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99화 (99/326)
  • < 뇌룡의 둥지 3 >

    뇌룡 아래로 파고든 현석의 목표는 딱 하나였다. 최대한의 집중력을 유지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었다.

    현석은 진마검에 자신의 마력을 한껏 불어넣었다. 그리고 파고들던 힘까지 이용해 그것을 힘껏 찔렀다.

    꽈득!

    현석의 진마검이 뇌룡의 배와 목을 이어주는 자리에 푹 틀어박혔다.

    그곳에 붙어 있던 바늘귀처럼 작은 조각 하나가 산산조각나며 부서졌다.

    그게 바로 뇌룡의 역린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엑!

    뇌룡이 거칠게 몸부림치며 고통에 가득 찬 괴성을 질러댔다.

    현석은 쭈욱 뒤로 물러나며 뇌룡의 눈을 확인했다.

    ‘돌아갔다!’

    뇌룡의 눈이 휙 돌아갔다. 뇌룡을 이 자리에서 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역린을 부수는 것이었다.

    그곳은 뇌룡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현석의 손에는 어느새 진마검 대신 작은 막대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까 뇌룡을 상대하던 렉스턴 에너지의 플레이어들이 쓰던 바로 그 아티팩트였다.

    현석 역시 같은 아티팩트를 미리 준비해온 것이다.

    아까야 가슴까지 파고들어야 했으니 그냥 맞아준 것이고,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꽈르르르릉!

    분노한 뇌룡의 벼락이 무수히 쏟아졌다.

    현석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막대기를 들어 벼락을 막아냈다.

    터더더더더덩!

    벼락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 때마다 현석의 몸에도 둔중한 충격이 왔다.

    하지만 현석은 굳이 그 충격을 버텨내려 하지 않고 힘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 충격을 다 해소했다.

    어차피 도망쳐야 하니 그 힘까지 이용하면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벗어났어!’

    뇌룡이 드디어 둥지를 벗어났다. 이제부터 뇌룡에게 무한정 공급되던 뇌기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꽈르르르릉!

    뇌룡의 뿔에서 또 한 번 수백 발의 벼락이 쏟아져 나왔다.

    현석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들을 향해 막대기를 들어 올렸다.

    터더더더덩!

    뒤로 쭉쭉 밀려났다. 한두 번 하다 보니 예전의 감각이 되살아나면서 벼락을 맞을 때 교묘하게 힘을 흘려 방향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힘의 방향을 틀어 원하는 방향으로 도주하는 방식이었다.

    예전 뇌룡을 사냥할 때는 수없이 써먹던 방법이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하려니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점점 더 능숙해졌다.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이제 조금씩 벼락의 성질이 달라질 테니까.

    꽈르릉!

    벼락 다발이 줄어들었다. 대신 하나하나가 훨씬 굵고 강해졌다.

    펑! 펑! 펑! 펑!

    현석은 막대기를 절묘하게 비틀며 그것들을 막아냈다.

    쭉쭉 밀려났지만 거리가 더 벌어지진 않았다. 뇌룡이 속도를 높인 것이다.

    ‘아직 조금만 더!’

    현석은 더욱 빠르게 내달렸다.

    갑자기 은은한 뇌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르.

    현석은 다급히 몸을 돌려 막대기를 들어올렸다.

    뇌룡의 뿔 사이에 마치 작은 태양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작열하는 뇌전의 구 하나가 거기에 끼어 있었다.

    현석은 그걸 보고는 막대기에 마력을 있는 대로 불어 넣었다.

    ‘이건 이제 더 못쓰겠군.’

    현석이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뇌전의 구가 날아왔다.

    꽈르릉!

    속도는 다른 벼락과 똑같았다. 하지만 그 위력은 천양지차였다.

    현석은 막대기를 들어 그것을 막아냈다. 물론 정면으로 막지 않고 빗겨냈다. 이런 건 정면으로 막으면 끝장이다.

    꽈아앙!

    어마어마한 충격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사방으로 벼락이 쏟아져 나갔다.

    꽈르르르릉!

    뇌전의 구가 폭발하며 무수한 벼락 다발을 만들어낸 것이다.

    뇌전의 구는 뇌룡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이었다.

    아마 일반적인 길드가 별 대책없이 이런 공격을 맞이했다면 이 한 방에 전멸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런 공격을 맞았으니, 아무리 그걸 막아냈다고 해도 충격이 엄청났다.

    “쿨럭!”

    현석은 피를 토했다.

    충격이 한 번에 오지 않고 여러 번에 걸쳐서 왔기 때문에 모든 충격을 해소하거나 막아내지 못했다.

    내상이 제법 심각했다. 하지만 현석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연회복이라는 사기적인 패시브 스킬에 의해 빠르게 치료될 테니까.

    막대기는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이제부터는 벼락을 쏘면 피하거나 몸으로 버텨내야만 했다.

    하지만 아마 아까처럼 벼락을 난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방금 쓴 뇌전의 구 때문에 뇌룡이 가진 뇌기의 상당부분을 소진했을 테니까.

    현석은 다시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뇌룡이 몸을 비틀며 날아 덮쳤다.

    꽈과광!

    바닥이 움푹 파이며 사방으로 돌조각과 흙먼지가 비산했다. 뇌룡이 몸을 던져 만들어낸 결과였다.

    현석은 그 순간 몸을 날려 데굴데굴 구르며 간신히 그 공격을 피해냈다.

    뇌룡은 이번 공격으로 또 상당한 뇌기를 소모했다.

    방금 전의 그 돌진 역시 뇌기를 태워 폭발적인 추진력을 얻어내는 공격이었다.

    현석은 몇 바퀴 구른 다음 일어나 균형을 잡고 주위를 살폈다.

    드디어 원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 던전 안에서 뇌룡과 싸우기 가장 좋은 자리에 온 것이다.

    이곳은 던전 내에서 가장 뇌기가 적은 곳이었다. 뇌기의 흐름이 막혀 제대로 흐르지 않는 장소였다.

    “자, 이제 제대로 싸워볼까?”

    현석은 씨익 웃으며 뇌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도망치며 받은 모든 걸 되돌려줄 시간이 되었다.

    어느새 현석의 손에는 진마검이 들려 있었고, 진마검에는 차가운 서리가 맺혀 있었다.

    그나마 뇌룡에게 가장 잘 먹히는 속성이 바로 냉기였고, 현석에게는 빙결환이라는 팔찌가 있었다.

    빙결환은 공격에 얼음속성을 담을 수 있는 아티팩트인데, 현석의 얼음속성이 제법 높기 때문에 그 위력이 상당했다.

    쩌저저저저정!

    현석의 검이 뇌룡의 몸에 격렬하게 부딪혔다.

    사방으로 뇌전과 얼음조각이 튀었다.

    뇌룡은 여전히 눈이 돌아가 있었다. 뇌룡이 정신 차리기 전에 끝내야 한다.

    역린이 박살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미친 채로 살아가진 않는다.

    곧 정신을 차릴 것이고, 그럼 뇌룡도 굳이 여기서 싸우지 않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 뇌력을 회복할 것이다.

    그 전에 싸움을 끝내야 한다.

    꽈르르릉!

    쩌저저정!

    연이어 벼락이 쏟아지고 현석의 검이 뇌룡의 몸을 두드렸다. 어떻게든 빈틈을 열어 역린을 다시 한 번 찔러야 한다.

    뇌기가 바닥까지 소모된 상태에서 역린을 찌르는 것이 뇌룡 사냥의 정석이었다.

    ‘살짝 변종인가? 기억에 있는 것보다 뇌기가 훨씬 많은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은 뇌기를 소모했는데도 좀처럼 뇌기가 바닥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종의 변종 마수인 모양이었다.

    물론 그래도 사냥법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었다.

    현석은 좀 더 장기전이 될 걸 예상하고 마력 배분을 조절하려 마음먹었다.

    한데 그 순간 뇌룡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빠지지지지직!

    뇌룡의 온몸에서 뇌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현석은 이게 어떤 현상인지 알아차렸다.

    ‘설마 천둥새?’

    뇌룡의 둥지에서 천둥새가 리젠되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다.

    지금 이건 천둥새가 리젠되는 방식 중 하나였다.

    뇌룡의 몸에서 뿜어져 나간 막대한 뇌기가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그 한 방에 뇌기가 바닥나 버렸다.

    원래 뇌룡이 살던 뇌룡의 둥지에 있었다면 이 정도 뇌기 소모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늘이 온통 뇌전의 그물로 뒤덮였다.

    현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뇌룡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차하는 순간 깔려 가루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걸 무서워할 거면 던전에 들어와선 안 된다.

    현석은 뇌룡의 움직임에 맞춰 더 깊이 파고들었다.

    상처 난 역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늘에 무수한 천둥새가 나타났다.

    끼아아아아아!

    천둥새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땅으로 내리 꽂혔다. 그들의 목표는 현석이었다.

    현석은 일단 천둥새 쪽은 그냥 잊어버렸다. 지금은 이 유일한 기회를 살리는 게 최우선이었다.

    현석의 진마검이 뇌룡의 역린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현석의 마력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꿔어어어어어어어!

    뇌룡이 용틀임하며 위로 솟구쳐올랐다.

    현석은 진마검을 꽉 잡았다. 덕분에 뇌룡과 함께 하늘로 쭉 딸려올라갔다.

    그런 현석을 천둥새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목표가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천둥새들도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다.

    현석의 몸에 난 상처에서 피가 쏟아졌다.

    천둥새들이 만든 상처였다. 하지만 그건 이내 아물어갔다. 자연회복의 힘이었다.

    현석의 몸은 마력으로 들끓는 중이었다.

    뇌룡이 자신의 몸을 태워 뿜어내고 있는 순수한 뇌기가 현석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 뇌기는 마력이 빠져나간 빈자리에 들어가 미친듯이 날뛰었다.

    하지만 현석의 마력도 빠르게 차올라 뇌기와 싸우기 시작했다.

    지금 현석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진마검을 꽉 붙잡은 채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 순간,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으라차차!”

    위로 솟구치는 뇌룡의 머리로 임형석이 뚝 떨어져 내렸다. 그는 그 힘을 고스란히 주먹에 담아 뇌룡의 정수리를 내리 찍었다.

    꽈아아앙!

    마치 폭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놀랍게도 그의 일격에 뇌룡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안 그래도 뇌기가 바닥 난 상태에서 역린을 찔렸는데, 이런 엄청난 충격까지 받았으니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힘을 잃은 뇌룡이 아래로 떨어졌다.

    현석은 이를 악물고 뇌룡의 몸을 타고 올랐다.

    꽈아아앙!

    거대한 충격이 온몸을 관통했다. 그나마 뇌룡의 시체에 깔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마 그대로 진마검만 붙들고 있었다면 분명히 깔렸을 것이고, 그랬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끼아아아아아!

    뇌룡은 죽었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이미 현석은 천둥새들의 목표가 된 상태였으니까.

    현석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자연회복이 아무리 사기적인 스킬이라고 해도 이 상황에서 순식간에 몸을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는 없었다.

    내려오는 천둥새들을 올려다보는 현석의 눈에 투지가 불타올랐다. 얼마든지 와도 다 죽여버리겠다는 독한 의지가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런 현석의 어깨를 임형석이 차분히 두드려주었다.

    “이제 좀 쉬어라. 여긴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임형석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잘못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은 네놈이 미끼인 거 맞지?”

    임형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크게 웃으며 하늘을 향해 폭발적인 주먹질을 쏟아냈다.

    뻐버버버버버벅!

    빠르게 내리 꽂히던 천둥새들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튕겨나갔다.

    단 한 마리의 천둥새도 임형석의 주먹을 피해내거나 지나가지 못했다.

    그런 임형석을 가만히 지켜보던 현석이 이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까지 감은 채 편히 쉬었다.

    그렇게 싸움이 막바지를 향해 내달려갔다.

    * * *

    임형석은 뇌룡의 사체에 걸터앉았다. 뇌룡은 이미 죽었는데도 여전히 짜릿한 뇌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물론 워낙 약해서 현석이나 임형석에게는 전혀 영향을 못 미치고 있었지만 말이다.

    주변에는 천둥새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걸 둘러보던 임형석이 씨익 웃으며 현석을 바라봤다.

    “던전이라는 데가 전부 이렇게 즐거운 곳이냐?”

    임형석은 진짜 오랜만에 이렇게 미친 듯이 싸워봤다.

    도망치다가 치솟는 열불을 못 이기고 돌아서서 모든 천둥새와 불돼지를 박살 낼 때의 쾌감은 아마 다시 느끼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보다 더한 곳도 수두룩합니다.”

    “그래?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현석은 그런 임형석을 보며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뇌룡의 사체로 걸어갔다.

    뇌룡의 사체는 어느 하나 쓸모없는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걸 두 개만 꼽으라면 마정석과 뿔이었다.

    뇌룡의 뿔은 나중에 아주 중요하게 쓰일 아티팩트의 재료 중 하나였다.

    그리고 뇌룡의 마정석은 순수한 뇌기가 가득 담겨 있어서 에너지 효율이 같은 등급의 다른 마정석에 비해 열 배 이상 높았다.

    ‘마지막에 머리통을 부숴서 마정석이 제대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군.’

    역린을 찔러 죽이는 것이 뇌룡 사냥의 정석인 이유는 그것이 가장 완벽한 마정석을 얻어내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막판에 임형석이 머리통을 부쉈으니 정석에서 살짝 빗겨났다.

    현석은 조심스럽게 뇌룡의 역린을 헤집었다.

    그리고 마정석을 꺼냈다. 확인해보니 거의 완벽했다.

    현석은 나머지 사체를 아공간에 넣은 다음 어딘가로 향했다.

    “또 어디 가는 거냐? 다 끝난 거 아니었어?”

    현석이 향하는 곳은 뇌룡의 둥지였다.

    “어라? 저건 또 뭐야?”

    뇌룡의 둥지 한가운데 새하얀 알 하나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뇌룡의 알이었다. 또한 이곳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부숴야 할 던전의 코어이기도 했다.

    현석은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뇌룡의 알에 손을 올린 현석이 고개를 돌려 임형석을 쳐다봤다.

    “또 왜?”

    임형석이 뚱한 표정으로 묻자, 현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무조건 튀십시오.”

    “뭐?”

    쩌엉!

    임형석이 그게 무슨 뜻이냐고 채 묻기도 전에 뇌룡의 알이 산산이 부서졌다.

    < 뇌룡의 둥지 3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