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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101화 (101/326)
  • < 준비 1 (4권 끝) >

    양동욱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현석의 집으로 들어섰다.

    “저 왔습니다. 으하하하!”

    양동욱이 부리나케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간 다음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휙휙 돌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하지만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양동욱은 얼른 집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다니까요!”

    대답도 인기척도 없었다. 양동욱은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문을 벌컥벌컥 열었다.

    1층엔 아무도 없었다.

    “다들 2층에 있나보네.”

    양동욱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2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향했다.

    이 집에서 1층은 거실의 역할이 가장 컸다. 대부분 2층이나 3층에서 지낸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당연히 2층에 모여 있을 거라 여기고 계단을 올랐다.

    “있으면 있다고 대답해주면 좀 좋아.”

    투덜거리며 2층으로 올라간 양동욱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2층 거실 중앙에 놓인 소파와 거기 앉아 있는 거대한 사내, 임형석이었다.

    임형석은 뚱한 표정으로 양동욱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화가 나서 노려보는 것 같았다.

    양동욱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잘못하면…… 뒤지게 맞을 것 같은데?’

    양동욱은 시선을 힐끗 내려 임형석의 손을 확인했다. 솥뚜껑이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크고 단단한 손이었다.

    ‘저기 맞으면 그냥 뒤지는 걸로 안 끝나겠네.’

    또 한 번 침을 꿀꺽 삼켰다.

    “넌 또 누구냐?”

    양동욱은 목숨 걸고 머리를 굴렸다. 저 사람이 누군지 바로 떠올렸다. 역시 사람은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긴장감 속에 있어야 무슨 일을 하든 효율이 높아지는 법이다.

    “임형석 어른신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양동욱은 얼른 인사부터 했다. 임형석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누구냐고 물은 것 같은데…….”

    양동욱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양동욱입니다! 제가 어르신을 찾아서 우리 대장한테 알려드린 겁니다!”

    임형석이 씨익 웃었다.

    “앞으로는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대답해. 알겠지?”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들어올리는 임형석의 모습에 기겁을 하며 고개를 맹렬히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누구라도 자기 머리통보다 큰 주먹이 눈앞에서 왔다갔다다면 양동욱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네가 날 찾았다고? 왜?”

    “예?”

    양동욱은 난데없는 질문에 순간 머릿속이 헝클어졌다.

    “날 왜 찾았냐고. 그리고 나에 대해선 누구한테 주워들은 거고? 난…… 널 보니 그게 아주 궁금해지네.”

    임형석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주먹질을 몇 번 했다.

    퍼버버버벙!

    양동욱은 기겁을 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방금 넘어진 건 놀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임형석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강력한 바람이 얼굴을 퍽퍽 때렸다.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했다.

    저 주먹을 그냥 얼굴에 맞으면 아마 얼굴이 날아가 버릴 것이다.

    아니, 더 무서운 건 아직 임형석은 진짜 주먹질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양동욱이 넘어진 다음에 한 주먹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퍼버버벙!

    공기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벽이 둔중한 울음을 토해냈다.

    꽈과과과광!

    ‘흐, 흔들렸어! 집이 흔들렸다고!’

    임형석에 대한 소문들이 빠르게 양동욱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소문을 왜 축소하고 지랄들이야!’

    고작 그 정도 소문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 주먹 바람으로 집을 흔들다니!

    양동욱은 자신을 향해 한 발 다가오는 임형석을 보며 기겁해서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임형석이 씨익 웃으며 또 한 발 다가갔다.

    “안 죽여. 걱정 마. 팔다리 좀 부러진다고 사람이 쉽게 죽진 않아. 그저 좀 아플 뿐이지.”

    양동욱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었다. 그는 맹렬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오해시라니까요!”

    임형석이 어느새 다가와 양동욱의 팔을 덥석 잡았다.

    “으아악!”

    “시끄럽다! 아직 힘도 안 줬어!”

    “대장이 시킨 대로 한 거라고요! 전 모릅니다! 몰라요!”

    “그래?”

    임형석이 뚱한 표정으로 양동욱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잡았던 손을 휙 밀었다.

    양동욱은 꼴사납게 넘어졌지만 얼른 일어나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벽을 등지고 섰다.

    “안 잡아먹을 테니까 이리 와.”

    양동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팔다리는 부러뜨리실 거잖습니까.”

    “안 부러뜨려.”

    “저, 정말입니까?”

    임형석이 눈을 부라리자, 양동욱이 아뜨거 하며 얼른 달려가 소파에 착 앉았다.

    임형석은 그런 양동욱을 보며 씨익 웃었다.

    “당장은.”

    “예?”

    양동욱은 순간 저게 무슨 말인가 생각하다가 앞에 임형석이 했던 말과 이어진다는 걸 깨닫고 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당장은 안 부러뜨린다고? 그럼 나중에는?’

    양동욱이 임형석의 공포를 억지로 이겨내며 덜덜 떨고 있을 때, 현석이 나타났다.

    순간 양동욱은 현석에게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신을 구해줄 구세주가 등장한 것이다.

    “연약한 사람을 그렇게 놀리시면 재미있습니까?”

    “놀리긴 누가 놀렸다고 그래? 그리고 팔다리 부러진다고 사람이 죽어?”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안 죽는다.

    그걸 본 양동욱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여긴 어째 평범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아…… 우리 지혜씨가 이런 사람들한테 물들면 큰일인데…… 같이 있다는 세희도 사실 정상이라고 보긴 힘든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양동욱 앞으로 다가간 현석이 천천히 말했다.

    “처분할 물건이 좀 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양동욱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처분할 물건? 종로에 안 넘기십니까?”

    “추적이 불가능한 곳에 처분해야 돼.”

    “종로 쪽도 사실 추적이 쉽지는 않습니다만…….”

    양동욱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굴렸다. 현석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일처리를 맡겼다는 건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다.

    “추적이 엄청나게 용이한 물건인 모양이군요. 유니크하거나 아니면 소속이 확실하게 드러나거나.”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물건부터 보여주지.”

    현석은 양동욱을 3층으로 데려갔다. 3층 거실에 아티팩트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물론 현석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양동욱도 대답을 원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얼른 아티팩트로 달려가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쪽 것들은 꼭 짜 맞춘 것 같군요.”

    검정색 계통의 아티팩트들을 확인한 양동욱의 눈이 빛났다. 이와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K나이츠 길드의 흑기사단이 쓰던 장비 아닌가?’

    흑기사단이야 짧은 시간에 유명해졌기 때문에 정보에 관심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에 대해서 제법 잘 알고 있었다.

    양동욱 역시 마찬가지였다.

    놀라지는 않았다. 사실 상황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대충 예상했으니까.

    흑기사단 50명의 장비가 여기 전부 있었다. 그 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명확했다.

    현석은 홀로, 혹은 저 임형석과 둘이서 흑기사단 50명을 모조리 박살 낸 것이다.

    양동욱은 3층에 함께 있는 현석과 임형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나 담담했다.

    ‘같이 했구나.’

    양동욱은 새삼 현석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고는 전율했다.

    “이쪽 장비들은 우리나라에서 팔면 어떤 식으로든 역추적이 들어올 겁니다. K나이츠 길드 자체는 지금 난리가 난 상태라 손을 못 쓰겠지만…… 그놈들 뒤에 도사린 조직이 아마 분명히 뭔가 할 겁니다.”

    양동욱은 이미 스스로의 조사를 통해 K나이츠를 조종하던 조직의 힘이 엄청나다는 걸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는 중이었다.

    물론 이번에 K나이츠 길드가 박살 나면서 드러난 빈틈을 통한 조사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양동욱이라도 그렇게 자세히 조하할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들은 외국으로 팔아치우는 게 좋습니다. 동남아 쪽이나 아프리카 쪽이 비교적 안전합니다.”

    “알아서 처분해.”

    양동욱은 일단 흑기사단의 장비는 한쪽으로 쭉 밀어놓고 나머지 장비를 확인했다.

    흑기사단의 장비보다 훨씬 대단해 보였다.

    “이건…… 상상 이상인 것 같군요. 저도 사실 정확히 파악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양동욱에게 현석이 작은 수첩 하나를 휙 던졌다.

    양동욱이 황급히 그걸 받자, 현석이 담담히 말했다.

    “아티팩트들 정보다.”

    “예?”

    양동욱이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수첩을 허겁지겁 확인했다.

    그 안에는 각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가 아주 세세히 적혀 있었다. 입이 쩍 벌어졌다.

    아티팩트를 제작한 장본인이 아니라면 모를 것 같은 정보까지 싹 망라되어 있었다.

    “이, 이걸 직접하신 겁니까?”

    “판매 가능한가? 참고로 그쪽 걸 훨씬 더 조심해서 팔아야 할 거다.”

    그 말에 양동욱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한참이나 심사숙고하다가 입을 열었다.

    “위험한 루트 하나가 있긴 합니다.”

    “위험? 암시장이 원래 위험을 안고 장사하는 곳 아닌가?”

    “그냥 암시장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암시장이니까요.”

    양동욱의 말에 현석의 뇌리에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피라밋?”

    양동욱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 그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피라밋 암시장.

    암시장 중 가장 무질서하고 위험한 곳이었다. 한 마디로 그곳에 있는 모든 놈이 사기꾼이자 강도이자 살인자라고 보면 된다.

    진짜 각오 단단히 하지 않으면 속옷까지 싹 털린 채 죽임을 당하게 되는 곳이었다.

    “아시면 얘기가 더 편해지겠군요. 위험하지만 또 그만큼 안전한 곳이 없지요. 역추적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곳이니까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회귀 전에는 아예 발도 들여놓지 않던 암시장이었다.

    그때야 종로 암시장만으로 충분하기도 했고 말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임형석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꼭 팔아야 되는 거야? 돈 많다면서? 거기서 돈을 더 벌려고?”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피라밋 암시장은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암시장이기도 하니까.’

    아마 그곳에 가면 이 장비를 다 팔아치우는 것도 가능하고, 제법 쓸 만한 것들을 잔뜩 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마력의 정수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고 보니 다른 나라 암시장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

    한국의 암시장은 종로 암시장만 다녀도 충분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종로 쪽으로 모여들게 된다.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 상당히 다양한 방식의 암시장들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피라밋 암시장은 플레이어가 등장하기도 전부터 존재하던 곳이었다.

    온갖 불법의 온상이었고, 세계 각국의 마피아들과도 연결이 된 곳이었다.

    그러던 곳이 플레이어와 던전이 등장하면서 점차 그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 나중에는 플레이어 세상의 한 축이 될 정도로 성장한다.

    어쨌든 현석이 회귀 직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암시장이라고 하면 세 개를 손꼽았다.

    하나는 이집트의 피라밋 암시장, 그리고 중국의 흑시(黑市), 마지막으로 미국의 엠페러 타워였다.

    암시장이 성장한 순서도 저와 같았다. 가장 먼저 피라밋이 장악했고, 그 다음에 흑시가 등장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미국의 엠페러 타워는 놀랍게도 지하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지하 30층 건물이었는데, 뉴욕의 지하철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엠페러 타워는 등장과 동시에 나머지 두 암시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애초에 준비한 물건 자체가 달랐다.

    ‘수상해.’

    지금 돌이켜 생각하니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궁금한 건 많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곳은 아직 생기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쩌시겠습니까?”

    양동욱의 질문에 현석이 임형석을 쳐다봤다. 그러자 임형석이 씨익 웃으며 현석 대신 대답했다.

    “당연히 가야지. 이거…… 어떤 놈들이 있을지 벌써부터 근질근질한데?”

    임형석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즐거움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걸 본 양동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속으로만.

    ‘미쳤어.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물론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세상에 주먹 바람으로 집을 흔드는 사람을 걱정해봐야 자기만 손해다.

    ‘왠지…… 총에 맞아도 끄떡없을 것 같아.’

    양동욱은 임형석에게 묻고 싶은 마음을 초인적으로 눌렀다.

    “그, 그런데…… 우리 지혜씨는 안 보이네요? 분명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양동욱의 질문에 임형석이 황당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지금까지 무서워서 벌벌 떨던 놈이 여자 얘기를 하면서 저렇게 해맑은 미소와 반짝이는 눈빛을 보여주다니.

    ‘제정신이 아닌 놈이 여기 또 있었네.’

    임형석이 보기엔 현석이나 양동욱이나 둘 다 제정신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임형석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젓는 사이, 운전수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류지혜에 대한 정보를 얘기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양동욱이 씩씩대며 집에서 나갔다.

    그는 심지어 임형석에 대한 공포마저 싹 잊은 듯이 행동했다.

    “역시나 여기서 나만 정상이네.”

    임형석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 준비 1 (4권 끝)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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