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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06화 (106/326)
  • < 대지의 갑주세트 2 >

    “나보고 지금 이걸 입으라는 거냐? 이게 들어가기나 할 거 같아? 응?”

    임형석이 손에 든 갑주세트를 현석을 향해 내민 채, 흔들며 말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입어보시고 말씀하시죠.”

    “뭐?”

    임형석은 입을 다물고 현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현석이 자신에게 굳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킬 이유가 없었다.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정말로 이걸 자신이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걸…… 정말 입을 수 있다고?”

    임형석의 목소리에서 힘이 많이 빠졌다. 그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대로 시도했다가 갑주를 모자처럼 쓰고 있으면 참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놈이 그런 걸로 날 놀릴 것 같지는 않고…….’

    현석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성향이 비슷하기라도 했으면 놀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아니, 그랬다면 분명히 이건 놀리는 게 맞다. 하지만 임형석이 보기에 현석은 보통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임형석은 먼저 건틀렛부터 손에 끼웠다.

    “어라?”

    손가락만 들어가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을 갖다 대고 힘을 주니 그냥 쑥 하고 들어가 버렸다.

    어느새 건틀렛은 임형석의 손과 팔뚝을 감싼 채 장착되었다.

    손가락이 다 나와 있고, 손등까지만 단단한 가죽으로 가려주는 형태의 건틀렛이었다.

    막상 장착하고 보니 제법 봐줄 만했다.

    “어떠냐? 괜찮지?”

    임형석은 조금 전까지 이게 절대 들어갈 리 없다고 바락바락 우기던 건 까맣게 잊고, 또 이런 조그만 건틀렛이 손에 쑥 들어가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그는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손을 이리저리 비틀어 장착된 건틀렛을 확인했다.

    “나머지도 끼워 보시죠.”

    “암, 그래야지.”

    임형석은 나머지 건틀렛에도 손을 쑥 넣었다. 양 팔에 장착된 가죽 건틀렛에서는 검은 광택이 짜르르 흘렀다.

    “오오. 이거 착용을 해야 더 멋있어지는 거로구나.”

    “마음에 드십니까?”

    임형석은 팔을 붕붕 휘두르고 주먹을 쥔 다음 가볍게 허공을 때려봤다.

    빠바바방!

    공기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임형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너무 좋아서 겁이 날 정도인데? 펀치의 파괴력이 좋아진 거 같아!”

    임형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팔을 붕붕 휘돌렸다.

    “무게가 더해져서 그런가?”

    현석은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나머지도 장착해 보십시오. 아마 다 착용하면 더 멋져질 겁니다.”

    임형석이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럴까?”

    임형석은 머리조차 들어가지 않을 것 같던 가죽 흉갑을 모자처럼 머리에 쓴 다음 힘을 꽉 주었다.

    그러자 흉갑이 쑤욱 들어가더니 가슴에 착 하고 장착되었다. 원래 얼마나 작았던 건지 전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임형석의 체형에 딱 맞아 떨어졌다.

    가슴 근육이 흉갑에 도드라져 마치 근육 모양대로 흉갑을 만든 것 같았다.

    그것 역시 장착하고 나니 검은 광택이 짜르르 흘렀다.

    “이거 거울이라도 보고 와야 하나? 으하하하!”

    임형석이 신나서 크게 웃었다. 그는 현석이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부츠를 신었다.

    원래 신던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가죽부츠에 발을 쑤셔 넣었는데, 다른 장비와 마찬가지로 발이 쑥 하고 들어갔다.

    양쪽을 다 신고 나니 역시 검은 광택이 흘렀고, 모양도 조금 멋스럽게 변했다.

    “이거 정말 신기하구나. 이대로 다녀도 될 것 같은데?”

    물론 도심지를 이 상태로 활보하고 다니면 모든 사람의 시선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옷 자체가 워낙 멋지고 임형석의 체형 또한 대단했기에 보기 좋은 건 사실이었다.

    “정말 신기하네. 플레이어들이 쓰는 장비는 원래 이런 식인가?”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장비는 대부분 마력에 반응해 체형이 수정된다.

    하지만 그건 마력을 보유한 사람에게 한한다. 착용자의 마력과 동조하면서 자연스럽게 형태를 변형시키는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은 아무리 그런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를 착용하려고 해도 형태변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력동조가 불가능하니까.

    기본적으로 임형석이 지금 입은 갑주세트는 마력감지기를 통해도 마력이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아티팩트였다. 그것도 마력의 힘을 이용하는 아티팩트였다.

    이 아티팩트의 비밀은 활성화였다.

    활성화시키기 전에는 그냥 장식품에 불과하지만 안에 담긴 봉인된 마력을 활성화 시키면 멋진 아티팩트로 변환된다.

    이런 활성화 아티팩트의 특징은 그 자체에 담긴 마력으로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이었다.

    즉, 마력을 가지지 않은 일반인도 얼마든지 그것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마치 플레이어가 아티팩트를 사용하듯이 말이다.

    물론 그런 장비는 아주 드물고, 대부분 성능이 뛰어나지 않았다.

    플레이어의 마력을 이용하지 않고 장비 자체에 담긴 마력을 이용해야 하니, 그 한계가 얕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임형석이 입은 갑주세트는 좀 달랐다.

    현석은 다시 한 번 갑주세트의 정보를 확인했다.

    [대지의 흉갑]

    [힘과 민첩을 소폭 상승시킨다. 힘+3, 민첩+3]

    [대지의 장갑]

    [파괴력과 공격속도를 증가시킨다.]

    [대지의 신발]

    [민첩을 소폭 상승시킨다. 이동속도가 빨라진다. 민첩+3]

    사실 이것만 놓고 보면 대단한 아티팩트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건 세트 아이템이었다.

    [대지의 갑주세트]

    [세 개의 장비를 모두 모았을 때, 특별한 능력이 발동된다. 타격 시 높은 확률로 충격파가 발생한다.]

    바로 이것이었다. 이건 그냥 패시브 스킬이었다. 다만 확률로 스킬이 발동하는 타입이었다.

    임형석에게는 날개를 달아주는 스킬이었다. 공격력이 강할수록 충격파도 강해지고 넓은 범위에 충격을 줄 수 있으니까.

    임형석은 장비를 모두 착용하니 힘이 불끈불끈 솟는지 이리저리 몸을 풀고 점프도 해보고 난리가 났다.

    “주먹이 근질근질한데?”

    당장에라도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한 판 붙어보시겠습니까?”

    임형석이 반색을 했다.

    “어디 패줄 놈들이라도 있어?”

    현석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드리죠.”

    임형석도 씨익 웃었다. 현석의 말이 꼭 자신과 한 번 붙어보자는 뜻으로 들렸다.

    “패도 돼?”

    “맞을 각오도 하셔야 할겁니다.”

    “그딴 각오는 태어날 때부터 했다.”

    임형석이 그렇게 말하고 막 몸을 날리려는 순간 현석이 손을 들어 그의 움직임을 막았다.

    “여기서는 안 됩니다.”

    임형석은 막 달려들려다가 움직임을 멈추고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 역시 여기서 싸우면 큰일 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여긴 주차장이다. 그것도 최고급 차가 즐비하게 서 있는 주차장이다.

    아마 여기서 싸우면 부서진 차 값을 물어내느라 허리가 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임형석은 현석을 보며 씨익 웃었다.

    ‘뭐…… 저놈한테 내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날 맘대로 부려먹으라고 하고.’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어느새 현석이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지 뭐.”

    임형석은 히죽히죽 웃으며 빠르게 현석의 뒤를 쫓았다.

    왠지 평소보다 움직이는 게 훨씬 편하고 빨라져 신이 났다.

    “으하하하! 같이 가자, 이놈아!”

    저 멀리 앞서가던 현석이 슬쩍 뒤돌아 임형석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남자는 맨주먹이라더니.”

    물론 이렇게 될 줄 알고 구해준 장비였다. 대지의 갑주세트는 임형석의 능력도 올려주지만, 방어력도 상당했다.

    아마 결정적일 때 임형석을 한 번쯤은 구해주지 않을까?

    ‘하여간 자기 몸 아낄 줄 모르는 분이라는 게 문제라니까.’

    현석이 급격히 속도를 높였다. 임형석이 쫓아오는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기 때문이다.

    아마 이대로 따라잡히면 이 자리에서 한바탕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런 건 사양이었다. 아직은 그렇게 대놓고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 안에 임형석과 함께 꼭 가보고 싶은 데가 있었다.

    현석은 뒤쫓아 오는 임형석을 힐끗 확인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어디로 가는 거냐?”

    한참 동안 현석을 따라가던 임형석이 결국 짜증을 냈다.

    그들은 주차장 구석에서 시작해 피라밋 암시장을 가로지르다시피 해서 끝까지 가고 있었다.

    그냥 직선으로 이어진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수많은 상점으로 이루어진 골목을 구불구불 가야 했기에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다.

    사람도 많아서 인파를 헤치고 걸어야 하니 더욱 시간이 더뎠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현석의 말에 임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저렇게 말했으니 정말로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주먹질 한 번 하기 더럽게 어렵네.”

    물론 이렇게 투덜거리는 건 잊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피라밋 암시장의 끝이었다. 피라밋 암시장은 지하 깊은 곳에 만들어진 장소였다.

    그렇기에 그 끝도 그저 벽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육면체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 벽이었다.

    피라밋을 만들 때 쓴 것 같은 거대한 돌을 사방에 쌓아 벽을 둘렀는데, 사실 제법 훌륭한 볼거리였다.

    “뭐냐? 여길 기어 올라가자, 뭐 그런 거냐?”

    임형석은 그렇게 말하며 위를 쳐다봤다.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 봐야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위는 그저 천장이었다. 무수한 조명이 촘촘히 박혀 있는 천장 말이다.

    현석은 임형석의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인적이 아예 없는 장소였다. 또한 그렇기에 암시장 내의 감시도 없는 곳이었다.

    암시장 곳곳은 특별한 CCTV를 통해 모든 상황이 녹화되고 있었는데, 이렇게 암시장을 벗어난 곳까지 신경 써서 카메라를 설치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인적 없는 곳이 암시장 내에 제법 많았고, 그런 데에서 불법보다 더 불법적인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일정 부분 암시장 측에서 방관하거나 조장하는 면도 있었다.

    아무튼 덕분에 보는 눈 없이 여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누구도 모른다.

    현석은 벽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 슬슬 쓰다듬으며 뭔가를 찾았다.

    아니, 꼭 뭔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게 아니었다.

    “너 뭐 하냐?”

    임형석이 현석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러자 현석이 돌아서며 그에게 물병 하나를 내밀었다.

    임형석은 현석과 물병을 번갈아 바라봤다. 잠시 이게 뭔가 싶어서 멍하니 보던 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뭔가가 떠오른 것이다.

    “마력수?”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병을 더 내밀었다. 임형석이 그것을 받아 뚜껑을 열었다.

    “어디서 마시면 되는 거냐?”

    당장에라도 물을 벌컥벌컥 들이킬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임형석의 눈에 강렬한 기대감이 떠올랐다.

    “그냥 거기서 마시면 됩니다.”

    “뭐? 여기서? 아무것도 없는데?”

    하지만 임형석은 현석의 말이니 일단 듣고 봤다. 마력수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현석은 그런 임형석에게 다가가 벽을 향해 확 밀었다.

    후웅!

    임형석이 벽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니, 벽에 딱 붙어서 생겨난 투명 던전 속으로 들어갔다.

    현석은 투명던전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제14막사]

    과연 이 안에 어떤 마수가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며 현석도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후웅!

    세상이 휙 뒤바뀌었다.

    < 대지의 갑주세트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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