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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28화 (128/326)
  • < 팀 결성 1 >

    한국에 도착한 현석 일행은 공항에 마중 나온 양동욱을 만났다.

    양동욱은 자신이 부리는 동생들까지 동원해 큰 차를 끌고 왔다.

    현석이 미리 환자 한 명이 있다고 연락을 줬기 때문이다.

    양동욱은 과연 현석이 최고의 딜러가 될 거라고 단정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하지만 권혁찬을 본 양동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고레벨 특유의 포스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양동욱이라고 합니다. 우리 대장님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죠. 하하하하.”

    양동욱이 먼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가 인사를 했다.

    권혁찬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양동욱이 내민 손을 잡았다.

    “권혁찬입니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쪽은 제 박승희입니다.”

    “아, 양궁 하신다던 분이로군요.”

    권혁찬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그 얘기는 다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

    “오명국이라고 아십니까?”

    “명국이?”

    권혁찬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에 떠올랐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명국이였군요.”

    “잘 아시나 봅니다.”

    “예. 잘 아는 편이죠. 제법 오랫동안 같이 살다시피 했으니까요. 명국이는 요즘 잘 지냅니까?”

    “이거…… 소식이 아주 어두우신 모양이군요. 요즘 제일 잘 나가는 플레이어 중 한 명입니다.”

    “그래요?”

    권혁찬은 기쁨 반 의아함 반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오명국은 그리 재능이 뛰어나지 않은 녀석이었다.

    양동욱은 권혁찬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옆에 서 있는 현석을 힐끗 바라봤다.

    권혁찬의 시선도 양동욱을 따라 자연스럽게 현석에게로 향했다.

    “운이 좋았죠. 우리 대장님을 만났으니까요. 지금은 한국 최고의 길드라고 할 수 있는 레드드래곤을 거의 이끌다시피 하고 있죠.”

    “레드드래곤! 명국이가 레드드래곤에 있습니까?”

    “그냥 있는 게 아니라 2인자라니까요? 실질적 운영은 오명국씨가 다 하고 있죠. 그쪽 길드마스터는 뭐랄까…… 사냥에 미쳐 있어서요. 하하하하.”

    소식에 어두운 편인 권혁찬도 레드드래곤 길드에 대해서는 들어봤다.

    레드드래곤 길드가 유명해진 건 그곳의 마스터인 한중현이 100레벨을 넘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부터였다.

    한국 하면 레드드래곤 길드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가는 중이었으니 아무리 해외에 있다고 해도 플레이어라면 이름 한 번쯤은 듣게 되어 있었다.

    “정말…… 잘 됐군요.”

    권혁찬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걸 보는 양동욱의 표정이 묘해졌다.

    “한데…… 권혁찬씨는 혹시 레벨이 어떻게 되시는지…….”

    “67입니다.”

    “아, 그렇군요.”

    양동욱은 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레벨도 낮았다. 그러니 고레벨 특유의 포스가 없는 게 당연했다.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하는 양동욱으로서도 권혁찬에 대한 판단은 섣불리 내릴 수가 없었다.

    현석만 아니었다면 당장 쓸모없음 판정을 내리겠지만, 현석이 개입해 있다는 점이 그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뭐…… 이런 경우에는 나야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니까.’

    안 되면 현석이 어떻게든 되게 만들지 않겠는가.

    “자,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제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공항에서의 통성명과 인사가 대충 끝나자, 양동욱이 일행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려하고 안락한 버스를 타고 현석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 * *

    “집이 상당히 좋군요.”

    권혁찬은 현석의 집으로 들어가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현석에게 돈이 많다는 거야 자신을 리볼버에서 사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가장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집이었다.

    “아마 안에 들어가서 세부적인 걸 살피면 더 놀랄 겁니다.”

    양동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떠올리고 있는 건 거실에 있는 지하실이었다. 예전 거기에 들어갔다가 기절할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과연 권혁찬은 거기에 들어가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권혁찬 씨와 함께 팀이 될 사람들이 며칠 후에 올 겁니다. 지금은 한창 훈련 겸 사냥 중이라서요.”

    “팀이라고요?”

    “아마 그 팀도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양동욱은 거기까지 말하고 뒷말을 삼켰다. 만일 현석이 말한 대로 권혁찬의 실력이 세계 제일이라면, 게다가 딜러라면, 그 팀을 그야말로 천하무적이 될 것이다.

    ‘뛰어난 탱커에 기적 같은 힐러, 거기에 사기급 버퍼까지. 세상에 이런 팀은 다시 생기기 어려울 거야.’

    현석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박승희에게 방을 배정해 주었다. 집에서 가장 마력이 부드러운 장소였기에 박승희 같은 병자 플레이어에게는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었다.

    박승희를 침대에 눕힌 현석은 그 방에 있는 금고에 그녀의 활, 천풍섬을 넣었다.

    사실 그렇게 보관하기 싫었다. 훨씬 더 중요한 공간에 보관하고 싶었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박승희의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봉인까지 되어 있어.’

    과연 봉인이 풀리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스킬이 생기는 걸까? 아니면 스탯이 추가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현석은 즐거운 기분으로 금고를 잠근 뒤, 침대에 누워 어느새 잠든 박승희를 한 번 쳐다봤다.

    ‘일단…… 저주부터 어떻게 해야겠군. 그나저나 마수 켈드라코가 대체 뭐지?’

    거의 20년 뒤의 미래까지 겪어본 현석이었다. 게다가 상당한 수준의 플레이어였기에 접할 수 있는 정보도 상당했다.

    그런데도 켈드라코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대한 정보를 얻지 않으면 아마 저주를 풀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저주를 늦출 수는 있었다.

    생명력을 갉아먹는 저주이니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면 되지 않겠는가.

    현석에게는 플레이어의 생명력을 공급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나 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힐링포션이었다.

    하지만 간이 힐링포션으로 과연 어디까지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생명력이 전혀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다음 방법은 류혜연의 힐링 스킬이었다. 그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현석은 왠지 기대가 되었다. 박승희 역시 재능이 상당한 플레이어임이 분명했다.

    그녀의 몸에 흐르는 마력이 그 정보를 조금씩 전해주고 있었다.

    비록 저주에 당해 제대로 된 흐름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현석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했다.

    잘하면 원거리 딜러도 한 명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권혁찬은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가진 근거리 딜러였다.

    박승희가 원거리에서 적을 견제하고, 양세희가 달려드는 적을 막고, 권혁찬이 근거리에서 폭발적인 딜링을 넣으면 웬만한 마수는 식은 죽 먹듯이 간단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뛰어난 힐러와 엄청난 버퍼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현석은 자신이 만들 팀이 과연 얼마나 강해질지 기대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야 서서히 힘이 갖춰지는 느낌이었다.

    정보와 운영을 맡은 양동욱의 능력은 정말 끝내줬다. 그는 혼자서 마치 100명분의 일을 하는 것처럼 막힘없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임형석은 과연 일반인인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하다.

    현석이 잠시만 방심하고 성장을 게을리하면 언제 따라잡힐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거기에 제대로 완성된 팀이 있다. 세계 제일의 팀 말이다.

    현석의 힘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관계를 잘 맺고, 또 함께 성장해 온, 레드드래곤 길드가 있었다.

    그들은 유사시에 현석에게 정말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로 암시장과 피라밋 암시장도 있었다.

    그 두 암시장과의 인연이 어떻게 풀려나갈지는 모르지만 왠지 느낌이 좋았다.

    현석은 박승희의 방을 나섰다. 문 앞에 권혁찬이 서성이고 있었다.

    현석은 그런 권혁찬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 이 폭발적인 근거리 딜러를 다듬을 시간이 되었다.

    “갑시다. 아마……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할만큼 힘들 겁니다.”

    권혁찬이 피식 웃었다.

    힘든 일이야 지금까지 무수히 겪어왔다. 그 어떤 것도 그의 마음을 꺾지 못했다.

    사냥을 하면서 무수한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그 어떤 고통스러운 부상도 그는 웃으며 넘겨왔다.

    그런 그에게 고통과 죽음을 얘기하니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러자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금방 되진 않겠지만, 결국 세계 제일의 딜러가 될 겁니다. 견디기만 하면 말이죠.”

    권혁찬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견딜 겁니다. 평생을 그러면서 살아왔으니까요.”

    그의 결심과 인내력은 정말로 단단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의 상식이나 경험을 아득히 넘어서는 일도 있다는 걸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 * *

    양세희는 초췌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었다. 그녀는 지금 현석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녀의 뒤로 그녀보다는 좀 낫지만 큰 차이 없이 초췌한 두 사람이 비슷한 걸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류지혜와 류혜연이었다.

    “쉴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갑자기 우릴 부른 걸까?”

    양세희가 표정과 달리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류혜연이 대답했다.

    “아마…… 전에 말씀하셨던 사람을 찾으신 게 아닐까요?”

    “전에 말했던 사람? 아, 딜러?”

    양세희는 좀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렇게 굉장한 딜러일까?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하던 사람일 거 아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여기 있는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두각을 나타대던 플레이어는 절대 아니었다. 물론 재능이야 넘치도록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레벨업에 대한 재능이 전부가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특별함이었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스킬이 만든다.

    양세희는 탱커에 최적화된 맞춤 스킬이 있었다. 그녀의 스킬은 적이 많건 적건 무조건 빛을 발한다.

    어떤 적이든 철벽 같이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류혜연의 힐링 스킬은 과장 좀 보태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단숨에 붙일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류지혜의 버프는 또 어떠한가.

    그녀의 버프는 마약이었다. 이젠 그녀의 버프가 없는 사냥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그녀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런 특별한 스킬이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사람이라도 어떤 스킬을 가졌느냐에 따라 정말로 특별해질 수도 있었다.

    “그 새로운 분이 우리 할아버지만큼 강하실까요?”

    류혜연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양세희를 보며 물었다.

    양세희는 순간 류혜연을 한 번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피식 웃었다.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 거 같아? 우리 대장님 빼고?”

    류혜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결국 양세희는 참지 못했다.

    “꺅! 이거 놔 주세요!”

    류혜연이 양세희의 품에 안겨 버둥거렸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양세희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에구, 이 귀여운 것!”

    류혜연은 나름 발버둥 쳐 봤지만 탱커인 양세희의 힘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잠깐의 소란 후, 그녀들은 어느새 현석의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거실에 있는 소파에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는데, 표정이 어찌나 어둡고 초췌한지 하마터면 죽은 사람이라고 오해할 뻔했다.

    ‘우리보다 더해!’

    세 여인은 소파에 앉은 권혁찬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현석이 만든 첫 번째 팀의 모든 팀원이 한집에 모였다.

    < 팀 결성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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