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100화 (100/326)
  • < 미약한 비틀림 >

    우우우우우웅!

    나직한 진동음이 울렸다.

    던전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던전에 다가갔다.

    “뭐지?”

    던전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인지라 다들 신기한 눈으로, 또 약간은 두려운 눈으로 지켜봤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이럴 때는 조심하는 게 좋다.

    아직 던전에 대한 것들은 제대로 파악되고 연구된 게 거의 없으니까.

    후웅!

    던전에서 강렬한 마력의 파동이 일어났다. 마치 던전의 코어를 부숴서 클리어했을 때의 반응 같았다.

    하지만 그런 마력파동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던전은 멀쩡히 있었다. 그저 은은히 진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지?”

    “이거…… 일단 보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전화기를 꺼냈다.

    그 순간 마력 파동이 한 번 더 일어났다.

    후웅!

    파지지직!

    “어? 이거 왜 이래?”

    마력 파동에 노출된 전화기가 퍽 하고 꺼져 버렸다. 전원을 아무리 눌러도 다시 켜지지 않았다.

    “이거 고장났는데?”

    “내가 하지.”

    다른 플레이어가 전화기를 꺼냈다. 한데 그것 역시 꺼져있었다.

    “어? 내 것도 그런데?”

    모두 허겁지겁 전화기를 꺼냈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그 중 하나는 회로가 탔는지 탄내까지 났다.

    “이거…… 아무래도 나가야 할 것 같지?”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건물에서 나가려 했다.

    한데 딱 그 순간 던전이 폭발해 버렸다.

    퍼어어어어엉!

    시커먼 암흑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던전이 있던 목조 건물이 그대로 박살 났다.

    꽈아아아앙!

    폭풍이 일어나 사방을 날려 버렸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마력폭풍이었다.

    그리고 그 폭발의 중심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현석과 임형석이었다.

    임형석은 미리 들은 말이 있었기에 일단 뛰었다. 상황을 몸으로 겪고 보니 현석이 무슨 말을 한 건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방이 잠시지만 암흑에 잠겨 있으니 일단 몸을 감출 수 있는 곳까지만 달리면 들킬 염려는 전혀 없었다.

    ‘무시무시하군. 건물이 싹 날아갔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현석이 마지막에 한 일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임형석은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거치적 거리는 건 주먹으로 치워 버렸다.

    달아나는 와중에 임형석의 주먹에 뼈가 부러진 용병이 무려 세 명이나 나왔다.

    반면 현석은 훨씬 침착했다.

    어차피 여러 번 겪어본 일이었다. 이 암흑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지, 또 어디로 가야 가장 빠른 속도로 몸을 숨길 수 있는지도 다 파악해 뒀다.

    현석은 임형석이 도주하는 방향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감이 뛰어난 분이긴 해.’

    임형석은 미리 조사한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가장 빠르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다음으로 현석이 한 일은 허공에 떠 있는 아티팩트를 잡는 것이었다.

    금과 은을 교묘하게 섞어 세공한 아름다운 반지 하나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걸 잡아채는 순간 마력 파동이 일어났다.

    후웅!

    현석은 마력이 퍼지는 순간 그대로 몸을 날렸다.

    차츰 어둠이 사라져갔다.

    * * *

    칼슨은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피식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야 원……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군.”

    투입한 플레이어는 전멸했고, 입구를 지키던 플레이어 다섯 놈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것도 모자라 던전이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은 누군가 들어가서 던전을 클리어 해버렸다는 뜻이다.

    그건 개별 던전이니 언제 다시 생겨날지는 아직 모른다. 어쩌면 아예 안 생길 수도 있었다. 개별 던전은 그런 존재니까.

    중요한 건 거기에 들어간 돈과 시간과 인력이 어마어마한데도 얻은 게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칼슨이 주도해서 진행한 일 중 최초의 실패인 셈이었다.

    칼슨이 손을 댄 일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끝났다. 예상보다 못한 결과를 낸 적은 있어도 일 자체가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데 이번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일은 아주 시작부터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기분이 그렇게 더러웠는지 모른다.

    “정말…… 재수 없는 던전이로군. 불길해.”

    이 모든 일의 시작이 그 던전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그 던전과 얽힌 순간부터 일이 계속 꼬이기 시작했다.

    본사가 EMP테러를 당하고, 대표이사실의 금고를 탈취당하고, 또 마이클 팀이 던전에서 전멸했다.

    게다가 DM케미칼 쪽도 예상보다 깔끔하지 못했다. 물론 충분한 성과를 얻긴 했지만 원래는 이보다 훨씬 더 대단한 결과를 얻어냈어야만 했다.

    또한 뇌룡을 잡겠다고 던전에 투입한 플레이어가 몽땅 죽어버렸다.

    “그나마 본사의 플레이어들을 많이 안 보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초기에는 용병 플레이어들을 대거 투입시켰다. 그들을 고용하는데 막대한 돈이 들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개별 던전에는 그 정도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마지막에 투입한 200명의 정예 플레이어만 렉스턴 에너지 소속의 플레이어였다.

    “200명…….”

    다시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200명은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물론 렉스턴 에너지가 보유한 플레이어나 아티팩트를 생각하면 별 거 아니었지만 그래도 피해가 작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손해는 그 정도였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물론 그건 이번 던전과는 관계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시기가 맞물리니 정말 짜증이 있는 대로 났다.

    “하여튼 한국이 문제야.”

    모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DM케미칼도 던전도 그리고 이번에 갑자기 사라져버린 K나이츠 길드도.

    칼슨은 개인적으로 세계 각국에 은밀히 길드를 몇 개씩 만들어뒀다.

    그들은 자신의 위에 칼슨이 있는 줄 모른다. 그저 거역할 수 없는 상위 조직이 있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한국에는 K나이츠 길드 말고도 두 개의 길드를 더 만들어뒀다.

    그 중에서 K나이츠 길드가 가장 두각을 나타냈을 뿐이었다. 한데 이번에 그들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아마 어딘가에서 싸우다 죽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던전에서 몰살당했거나.

    ‘쯧. 몰래 하는 일이라 회사의 정보망을 이용할 수 없어서 좀 짜증이 나는군.’

    지금 K나이츠 길드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방에서 달려들어 아귀처럼 뜯어먹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뭔가 K나이츠의 중요한 정보들이 퍼져 나간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허무하게 길드가 부서질 리 없었다.

    어쨌든 K나이츠 길드는 끝났다. 이제 나머지 두 길드 중 하나를 키워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칼슨은 한국에 대한 회의감이 잠깐 들었다.

    ‘이대로 한국을 잠시 포기해?’

    일이 안 풀릴 때는 잠시 쉬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른 데는 몰라도 한국은 그렇게 둘 수 없지.”

    당장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명목만 유지하더라도 절대 손을 놓아선 안 된다.

    한국에는 특별한 던전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미카엘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런 거겠지.’

    미카엘은 비록 렉스턴 에너지의 대표이사이긴 하지만 회사 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칼슨도 지금 그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카엘은 필요할 때는 반드시 나타난다. 그리고 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아무리 일을 안 한다 해도 말이다.

    칼슨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잠시 그렇게 머리와 가슴을 식힌 다음, 다시 눈을 뜬 칼슨은 전화기를 들었다.

    “철수하지 말고 그쪽에 있는 사신 길드에 합류해.”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은 칼슨은 창밖을 내다봤다. 저 멀리 고가도로가 보였다.

    그리고 그 근처를 배회하는 플레이어들도 보였다. 다들 렉스턴 에너지 소속 플레이어들이었다.

    “이제…… 저 짓도 그만할 때가 되었군.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본사에 테러를 하고 도망친 놈을 이렇게 포기해야 하다니.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여기저기서 말이 하도 많으니 아무리 칼슨이라도 저 짓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상식적으로 저기서 놓친 사람을 찾는데 저 고가도로 근방을 계속 수색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칼슨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칼슨의 감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배신하지 않은 그의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틀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칼슨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 예감이 틀린 게 아냐. 뭔가……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있는 게 분명해.”

    아직 던전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저럴 때 써먹을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칼슨은 전화기를 들었다. 어쨌든 끝낼 시간이 되긴 했다.

    “그래. 모두 철수시켜. 그리고 근처에 카메라 장치해. 그래. 무인 카메라. 인력을 상주할 필요 없어. 그저 화면을 저장만이라고 해. 얼마나 설치하느냐고? 주변을 샅샅이 살필 수 있을 정도로. 단 1미리도 놓치면 곤란해.”

    그렇게 전화를 마무리한 칼슨은 피곤한 표정으로 얼굴을 비볐다.

    어쨌든 이렇게 마무리하면 됐다. 아직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직은.

    * * *

    “어디 또 괜찮은 던전 없나?”

    임형석은 현석이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도 그런 용이랑 싸워보고 싶었는데, 누군 혼자 재미보고 누군 뒤치다꺼리나 하고. 이래서 뒷방 늙은이는 괴롭다니까.”

    진짜 뒷방 늙은이가 들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말이었지만 임형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현석은 임형석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현석이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까 뇌룡의 둥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었다.

    200명이나 되는 플레이어였는데, 하나같이 대단한 강자였다. 물론 현 시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얘기지만.

    100레벨을 넘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90레벨을 넘는 사람은 수두룩했다.

    90레벨을 넘은 건 현석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마계를 두 번이나 다녀왔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즉, 저들은 던전 초기부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레벨업을 해 왔다는 뜻이다.

    그런 자들이 200명이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아티팩트는 또 어떠한가. 하나같이 일반 던전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것들이었다.

    그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힘이다. 한데 현석이 보기에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대체 렉스턴 에너지의 정체가 뭐지?’

    회귀 전에는 세계를 주름잡던 기업이었다. 한데 지금 하는 걸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정도도 못하면 바보 머저리라는 뜻이니까.

    현석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힘들 것 같았다.

    ‘더 빨리 강해져야 해.’

    그리고 마력의 정수 문제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할 일은 많은데 몸은 하나밖에 없으니 이래저래 마음이 좀 조급해졌다.

    현석은 문득 옆에서 계속 투덜거리는 임형석을 바라봤다.

    “화끈한 던전 원하신다고 했습니까?”

    임형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 데가 또 있느냐? 뭐 하고 있어? 얼른 가지 않고.”

    임형석이 신나서 앞질러 갔다. 현석은 그런 임형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마계 한 번 더 다녀와야겠네. 이번엔…… 좀 더 빡센 곳으로 가도 될 것 같아.”

    과연 임형석이 거기에 가서도 저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하지만 궁금하지는 않았다. 이제 곧 알게 될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현석의 발걸음이 좀 가벼워졌다.

    믿음직한 동료가 있다는 건 정말 마음 든든한 일이다.

    < 미약한 비틀림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