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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15화 (115/326)
  • < 버퍼 >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양세희의 물음에 양동욱이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다섯 시간…… 이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냐?”

    양동욱은 안절부절 못했다. 대체 뭘 하기에 다섯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 나온단 말인가.

    “우리가 들어가 봐야 하지 않을까?”

    양동욱의 말에 양세희가 어이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해줬다.

    “못 들어가. 들어가고 싶으면 오빠 혼자 들어가 보든가.”

    “어? 그래도…… 되나?”

    양동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세희는 대답 대신 피식 웃기만 했다.

    저 지하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나올지도 모른다.

    저 지하실은 플레이어도 아닌 보통 사람에게는 상당히 버거운 공간이었다.

    지하실을 만들 때 쓰인 암흑석 때문이었다.

    ‘저기서 버틸 수 있는 일반인은…… 저분 정도겠지?’

    양세희의 시선이 소파에 앉아 연신 손가락으로 뭔가를 하고 있는 임형석에게로 향했다.

    임형석은 지금 충격파를 연습하고 있었다. 확률을 100%로 만들기 위한 수련이었다.

    그걸 옆에서 보면 그저 손가락 장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저 손가락 장난의 정체가 수련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본인을 제외하면 현석이 유일하리라.

    사실 양세희는 임형석을 볼 때마다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이 저렇게 강할 수도 있구나 하는 신기함과 그런 사람이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신기함이 더해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런 사람이 각성하지 못했다는 게 진짜 신기하단 말이야.’

    양세희가 임형석을 보며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양동욱은 천천히 지하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양동욱의 움직임을 파악했지만 다들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일단 지하실에 한 발만 들이고 나면 양동욱도 이게 똥인지 아니면 된장인지 알 수 있게 될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지하실로 쑥 들어간 양동욱의 비명이 울렸다.

    “으악! 이게 뭐야!”

    양동욱은 후다닥 지하실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지하실 쪽을 노려봤다.

    “죽는 줄 알았네.”

    그렇게 중얼거린 양동욱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놀라기도 했다. 한데 막상 이렇게 도망쳐 나오니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은 그저 깜깜하기만 했다. 한데 그 깜깜한 것이 무서웠다.

    ‘내가…… 딱히 어두운 걸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성격이 아닌데…….’

    양동욱은 잠시 지하실을 노려보다가 다시 한 번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양세희가 이제 그만 하라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해봐야 오빠는 안 돼.”

    “뭐?”

    양동욱이 걸음을 멈추고 양세희를 돌아봤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거긴 플레이어가 아니면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야.”

    “하지만…….”

    양동욱의 시선이 임형석에게로 향했다. 임형석은 양동욱과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하긴…… 저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겠구나.’

    양동욱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플레이어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게 말이 돼?’

    양동욱이 생각하기에도 임형석은 규격 외였다. 대체 저런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수련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분명히 있다. 사람이 총을 맞고 살아날 수는 없는 법이다.

    플레이어는 레벨업과 마력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해낸 존재들이었다.

    한데 임형석은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다 못해 초월하려 하고 있으니 이걸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양동욱은 얼른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임형석이 왜 강한지 따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저 무시무시한 지하실에 들어간 류지혜를 구해야만 한다.

    양동욱이 이를 악물고 다시 지하실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에 서서 양세희를 돌아봤다.

    “사랑하는 동생아, 이 오빠 한 번 도와주지 않으련?”

    “나도 못해.”

    양세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류혜연을 바라봤다.

    지금 이 거실에 남은 사람 중에서 지하실에 연결된 진짜 현석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류혜연뿐이었다.

    양세희도 그 비밀 공간에 대해 얼마 전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까무러치게 놀랐다.

    세상에 집 지하실에 던전이 있다니. 알려지면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석의 집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묘하게 수긍이 갔다.

    ‘하여간…… 여긴 정상적인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아.’

    어쨌든 양세희는 지금으로선 유일하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류혜연을 바라봤고, 그 행동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 양동욱이 류혜연에게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류혜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아니, 언니 일이잖아. 왜 안 된다는 거야? 언니가 걱정되지도 않아?”

    류혜연이 배시시 웃었다. 정말 예쁜 미소였다.

    그걸 본 양동욱이 입을 다물었다. 류지혜도 아름답지만 사실 류혜연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난다.

    하지만 감히 류혜연에게 다가갈 마음은 아예 들지도 않았다. 그녀는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여자였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말이다.

    “전 우리 오라버니를 믿어요. 아마 이제 곧 버퍼가 된 우리 언니를 볼 수 있을 걸요?”

    양동욱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잘못했다. 현석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좋다고 만세를 불러주는 사람이 류혜연이라는 걸 아주 잠깐 망각했다.

    ‘여길 다시 들어가 봐?’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쏙 들어갔다. 무서운 것도 무서운 거였지만, 자신이 안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양동욱이 자리에 돌아가 털썩 앉았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임형석이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양동욱은 깜짝 놀라 임형석을 바라봤다. 이 아저씨가 대체 왜 이러나 싶은 표정으로 말이다.

    임형석의 입가가 길게 찢어졌다.

    “이놈 봐라? 거기서 더 강해졌어?”

    처음에는 다들 임형석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하실에서 현석과 류지혜가 천천히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한데 두 사람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왠지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어…… 괘, 괜찮으신 겁니까?”

    가장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양동욱이었다. 그의 시선은 온통 류지혜에게 가 있었다.

    류지혜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말 죽을 것 같았지만, 그리고 이 경험을 갖고 다시 같은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절대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성공적으로 끝났다.

    “언니, 정말 버퍼가 된 거 맞아?”

    류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자신의 능력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샤아아아.

    그녀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 광채는 마치 가루처럼 변해 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몸에 반짝반짝 달라붙었다.

    모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빛의 날개-200의 마력을 이용해 아군의 공격력, 방어력, 속도, 회복력을 높여준다. 일정 범위를 벗어난 아군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범위와 위력, 지속시간이 결정된다.]

    어마어마한 능력의 버프였다.

    사실 현석도 이 정도로 강력한 버프 스킬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건 회귀 전의 류지혜가 가졌던 버프 스킬보다 훨씬 뛰어난 스킬이 분명했다.

    만일 그때 이 정도 스킬을 가졌다면, 그녀를 영입하려는 거대 길드의 각축전이 어마어마하게 벌어졌을 테니까.

    당시 그녀의 버프 능력이 꽤 대단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다른 훌륭한 버퍼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런 버프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었단 얘기는 현석도 들어보지 못했다.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려주는 것도 모자라 속도와 회복력까지 높여주다니.

    쉽게 말해 네 가지 버프를 한 번에 적용시키는 굉장한 스킬이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이 버프가 일반인인 양동욱과 임형석에게까지 적용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보통 버프는 플레이어 전용 스킬이었다. 한데 류지혜의 버프는 일반인에게까지 적용이 되는 특별한 스킬이었다.

    게다가 범위 버프이니, 그 효과가 얼마나 무궁무진하겠는가.

    이제 남은 건 레벨을 올리고 마력 컨트롤 능력을 향상시켜 버프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것뿐이었다.

    “아!”

    양세희가 안타까운 탄식을 흘렸다. 버프 시간이 다 된 것이다.

    그러자 류지혜가 민망한지 혀를 살짝 내밀며 웃었다.

    “아직 시간이 좀 짧지?”

    양세희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뇨. 이 정도면 순간순간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쿨타임은 어떻게 되죠?”

    “아직은 잘 모르겠어.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아.”

    류지혜도 모른다는 말에 현석이 설명해주었다.

    “쿨타임은 없다.”

    “예?”

    “이런 사기 스킬이 쿨타임도 없다고요?”

    “말도 안 돼!”

    현석은 그런 일행을 둘러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말이 안 되지? 한계가 이렇게 명확한데. 이 스킬에는 200의 마력이 들어간다.”

    그제야 다들 입을 다물었다. 200마력에 한 번이면 레벨 80의 플레이어가 고작 네 번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짧은 지속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신중하게 써야 하는 스킬이었다.

    “어렵네요.”

    양세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현석이 또 입을 열었다.

    “어려울 것 없다. 소모한 마력을 다시 채워주면 그만이니까.”

    “예? 마력을 다시 채운다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이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직 힐링포션조차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시대였다. 그러니 마력 회복 포션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마력 회복 포션은 힐링포션보다 더 만들기 쉬웠다. 마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특수한 방법으로 정제한 마정석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니 만들기는 쉬웠다. 다만 가격이 더럽게 비쌀 뿐.

    물론 현석도 그것을 만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당장은 써봐야 효율이 떨어진다.

    류지혜가 버프의 숙련도를 훨씬 더 높이 올리고, 레벨을 더 높여 지금보다 월등히 높은 마력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그저 굴리고 또 굴려야만 한다.

    “그럼…… 새 공격수를 영입하기 전까지 최대한 레벨을 높이도록. 내가 원하는 레벨은 그때까지 100을 넘기는 거다.”

    다들 어이없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레벨 100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대체 언제 그 레벨을 올린단 말인가.

    하지만 현석은 장난도 농담도 아니었다. 이미 그에 대한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진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한 던전으로 안내해주지.”

    모두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들 어쩌면 정말로 새 인재를 영입하기 전에 100레벨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재를 찾아야 하는 양동욱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쯤 더 창백해져 있었다.

    * * *

    “나 당분간 찾지 마라.”

    임형석의 말에 현석이 담담히 그를 쳐다봤다. 그걸 본 임형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얼굴에 표정 좀 담아라. 나이도 어린 것이 대체 그게 뭐냐? 어릴 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 좋은 일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릴 때가 아니라 다 커서였다. 물론 이젠 벌어지지 않을 일이긴 했지만.

    임형석은 혀를 한 번 차고는 말을 이었다.

    “네놈을 보니까 아무래도 이렇게 어영부영 있다가는 네놈을 한 번도 못 꺾을 것 같단 말이지. 나도 특별수련이라는 걸 좀 해보련다.”

    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 말이 안 나오나 했다. 임형석은 그런 사람이었다. 투기와 투지로 똘똘 뭉친 사람이니 조만간 다시 나타나 현석에게 한 판 붙자고 할 것이다.

    “그 지하실 내가 좀 쓰자. 괜찮지?”

    “좋을 대로 하십시오. 필요하면 집에 일을 도와줄 사람을 들여도 됩니다. 수련도 좋지만 밥은 먹으면서 해야지요.”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진짜 마음에 든단 말이야. 아무튼 알았으니 마음대로 해라.”

    임형석은 그렇게 말하며 한 손을 들어 휘휘 흔들어 주고는 지하실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현석은 그 모습을 보며 기대감에 슬쩍 웃었다.

    저 안에서 다시 나올 임형석이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 얼마나 더 강해질지 더없이 궁금했다.

    그때는 아마 현석도 제대로 힘을 써서 싸워야 할 것이다.

    ‘진짜…… 대단하신 분이야.’

    잠시 임형석에 대해 생각하던 현석은 회귀 전 마지막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임형석은 다 죽어가고 있었다.

    현석은 분명히 기억한다. 죽기 직전, 임형석은 분명히 플레이어로 각성했다.

    다만 각성과 동시에 죽었을 뿐이다.

    현석은 고개를 저어 상념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별로 중요치 않은 일이다.

    ‘그럼…… 이제 가볼까?’

    다시 표정을 지운 현석은 냉정하게 몸을 돌려 집에서 나갔다.

    집 앞 커피숍에 오명국이 와 있었다.

    < 버퍼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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