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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24화 (124/326)
  • < 사냥이 끝난 후 >

    “다른 분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왜 레드드래곤밖에 없는 거죠?”

    놀란 얼굴로 한중현에게 다가온 그롬 길드 관계자가 물었다.

    그는 플레이어이긴 하지만 레벨이 낮아서 던전 사냥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드 내에서의 지위가 낮은 건 아니었다.

    그롬 길드의 대외적인 일을 모두 총괄하는 대외 대책본부의 본부장이었으니까.

    본부장의 질문에 한중현이 고개를 돌려 오명국을 바라봤다. 이런 일에는 자신이 나서는 것보다는 오명국이 해결하는 것이 훨씬 매끄럽다.

    오명국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서서 본부장 앞에 섰다.

    “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있었던 것 같다고요? 확신하지 못하는 무슨 일이 있었단 말입니까?”

    본부장은 오명국을 비롯한 레드드래곤 길드원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폈다.

    그 역시 그롬 길드가 어떤 작전을 세우고 안에 들어갔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원래 상황은 이것과는 정 반대가 되었어야 한다.

    이곳에 멀쩡히 서 있어야 할 사람들은 그롬 길드원들과 필립 일행이지, 레드드래곤 길드가 아니었다.

    그러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에서 분명히 작전이 새 나갔고, 레드드래곤 길드가 기습을 해서 그들을 모두 해치운 게 틀임없었다.

    ‘한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아무리 기습을 한다고 해도 몇 배나 많은 그롬 길드를 레드드래곤 길드가 아무 희생 없이 몰살시킬 수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마수 사냥까지 해야 한다. 저곳은 그 저주받아 마땅한 피닉스가 사는 곳이었다.

    ‘그럼 뒤를 쳤나?’

    피닉스를 사냥하던 그롬 길드의 뒤를 쳤다면 말이 좀 된다. 하지만 본부장은 그것 역시 말도 안 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작전이 제대로 흘러갔다면 먼저 마수를 상대해야 할 놈들은 바로 레드드래곤 길드가 되었을 테니까.

    “사실 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오명국은 그렇게 말하고 안에서 겪은 일을 잘 풀어서 설명했다.

    “우리는 남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인원이 얼마 없으니 베이스캠프에는 아무도 안 남기고 모두 데려갔지요. 캠프는 그롬 길드 측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 대로였다. 저렇게 레드드래곤 길드가 자리를 비운 틈에 중요한 아이템 두 가지를 베이스캠프에 설치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 이동하며 정찰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수들이 막 몰려오기 시작하더군요.”

    거기서부터 본부장은 의문을 가졌다. 대체 왜? 하지만 이어지는 오명국의 말에 본부장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했는데…… 마수들은 모조리 베이스캠프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더군요. 그래서 별로 싸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아무래도 베이스캠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 서둘러 귀환을 했습니다.”

    본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건 말도 안 된다. 그 멍청이들이 아이템 관리를 잘못한 것이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더니 정말…… 난리가 났더군요. 던전의 모든 마수들이 모여든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피닉스까지 있었죠.”

    “그랬군요.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오명국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한중현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아카데미 상이라도 받아야 할 정도로 대단한 연기력이었다.

    “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서둘러 마수와 싸웠습니다. 마수가 너무 많아서 합류하기가 어려웠기에 밖에서부터 차근차근 부숴나갔죠.”

    본부장이 이를 갈았다. 바로 합류했다면 모든 그롬 길드원들이 죽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하지만 자신이라도 외부에서의 싸움을 택했을 것이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니까.

    그래도 모든 의심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던전에서 벌어진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살아나온 사람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말의 앞뒤가 다 맞기에 본부장은 이 문제로 각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 번 찔러나 볼까?’

    본부장은 그런 생각을 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가 괜히 자신들의 음모를 눈치채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지금 그롬 길드는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레벨이 높은 순서대로 200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몽땅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렉스턴 에너지의 담당자라 할 수 있는 필립도 돌아오지 못했다.

    아마 그롬 길드는 렉스턴 에너지의 지원을 더 이상 받지 못할 확률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레드드래곤 길드라는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클리어를 했지만 제대로 된 공략법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정신없이 싸우는 바람에…….”

    “이해합니다.”

    아마 이 던전이 다시 나오려면 몇 달은 있어야 할 것이다.

    ‘던전을 클리어 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본부장은 이래저래 이를 박박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호텔로 돌아가서 좀 씻고 쉬겠습니다. 던전을 클리어 하느라고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나서요.”

    “아! 그러시죠.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일이 일이니만큼…….”

    “당연히 이해합니다. 나중에 또 의문 사항 있으시면 언제든 찾아와서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심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오명국은 그렇게 말하면서 안타까운 눈빛과 표정을 한 번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표정과 눈빛에 담긴 진심에 본부장도 더는 그들을 의심하기 어려웠다.

    레드드래곤 길드가 밖으로 나가 타고왔던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버스가 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태울 사람이 없는 남은 버스들의 모습이 왠지 을씨년스러웠다.

    그걸 바라보던 본부장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마무리는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호텔에서 하루 푹 쉰 레드드래곤 길드는 다음 날 바로 출국했다.

    굳이 러시아에 오래 머물 필요가 없었다.

    남은 그롬 길드의 힘은 이제 보잘 것 없지만 그렇다고 방심했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었다.

    러시아는 정말 위험한 곳이니까.

    오명국은 떠나기 전에 그롬 길드 본부장을 만나서 나중에 또 던전을 사냥할 때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본부장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공략법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레드드래곤 길드의 힘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그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러시아에서의 일이 모두 끝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오명국은 굳이 현석 옆자리에 앉았다.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롬 길드에 그런 여지를 남기신 겁니까?”

    오명국이 본부장에게 또 불러달라는 제안을 한 것은 현석이 시켰기 때문이었다.

    사실 오명국으로서는 다시 이런 일을 하기 싫었다. 피닉스 사냥은 너무 위험했다.

    “꿀이니까.”

    “예?”

    “그렇게 약한 피닉스가 나오는 던전을 찾는 거, 쉬운 일 아니야.”

    “야, 약하다고요?”

    현석이 오명국을 쳐다봤다. 오명국은 현석의 냉정한 눈빛에 흠칫 놀랐다.

    “설마 그게 진짜 피닉스라고 생각했나? 진짜 피닉스는 세계의 모든 플레이어가 다 덤벼도 절대 이기지 못할 거야.”

    “그, 그런 마수가 있습니까?”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 대체 현석은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오명국이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 현석은 두 번째 잡은 피닉스의 마정석을 꺼내 보여줬다.

    “이게 뭔지 알겠어?”

    “마정석 아닙니까. 크기가…… 상당히 작군요.”

    “크기는 작지만 마력은 높지. 최소 1만 마력 이상 들어있을 거야.”

    오명국이 경악했다.

    “1만 마력이라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이렇게 작은 조각에 1만 마력이나 들어 있다고요?”

    “아마 제대로 피닉스를 잡으면 이보다 열 배는 더 많은 마력이 담겨 있을 거야. 물론 크기는 좀 더 커지겠지만.”

    오명국은 이제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너무 어마어마한 얘기라서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주기적으로 10만 마력짜리 마정석을 얻을 수 있다면 제법 해볼 만하지 않아?”

    “물론입니다. 길드의 명운을 걸고서라도 할 만합니다.”

    최근 던전의 수가 많이 늘어났고, 플레이어도 많아졌다. 당연히 나오는 마정석의 양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래서 마정석 시세도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건 마력이 낮은 마정석의 얘기였다. 아직도 높은 마력이 저장된 마정석은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그 높은 마력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8천마력에서 1만마력 사이다. 가끔 2만에 가까운 마력이 담긴 마정석이 나오곤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한데 10만 마력이라니. 길드의 판도를 확 뒤엎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다.

    “다음에 연락 오면 나한테 꼭 알려. 그래야 공략법을 만들 테니까. 아마…… 한 번쯤 더 수작을 부릴 것 같긴 하지만 그건 그때 봐서 해결하지.”

    현석은 거기까지 말한 다음 눈을 감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더 이상 말 걸지 말라는 뜻이었다.

    오명국은 묻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이 많았지만 결국 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만 된다면 레드드래곤 길드로서는 작은 날개를 하나 다는 셈이었다.

    공략법을 전해주고, 그에 걸맞은 대가를 요구할 테니까. 예를 들어 나오는 마정석에 대한 지분 같은 것 말이다.

    오명국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어떻게 협상을 해서 그들에게 마정석을 뜯어낼지 벌써부터 설계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리고 얻은 것도 많았던 사냥이 드디어 끝났다.

    * * *

    “다녀오셨습니까? 이렇게 일찍 돌아오실 줄은 몰랐는데…….”

    양동욱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이렇게 일찍 올 줄도 몰랐고, 또 오자마자 자신을 찾아올 줄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집을 가득 메울 정도의 아티팩트를 쏟아낼 줄도 몰랐고 말이다.

    “이걸 다 어쩌란 말입니까?”

    “세탁해서 팔아. 그롬 길드의 정예 플레이어들이 죽으면서 남긴 것들이니까 알아서 조심해. 러시아 마피아랑 맞짱 뜨기 싫으면.”

    “헉. 러시아 마피아요?”

    양동욱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이내 아티팩트들을 보고 있으니 눈이 절로 빛났다.

    “저번에 뚫어 놓은 동남아 루트로 정리하면 될 거 같네요. 이번엔 아티팩트 설명 없습니까? 헤헤.”

    양동욱이 헤헤 웃으며 현석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현석의 품에서 수첩 하나가 나왔다. 희희낙락해서 그걸 받아 확인한 양동욱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떠올랐다.

    “빈 수첩인데요?”

    현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불러줄테니 적어.”

    그렇게 말하고는 즉시 아티팩트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으악! 잠깐만요! 아직 펜도 준비 안했단 말입니다!”

    좀 편히 일해보려다가 오히려 혹 하나를 더 붙인 양동욱이 허겁지겁 움직여 펜을 찾았다.

    그리고 손목이 부러져라 펜을 놀려 글을 적어 나갔다.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 *

    현석은 양동욱에게 모든 일을 떠맡긴 다음 지하실에 있는 투명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의 집에 있는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가 편안히 앉았다.

    자연스럽게 마력이 소통하며 현석의 몸 주변을 맴돌았다. 얼마 전부터 일어난 현상이었다.

    덕분에 요즘 굳이 레벨업을 하지 않아도 마력의 총량이 미약하게나마 늘어나고 있었다.

    마력의 주인 타이틀이 성장하면서 얻은 능력인 듯했다.

    이대로 성장하면 마력의 주인 다음 타이틀을 얻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아니, 분명히 얻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 누구도 대적할 수 없으리라.

    어쨌든 그때가 언제 올지 모르니 지금은 그저 정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석은 이번에 러시아에 갔던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봤다. 이번 일을 뒤에서 사주한 놈들 중에 사신 길드가 있었다.

    사신 길드는 렉스턴 에너지가 K나이츠 길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길드 중 하나였다.

    아마 사신 길드가 무너져도 대체할 길드가 최소 한 개 이상 더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키우기가 만만치 않겠지.’

    길드 하나를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막대한 돈과 인력, 그리고 지원이 필요하다.

    두 번이나 무너진 곳에서 과연 다시 지원하려 할까?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한국에서는 당분간 손을 뗄 가능성이 컸다. 물론 지금도 반쯤 손을 뗀 거나 다름없지만.

    사신 길드의 성장이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다는 것만 봐도 그건 알 수 있었다.

    현석은 한참을 생각한 끝에 결정했다.

    ‘사신 길드를 부순다.’

    그리고 더불어 사신 길드 다음에 키울 가능성이 높은 길드 하나를 더 해체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마치 미래를 예고하기라도 하듯.

    < 사냥이 끝난 후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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