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11화 (111/326)
  • < 세 번째 원정 3 >

    현석이 선택한 방법은 투명화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저들은 투명하게 변한 상태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공격을 하거나 받으면 투명화가 풀린다.

    그러니 저들이 현석을 공격하는 순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 처리하면 된다.

    당연히 찰나의 순간에 모든 일이 이뤄질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물처럼 가라앉히고 언제든 마력을 쓸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검을 가만히 늘어뜨린 채 서 있는 현석의 눈이 한순간 번뜩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검이 오른쪽을 비스듬하게 찔렀다.

    콰득!

    투명화를 풀고 나타난 마족의 심장이 그대로 박살 났다.

    그리고 그걸 기점으로 무수한 마족들이 현석을 공격했다. 현석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모습도 안 보이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을 때나 무서운 놈들이지 이렇게 뻔히 보이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놈들이었다.

    콰자자자자작!

    12마리 마족이 뒤로 훅 날아갔다. 그들의 심장은 모두 박살 난 채였다.

    나머지 마족들이 당황하며 모습을 다시 감췄다.

    하지만 현석은 이미 그들이 서 있던 자리를 모두 파악해뒀다.

    콰득! 콰득! 콰득!

    마족 세 마리가 손도 못 써보고 당했다.

    ‘이제 남은 놈은 넷!’

    네 마리만 더 잡으면 마족은 끝난다.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지만 언제가 되었든 처리할 수 있으니 상관없다.

    문제는 도망친 네 마족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었다.

    그놈들을 끌어낼 미끼가 필요했다. 아니면 진짜 감각을 훨씬 더 예리하게 갈고 닦아서 모습을 감춘 마족까지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거나.

    현석은 고개를 돌려 임형석 쪽을 쳐다봤다. 그쪽도 몇 마리 남지 않았다.

    임형석은 아주 신나게 남은 놈들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내 모든 두더지를 처리한 임형석이 현석을 보고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너도 끝난 거냐? 스트레스가 쫙 풀리네.”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저놈들 좀 해체하고 올 테니.”

    “해체?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는 게야?”

    임형석은 그렇게 물으며 얼른 갔다 오라는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직 처리되지 않고 남은 놈이 더 있으니까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내가 방심해서 앉아 있는 것 같아? 그딴 거 없으니까 안심하고 다녀오기나 해.”

    현석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두더지 사체가 잔뜩 쌓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이 마수의 이름은 바위두더지. 바위도 단숨에 부술 수 있는 강철 같은 손톱을 가진 마수였다.

    이 두더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손톱이었다.

    현석은 두더지의 손톱을 모두 뽑았다. 이건 비수로 써먹기 좋은 재료였다. 물론 좀 갈고 다듬긴 해야하지만.

    발톱을 모두 뽑은 다음 마정석을 찾아봤다. 현석이 잡았다면 모든 사체에서 마정석을 뽑아낼 수 있겠지만 임형석이 워낙 모든 두더지를 넝마로 만들어서 남아난 게 별로 없었다.

    마정석들을 뽑던 현석은 갑자기 임형석 쪽에서 느껴진 강렬한 기운에 고개를 돌려 그쪽을 확인해봤다.

    임형석이 사방으로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뻐버버벅!

    네 마리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놈들이 공격을 한 것도 아닌데 임형석이 알아차리고 때려눕힌 것이다.

    임형석은 마족들이 다시 모습을 감출 틈을 주지 않고 달려들어 박살을 내 버렸다.

    현석은 나머지 작업을 마무리한 다음 임형석에게 다가갔다.

    임형석은 앉아서 쉬다가 고개를 힐끗 들어 현석을 바라봤다.

    “왜?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어떻게 안 겁니까?”

    “알긴 뭘 알아?”

    “투명화 상태로 다가온 마족들을 어떻게 알아차렸습니까?”

    “아아, 그 어설픈 놈들?”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임형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그냥 안 건데?”

    현석은 임형석이 장난하는 줄 알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하지만 임형석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는 더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냥 알았다고, 그냥. 그걸 일일이 말로 어떻게 설명해? 바늘에 찔리면 따끔한 거고 숨 들이마시면 공기 들어오는 건데, 무슨 더 자세한 설명을 해? 그냥 그쪽으로 달려오기에 때려눕힌 거야.”

    천재들이 흔히 말하는 전가의 보도 ‘그냥’이 나왔다. 더 이상의 설명은 들을 필요가 없었다.

    “비키시죠. 그놈들도 처리해야 하니까.”

    현석의 말에 임형석이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투덜댔다.

    “너, 뭐가 나한테 짜증을 부리는 것 같다?”

    “아닙니다.”

    “아님 말고.”

    임형석은 그렇게 말하며 히죽 웃고는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마족 해체 작업을 차분히 진행하는 현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 신기한 놈이야.’

    임형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등까지 단단하게 붙어있는 가죽 건틀렛이 보였다.

    현석은 이걸 대지의 갑주세트라고 불렀다. 건틀렛, 흉갑, 부츠까지 한 세트였다.

    그걸 왜 세트라고 하는지는 착용해보니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하나하나 착용할 때마다 몸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갔는데, 세 개를 모두 착용했을 때 받은 느낌은 정말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아주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아티팩트를 착용한다고 해서 임형석처럼 아티팩트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차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데 임형석은 플레이어도 아니면서 그걸 해낸 것이다.

    어쨌든 임형석은 이 대지의 갑주세트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특히 주먹질을 할 때마다 주변을 다 휩쓸어 버리는 이 능력은 쓸수록 중독되는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이걸 더 강하게 단련하는 건가?’

    임형석은 자신이 아직 이 스킬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숙련도를 더 높이면 충격파의 위력이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훨씬 더 자주 터지고 말이다.

    사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충격파를 터트릴 수 있었다. 충격파가 나가는 방식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급박한 상황에서는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숙련도를 높이면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모든 공격에 충격파를 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임형석은 고개를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이제 진짜 여기에 온 목적을 실행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 끝났냐?”

    마침 현석도 마족에 대한 처리를 마무리하고 서 있었다.

    이번 마계 원정은 생각보다 별 이득이 없었다. 물론 원정 기간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끝날 정도로 짧긴 했지만 말이다.

    처음 갔던 원정을 생각하면 거의 거저먹기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레벨을 하나 올렸고, 몇 가지 자잘한 아이템과 마정석 몇 개를 얻었다.

    그게 이번 원정으로 얻은 전부였다.

    그리고 임형석이 대지의 갑주세트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 두 번째 얻은 성과라면 성과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현석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임형석을 가만히 쳐다봤다.

    임형석의 표정과 자세를 보니 왜 이리로 오는지 뻔히 알 수 있었다.

    “우리 아직 안 끝낸 게 하나 있었지?”

    “끝난 거 아닙니까? 아까 충분히 테스트 해보셨잖습니까.”

    “에이, 그게 무슨 테스트야. 그냥 잠깐 스트레스 해소 좀 한 거지.”

    임형석의 입가가 길게 늘어졌다. 싸움을 눈앞에 두니 또 가슴이 두근거리며 아드레날린이 뭉텅이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봐주는 거 없기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형석의 주먹이 현석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현석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옆으로 젖히는 것만으로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하지만 임형석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꽈앙!

    충격파가 터졌다. 물론 현석도 거기까지 예상을 했기에 옆으로 몇 걸음 이동해 충격파를 해소했다.

    쉬가가가각!

    현석의 손에 있던 진마검이 임형석이 있던 자리를 난자했다.

    임형석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그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그리고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꽈과과과광!

    강렬한 폭음이 일어났다. 그리고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현석과 임형석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세 명의 사내가 중무장을 하고서 피라밋 암시장 외곽을 둘러보고 있었다.

    “대체 있긴 누가 있다는 거야?”

    키가 크고 바짝 마른 사내가 투덜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뚱뚱한 사내가 키득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이제 퀸도 한물 간 거 아냐?”

    “그런 소리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간다. 조심해. 퀸의 눈과 귀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어.”

    그 말에 뚱뚱한 사내가 급히 입을 다물고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사실 그 역시 퀸의 눈과 귀가 암시장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걱정 마. 고작 그 정도 실수로 퀸이 죽이기야 하겠어? 그저 징벌방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면 될 거야.”

    징벌방이라는 말에 뚱뚱한 사내가 하마터면 소변을 지릴 뻔했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거긴 다신 안 갈 거야!”

    “이런, 유경험자였군. 미안. 거기 다녀온 놈들이 징벌방의 징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는 걸 깜빡 했네.”

    “그만들 해. 이러다가 우리 셋이 나란히 거기 가게 될 수도 있어.”

    그제야 다들 입을 다물었다.

    뚱뚱한 사내는 징벌방 얘기가 나온 뒤로 안절부절 못하고 주위를 이리저리 살폈다.

    만일 거기 다시 가게 된다면 이번엔 그냥 깔끔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뚱뚱한 사내의 눈에 저 멀리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저기 누가 있는데?”

    “어라? 진짜네?”

    “휘유! 엄청나게 크고 단단한 사람이네.”

    “그거 지금 농담이라고 한 거 아니지?”

    그들은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총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언제든 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다.

    “어? 인상착의가 퀸이 찾으라고 했던 사람들이랑 비슷하지 않아?”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대충 모습이 드러났다. 정말로 크고 단단한 사람이 한 명 있었고, 그리고 작고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뭔가 좀 다른 거 같은데?”

    그들은 찾는 사람의 사진을 패드에 띄우고 확인했다. 한데 체형이나 복장은 상당히 흡사했는데, 얼굴이 전혀 달랐다.

    “이거…… 이 사진 속에 있는 얼굴이 변장한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

    그냥 사진만 봐서는 몰랐는데, 실물을 보고 비교하니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러운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진짜 대단한 변장실력이었다.

    “일단…… 연락부터 해. 그리고 저자들 어쩌지? 잡아둬야 하나?”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플레이어들 같은데?”

    “플레이어는 총알이 안 들어가나?”

    “안 들어가는 플레이어도 있잖아.”

    “저들이 그런 플레이어일 것 같지는 않은데?”

    “난 그럴 거 같은데?”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나타난 두 사람, 현석과 임형석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태연하게 그들을 지나쳐 지나가려 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용기를 낸 사람은 뚱뚱한 사내였다. 그는 다급히 달려가 두 사람 앞을 막아섰다.

    “잠깐! 잠깐 기다려!”

    현석과 임형석은 걸음을 멈추고 사내를 쳐다봤다. 임형석은 슬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사내는 임형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한껏 몸이 위축되는 걸 느끼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이지?”

    현석이 나서서 물었다.

    “그게…… 저쪽에는 벽 밖에 없는데 대체 거기서 뭘 하다 온 거지?”

    사내의 물음에 현석이 묘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는데? 여긴 암시장에 들어온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아닌가?”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감시하는 카메라도 없고.”

    사내의 머릿속에 맹렬한 위기감이 종을 땡땡땡 때렸다. 그는 다급히 외쳤다.

    “널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셔!”

    사내는 소리치고도 아차싶었다.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찾아서 감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블러디퀸이고, 이 사실을 그녀가 안다면 자신은 무조건 징벌방 행이었다.

    사내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석이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블러디퀸한데 전해. 친구가 되고 싶으면 친구답게 굴라고.”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사내를 지나쳐 암시장으로 향했다.

    현석과 나란히 걷던 임형석이 고개를 돌려 사내를 보고 씨익 웃어주었다.

    그 웃음을 본 사내가 지금까지 참았던 오줌을 지렸다.

    < 세 번째 원정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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