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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18화 (118/326)
  • < 불의 대지 2 >

    [3등급 피닉스]

    현석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마수의 이름을 확인했다.

    ‘3등급?’

    진짜 현석이 알던 피닉스에 비해서는 크기가 제법 작다 싶었더니 이름 앞에 3등급이 붙어 있었다.

    현석은 정보를 좀 더 자세히 확인했다.

    [진짜 피닉스가 태어날 때 사방으로 튄 불똥들이 자라 만들어진 아류 피닉스. 숫자가 작을수록 크기와 힘이 더 커진다. 불꽃만 있으면 어떤 형태의 죽음에서도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 완전한 상태.]

    보아하니 진짜 피닉스에는 앞에 등급이 붙지 않는 모양이었다.

    ‘불똥이 자라나서 피닉스가 되다니. 진짜 대단한 마수이긴 하네.’

    그리고 불꽃만 있으면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현석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고작 3등급 피닉스지만 저 마수가 가진 힘은 얼마 전 상대한 뇌룡보다 강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일 사냥은 생각보다 간단히 끝날 수도 있겠군.’

    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씨익 웃었다. 그의 웃음에 깃든 투지와 기대감이 피닉스에게 전해졌는지, 피닉스가 괴성을 지르며 날갯짓을 했다.

    -끼오오오오오오오!

    화르르르륵!

    사방으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피닉스 주변이 온통 불바다로 변했다.

    웬만한 플레이어는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달랐다. 현석에게는 화염 내성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상당히 높은.

    현석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피닉스를 상대하는 법은 잘 알고 있었다. 방심하지만 않으면 된다. 죽을 위험에 처하더라도 최소한 도망은 갈 수 있었다. 던전 출구로 나가기만 하면 되니까.

    화염 내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지금 던전 출구는 거대한 화염의 벽에 갇혀 있었으니까.

    물론 현석은 강한 화염 내성을 갖고 있으니 도망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현석의 몸이 어느새 피닉스의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현석은 진마검에 얼음 속성을 최대한으로 담았다.

    치이이익!

    진마검에서 짙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물론 그 수증기는 나오자마자 지독한 열기에 증발해 사라져 버렸다.

    약간의 물기마저 허락하지 않는 뜨거운 화염지옥이 바로 여기였다.

    애초에 얼음 속성이 피닉스에게 큰 공격력을 발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

    촤자자자자작!

    새하얀 서리가 덮인 진마검이 피닉스의 몸을 난도질했다. 물론 검이 닿은 곳의 불길이 아주 약간 약해지긴 했지만 거의 소용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현석이 노리는 건 그저 타격을 입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석은 그렇게 불길을 검으로 헤치며 피닉스의 몸안으로 파고들어갔다.

    -끼오오오오오!

    설마 현석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피닉스가 다급한 괴성을 질렀다.

    그러면서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화르르르르륵!

    불의 날개가 마구 퍼덕이며 사방에 불똥을 쏟아냈다. 피닉스의 속도는 가공할 정도로 빨랐다.

    현석과 피닉스 사이에 30미터가 넘는 거리가 단숨에 생겨났다.

    “후우. 덥다.”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빛냈다. 현석의 진마검은 어느새 얼음 속성이 사라져 원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신 검자루에 투명한 끈 하나가 묶여 있었다. 그 끈은 피닉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피닉스 낚시를 시작해 볼까?”

    피닉스 사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방금 현석이 했던 그것이었다.

    피닉스의 몸으로 파고들어 그 안에 있는 피닉스의 화정(火情)에 낚싯바늘을 꽂는 것.

    화정에 꽂을 낚싯바늘이 평범해선 안 된다. 그것은 마정석을 갈아 만든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정제해서 말이다.

    절대 불에 녹지 않는다. 또한 안에 담긴 마력을 뽑아낼 수도 없었다.

    그저 스스로 방출하는 마력에 의해 바늘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바늘을 연결한 끈도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현석은 진마검을 단단히 붙잡고 힘을 꽉 주었다.

    -끼오오오오오!

    피닉스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괴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화르르르륵!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불이 피닉스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파동이 되어 퍼져 나갔다.

    ‘첫 발은 견딘다!’

    피닉스 사냥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피닉스가 광기에 깃들기 직전 쏟아내는 불의 파동.

    피닉스 내부로 파고들 때와 거의 비슷한 정도의 열기를 견뎌내야만 하니까.

    현석은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그 대가로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 상처는 자연회복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테니까.

    이를 악물고 뜨거움을 견디며 낚싯줄을 확 당겼다.

    화르륵!

    피닉스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이쪽으로 훅 끌려왔다. 하지만 그건 한순간일 뿐이었다. 피닉스는 다시 괴물 같은 힘으로 날갯짓을 하며 멀어졌다.

    화르르르륵!

    피닉스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분노한 피닉스가 현석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피닉스의 필살기라 할 수 있는 플레임브레스였다.

    하지만 피닉스는 그 필살기를 쓸 수 없었다. 현석이 또 낚싯줄을 훅 당긴 것이다.

    화륵!

    피닉스가 내뿜으려던 브레스가 목에 걸려 그대로 폭발했다.

    퍼버버벙!

    화르르륵!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냥 단순한 불꽃이 아니라 백염의 불꽃이었다.

    피닉스의 상체가 일순간 새하얀 불길에 휩싸였다.

    현석은 그걸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낚싯줄을 진마검의 손잡이에 둘둘 감았다. 그리고 그것을 꽉 움켜쥐었다.

    이 얼마나 스릴 넘치는 낚시인가.

    저 백염의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으면 아무리 현석의 화염 저항력이 높아도 온몸이 그대로 녹아버릴 것이다.

    이 낚시의 핵심은 밀당과 타이밍이었다.

    저 백염의 브레스가 터지기 직전에 훅 당겨서 저걸 피닉스 내부에서 터트려야 한다.

    줄을 당길 때마다 피닉스의 몸에 데미지가 쌓인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아주 간단히 피닉스를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것이 혼자 피닉스를 사냥하는 방법이었다.

    현석은 등줄기를 치달리는 싸한 긴장감을 즐기며 낚싯줄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또 한 번 피닉스를 훅 당겼다.

    화르륵!

    피닉스 주변으로 불꽃이 확 피어났다.

    현석의 입가에 맴도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 * *

    현석을 안내한 사내는 한참 동안이나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서 던전 입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 안에는 사내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사내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가 그롬 길드 소속이고, 제법 높은 권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만 속사정을 좀 아는 몇몇 사람은 사내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안내하던 플레이어가 던전에 들어가 버렸으니, 게다가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도 출구가 없는 던전에 들어갔으니, 저 사람의 끝이 어떨지는 굳이 설명을 듣거나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롬 길드를 움직이는 실세 중에는 마피아도 섞여 있었다. 아마 절대 고운 꼴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다.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이 지났을 때, 흐리멍덩하던 사내의 눈에 서서히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걸…… 뭐라고 보고하지?”

    사내는 고민스런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던전으로 안내해 달라고 해서 해줬을 뿐이다. 그것도 상관의 명령을 받아서.

    자신의 죄라고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이 꼴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애초에 상관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아닌가.

    하지만 전후 사정이 어떻든 간에 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전가될 거라는 사실은 너무나 뻔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혼자 죽고 말면 가족은 조직에서 돌봐줄 것이다. 하지만 도망가면 가족까지 끝장이다.

    “후우. 더 늦기 전에 보고부터 하자.”

    사내는 폰을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련과 안타까움, 그리고 절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던전 입구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사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던전 입구가 일렁이고 있었다.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불쑥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현석이었다.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서 폰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러더니 이내 주저 앉아서 엉엉 통곡을 하고 울었다.

    모든 긴장감과 공포에서 해방된 감정이 울음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현석은 안에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 말끔한 모습으로 사내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다 큰 남자가 서럽게 울고 있으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으허헝! 아이으헝! 아에으어아으허헝!”

    뭐라고 말을 계속 하는데 울면서 하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모든 언어에 막힘이 없는 현석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현석은 가만히 서서 사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어쨌든 이 사람이 진정해야 운전해서 다시 호텔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20분쯤 울고 나니 사내는 울음을 그치고 머쓱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미안합니다.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괜찮으니 이제 돌아가죠.”

    “아, 바로 모시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내는 그제야 현석이 자신 때문에 여기서 계속 기다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히 움직였다.

    잠시 후, 현석은 사내를 뒤로하고 호텔로 들어갔다.

    안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안내인이 다가와 물었다.

    “저녁 식사 시간인데 식당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한바탕 긴장감 넘치는 낚시를 했더니 어마어마하게 배가 고팠다.

    그렇게 현석의 3등급 피닉스 낚시가 마무리 되었다.

    이제 남은 건 내일 있을 진짜 불의 대지 정복이었다. 아마 레드드래곤 길드는 모두 안전하게 사냥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해결되었으니까.

    피닉스는 한 번 죽어도 불꽃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다.

    아무리 힘이 작은 3등급 피닉스라고 해도 완벽하게 부활하려면 최소 닷새는 걸린다.

    즉, 내일 사냥 시간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피닉스만 상대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위험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물론…… 준비가 모자라면 피해를 좀 입긴 하겠지만.’

    아마 그 정도 준비는 하지 않을까 싶다. 상식적인 준비니 말이다.

    실제로는 그런 상식에 젖어 있으면 진짜 피닉스는 절대 못 잡지만 말이다.

    현석은 안내인을 따라 식당에 들어갔다.

    최고급 호텔의 식당답게 정말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오늘 이 호텔을 그롬 길드가 전세라도 냈는지 다른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현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원체 관심이 없기에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일단 자리부터 잡고 앉았다.

    그리고 막 음식을 가지러 일어나려는 순간 아주 낯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응? 저놈…… 분명히 미국에서…….’

    저 멀리 미국인 하나가 그롬 길드의 마스터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데 그 미국인의 얼굴이 현석에게 참으로 낯익었다.

    그는 렉스턴 에너지를 털때 현석을 뒤쫓던 사내, 필립이었다.

    그러고 보니 필립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 몇몇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때 필립과 함께 자신을 쫓아오던 자들이었다.

    ‘이거…… 그롬 길드랑 렉스턴 에너지랑 같은 편이었어?’

    현석은 문득 상당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그롬 길드가 레드드래곤 길드에게 협력을 요청한 것에 어떤 속셈이나 음모가 깃든 건 아닐까?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접시에 음식을 수북하게 담았다. 표정은 여전히 담담하기 그지없었고, 행동도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은 평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문득 내일 사냥이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현석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살짝 스쳐 지나갔다.

    < 불의 대지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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