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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31화 (131/326)
  • < 사신 길드 2 >

    현석은 일주일 동안 권혁찬과 함께 마계에 다녀왔다.

    권혁찬을 각성시키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사지에 몰아넣은 것이다.

    임형석과 함께 가려고 했던 곳은 너무 위험하니 그보다는 좀 덜 위험한 곳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그래도 마계는 마계였기에 권혁찬은 정말로 죽음에 가까울 정도의 위기를 수시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권혁찬뿐 아니라 현석도 정말 힘들었다. 현석도 권혁찬 못지않게 죽음의 위기를 끊임없이 겪어야만 했다.

    그저 마계를 정복하는 거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씩 차근차근 싸워 정리해 나가면 되니까.

    하지만 목표가 권혁찬의 각성이었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마족과 마수를 현석이 상대하고, 권혁찬에게 가는 마수와 마족의 수를 철저히 제한해야만 했다.

    그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현석은 그 와중에 새로운 스킬 하나를 얻었다.

    [도발-목표로 한 적의 시선을 끌어 자신에게 다가오게 한다.]

    권혁찬에게 가는 마수와 마족의 수를 제한하려고 애쓰다가 얻은 스킬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마계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고, 권혁찬의 각성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현석을 기쁘게 했던 성과는 마수 켈드리코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점이었다.

    그건 마계의 마수였다.

    한데 마계의 마수가 어떻게 박승희에게 저주를 걸었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물론 저주를 푸는 방법은 알아냈다.

    켈드라코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켈드라코의 심장을 삼키면 된다.

    켈드라코는 마력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마수였다. 그렇기에 그의 심장은 그의 몸을 유지하기 위한 근원 같은 거였다.

    켈드라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고농축 마정석 같은 거였는데, 당연히 보통 사람이나 플레이어가 그걸 먹으면 절대 안 된다.

    그걸 먹어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켈드라코의 저주에 걸린 플레이어뿐이었다.

    그렇게 마계를 정벌해 레벨을 잔뜩 올리고 전리품과 켈드라코의 심장까지 잔뜩 얻은 현석은 권혁찬과 함께 마계에서 돌아왔다.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권혁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는 화이트홀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저 안에서 겪은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죽음의 공포를 모두 다 합해도 저 안에서 일주일 동안 겪은 것의 1%도 안 될 것이다.

    그 정도로 힘들고 무섭고 지독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일단 레벨이 대폭 올랐다. 사실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본인도 측정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최소 10레벨 이상은 올랐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현석이 말했던 특별한 스킬의 각성이었다.

    권혁찬은 두 개의 스킬을 얻었다.

    “제가 얻은 스킬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문득 스킬의 적당한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주저 없이 말했다.

    “검기난무, 강격.”

    “검기난무와 강격이라……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군요.”

    [검기난무-검의 힘을 담은 날카로운 마력으로 사방을 공격한다. 힘과 민첩의 세 배에 해당하는 공격력이 추가된다. 적을 밀어내는 힘이 담겨 있다.]

    [강격-거대한 마력을 검에 담아 강력한 공격을 한다. 힘과 민첩 총마력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공격력이 추가된다.]

    둘 다 엄청난 스킬이었다.

    특히 힘과 민첩, 마력이 높을수록 스킬의 위력이 올라가니 시간이 지나 더 성장하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특히 검기난무는 위기 상황에서 쓰기에 아주 적합한 스킬이었다.

    권혁찬처럼 근접형 딜러에게 반드시 필요한 위기해소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약한 다수의 적을 쓸어버릴 때도 유용한 스킬이었고 말이다.

    두 사람은 화이트홀에서 멀어졌다. 이제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권혁찬은 여전히 신기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봤다.

    “이런 던전이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던전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현석은 굳이 비밀을 지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투명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현석뿐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마력 컨트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나와 투명 던전을 열 수 있게 되더라도, 현석이 이미 발견한 던전은 절대 열 수 없을 것이다.

    현석은 자신이 발견한 모든 투명 던전의 패턴을 자신만 풀 수 있게 바꿔 놓았다.

    집 지하실에 있는 것만 빼고 말이다.

    그건 류지혜나 류혜연도 열 수 있어야 하니 비교적 쉬운 패턴을 걸어뒀다.

    어쨌든 이곳은 마수가 거의 없는 몇 안 되는 투명 던전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투명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전혀 없었다. 이곳은 그저 마계로 가는 통로일 뿐이었다.

    현석과 권혁찬은 투명던전에서 밖으로 나갔다.

    현석은 고개를 힐끗 돌려 투명던전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작은 정원]

    이런 식의 투명던전이 세계에 대체 얼마나 많이 있을까? 그리고 그 모든 투명던전에 연결된 마계는 또 얼마나 많을까?

    현석의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문득 오명국에게 선물로 받은 길잡이 아티팩트가 떠올랐다.

    ‘황궁에는 언제쯤 갈 수 있게 될까?’

    그리고 황궁에 가면 과연 황제의 사면령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걸 얻게 되면 아르포르 기사단을 풀어줘야 할까?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해졌다.

    현석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려는 듯 걸음을 빨리했다.

    권혁찬이 깜짝 놀라 그런 현석을 뒤쫓아갔다. 이곳은 혼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다.

    여긴 남해에 있는 작은 무인도였으니까.

    잠시 후, 섬에서 작은 보트 하나가 출발했다. 작긴 했지만 육지까지 가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하얀 물살을 일으키며 쭉쭉 뻗어나가는 배 위에는 현석과 권혁찬이 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 저 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 * *

    현석의 집, 지하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끄응. 아무도 없나?”

    임형석은 지하실에서 나와 이리저리 목을 꺾고 팔다리와 허리를 비틀어 몸을 풀었다.

    어두운 데서 너무 오래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니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사실 그냥 눈만 좀 아프고 만다는 것이 더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임형석이 그런 세세한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손으로 눈을 몇 번 비비니 불편함이 사라졌다. 임형석은 씨익 웃으며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누가 있네?”

    위층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임형석은 씨익 웃으며 만족으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련의 성과가 당장 나타나는군.”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여섯 번째 감각을 깨우는 데 성공했다.

    감각이 예민해지면 싸우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임형석 처럼 고수의 경지에 오르면 상대의 공격을 감각만으로 예측해서 피하거나 반격할 수 있다.

    임형석은 얼른 현석을 만나서 한 판 붙어보고 싶은 마음에 주먹이 근질근질했다.

    터질 것처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위로 오르는 계단을 찾은 임형석은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에 올라간 임형석은 기척이 느껴지는 방으로 향했다. 문이 닫혀있긴 했지만 잠겨있진 않았기에 그저 문고리를 돌리고 열기만 하면 됐다.

    열린 문으로 방안의 광경이 보였다. 침대 하나가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 가만히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어라?”

    처음 보는 여자였다. 임형석은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시끄러우면 깰 수도 있으니 아주 조용히 말이다.

    한데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임형석은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문을 쾅 닫고 말았다.

    안에서 나는 기척이 강해졌다. 잠에서 깬 것이다.

    임형석은 어색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현석이 서 있었다.

    “그냥…… 누가 집에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현석은 그런 임형석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을 툭 던졌다.

    “연인이 있는 여자입니다.”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린 현석을 멍하니 바라보던 임형석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야! 이놈아! 그런 거 아니야! 이거 진짜 큰일 낼 놈이네! 그런 거 아니라고!”

    현석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당황해서 소리치며 내려오는 임형석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대꾸했다.

    “그런 게 뭔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현석이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임형석은 그걸 보고는 어이가 없어서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그러더니 현석을 노려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한 판 붙자.”

    현석은 그런 임형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르신이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건 맞습니다만…… 아직 안 될 것 같은데요?”

    “뭐?”

    임형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싸워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말하는 건 그의 상식 안에 없었다.

    하지만 막 호통이라도 치려는 순간 느껴지는 현석의 힘에 임형석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너…… 뭐야?”

    임형석은 질린 눈으로 현석을 노려봤다. 대체 저놈은 어떻게 된 놈이기에 그 짧은 시간 저렇게 급격히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임형석은 이번 수련의 성과가 정말로 엄청나다고 자부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어떤 훈련과 경험도 이번에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만만했다. 이 수련이 끝나면 기어코 현석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자신이 강해진 것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현석이 강해진 것이다.

    차라리 감각이 둔했으면 그런 것도 모르고 싸워보기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도저히 그 어떤 운이나 독기로도 메울 수 없는 간극이 느껴졌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구나. 대체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거지? 혹시 플레이어라서 그런 건가?”

    현재의 임형석이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하지만 그동안은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같은 수련이나 경험을 통해서도 자신이 훨씬 더 큰 폭으로 강해진다고 믿었다. 실제로도 그래왔고 말이다.

    “더 위험한 곳에 다녀왔을 뿐입니다. 별 거 없어요.”

    임형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더 위험한 곳? 그게 별 거다 이놈아. 대체 어디냐? 나도 당장 가야겠다!”

    임형석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이번에야말로 급성장을 해서 저놈의 면상에 제대로 한 방 먹이고 승리를 쟁취하리라!

    “뭐 하냐! 가자니까?”

    임형석의 재촉에도 현석은 담담하고 느긋했다.

    “사람이나 하나 구하고 가죠.”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어르신이 훔쳐보고 있던…….”

    “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내 나이가 몇인데! 나 그런 놈 아니야!”

    현석은 물끄러미 임형석을 쳐다봤다. 그 눈빛이 어찌나 담담한지 임형석은 그걸 본 순간 속에서 울컥 뭔가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 화를 꾹 눌러 참았다. 본능적으로 여기서 더 얘기를 이어가면 자기만 손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 가자. 구하러 가. 대체 무슨 일인데? 병이라도 있는 게냐?”

    “비슷합니다.”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임형석 때문에 놀랐는지 잠에서 깬 박승희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동그란 눈으로 현석과 임형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오셨어요?”

    박승희는 현석을 보고서는 다소 안심했다. 하지만 임형석의 존재는 그녀를 계속 불안하게 만들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습니다. 보기보다 연세가 있으셔서 별로 욕정이 남아있지 않거든요.”

    “예?”

    현석의 너무나도 노골적인 말에 박승희가 깜짝 놀란 눈으로 현석과 임형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임형석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아니라고 말하면 아까 뭔가 흑심을 가졌다고 여길 것 같고, 또 그렇다고 인정하자니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표정만 구기는 임형석의 모습에 박승희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생각보다 좋은 분이신 것 같네요.”

    그제야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거, 사람 보는 눈은 있는 처자로군.”

    어쨌든 그렇게 박승희의 경계심과 긴장을 좀 풀어준 현석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품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내밀었다. 핏빛으로 물든 상당히 불길해 보이는 구슬이었다.

    새끼손톱만 했는데, 박승희는 왠지 그걸 건드리기도 싫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뭐죠?”

    현석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활, 다시 들고 싶지 않나?”

    그 말에 박승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이 현석과 구슬을 번갈아 바라봤다.

    < 사신 길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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