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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13화 (113/326)
  • < 영입 1 >

    인천공항을 나온 현석은 일단 택시부터 탔다.

    적당한 곳에서 분장을 지우고 멀쩡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야 한다.

    물론 이제 현석의 뒤를 캐려고 쫓아다니는 놈들은 거의 없겠지만 이런 사소한 것 하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현석과 임형석의 짧지만 내실 있는 여행이 끝났다.

    * * *

    “온다! 막아!”

    쿵쿵쿵쿵!

    엄청난 거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왔다. 그 힘을 이용해 발을 차는 것이 저놈의 특기이자 필살기였다.

    일행의 가장 앞을 지키는 사람은 당연히 탱커인 양세희였다.

    양세희는 눈을 빛내며 방패 너머의 광경을 지켜봤다. 철골을 이리저리 얽어서 만든 것 같은 거인, 스피드골렘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지금!’

    양세희는 타이밍을 맞춰 스킬, 철벽을 발동시켰다.

    노란색 광채가 방패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광채 속으로 스피드골렘의 발이 쑥 들어왔다.

    꽈아아앙!

    스피드골렘의 발차기는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양세희는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힘을 흘리지 않고 정면으로 받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류지혜가 양세희 뒤로 불쑥 튀어올랐다. 그녀는 높이 점프해 스피드골렘의 머리에 가볍게 올라탔다.

    스피드골렘의 발차기를 정면으로 막아내면 1초 정도의 짧은 경직이 발생하는데, 그 순간만이 머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잡았어!”

    양세희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이렇게 정면으로 발차기를 막아낼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큰 고난의 시기를 거쳐 왔는지 모른다.

    스피드골렘이 머리 위로 올라간 류지혜를 잡으려고 양 팔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마구 두드렸다.

    하지만 그의 주먹질은 발길질과는 많이 달랐다. 느리고 약했다.

    류지혜는 그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머리 어딘가에 있는 핵을 찾았다.

    가끔 손에 스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윳빛 광채가 튀어나가 그녀의 몸에 스며들었다.

    류혜연의 치료스킬이었다.

    치료 스킬도 한 층 업그레이드되어 빠르고 정확하게 상처 부위가 아물었다.

    “찾았다!”

    류지혜는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머리 위에서 균형을 잡으러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핵을 찾아내자마자 단검을 내질렀다.

    콰득!

    골렘의 핵이 산산조각 났다. 그러자 골렘의 형체를 이루고 있던 철근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꽈르릉!

    류지혜는 무너지는 순간 가볍게 점프해 공중에서 멋지게 한 바퀴 회전하더니 부드럽게 착지했다.

    “사냥 속도가 점점 빨라지긴 하네.”

    류지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이 어두웠다. 사냥 속도가 빨라지는 건 전적으로 류혜연과 양세희 덕분이었다.

    두 사람의 성장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반면 류지혜는 두 사람에 비해 성장이 더뎠다.

    레벨업 테스트를 해본 건 아니었다. 현석이 레벨 테스트를 금지시켰기에 이들은 이제 자신의 레벨이 몇인지도 모른다.

    그저 싸우는 모습을 보고, 또 스킬의 위력을 직접 확인하며 성장 정도를 감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었다.

    류혜연이나 양세희는 어느 순간부터 말 그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아마 레벨 테스트를 하면 상상을 초월한 레벨이 나올 것이다.

    그녀가 보기에 이 두 사람은 세상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 재능이 넘쳤다.

    ‘반면 나는…….’

    류지혜는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대체 현석은 이런 자신의 뭘 보고 이들과 함께 사냥하게 했을까?

    사실 다른 강력한 공격형 플레이어가 들어오면 이 파티는 훨씬 강력해질 것이다.

    자신이 이 파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계속 신경 쓰였다.

    “일단 나가자.”

    류지혜는 그렇게 말하고 먼저 던전에서 나갔다.

    왠지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 같아 양세희와 류혜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가 왜 저러시지?”

    “글쎄? 우리가 뭐 기분 상하게 한 거 있나?”

    두 사람은 서둘러 류지혜의 뒤를 따라 던전에서 나갔다.

    이곳 던전은 스피드골렘과 미니 스피드골렘이 출몰하는 던전이었는데, 아직 미니스피드골렘은 잡지 않았다.

    미니는 크기가 어른 절반만 했는데, 스피드골렘보다 훨씬 빨랐고, 수도 많았기에 상당히 사냥이 까다로웠다.

    류지혜 없이 사냥하는 건 일단 불가능했다. 공격 계열의 플레이어는 류지혜뿐이었으니까.

    던전에서 나간 두 사람은 류지혜의 눈치를 살폈다. 한데 그녀의 표정이 좀 전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예? 올라가요?”

    류지혜가 폰을 들어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현석 오라버니네? 이집트 가신다더니 벌써 오셨나보네요.”

    류혜연이 눈에 띄게 좋아했다.

    그걸 본 양세희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목석같은 살벌한 사람이 뭐가 좋다고…….”

    아무튼 호출했으니 올라가는 게 인지상정, 오랜만에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레벨테스트 해보고 싶다.”

    양세희가 중얼거렸다. 사실 그건 나머지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다.

    엄청나게 강해졌다는 건 알겠다. 굉장한 성장속도였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성장했는지 수치로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비교해 보고 싶기도 했다.

    최근 플레이어들의 실력이 올라가면서 평균 레벨이 대폭 높아졌다고 한다.

    새로 각성하는 플레이어의 수도 급격히 늘어났다고 하니, 이쪽 바닥도 이제 슬슬 웬만한 레벨로는 힘들어지는 시기가 오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했다.

    ‘80은 넘을 수 있을까?’

    최근 아무리 평균 레벨이 높아졌다고 해도 80이 넘는 플레이어의 수는 아직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몇 달 전만 해도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전체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건 맞다.

    심지어 90이 넘어가는 플레이어도 제법 나왔다고 하니 말이다.

    다만, 100레벨의 벽은 여전히 높았다.

    그저 마수만 계속 잡는다고 올릴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기에 전문가들의 예상으로는 99레벨에서 막힌 플레이어가 점점 늘어날 거라고 한다.

    어쨌든 그녀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또 무거운 마음을 안고 현석의 집으로 향했다.

    * * *

    돌아온 현석은 일단 주변부터 챙겼다. 사실 누군가를 살뜰하게 챙기는 건 현석에게 정말 어색한 일이었다.

    회귀 전에는 주로 챙김을 받기만 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타인은 챙겨주지 않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석은 자신과 가족이 된 거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일단 집으로 불렀다.

    할 말도 있었고, 또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던전에서 수련만 하던 세 플레이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도 보고 싶었다.

    아무튼 그런 현석의 부름에 모든 사람이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 막 양동욱이 도착했다.

    양동욱은 현석의 집에 들어설 때마다 항상 같은 반응을 보인다.

    주변을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것이다.

    “동생 찾는 거면 포기해라. 아직 안 왔다. 무슨 놈의 훈련을 이렇게 빡세게 시키는 건지, 원.”

    임형석이 그 답지 않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양동욱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동생 많이 아끼나보네.”

    “안 아낍니다. 그 녀석은 용암 속에 던져도 살아 돌아올 녀석입니다. 아주 질기기가 바퀴벌레 같지요.”

    “에이, 그래도 동생한테 바퀴벌레가 뭐냐? 바퀴벌레가.”

    “우리 세희 무시하지 마십시오. 바퀴벌레보다 더 질기니까요. 아마 세상이 멸망해도 혼자 살아남을 걸요?”

    임형석은 그 말을 들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어르신은 제 맘을 알아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 동생이랑 사느라 엄청 힘들어 보이죠? 예. 맞습니다. 요즘 안 보이니까 피둥피둥 살이 오르는 거 같더라고요.”

    임형석은 그 말에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었다.

    양동욱은 그제야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방안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는 듯했다.

    “어우, 왜 이렇게 으슬으슬하지?”

    “왜냐하면 곧 죽을 거란 사실을 몸이 본능적으로 느껴서 그런 거야.”

    “헉!”

    양동욱은 헛숨을 들이키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바로 뒤에 양세희가 서 있었다. 아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와, 와, 왔냐? 후, 후, 훈련 힘들었지? 이, 이, 이쪽으로 와서 앉아. 커, 커피 가져다줄까?”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말 더듬는 버릇, 내가 아주 깔끔하게 고쳐줄까?”

    양동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다가 양세희 약간 뒤쪽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류지혜를 발견했다.

    “어? 지혜씨도 오셨군요. 아, 같이 사냥하니까 당연한 일이구나. 이쪽으로 앉으시죠. 커피 한 잔 드시겠습니까? 제가 또 커피 타는 데 일가견이 있거든요.”

    류지혜는 그런 상황이 재미있는 듯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양동욱은 류지혜가 웃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야! 난 안 보여? 아직 나랑 얘기 안 끝났거든!”

    양세희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류지혜를 발견한 양동욱은 더 이상 양세희의 장난감이 아니었다.

    양동욱은 양세희의 어깨에 손을 척 올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생아. 이 오빠는 널 볼 때마다 심히 걱정이 되는구나. 그렇게 폭력으로 점철된 사람은 좋은 남자 만나기가 어어엄청 힘들단다. 저기 지혜씨 보이지?”

    양세희가 불똥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양동욱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류지혜가 어색하지만 예쁜 미소를 짓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눈이 있으면 보고 배우도록 해라. 나처럼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으면 말이야.”

    양세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당장 주먹을 휘둘러 양동욱을 응징할 수가 없었다.

    지금 너무 급격한 성장을 해서 힘조절이 되지 않는다. 아마 손을 쓰면 아차 하는 순간 양동욱이 불구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대체 누가 좋은 남자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어쨌든 양동욱과 류지혜가 좋은 관계로 발전한다면 자신은 대찬성이었으니까.

    ‘가만, 혜연이가 있으니까 불구 좀 되더라도 고쳐주지 않을까?’

    양세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양동욱은 동생을 향해 고개를 한 번 저어준 다음, 환하게 웃으며 류지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막 말을 걸려는 순간, 현석이 류혜연과 함께 등장했다.

    “잡담은 거기까지 하고 다들 모여 봐.”

    현석의 말에 모든 사람이 거실 중앙으로 모였다. 그리고 각자 소파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모두 앉자, 현석이 양동욱을 보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예? 어, 없는데요?”

    양동욱의 표정은 불만과 아쉬움이 뒤섞여 있었다. 류지혜에게 말을 걸어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을 찬스였는데, 현석이 들어오면서 그 기회가 날아가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 얘기를 현석에게 할 수는 없었다. 양동욱은 얼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현석은 양동욱이 표정을 정리하는 동안 이 방에 있는 세 명의 플레이어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심안을 통해 확인한 정보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열심히 했군.’

    아닌 게 아니라 그녀들은 정말 죽을힘을 다해 사냥을 했다. 그러니 이런 성장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물론 현석에 비하면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다들 조금만 더 하면 레벨이 90을 넘겠는데?”

    현석은 문득 성장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90레벨을 넘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물론 그 이후로 또 성장을 해서 이젠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레벨이 높아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게 과연 무슨 현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전체적으로 플레이어들의 레벨이 높아졌지?’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어느 순간 급격히 플레이어들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현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세 여인은 물론이고 양동욱도 깜짝 놀라 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레벨이 높아졌어요?”

    “죽을 고생을 하긴 했지만…… 설마 그 정도일 줄은…….”

    현석은 그 말을 들으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도 한 단계 변할 때가 되었다. 사냥터도 본격적으로 바꿀 생각이고.”

    “그럼…… 이제부터 훈련이 아닌 진짜 사냥을 하는 건가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수 한 명을 영입한 다음에 그렇게 할 생각이다.”

    “고, 공격수요?”

    다들 표정이 창백해졌다. 모두가 긴장한 얼굴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류지혜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영입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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