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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27화 (127/326)
  • < 권혁찬 3 >

    권혁찬은 현석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동안 번 돈은 다 어쨌는지 쓰러져 가는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벌레가 투둑 떨어질 것만 같은 건물에 들어서자, 계단이 보였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오른 권혁찬은 열쇠로 문 하나를 따고 들어갔다.

    어질러진 집안 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멀리 침대에 여자 한 명이 누워 있었다.

    “손님이 오셨네?”

    여자는 고개를 돌려 문으로 들어오는 권혁찬과 현석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권혁찬이 손님을 집으로 데려온 건 처음 봤다. 게다가 그 사람이 한국인이라니 더 놀라운 일이었다.

    박승희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뭐라고 준비해 드리고 싶은데…….”

    그녀는 일어나려다가 힘없이 다시 누웠다. 아무래도 몸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 모양이었다.

    현석은 말없이 박승희가 누운 침대로 다가갔다.

    그걸 본 권혁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빚을 떠안은 사람이라서 방심하고 있었다. 사실 자신은 이렇게 쉽게 집을 공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권혁찬은 갑자기 모든 상황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혹시 메이슨이 꾸민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메이슨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남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권혁찬의 눈에 침대에 누운 박승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청초한 외모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한데 아프기까지 하니 청순미가 더해져 오늘따라 훨씬 아름다웠다.

    충분히 그런 짓을 해서라도 얻을 만한 여자이긴 했다. 물론 보통 사람은 아무리 그래도 절대 그런 짓을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메이슨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힘 있는 쓰레기였다.

    권혁찬이 무슨 생각을 하건 현석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현석의 관심은 온통 박승희에게 가 있었다.

    회귀 전에 현석이 만나서 함께 한 사람은 권혁찬이지 박승희가 아니었다.

    박승희는 현석이 권혁찬을 만나기 전에 이미 죽은 뒤였다. 그것도 미국에 있을 때, 즉, 이맘때쯤 죽었다.

    현석이 박승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다.

    박승희가 이맘때 죽은 이유가 메이슨 때문이라는 것과 그녀가 원래 활을 잘 썼다는 것 정도가 현석이 그녀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한데 지금 심안을 통해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니, 꼭 메이슨이 아니었더라도 그녀가 살아나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가진 타이틀이 문제였다.

    [타이틀-저주에 걸린, 체력이 봉인된, 힘이 봉인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나쁜 타이틀을 세 개나 갖고 있었다. 하나하나 확인해보니 내용은 더 심각했다.

    [저주에 걸린-마수 켈드라코의 저주에 걸린 사람을 구분하는 호칭. 잠재 스탯인 생명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저주가 풀리기 전까지 줄어드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생명력이 0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 뻔하다. 죽는 것이다.

    [체력이 봉인된-켈드라코의 저주에 걸린 사람 중, 운이 나쁘면 얻을 수 있는 호칭. 체력이 봉인되어 스탯의 보정효과를 전혀 받을 수 없다.]

    [힘이 봉인된-체력이 봉인된 사람 중, 운이 나쁘면 함께 얻게 되는 호칭. 힘이 봉인되어 힘스탯의 보정효과를 전혀 받을 수 없다.]

    타이틀만 놓고 보면 그녀는 계속 죽어가고 있으며, 치료나 특별한 약을 통해 일시적으로 생명력을 늘려 놓아도 점차 빠르게 사라지는 생명력 때문에 죽음을 예약해둔 상황이었다.

    게다가 체력과 힘이 봉인되어 플레이어임에도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힘과 체력을 갖고 있으니 사냥에 도움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현석은 일단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봤다. 한쪽 벽에 걸린 활이 보였다.

    양궁을 했다고 하는데, 벽에 걸린 활은 각궁이었다.

    ‘아티팩트인데?’

    아티팩트 중에 각궁은 처음 봤다. 물론 회귀 후에 말이다. 현석은 본능적으로 각궁의 정보를 확인했다.

    [천풍섬]

    [일곱 영웅의 염원이 깃든 활. 그들의 염원과 힘이 담겨있다. 스킬 풍격, 섬격, 천라지망을 쓸 수 있다. 민첩+10, 힘+10, 체력+10, 봉인된 상태.]

    현석은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대적할 아티팩트가 거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무기였다.

    회귀 전에도 이렇게 훌륭한 아티팩트를 얻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이건 던전에서 나온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

    문제는 봉인된 상태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현석에게는 심안이라는 사기적인 스킬이 있었다.

    어떻게든 봉인의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을 듯했다.

    “승희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입니다. 승희의 무기로 쓰고 있죠.”

    권혁찬이 현석 옆에 서서 활에 대한 부연설명을 해 주었다.

    “다만…… 최근에는 힘이 없어서 저 활 대신 다른 무기를 써 왔습니다.”

    그러면서 힐끗 옆을 쳐다봤는데, 거기에는 작은 석궁이 있었다. 그것 역시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저 천풍섬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감 같은 무기였다.

    단지 장전이 편하고 쓰는데 큰 힘이 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써 온 모양이었다.

    현석은 금방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천풍섬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한동안 천풍섬을 살피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박승희를 쳐다봤다.

    그녀는 누운 채 불안한 표정으로 현석과 권혁찬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왜 불안해하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금방 알 수 있었다. 권혁찬으로부터 풍기는 마력이 흔들리고 있었다.

    천풍섬에 너무 정신을 팔고 있어서 마력에 대한 집중력이 살짝 흐트러졌던 모양이었다.

    현석은 권혁찬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피는 현석의 모습에 권혁찬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불청객이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불청객?”

    여기 찾아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이 집은 철저하게 위치를 비밀로 했다.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집이었다.

    게다가 오갈 때마다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른다. 혹시 미행이라도 할까봐 말이다.

    박승희가 아파 쉬고 있을 때, 자신만 일하러 나갔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정말 미쳐버릴 것이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정말로 신중하게 비밀을 지켜왔다.

    그런데 불청객이라니, 대체 누가 찾아온단 말인가.

    권혁찬이 의심과 불안이 뒤섞인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날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이곳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니까.”

    현석의 말에 권혁찬은 대체 누가 오기에 이러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는 창가로 바짝 붙어 현석이 보는 쪽을 유심히 살폈다.

    “메이슨? 대체 저놈이 어떻게 여길?”

    현석은 그 말에 성큼성큼 집의 안쪽으로 걸어갔다.

    “어딜 가는 겁니까?”

    권혁찬이 화난 목소리로 현석을 쫓아갔다. 현석이 향하는 곳은 옷장이었다.

    권혁찬의 옷이 쭉 걸려 있었는데, 현석은 그 중 하나를 꺼내 권혁찬에게 던졌다.

    권혁찬은 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석과 자신의 옷을 번갈아 바라봤다.

    “거기 추적기 달려 있습니다.”

    “뭐라고요?”

    권혁찬은 깜짝 놀라 옷을 뒤적였다. 나중에는 옷을 갈기갈기 찢다시피 했다. 그리고 작은 단추모양의 위치추적기 하나를 발견해냈다.

    “이럴 수가…….”

    그동안 그렇게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어찌 이런 실수를 했단 말인가.

    “어쩌겠습니까? 여기서 싸울 겁니까? 아니면 나갈까요?”

    권혁찬의 얼굴에 고민이 피어올랐다.

    여기서 싸우면 박승희가 말려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데리고 딴 데로 이동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새삼 메이슨이라는 쓰레기에게 이가 갈렸다.

    권혁찬이 결연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제가 나가서 저놈들을 해치우겠습니다. 우리 승희 좀 부탁드립니다.”

    현석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습니까?”

    권혁찬은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제가 이길 겁니다.”

    현석이 말을 받았다.

    “그렇겠죠. 대가로 팔다리 하나쯤 내주고서.”

    권혁찬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옳다. 아무 피해나 희생 없이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메이슨 혼자라면 어찌어찌 해보겠지만, 상대는 무려 다섯 명이나 된다.

    리볼버 길드의 쓰레기가 모두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현석은 피식 웃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섯 명의 쓰레기가 지척에 다가왔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저들은 내가 처리하죠.”

    권혁찬은 그런 현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대체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원하는 게 고작 자신의 영입이라면 정말 번지수 잘못 찾은 것이다.

    “대체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권혁찬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현석은 그런 권혁찬을 힐끗 쳐다봤다.

    “다녀와서 얘기하죠.”

    그 말을 남긴 현석이 그대로 창으로 뛰어내렸다.

    권혁찬은 급히 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가볍게 착지한 현석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메이슨 일당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여긴 보는 눈이 많은데…….’

    중심지는 아니었기에 CCTV 같은 건 없었지만 제법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사실 낮보다 밤에 더 사람이 많지만, 지금 소란을 피우면 다들 고개를 내밀고 밖을 내다볼 것이다.

    현석과 메이슨 일당이 마주친 순간, 권혁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메이슨 일당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현석이 사이에 파고들어 뭔가를 한 것 같긴 한데 너무 빨라서 알아보지도 못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레벨 플레이어야!’

    100레벨을 넘는 강자가 분명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메이슨은 저래 보여도 90레벨이 넘는다. 게다가 그 일당도 비슷한 레벨이었다.

    그런 놈들을 한 순간에 주저앉히다니, 정말 대단했다.

    사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저들은 다들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현석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보는 눈이 혹시 있나 확인한 것이다.

    권혁찬도 다급히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사방을 훑었다.

    다행스럽게도 소란이 아예 없었기에 내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 다들 자기 먹고 살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권혁찬이 굳이 이곳에 집을 얻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장점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현석은 다섯 사람을 빠르게 골목으로 끌고 들어갔다.

    뭘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저곳은 누가 밖을 내다보더라도 절대 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잠시 후, 현석이 골목에서 나왔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손이었다.

    ‘뭐지? 설마 골목에 방치한 건가? 그러면 안 될 텐데…….’

    죽였어도, 또 안 죽였어도 문제가 된다. 어쨌든 흔적이 남을 테니까.

    현석은 메이슨 일당이 쓰러졌던 장소로 가서 근처를 면밀히 살폈다. 혹시라도 남은 흔적을 지우는 모양이었다.

    권혁찬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현석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끓어올랐다.

    권혁찬은 다음 날, 박승희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 * *

    “이제 얘기해 주십시오. 대체 왜 절 이렇게까지 해서 영입한 겁니까?”

    권혁찬은 그동안 생각이 많아 잊고 있던 질문을 했다.

    이미 비행기에 탔으니 돌이키긴 늦었지만 그래도 알고 싶었다.

    박승희는 퍼스트 클래스에서 편안하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 현석은 박승희를 배려해 굳이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했다.

    권혁찬은 그런 점이 고마우면서도 또 불안했다. 자신에겐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받기만 하면 나중에 갚을 때 분명히 문제가 될 테니까.

    그래서 지금 그 답을 듣고 싶었다.

    “가능성.”

    현석의 답에 권혁찬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예?”

    “당신은 세계 제일의 딜러가 될 겁니다.”

    권혁찬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왠지 현석이 말하니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석은 그런 권혁찬의 표정을 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마도.”

    < 권혁찬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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