.

    앞으로 열흘 동안 박승희의 몸을 제대로 만들어줄 전문가를 붙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열흘 동안 현석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신 길드 쪽 일을 마무리 해야지.’

    지금 사신 길드 쪽은 양동욱이 한창 작업 중이었다. 사신 길드의 정보를 천외천에 슬쩍 흘린 것이다.

    그리고 천외천을 은밀히 도와 사신 길드를 제대로 견제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쪽으로 양동욱의 능력은 정말로 특별했다. 남을 몰래 괴롭히는 데 취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놈아, 또 어디 가는 게냐? 이제 병도 고쳤으니 나랑 갈 데가 있잖아!”

    현석은 걸음을 멈추고 임형석을 돌아봤다. 그리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정말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를 손에 쥔 기분이 들었다.

    ‘사신 길드와의 싸움…… 제법 재미있겠어.’

    현석이 씨익 웃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빠르게 걸어갔다.

    “야, 이놈아! 같이 가자!”

    * * *

    최종욱은 피곤한 얼굴로 소파에 등을 묻었다. 그리고 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비볐다.

    “정말…… 일이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짜증이 날 정도로 일이 꼬이고 있었다.

    추경훈과 추광열을 이용해 천외천을 견제하려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원래는 문제의 소지가 전혀 없었다. 비밀만 제대로 유지되었다면 말이다.

    한데 그 정보가 천외천으로 넘어가 버렸다.

    당연히 천외천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들은 불같은 기세로 일어나 사신 길드에 대적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은근한 견제에 불과했지만 이젠 대놓고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었다.

    그뿐 아니라 삼족오와 레드드래곤까지 끌어들여 동맹 비슷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들이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 모르지만 삼족오 길드는 천외천 길드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사신 길드를 견제했다.

    그리고 레드드래곤 길드는 아직까지는 관망 중이었지만 언제 한 손 거들고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밖에도 급은 좀 떨어지지만 비교적 힘이 있는 길드들을 다수 영입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거…… 진짜 죽기 살기로 해보겠다는 건가?”

    진짜 전력으로 맞붙으면 사신 길드가 천외천에 질 수가 없었다.

    천외천이 아무리 저렇게 난리를 피워도 결국 싸우면 사신 길드가 이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겨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힘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갈기갈기 찢어져 버릴 텐데.

    그리고 그렇게 찢어지면 렉스턴 에너지에서 도움의 손길이라도 줄까? 절대 그럴 리 없었다.

    렉스턴 에너지는 사신 길드가 건재하다는 전제 하에서 손을 내민 것이지 몰락할 때 도와줄 리 없었다.

    그러니 렉스턴 에너지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써먹어야지, 떨어지는 상황에서 잡을 지푸라기는 아니었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는 바람에 추경훈과 추광열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외천 길드는 그동안 쌓아뒀던 모든 돈과 힘을 다 써버리겠다는 듯이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그냥…… 대가리를 쳐버려?’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정면으로 싸워서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리고 최종욱에게는 이럴 때 써먹을 아주 훌륭한 카드가 있었다.

    최종욱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 사신 길드 3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