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05화 (105/326)
  • < 대지의 갑주세트 1 >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트팩트가 아니라니. 그럼 내가 아무것도 아닌 걸 5천만 달러나 불렀다는 거야?”

    사내가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현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력감지기 꺼낼까?”

    “뭐? 마력감지기? 웃기고 있네. 그 비싼 걸 갖고 있다고?”

    마력감지기는 비싼 것도 비싼 거지만 던전관리센터에서 철저히 관리하는 품목이었기 때문에 외부로 유출된 게 거의 없었다.

    혹시 있다 해도 그걸 가진 자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 던전관리센터에서 타격대까지 보내 회수하기 때문에 일반인이 들고다니기엔 무리가 있었다.

    던전관리센터의 마력감지기는 돋보기 형태로 되어 있었기에 모양 자체가 유니크해서 걸리지 않고 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보통 플레이어가 마력감지기를 쓰려면 아주 특별한 아티팩트를 구해야 한다.

    구슬형 마력감지기를 말이다.

    예전 추광열이 현석과 내기를 했을 때 쓴 그런 마력감지기는 던전관리센터에서도 딱히 관리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구하기 어렵고 쓰기도 쉽지 않은 아티팩트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내가 코웃음을 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석은 담담한 표정으로 품에서 구슬을 꺼냈다.

    그걸 본 사내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어…… 그거…….”

    “이게 제법 비싸긴 하지. 구하기 어렵기도 하고.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야. 그렇지?”

    사내의 얼굴에 탐욕이 어렸다.

    “그래서 뭐! 뭘 어쩌라고! 이 바닥에 들어왔으면 속고 속이는 거야 당연한 거잖아!”

    사내가 당당하게 외쳤다. 그리고 여전히 탐욕에 가득 찬 눈을 감추지 않은 채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그리고 보물을 갖고 다니는 게 죄라는 말 들어본 적 있지?”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점 문이 세게 닫혔다.

    쾅!

    안이 어둑어둑해졌다. 아니, 깜깜해졌다. 빛이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킥킥킥. 어때? 아무것도 안 보이지? 하여튼 조금 잘난 놈들은 다들 이렇게 방심하다가 골로 간다니까?”

    현석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둠은 그에게 그 무엇보다 친숙하니까.

    “암흑석?”

    “오오! 알고 있었어? 이거 장치하느라 돈 좀 썼지. 문을 닫으면 작동하는 방식이야. 어때? 굉장하지? 그리고 아무것도 안 보여서 무섭기도 하고 말이야. 킥킥킥.”

    암흑석의 어둠에 갇히면 눈만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모든 감각이 흐려진다.

    그것이 진정한 어둠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현석에게는 아무 소용없었다. 더불어 임형석에게도.

    “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그냥 저놈 때려 눕히면 되는 거지? 그렇지?”

    임형석은 현석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빠각!

    “끄어어어!”

    사내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가슴을 얻어맞는 바람에 숨을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컥컥대는 사내에게 현석이 다가가 발끝으로 명치를 툭 때렸다.

    “크아아아아악!”

    호흡이 돌아온 사내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괴로워했다.

    임형석이 가볍게 때린 한 방을 버티기엔 사내의 몸이 너무 허약했다.

    물론 그냥 허약하다고 하기에는 제법 단단하고 우락부락한 몸이었지만, 그래봐야 일반인이었다.

    임형석은 어찌 보면 일반인이라고 칭하기 어려운 사람이니까.

    “너무 싱거운데? 준비한 게 이거밖에 없으면 나 진짜 실망할 거야.”

    임형석이 투덜거렸다. 물론 사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었다.

    사내는 자신이 오늘 정말 잘못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커억! 커억! 나, 날 죽이면 무사히 여길 나갈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누군지 알아? 크허헉!”

    사내는 고통 섞인 숨을 내뱉으며 협박을 했다.

    “내가 널 죽였는지 아닌지 딴 사람들이 알게 뭐야.”

    현석의 지극히 담담한 말투에 사내가 질려 버렸다. 살인을 눈앞에 두고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정말로 위험한 자다.

    “자, 잠깐! 가져가. 그냥 가져가. 이후로도 아무 일 없게 해줄 테니까 그냥 물건만 가져가고 끝내자고.”

    “지금까지 그 어설픈 거짓말을 믿었던 순진한 사람들이 제법 있었나보지?”

    “거짓말 아니야! 절대 그럴 일 없게 한다니까!”

    현석은 사내의 외침을 들으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그쪽에서 답을 구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벌써 알고 있었나요?”

    이내 암흑석으로 만들어진 어둠이 말끔히 사라졌다.

    상점 안은 별로 흐트러진 것도 없었다. 워낙 싸움 자체가 깔끔하게 끝났기 때문이다.

    사내가 고통에 몸부림치던 흔적만 조금 남아있을 뿐이었다.

    사내는 특이하게 생긴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현석의 시선이 향한 곳에도 사내가 낀 것과 똑같은 안경을 낀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놀랍게도 오늘 현석과 임형석을 여기까지 데려다 준 중년 여인이었다.

    “그런 일 없게 할 테니까 그쯤에서 끝내주시면 안될까요?”

    중년 여인의 말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극히 정중했다.

    현석은 중년 여인을 가만히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은 모르겠고, 별명이…… 블러디퀸이었나?’

    블러디퀸은 이곳 피라밋 암시장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회귀 전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암시장의 주인이라는 위치 자체가 신변의 위협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에, 비밀 유지가 상당히 철저했으니까.

    사실 지금도 현석은 그녀가 진짜 블러디퀸인지 아니면 그저 오지랖 넓은 아줌마인지 명확하게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석의 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블러디퀸이라고.

    ‘한데…… 별명에 비해서 너무 평범하긴 하네.’

    생각을 대충 정리한 현석이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신뢰를 주실 겁니까?”

    중년 여인이 현석에게 찡긋 윙크를 했다.

    “아까 여기까지 태워준 보답이라고 하죠. 어때요?”

    현석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아마 보통은 이럴 때 웃기지 말라고 해야 정상이리라. 하지만 현석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믿어드리죠. 암시장의 주인이 한 입으로 두 말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현석의 말에 중년 여인, 블러디퀸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이내 나이답지 않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보는 눈이 상당할 줄 알았어요. 한데…… 어떻게 알았죠?”

    현석이 씨익 웃었다.

    “영업비밀입니다.”

    그냥 감으로 찍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일단 블러디퀸이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지 않고 수긍했다는 건 둘 중 하나의 의미였다.

    하나는 어차피 죽일 테니 비밀을 알든 말든 상관없다는 의미, 다른 하나는 진정한 호의.

    현석은 아직 둘 중 어느 쪽인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그럼 이 쓸모없는 물건들은 이제 제 차지인가요?”

    “가져가세요. 그걸 왜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블러디퀸은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현석이 손에 들고 있는 가죽 갑주세트를 유심히 살폈다.

    그녀의 눈에 그것은 상당히 유서 깊은 물건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힘이 담긴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는 이것이 플레이어용인지 아닌지 알아볼만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목에도 이것은 절대 플레이어용이 아니라 일반인이 쓰는 평범한 가죽 갑옷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좀 꺼림칙하지만 부담 없이 내줬다.

    물론 나중에 저 상점 주인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블러디퀸이 비록 암시장의 주인이긴 하지만 실제로 모든 상점을 소유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암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고, 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상인들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은 상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실 애초에 암시장을 만든 목적 자체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 상점은 그녀가 아끼는 상점 중 하나였다. 당연히 이 상점을 지키는 사내도 그녀가 아끼는 사람이었다. 가족이었으니까.

    “넌 나중에 보자.”

    “히익!”

    사내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놀라더니 온몸을 덜덜 떨었다.

    조금 전 임형석의 주먹질에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도 이 정도로 떨지는 않았다.

    현석은 그 모습을 보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블러디퀸을 쳐다봤다.

    역시 암시장의 주인은 아무나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종로 영감님도 그렇고.’

    아마 이 블러디퀸도 상당한 정보조직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이 정도 암시장을 유지하려면 정보력과 무력은 필수 요소였으니까.

    “자, 이제 우리 사이에 있던 불미스러운 거래가 끝난 것 같군요. 그럼 불미스럽지 않은 거래를 한 번 해볼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현석의 손에 있는 마력탐지기를 바라봤다.

    현석은 피식 웃으며 그것을 허공에 던졌다가 받는 걸 반복했다.

    왠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 * *

    임형석은 뚱한 얼굴로 품에 가득 안은 가죽갑옷과 가죽 건틀렛, 그리고 가죽 부츠를 내려다봤다.

    “나보고 이걸 입으라고?”

    “싫으시면 돌려주시고요.”

    그렇게 말하니 또 돌려주기가 싫었다.

    “치사하게 줬다가 뺏으려고?”

    현석이 빙긋 웃었다.

    “안 빼앗습니다. 그거 아마 잘 맞을 거예요 입어보세요.”

    임형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작은데…….”

    가죽갑옷은 가슴을 앞뒤로 방어하게 되어 있는 흉갑이었는데, 머리나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았다.

    건틀렛은 또 어떠한가.

    “엄지손가락에 넣으면 잘 맞겠네.”

    부츠는 여자가 신으면 딱일 듯했다. 그 정도로 작았다. 아마 임형석이 신으면 발끝도 잘 안 들어갈 것이다.

    그런 것들을 입으라고 하니 인상을 안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로 가져가라고 하기엔 또 묘하게 뭔가가 거슬렸다.

    “그나저나 아까 그 여자한테 준 구슬은 뭐 하는 거냐?”

    “상대방의 힘을 측정하는 아티팩트죠.”

    그 말에 임형석이 피식 웃었다.

    “더럽게 쓸데없는 물건이군.”

    강자는 강자를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당연히 약자도 알아볼 수 있다.

    강자는 특유의 기세가 있다.

    눈빛이나 자세를 통해 그 기세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데, 그걸 보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한데 굳이 그런 걸 왜 아티팩트까지 써가면서 알아야 한단 말인가.

    “그냥 주먹 한 번 대보면 알 걸 하여튼 플레이어란 족속들은 번거로운 겁쟁이들이란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임형석이 현석에게 물었다.

    “그 구슬이랑 이거랑 바꾼 거냐?”

    현석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기에 덤으로 향후 피라밋 암시장에서 거래할 때의 모든 수수료를 면제 받기로 했고, 아티팩트 가격으로 상당한 양의 금을 따로 받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결과적으로는 아티팩트와 이 갑주세트를 바꾼 게 맞다.

    임형석은 갑옷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피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여간 플레이어들은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아까 구슬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뭐가 그리 대단한 건지 알 수가 없으니…….”

    “그럼 확인해볼까요?”

    “응? 확인? 뭘?”

    “그거 얼마나 대단한 건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임형석이 자신이 들고 있는 갑주세트와 현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궁금…… 이야 하지. 그런데 그게 가능하긴 해? 가끔 착각하는 거 같은데 나 플레이어 아냐. 알지?”

    “그래서 굳이 그걸 고른 겁니다. 일단 따라오시죠.”

    현석은 임형석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주차장 구석 인적 없고 으슥한 곳이었다.

    “뭐냐, 한 판 하자는 거냐?”

    임형석의 말에 현석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거 한 번 입어보시죠.”

    임형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싸우자고 하는 거 맞네.”

    < 대지의 갑주세트 1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