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25화 (125/326)
  • < 권혁찬 1 >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제가 항상 하던 일인데. 그나저나 이번에 제법 성과 좀 있었다면서요?”

    양동욱의 물음에 오명국이 씨익 웃었다.

    “다 채현석씨 덕분입니다. 이제 우리 레드드래곤 길드는 채현석씨 일이라면 어떤 상황에서건 팔 걷어붙이고 달려들기로 했습니다.”

    길드의 분위기 자체가 자연스럽게 그런 식으로 흘렀다. 이번 원정이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원정에 모든 길드원이 참여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참여했다.

    당연히 그들은 길드 내에서 갖는 영향력이 컸다. 그런 그들이 현석에 대해 무한한 호의를 보이고 있으니, 길드의 분위기 자체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길드 마스터인 한중현조차 현석 얘기만 나오면 칭찬을 넘어 찬양하기 바쁘니 현석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너무나 뻔했다.

    그리고 오명국은 굳이 이번 원정이 아니더라도 처음 한중현의 오른팔로 자리를 잡은 순간부터 현석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작업을 조심스럽게 꾸준히 해왔다.

    이 모든 일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이제는 거의 폭발적인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이게 아티팩트를 처분한 결과입니다.”

    양동욱은 일단 본론부터 얘기했다. 그의 손에서 건네진 쪽지에 액수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본 오명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많습니까?”

    “비싼 아티팩트들이니까요. 사실 그 중에 섞여 있던 몇 가지 아티팩트는 이런 암시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루트로 팔면 어마어마한 가격을 받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오명국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새삼 그롬 길드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깨달았다. 물론 이젠 그렇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 몇 가지가 렉스턴 에너지의 아티팩트입니다. 그래서 더 값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세탁이 정말 중요하니까요.”

    “렉스턴 에너지…….”

    “이름은 들어봤죠?”

    “물론입니다. 마정석을 정제해 에너지를 뽑아내는 회사 아닙니까. 우리나라에 있던 DM케미칼을 망하게 한.”

    양동욱이 빙긋 웃었다. 과연 그 이면에 있는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둘이 원래 같은 편이라는 거 아십니까?”

    “예에?”

    오명국이 경악한 얼굴로 양동욱을 바라봤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번에 DM케미칼과 얽혀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던가. 또 얼마나 많은 투자회사가 흔들렸고,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무너졌던가.

    물론 그들 역시 잘한 건 없지만 그래도 이번 DM케미칼 사건은 정말 어마어마한 폭풍이었다.

    한데 그 DM케미칼이 그들을 무너뜨린 회사와 한편이라니. 대체 이 무슨 개떡 같은 일이란 말인가.

    “그럼…… 그럼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이려고 작정하고 계획을 세운 거란 말입니까?”

    “네. 세계 경제의 판도를 한 번 뒤흔들고 싶었던 모양이더라고요. 뭐…… 제가 아는 건 많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도 당할 뻔했습니다.”

    “당할 뻔했다고요?”

    “주식이죠, 뭐. 다행스럽게도…… 막판에 우리 대장이 해준 말이 떠올라서 발을 빼긴 했지만.”

    “채현석씨가 해준 말이 있다고요?”

    “예. 무슨 말일지는 예상하지 않습니까?”

    오명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무슨 미래를 읽는 눈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걸 예측한단 말인가.

    “어쨌든 렉스턴 에너지가 그런 짓을 저지른 이면에는 강력한 힘이 존재합니다. 그들이 가진 플레이어 세상에 대한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하죠.”

    거기까지 말한 양동욱은 잠시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설명을 마무리했다.

    “그들은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앞서 있습니다. 미래를 선도하고 있는 놈들이죠.”

    오명국의 표정이 굳었다. 어쩌면 그들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건 예정된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롬 길드의 뒤에 렉스턴 에너지가 있었다. 그 얘기는 이번 일에 레드드래곤 길드를 끌어들인 놈들이 바로 렉스턴 에너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오명국이 잦아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양동욱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핫!”

    오명국이 깜짝 놀라 양동욱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지 잊으셨습니까? 그놈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소용없습니다.”

    오명국의 표정이 굳었다가 풀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었다.

    사실 현석이 대단하긴 해도 렉스턴 에너지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현석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석은 그런 묘한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확실히…… 그렇군요. 우리가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지를 잠시 망각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양동욱이 얼굴에 괴로운 표정을 드러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오명국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왜, 왜 이러십니까?”

    “대화가 즐거워서 잠시 잊고 있던 일이 떠올라서 그런 겁니다. 으으으.”

    “잊고 있던 일? 그게 뭡니까? 혹시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양동욱은 잠시 고민했다. 오명국이 뭘 도와줄 수 있겠는가.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자신조차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는 느낌인데 말이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반, 그리고 질문하니까 그냥 대답해주겠다는 심정 반으로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권혁찬이라고…… 같이 다니는 사람이 특이해서 찾기 쉬울 줄 알았는데…… 이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권혁찬? 혹시 플레이어 권혁찬 말하는 겁니까? 지금은 외국에 나간?”

    “어? 아십니까?”

    양동욱이 멍청한 표정으로 오명국을 바라봤다. 설마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이야.

    오명국이 쓴웃음을 지었다.

    “잘 아는 분입니다. 외국에서는 이름을 안 쓰고 별명만 쓰니 아마 찾기 힘들었을 겁니다.”

    “별명이요?”

    “저도 연락을 안 한 지 오래 돼서 지금은 어느 길드에 계신지는 모르겠군요. 하지만 별명은 아직도 그걸 쓸 겁니다. 소드마스터라고…….”

    “예에?”

    양동욱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소드마스터라니. 이 무슨 유치한 별명이란 말인가.

    “그분 어릴 때부터의 꿈이 그거였거든요. 다들 말렸는데 본인이 우기는 걸 어쩌겠습니까. 뭐…… 형수님도 딱히 반대 안 하셨으니…….”

    “형수님? 혹시 형수님이라는 분이 활을 쓰시는 분입니까?”

    오명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아, 예전에 양궁을 좀 하셨다는 얘기는 들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딱히 활을 썼던 것 같지는 않던데…….”

    일단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했다. 단서는 차고 넘칠 정도로 찾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진짜 저 권혁찬이 현석이 찾는 그 권혁찬이냐 하는 점이었다.

    “그 권혁찬이라는 분, 딜러로서는 어떨 것 같습니까?”

    “글쎄요…… 떠날 때도 딱히 두각을 드러내신 분은 아니었는지라…… 하지만 참 좋은 분이었던 건 확실합니다.”

    더 긴가민가해졌다.

    사실 현석이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그것도 뛰어난 딜러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임형석이었다.

    임형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찾으면서, 또 만나서, 그리고 겪어가면서 충분히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준이 그 정도로 잡혀 버린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임형석 같은 사람이 하나 더 존재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기준을…… 좀 낮춰야겠어.’

    그리고 방금 오명국이 말한 사람도 찾아보고 말이다. 일단 찾아서 확인하면 된다. 아니, 찾아서 현석에게 말해주면 된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제가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기쁘군요. 나중에 또 제가 도울 일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움 필요하신 일 있으시면 얼마든지 연락 주십시오. 떼인 돈을 찾는다거나 하는 건 아주 전문이니까요.”

    양동욱의 농담 섞인 말에 오명국이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어쨌든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날, 오명국은 렉스턴 에너지라는 거대한 적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양동욱은 권혁찬을 찾을 만한 작은 단서 하나를 얻었다.

    * * *

    “헤이! 소드마스터!”

    동료의 부름에 권혁찬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는 메이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처음 권혁찬이 길드에 들어왔을 때부터 놀리고 괴롭혀온 지독한 놈이었다.

    “오늘은 혼자 왔네? 네 파트너는 어디 있어?”

    메이슨은 권혁찬의 파트너이자 연인인 박승희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권혁찬의 이마에 힘줄이 빠득 돋았다.

    ‘저 쓰레기 같은 놈이!’

    메이슨이 계속 박승희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대비하고 경계를 해왔다.

    사실 메이슨도 은근히 접근하기만 했지 노골적으로 들이대진 않았기에 계속 신경 쓰면서 지켜보기만 했다.

    한데 며칠 전부터 갑자기 메이슨의 말과 행동이 노골적으로 변했다.

    현재 권혁찬이 몸담은 길드는 미국에 있는 리볼버라는 길드였다.

    인원이 많지는 않지만 나름 실력자로 구성된 비교적 탄탄한 길드였다.

    권혁찬은 리볼버 내에서 중간쯤 되는 레벨과 실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받는 대우는 그에 훨씬 못 미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지금 그의 앞에 서서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메이슨이었다.

    메이슨은 길드 마스터의 동생이기도 했다. 또한 레벨 90이 넘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상관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해?”

    메이슨이 이죽거리며 자신의 얼굴을 권혁찬에게 들이밀었다.

    권혁찬은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사생활이다.”

    “사생활? 길드원의 위치를 확인하는 게 사생활을 건드리는 건가? 그렇게 사생활이 중요하면 그냥 나가든가.”

    메이슨은 키득대며 웃었다. 지금 권혁찬의 상황을 잘 알기에 그가 절대 이 길드에서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권혁찬은 길드에 빚이 있었다. 그것도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아마 지금처럼 해서 그걸 다 갚으려면 최소 5년은 더 굴러야 할 것이다.

    그 빚을 다 갚기 전에는 길드에서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 괴로운 상황을 묵묵히 견디는 것이다.

    메이슨은 눈을 부라리며 다시 물었다.

    “네 파트너는 지금 어디 있지?”

    권혁찬은 한참 동안 메이슨을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을 툭 던졌다.

    “집에 있다.”

    “왜? 또 몸이 안 좋은가? 이거…… 제대로 된 강한 남자를 못 겪어서 그런 게 분명해. 내가 좀 도와주고 싶은데…… 어때? 생각 있나?”

    권혁찬이 다시 고개를 휙 돌려 메이슨을 노려봤다. 그러자 메이슨이 이죽거렸다.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잘 생각해 보라고. 앞으로 길드 생활 편히 하고 싶으면 말이야.”

    권혁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일단 저 자식에게 한 방 먹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의 주먹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누군가 들어와 외쳤다.

    “소드마스터! 손님이야!”

    권혁찬과 메이슨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문에 상체만 내밀고 소리쳤던 사내가 두 사람의 시선에 당황했다.

    “뭐,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아무튼 손님 왔으니까 일단 나가봐.”

    권혁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메이슨이 뒤에서 재수 없는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시간 너무 끌지 말고 대충 돌려보내.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그놈이 네 빚을 다 갚아줄 거 아니라면 말이야. 알겠어? 큭큭큭.”

    말없이 잠시 멈춰 섰다가 밖으로 나가는 권혁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메이슨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더럽게 질긴 놈이야.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군.”

    메이슨의 입가에 더럽게 음흉한 미소가 맺혔다.

    < 권혁찬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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