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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07화 (107/326)
  • < 대지의 갑주세트 3 >

    “던전에 올 거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으하하하!”

    임형석은 신나서 크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좀이 쑤시고 주먹이 근질근질했다. 한데 그걸 모조리 폭발시킬 수 있는 상황이 왔으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현석과 한 판 붙어 보는 것도 좋지만, 사실 이렇게 던전에 들어오는 것보다 더 좋지는 않았다.

    얼마 전 뇌룡의 둥지에 다녀온 이후, 그때의 싸움이 가끔 떠오르곤 했는데, 이렇게 다시 던전에 들어오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임형석은 옆에 서 있는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도 저번처럼 용 같은 거 나오나?”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저도 모릅니다.”

    그렇게 대답한 현석은 일단 주위를 면밀히 둘러봤다. 사방으로 마력을 흘려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들어오면서 이름을 확인하긴 했다. 하지만 회귀 전에 갔던 투명 던전은 이름을 확인하면 다닌 게 아니었기에 그걸로 던전을 파악하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름을 통해 대충 어떤 던전일 거라 유추는 가능했다.

    이곳은 막사였다. 그 말은 병사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럼…… 병사들이 쓰던 장비가 있는 곳이겠군.’

    현석은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막사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한 던전이 있었다.

    ‘인간형 마수가 득실득실하던 거기인가?’

    마족은 아닌데 인간처럼 생긴 마수들이 득실거리던 곳이 있었다.

    상당히 위험한 던전이었다.

    지능은 없는 놈들이었는데, 각자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을 없애면 시체는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그들이 착용했던 장비만 땅에 떨어졌다.

    그 장비들은 검이나 활, 창과 방패, 그리고 가죽옷과 가죽부츠, 그리고 허리띠 같은 것들이었는데, 모든 장비가 동일한 성능과 규격을 가졌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장비들을 잔뜩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사냥이 끝난 뒤에도 어떤 장비를 얻었는지 얘기만 들었을 뿐, 분배를 받지는 못했다.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기였으니까.

    아무튼 그놈들이 나오는 던전이라면 위험하긴 해도 한 번 해볼 만했다.

    특히 임형석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돼? 나 혼자 가도 되나?”

    임형석의 표정을 보니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서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뛰어나갈 기세였다.

    “같이 가야죠. 아마 원 없이 싸울 수 있을 겁니다.”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걸었다.

    현재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울창한 숲이었다. 현석은 능숙하게 숲을 헤쳐 길을 찾아냈다.

    마치 원래 잘 알고 있는 곳을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 여기 처음 아니지?”

    임형석이 기가막힌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 따라가기만 하면 길이 나오고 원하는 곳이 딱딱 나오는지 감탄이 날 지경이었다.

    현석은 대답하지 않고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저 멀리 서 있는 웅장한 건물을 쳐다봤다.

    마치 현대식 빌딩을 보는 듯한 건물이 서 있었다.

    그곳이 바로 막사였다. 저 안에는 그 인간형 마수가 잔뜩 있을 것이다.

    건물 크기를 보니 적어도 수백 이상의 마수가 있을 듯했다. 그들은 적이 오기 전에는 저 안에서 결코 나오지 않는다.

    아마 침대에 누워 자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진짜 자는 게 아니라 그저 눈을 감고 누워있기만 하는 것이겠지만.

    현석은 건물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마력이 주변을 차근차근 장악하면서 이내 건물까지 집어삼켰다.

    현석은 마력을 통해 건물 내부의 정보를 파악했다.

    ‘일단 병사 234. 지휘관으로 보이는 놈이 다섯. 그리고 진짜 강한 놈 하나.’

    마수의 강력함을 파악하는 기준은 당연히 마력의 양이었다.

    일반 병사로 분류한 놈들은 다들 같은 양의 마력을 갖고 있었다. 마치 그들조차 기계로 찍어낸 듯했다.

    하지만 지휘관으로 분류한 놈들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씩 마력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반면 제일 강력한 놈 하나는 어마어마한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다들 어딘가에 누워 있었다. 또한 그들이 가진 마력도 마치 잠든 것처럼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건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던전도 다른 투명 던전과 마찬가지로 던전의 이름이 나타내는 시설이 중앙 공터에 있었고, 주변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숲 바깥쪽은 마치 세상을 단절시킨 것 같은 특이한 느낌을 주는 벽으로 막혀 있고 말이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아직 간을 더 봐야 하는 거냐? 이러다 날 새겠다. 대체 싸움은 언제 할 건데?”

    임형석이 투덜거렸다. 그의 스타일은 앞뒤 잴 것 없이 냅다 들이 닥쳐서 목숨 내 놓고 한 판 붙는 것이다.

    그러니 현석의 이런 조심스러운 상황파악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참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해 준 것이다.

    상대가 현석이었으니 여기까지 참았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벌써 튀어 나가고도 남았으리라.

    현석은 그런 임형석을 보며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안에 마수가 240 마리 있습니다.”

    “240?”

    임형석의 입가가 길어졌다.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때려눕힐 적이 많다는 건 그만큼 신나게 싸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피 터지는 싸움을 앞에 두고 있으니 마치 첫 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놈들 다 내가 때려눕히면 되는 거지? 맞지?”

    “하나하나가 강력한 놈들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 중에 다섯은 상당히 강하고 한 놈은 진짜 강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싹 때려눕히면 되잖아. 그럼 나 가도 되지? 진짜 간다?”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임형석이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현석은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자세히 살폈다.

    임형석이 일정 거리 안에 들어간 순간 건물 전체에서 거대한 마력 반응이 일어났다.

    잠들었던 마력이 일제히 깨어나며 난폭한 기세가 건물 밖으로 뻗어 나왔다.

    임형석이 더욱 신나는 표정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건물 벽에 주먹을 냅다 꽂았다.

    꾸우우웅!

    마침 충격파까지 터져 나오는 바람에 건물이 우르르 뒤흔들렸다.

    놀랍게도 건물에서 일어나던 마력 반응이 크게 흔들렸다. 임형석의 주먹질이 뿜어낸 충격파가 건물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으하하하! 이거 진짜 끝내주잖아!”

    충격파의 힘은 임형석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걸 최대한 넓게 퍼트리겠다고 작정하고 썼는데, 이렇게나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다 덤벼!”

    임형석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건물에 난 무수한 창에서 병사들이 휙휙 뛰어내렸다.

    당연히 문을 통해 나올 거라 예상했던 임형석이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씨익 웃으며 막 땅에 착지한 병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꽝! 꽝! 꽝! 꽝!

    임형석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병사 넷이 강렬한 폭음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으라차차차!”

    임형석은 사방으로 주먹과 발을 쏟아냈다.

    꽈과과과광!

    병사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그건 싸움 초반의 일에 불과했다.

    아직 죽은 병사는 하나도 없었고, 그들의 수는 234명이나 되었으니까.

    임형석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병사들과의 싸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현석은 임형석의 싸움을 유심히 지켜봤다. 임형석이 입은 장비의 힘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상성이 잘 맞아.’

    병사형 마수들은 몸이 마치 그림자처럼 새까맸다. 검은 그림자 인간들이 가죽옷과 가죽부츠를 신고,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몸이 드러난 부분은 그냥 검은 것이 아니라 마치 검은 연기가 뭉쳐진 것처럼 뭉글거렸다.

    병사들은 각자 검, 창, 활을 들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임형석의 엄청난 저돌성에 밀려 제대로 대응을 못 하다가 서서히 진형을 갖춰가고 있었다.

    아마 저 진형이 완성되면 아무리 임형석이라 해도 지금처럼 마음껏 날뛰지는 못할 것이다.

    현석은 서둘러 심안을 통해 병사들을 살폈다.

    [오염된 제국병사-10년 이상 훈련을 받은 제국의 병사가 특별한 힘에 오염되어 변한 마수. 각자 생전에 쓰던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으며 어둠의 마력을 이용할 수 있다.]

    역시 병사였다. 하지만 그냥 병사가 아니라 특별한 힘에 오염되는 바람에 마수로 변한 병사였다.

    어느새 병사들이 진형을 완성했다. 어둠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고, 창과 검이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규칙적으로 임형석을 공격했다.

    임형석은 전혀 밀리지 않고 그것들을 모두 막고 피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보였다. 아직 병사들은 한 놈도 죽지 않았다. 임형석이 그렇게 공격을 많이 꽂아 넣었는데도 말이다.

    현석은 더 늦기 전에 소리쳤다.

    “배꼽에 뭉친 기운을 부숴요!”

    이들의 약점은 배꼽이었다. 그곳에 어둠의 마력을 응집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그것이 특별한 힘이리라.

    그걸 박살 내면 병사들은 그대로 흩어지게 되어 있었다.

    어차피 회귀 전에 이들과 싸운 경험이 있었다. 그때도 엄청나게 고생을 하긴 했지만 결국 약점을 알아냈다.

    현석은 마력을 통해 그걸 확실히 확인하고 임형석에게 알려준 것이다.

    임형석이 눈을 빛내며 사방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쏟아져 나간 주먹이 검과 창을 스쳐 지나가며 병사들의 배꼽을 정확히 때렸다.

    퍼버버버벙!

    때맞춰 충격파가 마구 터졌다.

    그리고 그렇게 맞은 병사들도 함께 터져 나갔다.

    검은 가루가 되어 퍽 터지듯 흩어지는 병사들의 모습은 기괴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멋있기도 했다.

    일단 약점을 파악한 이상, 저들은 결코 임형석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뭐…… 좀 다치기야 하겠지만, 죽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으니까.’

    현석이 마력수로 만든 포션을 쓸 수 있다면 훨씬 편하겠지만 임형석은 플레이어가 아니기에 간이 포션은 쓸 수 없다.

    하지만 치료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몇 가지가 있었다.

    대부분 당사자의 고통을 전제로 하지만 임형석이라면 그 정도 고통을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으리라.

    현석은 무수히 터져 나가 마치 검은 안개가 흐르는 것 같은 전장을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건물, 즉 막사를 올려다봤다.

    그곳에 아직 나서지 않은 여섯 지휘관이 있었다.

    ‘다섯은 지금 움직이나?’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다섯 지휘관이 서서히 이동을 시작했다.

    ‘살짝 늦은 감이 있지?’

    현석이 씨익 웃었다. 만일 저들이 좀 더 빨리 움직였다면 임형석이 저들 모두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저들은 지휘관이었다. 강한 것도 강한 거지만 병사들을 통제해 전투의 효율을 높이는 데에게 아주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강한 만큼 잠들었던 마력이 깨어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린다.

    보통은 그 정도 시간이야 무시할 만하겠지만, 임형석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병사의 일각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런 결과를 냈고 말이다.

    퍼엉! 퍼엉! 퍼엉!

    연이어 충격파가 일어났다. 그동안 충격을 응축해서 쓰다가 이제는 섞어 쓰고 있었다.

    충격이 넓게 퍼지면 병사의 진형이 흐트러지고, 그렇게 생긴 빈틈으로 파고들어 하나하나 약점을 찔러 쓰러뜨리는 전법이었다.

    대단한 감각이었다. 게다가 충격파가 언제 터지는지도 감각적으로 파악한 모양이었다.

    저 정도면 절대 걱정할 일이 없었다.

    후우우웅!

    건물에서 다섯 지휘관이 점프했다. 거의 하늘을 날다시피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쿠우우웅!

    다섯 지휘관이 땅에 내려셨다. 거대한 충격파가 그들을 중심으로 훅 쏟아져 나갔다.

    싸움이 순식간에 멈췄다. 병사들이 급히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임형석은 그걸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물러나는 병사들을 쫓아가며 무수한 주먹을 쏟아냈다.

    퍼엉! 퍼엉! 퍼엉!

    충격파까지 이용해 진형을 흔들고 후퇴까지 방해하면서 쫓아갔다.

    결국 다시 진형을 갖추기도 전에 다섯 지휘관이 임형석에게 달려들었다.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이제야 좀 해볼 만한 놈들이 나왔구나!”

    휘우우!

    그의 주먹에 바람이 모여드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현석은 거기까지 확인한 다음 빠르게 이동했다.

    저들은 임형석에게 맞기면 된다. 현석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 던전의 진짜 주인이 아직 저 건물 안에 있었다.

    현석이 빠르고 은밀하게 건물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 대지의 갑주세트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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