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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26화 (126/326)
  • < 권혁찬 2 (5권 끝) >

    리볼버 길드는 규모가 큰 길드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4층 건물의 3,4층을 임대해서 쓰고 있었다.

    4층에 훈련장과 길드마스터의 사무실 공간을 마련했고, 3층을 길드원들이 썼다.

    그리고 같은 건물의 1층에 제법 그럴 듯한 커피전문점이 있었다.

    찾아온 사람은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권혁찬은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두리번거렸다. 커피를 마시는 손님은 제법 많았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찾아온 손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권혁찬의 눈에 저쪽 창가에 앉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 사람인 모양이군.’

    권혁찬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권혁찬이 눈앞에 다가올 때까지 미동도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절 찾아오셨다고요?”

    권혁찬이 사내에게 물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사내는 현석이었다. 양동욱에게 정보를 듣자마자 미국으로 날아온 것이다.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었기에 맨 얼굴로 왔다.

    여권이나 비자 문제는 양동욱이 현석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동안 모두 해결해 두었기에 별로 신경 쓸 것 없이 미국에 올 수 있었다.

    현석은 말없이 권혁찬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권혁찬은 슬슬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미국에 온 이후로 참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진 듯했다.

    현석이 말없이 쳐다보기만 한 이유는 그가 진짜 자신이 찾던 권혁찬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현석은 권혁찬의 얼굴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가진 마력 패턴은 알고 있었다.

    마력 패턴을 보면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권혁찬의 마력패턴은 기억과 좀 달랐다.

    아예 다른 게 아니라 뭔가가 변화한 것처럼 달랐다.

    사실 류지혜도 현석의 기억에 있던 마력패턴과 정확히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플레이어의 마력패턴은 레벨의 벽을 넘을 때나 새로운 스킬을 각성했을 때 조금씩 변화한다.

    하지만 그 기본이 되는 틀은 변하지 않기에 그걸로 구분이 가능했다.

    만일 회귀 전 현석이 시력을 갖고 있었다면 굳이 마력 패턴의 틀까지 파악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레벨이 오르거나 스킬을 각성한다고 해서 얼굴이 변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기본이 되는 틀 자체가 좀 다른 것 같은데?’

    하지만 아예 타인처럼 다른 게 아니라 아주 미묘하게 달랐다.

    만일 현석의 마력 감지 수준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낮았다면 거의 구분하지 못했을 정도로 차이가 없긴 했다.

    그래서 현석은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이 권혁찬이 바로 그 권혁찬이라고 말이다.

    권혁찬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할 무렵, 현석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권혁찬씨 맞습니까?”

    “네. 참 빨리도 물어보는군요. 한데 그렇게 물어보시는 걸 보니 절 잘 알고 오신 건 아닌 모양이네요. 별로 시간이 없으니 용건이 있으면 서둘러 주시죠. 아니면 그냥 올라갈 테니까.”

    권혁찬은 사실 자신이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눈앞에 앉아있는 현석은 겉보기에도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어린 청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한국인이라는 점이었다. 한국에 대한 향수가 심할 때 나타나서 좀 더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그럼 용건부터 말하죠.”

    권혁찬은 상대가 용건을 말한다고 하니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1분 더 있으나 지금 가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해보시죠.”

    “영입 제안을 드리러 왔습니다.”

    “영입? 날 말입니까?”

    권혁찬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대체 자신을 얼마나 바보 멍청이로 봤으면 이런 얘기를 꺼내겠는가.

    “장난 하지 말고 가라.”

    현석은 입을 다물고 권혁찬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장난이나 사기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하지만 굳이 그게 아니라고 구구절절 말로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왔다. 그냥 일을 진행하다보면 권혁찬은 알아서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볼버 길드에 빚이 좀 있죠?”

    현석의 물음에 권혁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법 조사도 좀 했나보네. 하긴, 사기를 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현석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뚜벅뚜벅 커피전문점에서 나갔다.

    권혁찬은 현석이 포기하고 돌아가는 거라 여겼다.

    “하여간…… 요즘 마가 꼈나…… 짜증나는 일이 계속 생기네.”

    권혁찬은 길드로 돌아가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나섰다. 한데 그 순간 길드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현석이었다.

    “뭐야? 그냥 간 거 아니었어?”

    권혁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데 현석은 그를 기다리지도 않고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권혁찬은 귀찮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음에 드는 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에 들어가서 험한 꼴을 당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리볼버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상당히 거칠었다. 그렇기에 저런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안에 들어가면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뭐…… 죽이지는 않으니까.”

    권혁찬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둘러 현석의 뒤를 따라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계단을 타고 올라가 3층에 도착한 권혁찬은 역시나 현석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길드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만들 하지! 그래도 내 손님인데.”

    권혁찬이 천천히 걸어 현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현석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나직이 말했다.

    “그렇게 혼자 들어가 버리면 어떡해. 이 녀석들 제법 거칠어.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그냥 얌전히 돌아가.”

    권혁찬이 한국어로 말했기에 길드원 중에 그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석은 그런 권혁찬의 말과 태도에 피식 웃고는 유창한 영어로 그들에게 물었다.

    “리볼버 길드의 마스터를 만나러 왔다.”

    “뭐? 우리 마스터를? 우리 마스터가 너 같은 놈을 만나주기나 할 거 같아?”

    “거래라고 전해.”

    현석의 당당한 말에 권혁찬은 대체 이놈이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묘한 기대감이 일어났다.

    “거래?”

    메이슨이 입가에 비웃음을 걸고 현석 앞에 섰다.

    “거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메이슨이 막 현석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현석이 그의 호흡을 끊으며 말했다.

    “돈 벌 기회를 날리면 후회할 텐데?”

    메이슨은 주먹을 날리려다가 멈추고는 인상을 썼다. 그러자 현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여기 마스터는 권위가 별로 없나보군. 마스터의 손님을 보통 이런 식으로 대하나?”

    “뭐야? 이 자식이!”

    메이슨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현석을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몸을 휙 돌려 버렸다.

    “야! 저 자식 마스터 한테 안내해!”

    메이슨은 동료 한 명에게 그렇게 말한 다음, 막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돌려 현석을 노려봤다.

    “너, 별 거 아니면 진짜 뒈질 줄 알아.”

    현석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얼른 안내나 해.”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방에 있던 자들을 슥 훑어봤다. 아마 자신을 쉽게 보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문득 회귀 전에 권혁찬과 나눴던 대화 몇 가지가 떠올랐다.

    현석은 자신에게 쏘아붙이고 돌아선 자에게 묘한 확신이 들었다.

    “네가 메이슨인가?”

    그러자 메이슨이 벼락 같이 돌아서서 현석에게 눈을 부라렸다.

    “너 뭐야? 내 뒷조사 한 거냐?”

    메이슨은 으르렁 거리듯 말하고는 문득 고개를 돌려 권혁찬을 쳐다봤다.

    “너냐? 나에 대해서 말한 게?”

    권혁찬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야. 억지 좀 쓰지 마.”

    “큭큭큭. 넌 나중에 두고 보자.”

    안 그래도 조만간 손을 좀 봐주려고 했다. 아니, 조만간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었다.

    그걸 좀 더 앞당기기로 방금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써먹고 버릴 놈이니 그래도 상관없었다.

    현석은 그런 메이슨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메이슨이었다. 권혁찬의 과거에 가장 큰 상처와 미련을 남긴 놈 말이다.

    현석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메이슨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옆에 서 있는 리볼버 길드의 플레이어에게 말을 툭 던지며.

    “뭐해? 안내 안 하나?”

    그렇게 현석이 위층으로 사라지자, 메이슨이 의자에 앉아 씩씩거렸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결국 바닥을 발로 쾅 찍은 다음 벌떡 일어났다.

    “젠장! 저 병신 같은 놈은 대체 뭐야!”

    메이슨은 바닥을 몇 번이나 찍었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이번에는 권혁찬을 노려봤다.

    권혁찬은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이거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 쉽지 않겠는데?’

    메이슨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걸 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모양이었다.

    권혁찬은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메이슨은 권혁찬보다 레벨이 무려 10 이상 높았다.

    하지만 권혁찬은 메이슨이 저렇게 흥분한 상태로 덤비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웬만하면 대충 몇 대 맞아주고 넘어가겠는데, 보아하니 오늘은 그래선 안 될 듯했다.

    몸 어딘가가 불편해지면 안 된다. 권혁찬은 혼자 사는 몸이 아니었다.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사람을 돌봐줘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만 한다.

    메이슨은 권혁찬을 노려보다가 기가 찬지 코웃음을 쳤다.

    “흥. 지금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응? 진짜 그런 거야?”

    메이슨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권혁찬은 뒤로 물러나거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메이슨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모조리 눈과 머리에 담았다.

    메이슨은 그런 권혁찬의 태도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냅다 달려들어 주먹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가 막 몸을 날리려는 순간 뒤에서 커다란 호통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메이슨! 지금 뭐 하는 거야!”

    메이슨은 그대로 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눅 든 표정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역시나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혀, 형.”

    “물건에 흠집 내지 말고 당장 물러서!”

    물건이라는 말에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권혁찬에게로 향했다.

    리볼버 길드의 마스터는 메이슨이 물러나자 옆에 나란히 서 있는 현석에게 고개를 돌리고 빙긋 웃었다.

    “마침 타이밍이 좋았군. 그럼 이제 거래를 마무리할까?”

    현석은 품에서 작은 가방 하나를 꺼냈다. 그 가방을 본 모든 플레이어의 눈이 번득였다.

    그것이 아공간 아티팩트라는 걸 알아본 것이다. 현석의 손에 있는 가방이 가장 유명한 아공간 아티팩트였다.

    물론 유명하다고 해서 흔한 건 아니었다. 아니, 아공간 아티팩트 자체가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

    현석은 그 가방의 문을 연 다음 뒤집어서 탈탈 털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돈다발이 우르르 쏟아졌다.

    사실 아공간 아티팩트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건, 보통 플레이어들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공간 아티팩트를 이용할 때도 마력이 필요했고, 보통은 가방 안에 마력이 담긴 손을 넣어 물건을 꺼내야만 한다.

    그것이 가장 많이 나타난 아공간 아티팩트의 사용법이었다. 사실 가장 손이 많이 가고 원시적인 형태의 아티팩트였다.

    현석은 그 아티팩트를 이용해 마력 컨트롤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방금 돈다발을 쏟아낸 것도 그런 훈련의 일환이었다.

    가방 안에는 바닥에 쏟아낸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현석은 정확히 계산해 딱 필요한 만큼만 쏟아냈다.

    마력을 아주 정교하게 컨트롤해서 말이다.

    다들 쏟아진 돈다발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은 사실 이렇게 많은 돈을 한꺼번에 본 것도 처음이었다.

    “이제 그쪽이 계약을 이행할 차례인 것 같군.”

    현석의 말에 리볼버 길드 마스터가 씨익 웃으며 권혁찬을 바라봤다.

    “소드마스터, 넌 오늘부터 이 사람 거다.”

    권혁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야. 네 빚을 이 사람이 승계했다. 앞으로 나 한테 돈을 갚을 필요 없어. 이 사람한테 갚아.”

    “그럼 전…….”

    길드마스터가 손날로 자신의 목을 휙 날리는 시늉을 했다.

    “이제 다신 여기 올 필요 없어.”

    그 말에 권혁찬은 참으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좀 힘들긴 해도 그럭저럭 지금 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한데 지금 그런 직장을 잃은 것이다.

    권혁찬은 묘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자신을 영입하러 왔다고 했다.

    그러더니 대뜸 자신의 빚을 다 갚아 버렸다.

    아니, 바닥에 쌓인 돈을 보건데 자신이 진 빚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쓴 듯했다.

    ‘세 배는 될 거 같은데?’

    차라리 저 돈을 자기한테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건 자신이 현석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잃은 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이제 더 생각하기가 싫어졌다.

    그런 권혁찬에게 현석이 다가갔다.

    “갑시다.”

    권혁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현석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어딜 가는데?”

    현석이 권혁찬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데려갈 사람 있잖아. 양궁선수.”

    권혁찬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승희가 양궁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현석이 그 말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당신 지인들이 알겠지.”

    현석의 말을 들은 권혁찬의 표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는 결국 또 생각하는 걸 멈추고 그저 묵묵히 현석의 뒤를 따랐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권혁찬은 현석의 뒤를 따르는 내내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말없이 노려보는 사람이 있었다.

    < 권혁찬 2 (5권 끝)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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