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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30화 (130/326)

< 사신 길드 1 >

사신 길드의 마스터는 최종욱이라는 플레이어였다. 최종욱은 사신 길드에서 가장 레벨이 높거나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조직 운영에 대한 재능이 좀 있는 편이었다.

원래 사신 길드는 이 정도로 성장할 만한 잠재력이 있는 길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렉스턴 에너지의 지원을 받으면서 최종욱의 재능이 폭발했다.

수많은 실력자들과 끈을 만들어 얽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렇게 얽은 끈 중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었다.

최종욱은 사무실을 서성이며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시간이 정말 더디게 흘렀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최종욱은 얼른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길드원 하나가 놀란 눈으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최종욱이 눈살을 찌푸렸다. 원하던 손님이 아니었다.

“뭐야?”

“소,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제야 최종욱의 얼굴이 환해졌다.

“오셨으면 이리로 모셔야지! 뭐 하고 있어!”

“일단 접객실에 모셨는데, 이쪽으로 오시라고 할까요?”

“당연히 내가 가야지.”

최종원은 당장 달려 나가려다가 퍼뜩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놓인 커다란 가방을 들고 휙 나가서 부리나케 접객실 쪽으로 달려갔다.

접객실은 사신 길드에서 가장 신경 써서 만든 장소 중 하나였다.

손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또한 가끔 누군가에게 과시할 목적으로 쓸 때도 있었다.

접객실에 도착한 최종욱은 일단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노련한 대표이사 같은 모습으로 변신한 최종욱은 천천히 접객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두 사람이 보였다. 살짝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남자 두 명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최종욱입니다.”

최종욱은 그들에게 다가가 번갈아 악수부터 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부담이나 거부감 없이 악수를 받아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친밀한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 두 사람의 태도는 더없이 담담했다.

“이렇게 좋은 결정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최종욱의 말에 앞에 있던 두 사람, 추경훈과 추광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원래 내가 결정해서 한 일에 후회따위 안 하는 사람입니다.”

추광열의 말에 최종욱은 지당한 말이라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제일의 플레이어인 추광열에 대해서는 제법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게 바로 저 성격이었다.

추광열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저 말대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전 종로 암시장에서 내기를 통해 아티팩트를 잃었지만, 그 일조차 후회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심기일전해서 다음 내기를 준비 중이었다.

최종욱은 이번엔 추경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함께 오시는 분들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숙소를 원하신다면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추경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 정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아마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물을 쓰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따로 숙소를 준비해 뒀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추경훈의 말은 정중했지만, 안에 든 뜻은 관심 갖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거였다.

당연히 최종욱이 그 말을 못 알아들었을 리 없다. 내심 배알이 뒤틀렸지만 겉으로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추광열이 물었다.

“렉스턴 에너지에서 우리에게 지원해 주라고 한 것들이 있을 텐데,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제가 직접 가져왔습니다.”

최종욱은 들고 온 가방을 열어 안에서 조심스럽게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 맞춰진 장비였다. 당연히 최고 수준의 아티팩트였다.

추광열과 추경훈은 사신 길드에 들어가지만, 실질적 소속은 렉스턴 에너지가 될 것이다.

애초에 렉스턴 에너지가 이 장비를 보여주며 접근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굳이 사신 길드에 몸 담을 이유가 없었다.

장비를 모두 꺼낸 최종욱은 뒤로 한 발 물러나서 테이블에 놓인 장비를 향해 손바닥을 펼쳐 내밀었다. 확인해 보라는 듯이.

두 사람은 모든 장비를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를 이걸로 교체하면 지금보다 최소 5%에서 10%는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정확히 뮙니까?”

추경훈이 나서서 물었다.

최종욱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견제지요.”

“견제?”

“현재 우리 사신 길드를 위협할 만한 곳이 세 군데 있습니다.”

최종욱은 추경훈과 추광열을 번갈아 바라본 다음 말을 이었다.

“레드드래곤, 삼족오, 천외천이죠. 그 중에서 삼족오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나머지 둘이 문제입니다.”

최종욱의 눈이 번득였다.

“둘 중에서도 레드드래곤은 정말 강력하지요. 하지만 더 골치 아픈 쪽은 천외천입니다.”

천외천은 사신 길드를 엄청나게 견제했다. 먹잇감으로 여긴 것이다.

사신 길드를 밟고 위로 올라가 레드드래곤과 경쟁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니까 천외천을 견제하면 되겠군요.”

추경훈의 말에 최종욱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될 수 있으면…… 아주 철저하고 지독하게 해주십시오. 나중에 흡수할 수 있게 작업해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추경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견제 정도야 말이다.

“레드드래곤 쪽은 안 건드릴 겁니까?”

최종욱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차근차근 가야죠. 레드드래곤은 당장 건드리기엔 무리입니다. 지금 한창 기세가 오르고 있어서 말이죠. 천외천부터 흡수하고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그러자 추경훈이 차갑게 말했다.

“생각은 이해합니다만…… 위에서 좋아할지는 모르겠군요.”

그 말을 끝으로 추경훈과 추광열이 접객실에서 나가 버렸다.

최종욱은 멍하니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사정없이 인상을 구겼다.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했어.”

결국 레드드래곤 쪽도 슬슬 작업을 시작해야 할 모양이다.

물론 급하게 가진 않을 것이다. 정보수집이 먼저였으니까.

최종욱이 차분히 계획을 점검하며 접객실을 나서서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는 동안 누군가는 사신 길드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 * *

현석은 양동욱으로부터 받은 서류를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것은 사신 길드에 대한 것이었다.

사신 길드는 렉스턴 에너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아 급속도로 성장 중이었다.

하지만 예전 K나이츠 길드와는 많이 달랐다.

그때보다 경쟁자들이 더 막강해지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견제가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그런 배경 설명을 읽던 현석이 고개를 들어 앞에 앉아 있는 양동욱을 쳐다봤다.

“별로 대단할 건 없는데?”

“그건 배경만 정리해 놓은 겁니다. 길드의 규모라든가 재정상태, 그리고 몇 레벨짜리 플레이어를 보유 중인가, 또 구린 점은 없는가, 등등이죠.”

현석은 그런 말을 하는 양동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양동욱은 갑자기 오한이 드는 것 같았다. 현석과 눈을 마주치자 며칠 전 권혁찬을 만난 일이 떠올랐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 권혁찬이 자신을 보며 제발 살려 달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권혁찬은 입을 꾹 다문 채 양동욱을 애처롭게 바라보기만 했는데, 그게 어찌나 마음을 움직이는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리고 그 뒤로 자다가 생각이 나서 벌떡벌떡 일어나곤 한다.

그 모든 일의 뒤에 현석이 있었다.

양동욱은 아주 자연스럽게 역지사지에 들어갔다. 당시 권혁찬의 자리에 자신이 앉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더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양동욱은 얼른 그렇게 말하며 서류 한 장을 공손히 내밀었다.

그것을 받으며 눈가의 표정이 미미하게 풀린 걸 확인한 양동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두 사람이 움직인 정황이 없습니다만…… 사신 길드에 들어간 게 분명합니다.”

“추경훈과 추광열이 여길 왜 들어가지? 그 두사람이라면 차라리 새 길드를 만드는 게 나을 텐데?”

양동욱이 눈을 번득였다.

“렉스턴 에너지에서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는 현석도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렉스턴 에너지라고? 그들이 두 사람에게 접근한 건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양동욱이 렉스턴 에너지에 대한 정보를, 그것도 이런 고급 정보를 쉽게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현석의 의문에 양동욱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게 아주 대단한 협력자가 생겼습니다. 대장님이 보내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보냈다고? 협력자를?”

현석의 뇌리에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갑자기 왜 양동욱에게 접근해 도와준단 말인가.

“상부상조죠. 그들이 서울에 지부를 하나 만들겠다고 해서 제가 도와주고 있습니다. 종로 암시장이랑도 연결시켜 주고요.”

양동욱이 말하는 그들이란 피라밋 암시장이었다. 그곳의 주인인 블러디퀸이 직접 나서서 양동욱과 협약을 맺었다.

양동욱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블러디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앞으로 처분하기 곤란한 물건들도 많아질 텐데 그때마다 아주 유용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계산도 있었고, 또 앞으로 렉스턴 에너지와 자주 얽히게 될 것 같으니 해외 쪽 정보망을 확충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사실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양동욱은 정작 현석이 한동안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자, 슬그머니 불안해졌다.

‘이거……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한 게 있나?’

양동욱의 불안감이 극에 달해 폭발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현석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추경훈과 추광열은 뭘 하고 있지?”

양동욱은 잠시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천외천 쪽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천외천?”

현석은 대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사신 길드 같은 놈들의 속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 몸담았던 길드가 바로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쪽에서 다른 말은 없었나?”

“예?”

양동욱은 현석의 뜬금없는 말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곧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한데…….”

양동욱은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조금 이상했던 점이 떠올라 말을 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쪽에서 누군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했습니다. 뭐……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는 아줌마였다. 벌써 한국에 들어오다니 말이다.

‘한국에 들어오면 안내를 해달라고 했던가?’

정말 보통이 아닌 여자였다. 한국에 오면 연락하겠다고 하더니 벌써 일을 여기까지 진행시켜 놓다니 말이다.

조만간 직접 연락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좀 더 긴밀한 관계가 되어 함께 움직이게 될 테고 말이다.

‘거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당면한 문제는 사신 길드와 추경훈, 추광열이었다.

현석의 눈이 빛났다. 추경훈이라면 아직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번 사신 길드 정리는 생각보다 더 간단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 사신 길드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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