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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29화 (129/326)
  • < 팀 결성 2 >

    “이분이…… 그때 말씀하셨던 그분인가요?”

    양세희의 물음에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석의 시선이 권혁찬에게 잠깐 머물다가 떨어졌다.

    요 며칠 간의 지옥 훈련으로 권혁찬의 레벨은 70을 훌쩍 넘었다.

    권혁찬에게는 레벨을 올릴 만한 재능은 없었지만 어떤 고통이라도 버틸 수 있는 독기가 있었다.

    물론 그 인내의 한계를 아득히 넘는 경험을 하고 온 권혁찬에게 그런 말을 해줘봐야 좋은 소리를 듣긴 어렵겠지만.

    “일단 인사나 하라고 불렀다. 지금 당장 합류하기엔 레벨이 너무 차이가 나서 의미가 없으니까.”

    물론 그래도 팀에 합류해 함께 사냥을 하면 뭔가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파괴력이 부족한 팀이었기에 권혁찬의 가세만으로도 사냥의 질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현석이 원하는 건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권혁찬 역시 류지혜처럼 아직 자기만의 특별한 스킬을 각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2층에 올라가면 나중에 팀에 합류하게 될 사람이 있다.”

    “나중에 합류하신다고요?”

    “지금은 몸이 좀 안 좋으니 그걸 치료한 다음에 합류하게 될 거다.”

    몸이 안 좋다는 말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인 사람은 류혜연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위에 있다는 말에 얼른 계단으로 달려갔다.

    현석은 그런 류혜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본적인 치료는 어렵겠지만 류혜연이 힐링 스킬을 써주는 것만으로 박승희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다.

    바닥났던 생명력이 어느 정도 차오를 테니까.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 켈드라코의 저주를 풀지 않는 한, 결국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실 현석은 그 때문에 조금 머리가 복잡하긴 했다. 켈드라코라는 이름을 가진 마수는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지도 몰라.’

    그것이 현석이 갖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현석은 심안을 통해 마수의 이름을 확인한다. 그리고 현석이 심안으로 확인한 이름과 널리 통용되는 이름이 다른 경우도 종종 있었다.

    현석은 문득 심안이 주는 정보가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렇게 글로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인가?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정보를 볼 수 있었던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었다. 적어도 현석이 아는 한에서는 말이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언어에서 자유로워진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 제국어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는 없고, 던전 속 세상에만 있는 제국어 말이다.

    현석은 떠오르는 의문들을 한 번 정리한 다음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지금은 이 의문들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이걸 해소하려면 던전을 계속 탐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투명 던전을 좀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어.’

    투명 던전을 돌다보면 뭔가 이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기대가 되는 건 화이트홀이었다. 개별 던전으로 만들어지는 화이트홀 말이다.

    현재 현석이 알고 있는 개별 화이트홀의 포인트는 한국에 3개가 있었다.

    아마 그것들이 발견되려면 최소한 2년에서 3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현석의 기억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이미 역사가 뒤틀리고 있었다. 더 일찍 발견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니 서둘러 팀을 정비하고 박승희의 저주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그 던전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놈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게 바로 사신길드였다.

    원래 한국의 첫 번째 화이트홀을 발견한 자들은 K나이츠 길드였다.

    회귀 전에야 그들의 힘과 정보력이 강해서 그렇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왜 그들이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들의 뒤에 있는 렉스턴 에너지가 지원해준 것이다. 아마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었을 확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현석이 파악한 렉스턴 에너지는 전 세계를 손 안에 넣고 주무르려는 놈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한국에만 신경을 쓰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건 세계 어느 나라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이 쓰는 방식이 각 국에 그들의 손발과 눈귀가 되어줄 길드를 만들고 그것을 컨트롤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정보와 돈이나 인력을 조금 지원해주고 화이트홀을 찾게 했을 것이다.

    원래 화이트홀을 찾았던 K나이츠 길드가 무너졌으니, 이제 그 뒤를 이은 사신 길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현석이 나름의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류지혜와 양세희는 조심스럽게 권혁찬에게 다가갔다.

    어쨌든 앞으로 한팀이 될 사이인데 뭔가 대화라도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권혁찬의 분위기가 워낙 가라앉아 있어서 섣불리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좀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그냥 오셔도 됩니다.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습니다. 저 별로 까칠하거나 까다로운 놈 아닙니다.”

    권혁찬이 먼저 그렇게 말해주자, 두 여인도 다소 안심이 되고 긴장이 풀리는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양세희와 류지혜가 권혁찬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세 사람은 조금씩 말문을 열고 대화를 나눴다.

    같은 팀으로 서로의 등을 맡기고 싸워야 할 동료였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의 친분은 쌓아야 한다.

    서로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극한 상황에서 도움이 된다. 그러니 친해져야만 한다.

    다들 그걸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억지로라도 친해지기 위해 애썼다.

    권혁찬도 사실 어두운 사람은 아니었다. 유치한 면도 있고 유쾌함도 갖춘 사람이었다. 자신의 별칭을 소드마스터라고 지은 사람 아닌가.

    최근의 훈련이 죽을 정도로 힘들었기에 이 모양인 거지 사실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대화가 이어질수록 분위기가 좋아졌다.

    그렇게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때, 위에서 류혜연이 파김치가 되어 내려왔다.

    그리고 류혜연 뒤로 얼굴에 생기마저 도는 박승희가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박승희의 모습에 가장 놀란 사람은 권혁찬이었다.

    “괘, 괜찮은 거야, 이제?”

    미국에 가서부터 지금까지 박승희는 항상 몸이 안 좋았다. 그 와중에도 억지도 플레이어 일을 하겠다고 던전을 돌았다.

    그러니 상태가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권혁찬의 기억에만 남아있던, 건강했을 때의 박승희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박승희 역시 권혁찬과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도 설마 이렇게 몸이 가뿐해질 줄은 몰랐다.

    그녀는 새삼 고맙고 안쓰러운 얼굴로 류혜연을 바라봤다. 류혜연은 그녀를 위해 체력과 마력이 바닥 날 때까지 힐링 스킬을 퍼부어 주었다.

    “죄송해요. 제 실력으로는 그게 한계인 거 같아요. 병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고칠 수가 없었어요.”

    “아닙니다. 우리 승희가…… 이렇게 좋은 혈색을 가진 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그래도 고치고 싶었는데…….”

    류혜연은 안타까움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누군가 아픈 것을 보면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가슴이 저렸다.

    예전 기억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녀는 아픈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아픈 자신을 위해 애쓰는 사람을 바라보는 심정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류혜연은 박승희의 손을 두 손으로 살며시 잡아 힘을 주었다.

    “지지 마세요. 그리고 힘들 때마다 절 부르세요. 제가 반드시 달려와서 이렇게 해 드릴 게요.”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현석은 그 장면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해서 뭐가 달라지지?”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현석을 바라봤다. 복잡한 심정이 눈빛에 담겨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은 성장 중이다. 성장이 더뎌지면 곤란해.”

    “하지만…….”

    류혜연은 처음으로 현석의 말에 저항하려 했다. 이건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였다. 적어도 그녀가 보기엔 그랬다.

    현석은 누구보다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원인도 모르고 힘만 퍼붓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원인이라는 말에 류혜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오라버니께서는…… 원인을 아세요?”

    현석은 단호히 말했다.

    “저주다.”

    “예에?”

    다들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심지어 당사자인 박승희조차 같은 눈빛이었다.

    저주라니.

    “저…… 진짜 저주라는 게 있는 건가요?”

    류혜연의 물음에 현석이 그녀를 쳐다봤다. 현석의 눈빛은 담담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네가 이상한 거 아니냐는 듯한 감정도 담겨 있었다.

    “그럼 네가 가진 힐링이라는 스킬은 뭐지? 그건 이상하지 않나?”

    “그건…….”

    현석이 고개를 돌려 류지혜를 쳐다봤다.

    “버프는? 게다가 네 버프는 일반인에게도 적용이 되지?”

    “그야…….”

    그제야 다들 조금은 수긍했다. 이 던전과 플레이어들의 세상에서는 어떤 것이 나오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마법과 아티팩트, 그리고 마수가 판치는 세상 아닌가.

    현석의 시선이 박승희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현석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랐다.

    “마수의 저주에 걸렸다. 뭔가 짚이는 건 없나?”

    “마수라고요?”

    박승희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현석은 시선을 돌려 권혁찬을 쳐다봤다.

    “너도 짐작하는 게 분명히 있을 거다. 기억을 떠올려.”

    권혁찬도 그 말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현석은 아주 자연스럽게 좌중을 장악하고 있었다. 박승희와 권혁찬에게 말을 놓았는데도 두 사람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그걸 그냥 받아들였다.

    그리고 숨소리까지 죽이며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류혜연의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대박 멋있어!’

    류지혜는 그런 동생의 모습에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도 결국은 현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 정도 장악력은 아무나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현석이 컨트롤하고 있었으니까.

    현석은 손뼉을 짝 쳤다.

    짜아악!

    강렬한 소리가 좌중의 정신을 일깨웠다. 모두 하던 생각을 멈추고 현석을 바라봤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곧 다들 흩어져서 훈련해야 하니까.”

    말인 즉슨, 얼른 친해질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었다.

    그 말에 다들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실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 다음인지라 아까보다도 훨씬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아직 혁찬 아저씨는 특별한 스킬이 없다는 거네요?”

    권혁찬은 류혜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좀 불편한 질문이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기도 했다.

    류혜연은 그런 권혁찬에게 환하게 웃어 주었다. 정말로 눈부신 미소였다.

    권혁찬은 옆에 박승희가 앉아 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그 미소를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건 본능적인 거였다. 아마 그걸 정면에서 봤다면 남자가 아닌 여자라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권혁찬은 그렇게 생각하며 힐끗 박승희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박승희도 멍하니 류혜연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좀 이상하긴 해. 나야 이런 좋은 팀에 들어오니 좋지만……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으니까.”

    류혜연은 물론이고 류지혜와 양세희까지 동시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마 분명히 뭔가가 있을 테니까. 그렇죠, 대장님?”

    양세희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아까부터 옆에 서서 모두의 대화를 지켜보기만 하던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현석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곧 각성할 거다. 기초는 다 만들었으니까.”

    “각성…… 이라고요?”

    권혁찬이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각성이라니. 설마 아까 얘기했던 특별한 스킬을 얻게 된다는 뜻인가? 대체 어떻게?

    권혁찬은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한데 그게 더 놀라웠다. 아무도 현석의 말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다들 역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권혁찬은 놀람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이 사람…… 대체 뭐지?’

    현석이 고개를 돌려 그런 권혁찬을 가만히 쳐다봤다. 현석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지금까지보다 좀 더 고통스럽겠지만 참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렇지?”

    권혁찬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과연 어떤 건지 감도 안 잡혔다.

    고개를 젓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기대감 반 걱정 반 뒤섞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박승희와 눈이 마주쳤다.

    거짓말처럼 두려움과 긴장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허세가 스며들었다.

    “전 고통 같은 거 모르는 사람입니다.”

    < 팀 결성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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