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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16화 (116/326)
  • < 오명국의 부탁 >

    오명국은 현석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오명국은 진심으로 현석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사람이 현석이었으니까.

    그는 평생 현석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생각날 때마다 다짐하곤 했다.

    현석은 담담하게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오명국은 잠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했다.

    그동안은 이렇게 현석을 만날 일이 없었다. 현석과 관계된 모든 일을 양동욱과 함께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마주하고 앉으니 예전 생각이 차례차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현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오명국의 말을 기다렸다.

    오명국은 예전과 전혀 다름없는 현석의 모습에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 마스터께서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레드드래곤 길드 입장에서는 수천 번 감사를 표해도 모자라지 않다.

    양동욱을 통해 공급되는 힐링포션과 파워업키트는 레드드래곤 길드의 힘을 확실히 몇 단계 끌어올렸다.

    레드드래곤 길드의 마스터인 한중현은 이제 길드의 성장에 점점 더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혼자서만 쓰던 힐링포션을 핵심 길드원들에게 공급했고, 파워업키트를 충분히 확보해 길드의 성장에 주력했다.

    덕분에 현재 레드드래곤 길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다.

    레드드래곤 길드는 K나이츠 길드가 무너지면서 길드는 물론이고 별의 별 조직이 다 달라붙어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반사이익을 얻었다.

    다들 그러는 와중에 그쪽에 아예 신경을 끊고 성장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현재 레드드래곤 길드에 그나마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는 길드는 사신 길드 정도였다.

    사신 길드는 K나이츠 길드가 몰락한 이후 급격히 발전한 길드였다.

    어쨌든 레드드래곤 길드의 그 많은 발전은 모두 현석 덕분에 이뤄낸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초에 현석이 아니었다면 K나이츠 길드에 먹힐 운명이었지 않은가.

    오명국은 그 부분에 대한 감사도 확실히 전했다. 오명국은 미리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고급스러운 상자였는데, 오명국은 그것을 내밀며 뚜껑을 열었다.

    딸깍.

    내부도 마치 명품 보석 케이스 같았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금으로 만든 팔찌였다.

    표면에 작은 다이아몬드가 마치 별처럼 장식되어 있는 팔찌였는데, 그저 척 보는 것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현석은 항상 심안을 펼치고 다니기에 이름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안내자의 증표]

    현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안내자의 증표라니. 아티팩트 치고는 좀 이상한 이름 아닌가.

    “받아주십시오. 마스터께서 드리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오명국은 공손히 상자를 내밀었다.

    현석은 사양하지 않고 그것을 받았다.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현석이 심안에 집중해 팔찌의 정보를 더 확인하기 전에 오명국이 먼저 설명을 곁들였다.

    “높은 곳에서 전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는 아티팩트입니다. 생각보다 제법 쓸 만한 아티팩트입니다. 더불어 몸놀림이 좀 더 빨라지는 효과도 있는 듯합니다.”

    현석은 오명국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정보를 더 정확히 확인했다.

    [황궁 안내인이 쓰던 증표. 황궁까지 가는 지도가 저장되어 있다. 지도를 확인하기 위한 스킬인 높은 시야를 쓸 수 있다. 민첩+3, 체력+3]

    정보를 확인한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왠지 운명이 자신을 황궁으로 보내려고 안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황궁 안내인이 쓰던 증표까지 나오다니 말이다.

    ‘지도가 저장되어 있다고? 그건 어떻게 확인하는 거지?’

    현석은 일단 팔찌를 착용했다. 그리고 마력을 흘려 이것저것 확인해 봤다.

    하지만 어떻게 지도를 꺼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천천히 알아봐야겠군. 할 일이 점점 늘어나는데?’

    현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명국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희 마스터께서 한 번 뵙고 싶어 하십니다.”

    현석이 고개를 들어 오명국을 쳐다봤다. 그의 표정을 보니 할 말이 더 있는 듯했다.

    “저…… 이번에 저희 레드드래곤 길드가 러시아에 가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현석은 러시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회귀 전에 러시아도 플레이어 강국 중 하나였다.

    러시아는 광활한 땅이 있는 만큼 개별 던전의 수도 엄청나게 많았고, 또 던전 생성 지역도 많았다.

    게다가 특별한 마수가 등장하는 개별 던전도 있었다.

    러시아 하니 떠오르는 길드도 있었다. 그롬 길드라는 곳이었는데, 러시아 최고의 길드이자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이기도 했다.

    “혹시 러시아의 그롬 길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현석이 눈을 반짝 빛냈다. 안 그래도 그롬 길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던 참이었다.

    그롬 길드가 처음부터 유명한 길드였던 건 아니었다. 그들이 러시아 최고의 길드로 발돋움 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던전을 클리어 하면서부터였다.

    ‘그게 언제쯤이었지?’

    오명국은 현석의 눈빛과 얼굴을 살피다가 왠지 관심이 있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롬 길드에서 저희 레드드래곤 길드에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이번에 좀…… 까다로운 던전을 발견한 모양이더군요.”

    “까다로운 던전?”

    현석의 뇌리로 그에 관련된 기억이 주르륵 떠올랐다. 워낙 유명했던 일인지라 충분히 기억할 수 있었다.

    ‘피닉스!’

    피닉스가 등장하는 던전이 러시아에서 발견되었다. 당연히 개별 던전이었고, 그 규모도 엄청나게 거대했다.

    당시 러시아의 모든 길드가 그 던전에 달려들었지만 막대한 피해만 입고 물러났다.

    그 피닉스의 던전을 클리어한 것이 그롬 길드였다.

    그롬 길드는 피닉스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 것은 물론이고, 그때의 경험을 이용해 피닉스 사냥법까지 개발했다.

    그 뒤로는 승승장구였다.

    피닉스의 던전은 비록 공개 된 개별 던전이었지만, 사냥 가능한 길드가 없었기에 그롬 길드는 사실상 그걸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길드나 다름없었다.

    나중에는 근방의 땅을 모조리 사들여 단단한 방비를 통해 피닉스 사냥터를 독점했다.

    ‘피닉스를 그롬 길드 단독으로 사냥한 게 아니었나?’

    그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석으로 인해 역사가 제법 뒤틀리기 시작했기에 사실 예전과 다른 상황이 연속되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현석이 그렇게 그롬 길드와 피닉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오명국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피닉스라는 마수가 등장하는 던전입니다. 온몸이 불로 뒤덮인 새인데, 진짜 피닉스라는 이름에 딱 들어맞는 마수라고 합니다.”

    오명국이 현석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 말을 이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던전인데, 그 안에는 피닉스 말고도 불과 관계된 마수들이 무수히 등장한다고 합니다. 거기 나오는 마수는 하나같이 불로 뒤덮여 있다고 하더군요.”

    거기까지 설명한 오명국은 현석의 표정이 여전히 담담하자 애가 탔다. 왠지 관심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혹시 관심이 별로 없으십니까?”

    “관심 있으니까 계속해.”

    그제야 오명국이 반색하며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롬 길드는 아직 러시아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길드이긴 하지만, 후원하는 기업이 상당합니다. NNC라고 구리나 니켈 같은 광산을 여러 개 가진 곳인데, 이번에 작정하고 지원을 해주는 모양입니다.”

    오명국은 커피로 입술을 한 번 축이고 말을 이었다.

    “NNC의 회장님 손자가 우리 마스터와 약간의 친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부탁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그래서 좀 알아봤는데…….”

    오명국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 던전…… 정말로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아무리 우리 길드가 잘 나간다 해도 피해가 막심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삼현그룹과 NNC와의 관계도 있을 테니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처리하기 곤란한 모양이었다.

    원래라면 레드드래곤 길드는 더 이상 삼현 그룹과는 관계가 없어야 하지만, 이번에 K나이츠 길드의 일에 얽히면서 다시 관계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한중현으로서도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은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현석은 오명국의 말을 들으며 뭔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확인했다.

    “한중현이 지시한 일이 아닌 건가?”

    오명국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되돌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부탁입니다.”

    현석은 팔에 찬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오명국이 급히 말했다.

    “그 선물은 마스터가 보낸 것 맞습니다. 다만 전…….”

    현석이 손을 들어 오명국의 말을 막았다.

    “네 부탁으로 내가 움직여도 상관없나? 한중현이 과연 좋아할까?”

    “그 부분은 절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충분히 밑밥을 깔아 뒀습니다. 아마 오히려 더 기뻐할 겁니다.”

    현석이 피식 웃었다.

    “내 말을 잘못 이해했군. 한중현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든 난 관심 없다. 상관도 없고.”

    “그럼…….”

    오명국은 잠시 멍하니 현석의 말을 듣다가 눈이 커다래졌다. 지금 현석은 자신의 처지를 걱정해 준 것이다.

    “괘, 괜찮습니다. 이래봬도 제법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제가 어떤 결정을 해서 일을 진행하든 마스터는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럼 됐고. 제법 보람이 느껴지는군.”

    현석의 말에 오명국은 왠지 가슴이 찡해졌다.

    사실 현석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현석이 오명국을 챙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중에 진짜 큰 적과 싸울 때를 대비한 일이었으니까.

    그때 레드드래곤 길드가 제대로 힘을 갖춰놓고 있지 않으면 곤란했다.

    또, 힘을 갖추고도 현석을 도와주지 않아도 곤란했다.

    원래는 딱 그 정도였다. 한데 오명국이 감격해 하는 모습과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은 가만히 앉아서 그런 오명국의 모습을 유심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언제 출발하지?”

    “예정은 사흘 후입니다. 그저 몸만 오시면 됩니다. 원하신다면 장비도 다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뭐…… 원하실 리는 없지만요. 하하하. 그리고 통역도 미리 준비해 두겠습니다.”

    “통역은 필요 없다. 장비는 따로 필요한 게 있을지 생각해보고 연락주지.”

    “예?”

    오명국은 놀라 현석을 바라봤다. 통역이 필요 없다니. 그럼 러시아어를 할 수 있다는 건가?

    믿을 수 없지만 현석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시키지 않은 짓을 해서 밉보일 수는 없었다.

    ‘일단…… 준비만 해둬야겠군. 여차하면 그냥 안 써도 되니까.’

    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오명국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을 확보했으니 이제 진짜 제대로 된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그럼 사흘 후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오명국이 벌떡 일어나 90도로 인사하고 커피숍에서 나갔다.

    현석은 그런 오명국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피식 웃었다. 왠지 요즘은 주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을 때가 많았다.

    “그나저나 피닉스라…… 준비할 것이 제법 있겠군.”

    피닉스 사냥법은 처음에는 극비 중 극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화 되었다.

    나중에는 피닉스가 등장하는 개별 던전이 여기저기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 러시아에서 발견된 피닉스는 진짜 피닉스도 아니었다.

    나중에 나타나는 진짜 피닉스는 그 이름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위용을 보여준다.

    아마 그런 진짜 피닉스가 나타나면 현 세상의 모든 플레이어가 다 덤벼도 쉽게 사냥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작은 피닉스도 피닉스는 피닉스다. 현석은 기대감 어린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마계 원정을 떠나기 전에 준비, 수련 삼아 다녀오기 딱 적당했다.

    커피숍을 나서는 현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오명국의 부탁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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