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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02화 (102/326)
  • < 준비 2 >

    황노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양동욱을 쳐다봤다.

    “또 무슨 일인 게야?”

    처음 현석에게 맡길 때만해도 그저 가서 사람 노릇이나 좀 하라는 바람만 있었다.

    한데 양동욱은 황노인의 기대 이상으로 잘해내고 있었다.

    한국의 정보를 쥐락펴락 하는 황노인이었다. 양동욱이 요즘 뭘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다.

    그런데 점점 그것이 어려워졌다.

    그러다가 양동욱에게 돈이 모여들고 있다는 정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양동욱이 뭘 하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양동욱도 나름대로 정보망을 갖추기 시작했고, 애초에 능력이 뛰어난 놈이니 그걸 이용해 정보 교란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황노인이 힘을 제대로 쓰면 못 알아낼 건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돈과 시간과 인력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황노인이 양동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그가 왠지 계속 위험한 일을 계획하는 것 같아서였다.

    물론 현석이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말려야 하는 것이 양동욱 같은 놈이 할 일 아니던가.

    황노인이 보기엔 양동욱이 더 신나서 날뛰는 것 같았다. 그러니 못마땅할 수밖에.

    “에이, 이제 저도 잘하고 있잖습니까, 뭐가 그리 못마땅하세요?”

    양동욱이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노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 그냥 말을 말자. 여긴 왜 왔어?”

    “물건 좀 처분하려고요.”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잖아.”

    그런데도 왔다는 건 심상치 않은 내력을 가진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황노인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몇 개나 되는데?”

    “세트로 50개입니다. 동남아 쪽으로 넘겼으면 하는데…… 아니면 피라밋으로 가고요.”

    황노인이 피식 웃었다.

    “피라밋은 얼어 죽을. 거기 가면 네놈이 멀쩡할 거 같아? 팔다리 다 따로 떨어져서 여기저기 팔려갈 거다.”

    “헤헤헤. 아니까 이리로 왔지요. 저도 능력 있다는 거 좀 보여줘야 할 거 아닙니까. 피라밋 쪽으로 보내기엔 좀 애매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피라밋 암시장은 뒤를 추적당할 염려가 줄어드는 만큼 제 가격을 받을 확률도 적다.

    반면 동남아 쪽은 그나마 좀 낫다. 아마 피라밋의 두 배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알선은 해줄 수 있지만 그 뒤는 네놈이 알아서 해야 돼. 할 수 있겠어?”

    “헤헤. 당연하죠. 저도 거기까지 바라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나랑 아는 사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동남아 쪽 놈들은 믿어선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그래도 어르신이 소개해 주시는 데가 그나마 나을 거 아닙니까.”

    황노인은 대답대신 전화기를 꺼냈다. 누구도 쓰지 않을 것 같은 진짜 구형 핸드폰이었다.

    그걸로 전화를 걸어 몇 마디를 한 다음 전화를 끊은 황노인은 양동욱에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

    “태국으로 가서 그리로 전화하면 될 게다.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K나이츠 길드 뒤에 있는 놈들 보통이 아니야. 정말 조심하는 게 좋아.”

    양동욱은 역시 황노인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뭐…… 보아하니 흑기사단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쓰던 장비는 그나마 흔한 편인 거 같으니 괜찮겠지만.”

    “예?”

    양동욱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멍하니 황노인을 바라봤다.

    흔한 편이라니. 양동욱이 보기에 흑기사단이 쓰던 장비는 절대 흔한 게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능력도 출중했다.

    물론 자세한 능력은 현석이 정리해준 수첩을 통해 확인했다. 그것만 봐도 정말 대단한 아티팩트들이었다.

    한데 그게 흔하다니. 그럼 대체 뭐가 귀한 아티팩트란 말인가.

    ‘뭐…… 50세트나 있으니 엄밀히 따지면 흔한 건 맞지만…….’

    양동욱의 생각을 훤히 꿰고 있다는 듯 황노인이 입가를 슬쩍 올렸다.

    “사신 길드라고 들어봤어?”

    양동욱이 그 말에 흠칫 놀랐다. 사신 길드에 대해서 현석에게 전해들은 바가 있었다.

    사신 길드도 K나이츠 길드와 같은 조직이 뒤를 봐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놈들도 딱 50명으로 구성된 팀이 생겼어. 색깔만 붉은 색이고 다 같은 장비로 보이더라고. 이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양동욱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굉장한 장비를 휘하 길드에 50세트씩 막 지급해 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조직이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의 정체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정도로 강력하고 은밀한 조직이 작정하고 뒤를 캔다면 아마 어설픈 세탁은 안 하느니만 못할 것이다.

    양동욱은 굳은 표정으로 황노인을 바라봤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양동욱의 얼굴이 결연해졌다. 그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 보겠다고 작정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황노인이 불안하면서도 대견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 * *

    “그런데 더 위험한 던전에 간다고 안 했나?”

    암형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집트 먼저 다녀온 다음에 가죠. 아무래도 그냥 가는 것보다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 게 나을 테니.”

    “준비는 무슨 준비. 이 두 주먹만 멀쩡하면 그게 준비지.”

    “이번 기회에 암시장 한 번 둘러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쓸 만한 물건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차피 있어봐야 못 쓰는 거 아냐? 괜찮은 장비는 다 마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아티팩트는 플레이어를 위한 물품이다. 하지만 그걸 꼭 플레이어만 쓰라는 법은 없었다.

    일반인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아티팩트도 가끔 나오곤 했다.

    하지만 고성능의 장비는 반드시 마력의 힘을 필요로 했다. 그러니 쓸 만한 것들은 플레이어 전용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력이 필요 없는 고성능 장비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성능이 뛰어난 장비였다. 좋은 아티팩트에 담신 스킬이나 스탯 향상 효과가 붙지 않은 그저 좋기만 한 장비 말이다.

    사실 던전에서 나오는 보통 장비는 아무리 좋은 거라고 해도 현대 기술로 만든 다른 장비에 비해 성능이 떨어졌다.

    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이번 피라밋 암시장에 가면 혹시 그런 것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 것이다.

    사실 아직까지는 그런 암시장보다는 던전관리센터가 훨씬 많은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는 추경훈 같은 호구 조력자가 있지 않은 한, 둘러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럼 내가 쓸 만한 것도 있으려나?”

    임형석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표정에서는 관심 없어 하는 티가 확 났다.

    “남자는 말이야, 주먹이야. 도구의 힘을 빌리는 건 사나이답지 못한 일이지. 암.”

    현석은 무슨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다 있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임형석을 쳐다봤다.

    하지만 신념에 가득 찬 그의 표정을 보고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진짜 괜찮은 장비를 보면 아마 달라고 떼를 쓸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그 위험한 암시장에는 언제 간다고?”

    “지금 갑니다.”

    현석은 탁자에 여권을 툭 던졌다. 그걸 집은 임형석이 현석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뭐냐?”

    “뭐긴 뭡니까, 여권이죠.”

    “설마 내 거냐? 사진이 완전히 다른데? 이름도 다르고?”

    “그 모양으로 변장하고 갈 겁니다. 우리가 행적을 드러내 놓고 다닐 상황은 아니니까요.”

    “왜? 우리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죄를 지은 건 아니다.

    “앞으로 짓게 될 겁니다.”

    현석의 말에 임형석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왜요? 싫으면 안 가셔도 됩니다.”

    “누가 싫대? 간다. 가면 되잖아!”

    임형석의 반응에 현석이 피식 웃었다. 왠지 이번 여행은 지난 번 미국에 갔을 때보다 더 즐거울 것만 같았다.

    * * *

    임형석이 감탄어린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왜 그런 눈으로 계속 보십니까?”

    현석은 계속 시선을 느끼는 것이 좀 불편했다. 그렇지 않아도 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한데 계속 시선을 느끼니 더 긴장하게 되어서 좀 피곤했다.

    “너 진짜 대단한 놈이었구나!”

    현석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임형석을 쳐다봤다.

    “그게 대체 어느 나라 말이냐? 아, 여기 이집트라고 했지? 그러니까 이집트 말을 이렇게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 말이야.”

    이집트에서는 아랍어를 쓴다. 현석은 놀랍게도 아랍어조차 능숙하게 쓸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세상 모든 언어를 다 쓸 수 있는 능력이라도 생긴 듯했다.

    그러니 예전 고대 제국어까지 쓰지 않았겠는가.

    이건 캐릭터 정보창에도 나오지 않은 능력이었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왜 생긴 능력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냥 좀 합니다.”

    “그냥 좀? 아주 현지인이던데? 그리고 너 공항에서 보니까 영어도 좀 하던데?”

    현석은 입을 다물고 걸음을 빨리했다.

    저런 쓸데없는 대화에 심력과 체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야! 같이 가야지! 좀 천천히 구경이라도 하면서 가자!”

    현석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잠시 후, 그들은 택시를 타고 피라밋 암시장이 있는 지역으로 출발했다.

    * * *

    임형석이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여기가 어디냐? 내가 배운 건 별로 없지만 피라밋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는데…….”

    근처에는 피라밋 비슷하게 생긴 것도 없었다. 아니, 여긴 그냥 시내였다. 길 양 옆으로 상점이 쭉 늘어서 있는.

    하지만 현석은 성큼성큼 길을 따라 걸어갔다. 피라밋 암시장에 대해서는 제법 자세히 알고 있었다.

    양동욱이 거기에 대한 자료를 챙겨줬지만, 굳이 그걸 읽지 않아도 피라밋 암시장에 대해서는 한국에 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안 가본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워낙 유명해서 거기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다. 직접 다녀온 동료의 얘기도 종종 전해 들었고 말이다.

    “피라밋이 어디 있느냐니까?”

    현석은 걸음을 멈추고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잖습니까.”

    임형석은 현석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봤다. 하지만 거기에도 피라밋은 없었다. 아니, 피라밋 비슷하게 생긴 것도 없었다.

    당연했다. 그저 상점이 쭉 늘어서 있을 뿐이니까.

    “없는데?”

    현석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 상점 앞에서 멈춰 섰다.

    임형석은 대체 이놈이 왜 이러나 싶은 눈으로 현석을 보다가 현석이 선 상점을 힐끗 확인했다.

    평범한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었다.

    “지금 뭐 하는…….”

    뭐 하고 있느냐고 말하려던 임형석이 입을 다물었다. 상점에서 파는 기념품이 뭔지 본 것이다.

    이곳은 피라밋 모형을 파는 곳이었다.

    임형석은 황당한 표정을 현석과 상점의 피라밋 모형을 번갈아 바라봤다. 설마 이건 아니지? 하는 표정이었다.

    물론 여기가 맞다. 현석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황당한 표정의 임형석이 멍하니 현석을 뒤따라 상점에 들어갔다.

    상점은 상당히 규모가 컸다. 안에 진열된 상품은 전부 피라밋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끝부분에 거대한 피라밋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사진이었는데, 특별할 건 없었기에 구경하는 사람도 없었다.

    현석은 그 사진으로 향했다.

    임형석은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사진 앞으로 간 현석은 그곳에 있는 직원에게 몇 마디를 했다. 그는 두 사람을 사진 뒤쪽 공간으로 안내했다. 아주 정중히.

    사진 뒤쪽 공간에는 긴 복도가 나 있었다.

    그곳이 바로 이집트의 피라밋 암시장으로 가는 입구였다.

    < 준비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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