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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14화 (114/326)
  • < 영입 2 >

    “때가 되었다.”

    현석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다들 멍한 표정을 지었다.

    때가 되었다니, 대체 무슨 때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뭐가요? 설마…… 공격형 플레이어 얘기인가요?”

    “그것도 관계가 있지.”

    류지혜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즘 점점 공격 자체가 버거워지고 있었다.

    사실 그녀에게 가장 잘 맞는 포지션은 보조 공격수였다.

    누군가 앞장서서 공격을 하면 빈틈을 찾아 찌르는 것이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한데 요즘은 그녀가 아니면 공격할 사람이 없으니 정말로 힘들고 버거웠다. 성장도 더딘 것 같았고 말이다.

    더디긴 하다. 처음에는 그녀가 가장 레벨이 높았는데, 이젠 다들 비슷한 모양이니 말이다.

    “새 공격수는 누가 합니까? 설마…… 저 영감님이 하시는 건 아니죠?”

    양동욱이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물었다.

    현석은 그런 양동욱을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찾아야지.”

    “예? 제가요?”

    양동욱은 황당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쓸 만한 공격수를 찾으라니. 그것도 이 팀을 이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재능과 레벨을 가진 공격수라야 할 것 아닌가.

    그런 공격수를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그리고 설사 찾았다 해도 데려올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 공격수가 있다면 대부분 거대 길드에 소속되어 엄청난 대접을 받고 있을 텐데 말이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긴 좀 죄송하지만 쓸 만한 공격수가 우리한테 과연 오려고 할까요?”

    현석은 대답 대신 쪽지 한 장을 넘겼다.

    양동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 확인했다.

    “권혁찬. 찾아야 할 사람 이름입니까? 아는 분이 있었네요? 그럼 그냥 직접 데려오시지…….”

    말을 하던 양동욱은 현석의 시선이 임형석에게 잠깐 머물렀다가 떨어진 걸 확인하고는 입맛을 다셨다.

    어디 있는지 모르니 알아서 찾아오라는 뜻이었다.

    쪽지에는 이름 말고 다른 것도 적혀 있었다.

    “30세에 길드 소속이라고요?”

    그저 길드 소속이라는 얘기만 적혀 있었다. 즉, 어느 길드인지는 모른다는 뜻이다.

    “쓸 만한 사람입니까?”

    양동욱은 이 정도면 찾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거라 판단했다. 어쨌든 우리나라에 길드 자체가 그렇게 많지도 않을 뿐더러 명단을 입수하는 것쯤 어렵지 않으니까.

    만일 그 사람을 길드에서 비밀리에 관리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고.

    “딜러로는 최고의 플레이어가 될 거라고 장담하지.”

    “최고의 딜러라고요?”

    양동욱은 살짝 걱정스러운 눈으로 류지혜를 바라봤다. 역시나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저…… 지혜씨는…… 어쩌실 겁니까?”

    양동욱의 물음에 현석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류지혜에 대한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그 사람을 찾는 거나 걱정해.”

    “뭐…… 찾는 거야 어렵겠습니까? 정보가 이렇게 많은데.”

    현석은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 양동욱을 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나? 아니면 원래 아는 사람인가?”

    양동욱이 피식 웃었다.

    “이름이랑 나이를 아는데 뭐가 어렵습니까. 길드가 수백 개 있는 것도 아니고. 각 길드 명단만 확인하면 끝나는 일 아닙니까.”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알기로 길드의 수가 수천은 가뿐히 넘을 것 같은데?”

    양동욱이 손을 휙 내저으며 씨익 웃었다.

    “에이, 우리나라에 플레이어의 수 자체가 만 명이 채 안 될 걸요? 그런데 길드가 수천 개나 있다고요? 무슨 길드를 세 명씩 짝지어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언제 우리나라 길드라고 한 적 있었나?”

    “예?”

    양동욱이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고 현석을 바라봤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당연히 거기서도 권혁찬이라는 이름을 쓰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예에?”

    점입가경이었다. 그럼 그런 사람을 대체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찾는다 해도 이름을 바꿔 쓰면 찾기 어렵다. 하물며 세계에서 찾으라니.

    “저…… 그게…….”

    “자신만만해서 보기 좋군. 그럼 되도록 빨리 찾아줬으면 좋겠군. 참고로 권혁찬 혼자 오려고 하진 않을 거야. 같이 다니는 사람이 있거든.”

    양동욱은 이게 진짜 정보라고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그게 누굽니까?”

    “이름은 모르고. 나이는 권혁찬과 동갑.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다.”

    양동욱의 표정에서 기대감이 살짝 사라졌다. 저 정보 가지고 전 세계의 길드를 다 뒤진다고 그 사람을 찾을 수나 있을까?

    “그리고 무기는 활을 쓰지.”

    그 말에 양동욱의 눈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 활을 무기로 쓰는 플레이어는 많지 않았다.

    활은 쓰기 힘든 무기다. 활을 무기로 쓰려면 원래부터 활을 잘 쏘던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게 아니면 활에 대한 아주 특별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거나.

    그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권혁찬보다 훨씬 쉽게 찾을 수도 있었다.

    이제 사람 찾는 문제는 얼추 길이 보였다. 그래서 양동욱은 류지혜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저기…… 우리 지혜씨는…….”

    양동욱의 말을 현석이 칼 같이 잘라 버렸다. 현석은 고개를 돌려 류지혜를 보며 말했다.

    “네 딜러로서의 재능이 어떻다고 생각하나?”

    류지혜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별로에요. 사실…… 아까 말씀하신 게 맞아요. 전 보조 공격수 쪽이 훨씬 더 어울려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무기가 되는 법이지.”

    그 말에 다들 묘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양세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괴리감 쩌네. 저게 무슨 스물하나야? 마흔은 됐겠다.’

    그리고 류혜연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말하는 것도 대박 멋져.’

    양동욱은 불안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서론이 길어?’

    그리고 임형석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슬슬 한 판 더 붙어도 될 것 같은데…….’

    그의 손가락 끝에서는 여전히 아주 작은 충격파가 펑펑 터지고 있었다.

    이젠 충격파가 터지는 확률이 거의 100프로에 가까웠다.

    ‘아니, 무조건 터지게 만들기 전에는 안 싸워. 이 자식 다음에 붙을 때 두고 보자. 아주 묵사발을 내주고야 만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현석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보조의 재능이 있다.”

    “보조의…… 재능?”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하니 다소 안심은 됐다.

    “그게 뭔가요?”

    “다른 사람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힘.”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퍼?”

    양동욱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타인의 능력을 증폭하는 플레이어는 버퍼라고 한다.

    버퍼는 힐러보다 더 귀한 플레이어였다.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알려진 버퍼는 단 한 명뿐이었다.

    한데 류지혜가 그 귀한 버퍼의 재능이 있다니.

    양동욱은 멍하니 류지혜를 바라봤다. 그리고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으면 먼저 의심부터 하고 봤겠지만, 그 얘기를 한 사람이 다름아닌 현석이니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다들 언젠가부터 현석이 한 얘기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도 위화감을 가지지 않았다.

    “저한테…… 정말 그런 능력이 있다고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몇 년 더 기다려야겠지만 지금 당장 능력을 개화시킬 수 있어.”

    “해주세요.”

    류지혜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려의 여지가 없는 일 아닌가. 당장 버퍼가 될 수 있다는데 말이다.

    “고통스러울 거야.”

    “참을 수 있어요.”

    “참기 어려울 거야. 그리고 고통을 참아내지 못하면 영원히 버퍼로 각성할 기회가 사라져.”

    그 말에 다들 입을 다물고 류지혜를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진짜 선택의 문제였다.

    그냥 몇 년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버퍼로 각성할 수 있다. 그 몇 년을 앞당기고자 고통과 위험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건 누구도 강요할 수 없고, 누구도 대신 선택해줄 수 없는 문제였다.

    류지혜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차분히 물었다.

    “지금 각성하면 더 좋은 점이 분명히 있겠죠? 일찍 각성했으니까요.”

    “능력이 더 강해지겠지.”

    몇 년 더 숙련하면 당연히 능력이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현석이 한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고통의 대가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류지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해주세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의지와 결정을 충분히 존중해 주었다.

    “고통을 못 참고 기절하면 끝이야.”

    “참을 수 있어요.”

    현석은 일단 심안을 통해 류지혜의 상태 중에서 스킬에 관한 부문을 자세히 확인했다.

    [잠재능력-특수한 스킬이 각성 중인 상태. 특별한 마력 패턴을 통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각성까지 32672시간 27분 32초 남았음.]

    시간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사실 저것만 봐서는 류지혜가 버퍼로 각성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현석은 회귀 전에 류지혜가 어떤 능력으로 유명해졌는지 알고 있었다.

    저건 무조건 버퍼에 관계된 스킬이었다.

    현석은 어떤 마력 패턴을 통해 저 시간을 줄일 수 있는지도 이미 조사가 끝난 상태였다.

    그것은 류혜연을 각성시킬 때와 비슷한 패턴이었다. 하지만 완벽히 똑같은 게 아니라서 그때보다 더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심력이나 체력 소모도 그때보다 훨씬 심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비해 현석도 많이 성장했으니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얼마나 힘들고 위험할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현석은 이번 일이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여겼다. 특별히 논리적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감이었다. 하지만 현석의 감은 다른 사람의 감과는 많이 다르다.

    “둘만의 공간으로 가는 게 낫겠군.”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류지혜의 손목을 잡고 지하로 데려갔다.

    다들 어어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양동욱이 제일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지금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다들 가만히 계실 겁니까? 둘만의 공간으로 가겠다는데?”

    그 말에 류혜연이 나섰다.

    “그러다가 우리 언니 잘못되면 아저씨가 책임지실 거예요?”

    “아, 아저씨?”

    양동욱이 살짝 충격 받은 표정으로 류혜연을 바라봤다. 자기 나이가 몇인데 아저씨라니. 오빠나 형부라는 좋은 단어도 많은데.

    “그래도 다 큰 성인남녀가 둘만의 공간에서…….”

    “우리 현석 오라버니는 그런 분 아니거든요!”

    그 말에 양세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동감. 내가 보기엔 남자가 아니라 그냥 목석이야.”

    “그것도 아, 아니거든요!”

    류혜연이 또 발끈했다. 하지만 왠지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서였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건가?’

    살짝 뾰로통한 얼굴로 입술을 살짝 내밀고 볼을 약간 부풀린 류혜연의 모습은 당장 끌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귀여웠다.

    결국 양세희가 류혜연을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꺄악! 뭐 하시는 거예요!”

    “에구 이 귀여운 것.”

    양세희는 류혜연의 뺨에 자신의 얼굴을 마구 부볐다.

    거실이 그렇게 소란스러운 반면, 지하로 통하는 투명던전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현석은 그곳에서도 아무도 들락거리지 못하는 가장 비밀스러운 방에 류지혜와 함께 들어갔다.

    류지혜도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저기 누워. 기절하면 끝이라는 거 명심하고.”

    현석의 말투는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담담했다. 붉어졌던 류지혜의 얼굴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이렇게 감정을 보기 어려운 사람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잡생각은 잠시 후, 아주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꺄아아아아악!”

    던전을 모조리 뒤엎어버릴 정도로 날카롭고 큰 비명이 끊임없이 류지혜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 영입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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