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22화 (122/326)
  • < 역관광 2 >

    “정말…… 찾기 어려운 곳에 출구가 있군요. 대체 이걸 어떻게 찾았습니까?”

    “다 방법이 있습니다.”

    현석은 거기까지밖에 말해주지 않았다.

    한중현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출구를 바라봤다.

    보통 던전의 출구는 눈높이에 위치한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사방이 뚫린 공간에 둥둥 떠 있기 마련이다.

    한데 이번 던전의 출구는 사방이 바위들로 막힌 곳에 있었다.

    한중현은 처음 현석이 여기가 출구라고 데려왔을 때, 순간적으로 이놈이 지금 장난을 하는 건가, 하고 말할 뻔했다.

    그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바위산이었다.

    한데 현석이 바위를 하나 드러내자,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나왔고, 그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깊은 곳에 검은색 소용돌이가 커다란 바위 앞 바닥에 딱 붙어 있었다.

    현석이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았다면 아마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어두운 공간에 있는 검은 소용돌이가 바닥에 붙어 있는데 누가 여기 출구가 있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이런 경우도 있군요. 정말…… 던전에 대해 이제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잘 알겠습니다.”

    한중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내 눈을 빛냈다. 어쨌든 출구를 찾았으니 언제든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안전장치 하나가 마련된 셈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감춰져 있으니 그롬 길드는 아마 절대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한중현은 새삼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현석을 힐끗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만일 현석을 데려오지 못했다면 자신들이 이런 출구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만일 마수를 모조리 섬멸한 다음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아까 미친 듯이 질주하는 마수들을 겪어보니 결코 쉬운 던전이 아니었다.

    ‘게다가…… 출구가 이렇게 어려운 곳에 있는데, 던전 코어가 찾기 쉬운 곳에 나타날 것 같지도 않군.’

    물론 코어는 찾기 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던전의 규모였다.

    이 던전의 보스인 피닉스를 사냥한 후, 일정 시간 안에 코어를 부수지 못하면 마수가 다시 나타난다.

    그렇게 되면 유일한 희망이 출구뿐인데, 이런 출구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다…… 죽었겠지.’

    현석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모두 죽었을 거라는 결론이 아주 쉽게 도출되었다.

    한중현은 새삼스럽게 현석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한듯 애써서 현석을 데려온 오명국에 대한 신뢰가 한 층 깊어졌다.

    ‘정말…… 내가 인복은 있는 모양이야.’

    정확히는 없던 인복이 생긴 듯했다. 애초에 인복이 있었다면 진대호 같은 쓰레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비서실장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뒤통수 맞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이제 어쩔까요?”

    한중현은 현석에게 물었다. 사실 아까 마수들 상태를 보니 잠깐 나가서 쉬고 지원군도 더 보충해서 오고 싶었지만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이 던전은 나갔다 들어오면 출구가 바뀐다. 또 출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찾는 건 현석의 몫이 될 테니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를 생각이었다.

    현석은 한중현과 오명국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까 내가 데려온 세 사람 만나봤습니까?”

    한중현과 오명국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베이스 캠프를 감시하라고 보낸 사람들, 제가 오는 길에 만나서 데려왔습니다.”

    정확히는 현석이 일부러 그들을 찾아 마수와 마주치지 않게 피하면서 안전하게 데려온 것이다.

    현석은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아군이 마수에 희생되는 건 원치 않았다.

    그래서 굳이 수고를 했다. 그 이면에는 한중현이 이끄는 레드드래곤 길드가 고작 마수의 웨이브에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현석이 예상했던 대로 한중현과 레드드래곤 길드는 아주 훌륭하게 마수 웨이브를 견뎌냈다. 최소한의 피해로 말이다.

    다친 사람이 몇 있었지만 미리 준비해 온 힐링포션을 통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어쨌든 그 세 사람을 데려왔다는 말에 한중현의 표정이 크게 밝아졌다.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들까지 챙겨주셨군요. 이거 감사인사를 몇 번이나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오명국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감시자를 두자고 말한 사람이 오명국 아닌가.

    만일 그들이 잘못되었다면 오명국은 정말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말이다.

    “감사 받자고 한 일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들이 감시한 내용이죠.”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베이스캠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담담히 말했다.

    한중현과 오명국은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저들이 그런 걸 준비해 왔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 마수 웨이브가 그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죠? 그냥 나가야 합니까?”

    아마 지금쯤 베이스캠프는 마수 천지일 것이다. 그롬 길드가 아무리 대단한 준비를 해왔어도 이 던전의 모든 마수가 모여들었는데,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현석이 한중현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왜 나갑니까? 던전을 클리어 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는 현석의 얼굴이 한중현과 오명국에게는 왠지 좀 무서웠다.

    * * *

    “이런 젠장!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어!”

    필립이 거칠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양손에 들고 있는 두 개의 단검은 사방을 휘저으며 마수들을 부수고 있었다.

    그가 가진 두 개의 단검 역시 바람 속성이 깃든 아티팩트였다.

    불의 마수를 상대하기 위해 그들도 나름대로 상당한 준비를 했다.

    렉스턴 에너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아티팩트를 보유한 조직이었다.

    또한 모든 조직 중 가장 많은 핵심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모든 정보를 이용하면 피닉스나 불의 마수를 상대할 방법 역시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강한 바람을 이용해서 핵을 파괴하는 것 말이다.

    현석이 가져온 방법과 똑같은 건 회귀 전에 얻은 지식의 출처가 바로 렉스턴 에너지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덕에 필립을 비롯한 렉스턴 에너지의 플레이어들은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레벨이나 전투실력도 상당했기에 아무리 불의 마수가 미쳐 날뛰어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롬 길드는 얘기가 좀 달랐다.

    대비한 건 같다. 렉스턴 에너지가 필립 일행에게만 불의 마수 사냥법을 알려준 건 아니었다.

    그롬 길드 측에도 충분히 알려주고 아티팩트까지 지원해 주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롬 길드는 필립 일행에 비해 레벨과 전투경험이 모자랐다.

    게다가 그들이 상대하는 마수가 훨씬 더 위험했다.

    그롬 길드는 피닉스를 책임졌다. 그롬 길드의 절반이 피닉스를 상대 중이었다.

    그렇게 피닉스의 발을 묶고 있는 동안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몰려든 마수를 정리하는 것이 그들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 작전은 처음 30분 동안만 효과가 있었다.

    30분 후 들이닥친 불멧돼지들 때문이었다.

    불멧돼지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피닉스를 상대하던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하필이면 말이다.

    안 그래도 피닉스를 상대하느라 허덕이고 있었는데, 거기에 불멧돼지가 달려드니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결국 불멧돼지는 정리할 수 있었지만 피닉스를 상대하던 플레이어들도 절반 이상 죽어 버렸다.

    그나마 살아남은 플레이어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기에 제대로 힘을 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인원을 더 쪼개고 나눠서 피닉스 쪽으로 비교적 멀쩡한 플레이어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마수를 상대하는 플레이어들이 더 힘들어졌고, 피해가 계속 누적되었다.

    그래도 필립 일당은 굉장한 저력이 있었다. 그들이 이를 악물고 움직이니 마수들이 차츰차츰 정리되어갔다.

    반면 피닉스를 상대하던 플레이어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서둘러! 좀 더 이를 악물고 싸우란 말이야!”

    마수의 수가 조금만 더 줄어들면 몸을 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은 도망가기 어려웠다. 마수의 수가 너무 많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대열이 무너지면서 전멸로 치달을 것이 분명했다.

    필립은 이를 악물고 단검을 마구 휘두르면서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최악의 상황이 오면 자기만이라도 도망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최악의 상황이 오기 직전에 움직여야만 한다.

    그는 이곳의 모든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도망칠 계획을 머리 한구석에 따로 세워뒀다.

    그래서 더 동료들과 그롬 길드를 몰아붙였다.

    “한 번이라도 더 공격해! 몸을 사리지 말란 말이야! 다른 마수가 추가되기 전에 끝내야 돼!”

    그 말에 다들 이를 악물고 온몸의 체력과 힘을 박박 긁어서 쏟아 부었다.

    일단 마수를 싹 정리하고 피닉스만 잡으면 뒤에 어떤 마수가 오더라도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시간만 주어지면 여기 흩뿌려진 그 지독한 액체를 어떻게든 중화시켜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 운 자체가 남아있지 않았다.

    쿵쿵쿵쿵쿵!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마수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필립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슬쩍 소리 나는 쪽을 확인하니 또 한 무리의 마수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마수들이었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다고 약한 건 아니었다. 척 보기에도 상대하기 쉽지 않아보였다.

    기괴하게 생긴 거대한 덩어리에 네 개의 발이 달려 있었다. 그냥 얼핏 보면 코끼리 떼가 달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절대 코끼리가 아니었다.

    그 마수들은 그대로 난입해 그야말로 난동을 부렸다.

    사방이 불바다로 변했고, 마수의 발에 깔려 죽는 플레이어가 속출했다.

    필립은 선택의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흐아아압!”

    모든 기력을 짜내 사방으로 검격을 뿌렸다. 그의 검에서 강렬한 바람이 일어나며 근처에 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밀어냈다.

    마수도, 불도 그리고 동료들도.

    모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필립이었다.

    필립은 동료들의 시선을 받으며 빠르게 전장을 빠져나갔다.

    -꾸워어어어어!

    마수들의 포효가 거칠어졌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필립의 동료들은 불구덩이에 갇히며 필립이 있던 자리에 깨져 있는 작은 병을 볼 수 있었다.

    병 주변에는 초록빛 액체가 흥건했다.

    * * *

    한중현은 질린 표정으로 베이스캠프를 바라봤다.

    던전의 모든 마수들이 모인 전장다웠다. 불기둥이 몇 개나 하늘에 닿을 듯 솟아 있었고, 불로 뒤덮인 마수들이 날뛰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플레이어들은 온몸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화염에 저항할 마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그럼에도 마수를 하나라도 더 죽이겠다는 듯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마수들이 갑자기 더 날뛰기 시작했다.

    “허어. 이거…… 미친 마수가 더 미치는 것 같은데?”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한중현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현석은 저 안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저 안에 있던 누군가가 만들어냈을 것이다.

    ‘목적은 뻔하지.’

    현석의 눈빛이 사납게 번득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누군가 전장에서 빠르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슬슬 준비하죠.”

    현석은 필립이 도망가는 방향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한중현의 입가에 기대감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뒤에 늘어서 있던 레드드래곤 길드 플레이어들의 투지가 거세게 피어올랐다.

    “피닉스는 내가 맡을 테니 나머지 마수를 빠르게 정리하면 됩니다.”

    “혼자 피닉스를 상대한다고? 괜찮겠나?”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갑니다.”

    현석의 몸이 빠르게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쪽은 전장이 아니었다.

    한중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현석이 뭘 하든 하겠다고 말한 건 반드시 지킨다는 걸 믿었다.

    “우린 우리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되지.”

    한중현이 길드원들을 돌아보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나직이 명령했다.

    “가자.”

    한중현이 이끄는 레드드래곤 길드가 전장에 난입했다.

    던전 공략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역관광 2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