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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98화 (98/326)
  • < 뇌룡의 둥지 2 >

    임형석은 신기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여기가 바로 던전이구나 하고 중얼거리려는 찰나, 현석이 나타나 그의 팔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임형석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던전 초보이니 인정하고 현석이 하는 대로 내버려뒀다.

    현석이 간 곳은 커다란 바위들이 모인 곳이었다. 몸을 숨기기에도 참으로 적당한 장소였다.

    “이제 말해도 되는 거냐?”

    임형석은 그렇게 물으며 현석을 노려봤다.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아까 내 목 낚아챈 거 그거 일부러 그런 거지?”

    현석은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팔다리를 잡는 것보다 공중에서 휘돌리기 좋으니까요.”

    임형석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설마 저걸 농담이라고 한 건가?

    한데 표정과 눈빛을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임형석은 현석과 이런 일로 대화를 나누면 자신만 속이 터져 죽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안 되는 건 가끔 깔끔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제 뭘 하면 되는 거냐? 먼저 들어온 놈들 찾아다녀야 하나?”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디 있는지 뻔하니까요.”

    이곳 뇌룡의 둥지는 회귀 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돌던 사냥터였다.

    주로 천둥새를 사냥해 천둥새의 뿔을 얻기 위한 사냥이었다.

    물론 불돼지도 함께 나타나니 불돼지 꼬리도 덤으로 얻고 말이다.

    천둥새의 뿔은 EMP폭탄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아이템인데, 이게 또 특별한 아티팩트를 만드는 재료이기도 했다.

    당연히 수요가 폭발적이었고, 얻으면 얻는 대로 돈이 되는 아이템이었다.

    천둥새를 산채로 잡아 뿔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정말로 얻기가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꼭 그렇지도 않게 되었다.

    천둥새를 유인하는 방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불돼지 꼬리는 천둥새의 뿔만큼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비싼 재료 아이템이었다.

    물론 지금은 얻어 봐야 쓸 데가 없으니 그저 챙겨서 쌓아놓는 것밖에 못하지만 말이다.

    천둥새의 뿔도 좋고 불돼지 꼬리도 좋지만 뇌룡의 둥지라는 던전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당연히 뇌룡이었다.

    뇌룡은 엄청나게 강하다.

    그냥 강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강한 마수였다.

    생긴 건 용과 똑같은데, 하늘을 날아다니고, 두 개의 뿔 사이에 흐르는 강력한 뇌전을 수백 발로 쪼개서 쏘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게다가 힘과 속도는 또 어찌나 어마어마한지 쫓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설사 속도를 따라잡았다 해도 꼬리치기 한 방에 나가 떨어져 절명할 수도 있었다.

    제대로 된 뇌룡 공략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플레이어가 희생되었다.

    오죽했으면 뇌룡의 둥지가 발견된 이후, 처음 뇌룡 사냥에 성공할 때까지 2년이나 걸렸겠는가.

    “구경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구경?”

    임형석의 눈이 호기심과 투기로 빛났다. 뇌룡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강할 거라는 생각이 물씬 들지 않는가.

    “가자.”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움직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임형석은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현석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조심스럽게 현석의 뒤를 쫓아갔다.

    현석이 임형석을 데려간 곳은 바위들이 잔뜩 쌓여서 이루어진 바위산이었다. 아니,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여기가 포인트입니다.”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바위언덕에 올랐다. 임형석은 의아한 눈으로 현석을 따라 올랐다.

    언덕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임형석은 왜 이 자리를 포인트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언덕 너머는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였다. 어찌나 높은지 바닥이 아주 까마득하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뇌룡과 플레이어들이 싸우고 있었다.

    “호오.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닌 것 같은데 희한하구나.”

    아래의 싸움은 정말로 격렬했다. 그런데도 언덕 위로는 소리가 전혀 올라오지 않았다.

    “집중하면 들립니다. 절벽 중간에 소리가 차단되는 곳이 있어서 그러니까요.”

    “소리가 차단된다고?”

    “바람이 흐르는 곳이 있거든요. 폭풍의 강이라고 부릅니다.”

    임형석은 이름 한 번 유치하게 지었다고 생각하며 먼저 주위를 둘러봤다.

    결국 저 뇌룡이라는 놈과 싸워야 하는데 주변 지형 확인은 필수였다.

    “우리도 싸우려면 결국 저 아래로 내려가야겠구나.”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저기서는 절대 뇌룡을 잡을 수 없습니다. 다른 장소에서 잡아야 돼요.”

    이 낭떠러지 아래가 바로 뇌룡의 둥지였다.

    뇌룡은 둥지에서는 끊임없이 힘을 공급받는다. 저곳은 한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뇌력이 응축된 장소였다.

    뇌룡은 저기에 있는 한, 그 어떤 상처도 즉시 치료하고, 아무리 벼락을 쏟아내도 뇌기가 마르지 않는다.

    심지어 몸이 두 토막으로 잘려도 다시 붙어버릴 정도였다.

    무한한 힘과 생명력을 가진 존재와 싸우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유인은 가능하고?”

    임형석은 그렇게 물으며 아래에서 이뤄지는 싸움을 지켜봤다. 현석의 대답은 바라지도 않았다. 유인할 수 없으면 현석이 여기까지 왔을 리 없으니까.

    싸움은 정말로 치열했다. 그리고 일방적이었다.

    뇌룡은 두 개의 뿔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난 뇌전이 빠직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뇌룡의 뿔에서는 끊임없이 벼락이 쏟아져 나갔는데, 한 번 쏟아낼 때 수백 발이 나갔다.

    당연히 그걸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길쭉한 막대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전격을 튕겨내는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아무리 전격을 튕겨낸다 하더라도 일단 벼락 자체에 강력한 힘이 담겼는지라 그 데미지가 만만치 않았다.

    뇌룡은 끊임없이 벼락을 쏟아내며 꼬리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거기에 맞은 놈들은 어김없이 몸이 박살 나서 부서졌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락 하는 플레이어들이 나섰기에 꼬리치기에 당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밀리긴 하지만 그래도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걸 본 임형석이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러다 저놈들이 잡는 거 아냐?”

    말하고 나니 걱정이 돼서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현석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싸움의 결과는 너무나 뻔했으니까.

    “끝났습니다.”

    “응? 끝나? 뭐가? 저 싸움이? 내가 보기엔 아직 한참 더 남은 거 같은데? 양쪽 다 아직 지치질 않았어.”

    임형석의 판단은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현석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임형석은 자신도 모르게 현석을 따라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기겁해서 놀랐다.

    “저건 또 뭐야?”

    하늘이 온통 뇌전으로 꽉 차 있었다. 빠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마치 벼락 그물을 만들어 하늘을 뒤덮은 것 같았다.

    “리젠입니다.”

    “리젠? 그게 뭔데?”

    “저들이 해치웠던 천둥새와 불돼지가 다시 나타난다는 뜻이죠.”

    임형석이 뜨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려 현석을 바라봤다.

    “야 이놈아. 저기서 지금 마수가 나타난다는 얘기잖아!”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임형석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럼 우리도 피해야지! 마수가 니편 내편 갈라서 덤비겠냐?”

    “안 그래도 됩니다. 일단…… 서 있는 것보다는 앉는 게 나으니 그렇게 하시죠.”

    현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임형석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가 이내 될 대로 되라는 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끼아아아아아!

    괴성이 허공을 뒤흔들었다.

    임형석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새하얀 색의 새였다. 크기는 멀어서 가늠이 안 되지만 독수리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새하얀 몸이 뇌전에 휩싸여 있었다.

    모든 천둥새가 일제히 아래로 내리 꽂혔다. 모조리 절벽 아래에 있는 공간으로 달려든 것이다.

    아래는 난리가 났다.

    “천둥새다!”

    “무슨 리젠타임이 이렇게 짧아! 계산 똑바로 한 거 맞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계산했어! 틀릴 리가 없다고!”

    “그런데 왜 4시간이나 빨라!”

    그들은 천둥새의 공격까지 감당해야 했다.

    천둥새는 뇌룡과 달리 벼락을 쏟아 내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뇌전에 휩싸인 몸으로 달려들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천둥새만 있다면 별 거 아니겠지만 여기에는 뇌룡도 함께 있었으니까.

    쿠워어어어어!

    뇌룡이 포효했다. 사방이 뇌기로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제법 짜릿한데?”

    임형석은 질린 눈으로 아래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볍게 감전되었다.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그리고 저 아래는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었다.

    뇌룡과 천둥새의 협공을 버틸 수 있는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돼지 떼까지 나타났다.

    아래는 벼락치는 소리와 날갯짓 소리, 그리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소리에 돼지 멱따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리는 비명소리였다.

    “쯧쯧. 얼마 못 가겠군.”

    임형석이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여기서 뛰어내려봐야 자살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그때 현석이 일어났다.

    “슬슬 시작하죠.”

    임형석이 당황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뭐? 지금? 어쩌게? 설마 뛰어내리게?”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까 말했잖습니까. 전 뇌룡을 유인해 싸우고, 어르신은 천둥새와 불돼지를 유인하고.”

    “저놈들이랑 싸우라고? 이거…… 가능할지 자신이 없는데…….”

    임형석은 그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불돼지는 몰라도 천둥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딱히 상대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싸울 필요 없습니다. 그저 도망만 잘 치면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현석은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조악한 모양의 팔찌였다.

    “이건 또 뭐고?”

    현석은 말없이 팔찌를 더 앞으로 내밀었다. 임형석은 미심쩍은 눈으로 그걸 받았다.

    현석이 그걸 차라는 듯 눈짓하자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팔에 찼다.

    “달리기는 잘 하시니 별 일 없을 겁니다.”

    “뭐?”

    임형석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느낌에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현석이 조금 더 빨랐다.

    빠직!

    현석이 마력을 불어넣자 팔찌가 새하얗게 달아올랐다. 엄청난 뇌기가 쏟아져 나왔다.

    임형석이 깜짝 놀라 팔찌를 빼려다가 멈췄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스파크가 튀는데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저 모양만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거 신기한데?”

    임형석이 현석에게 이게 뭐냐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현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어디 갔어?”

    현석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절벽을 툭툭 디디며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려가는 현석과 반대로 위로 쭈욱 올라오는 것들이 보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임형석은 즉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천둥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무시무시한 기세로 임형석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너 이따가 뒈질 줄 알아!”

    임형석의 부질없는 외침이 점점 멀어져갔다.

    현석은 그 외침에 피식 웃으며 절벽 아래로 완전히 내려갔다.

    지금 쓴 건 사실 천둥새와 뇌룡이 먼저 전투를 한 차례 벌여 흥분하지 않으면 써먹을 수 없는 방법이었다.

    흥분해야 반응한다는 건 속임수가 섞여 있다는 뜻이고, 그게 발각되는 순간 작전은 끝난다.

    그 전에 모든 걸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절벽 아래에 내려오니 멀쩡히 서 있는 플레이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전부 죽은 건 아니었지만 그들은 몸을 빼서 도망치고 없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플레이어들을 불돼지들이 쫓아가고 있었다.

    모든 작전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제 뇌룡만 유인하면 된다.

    현석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목표로 한 포인트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현석의 목표는 똬리를 틀고 현석을 노려보고 있는 뇌룡의 바로 아래에 있었다.

    꽈르르릉!

    수백 발의 벼락이 쏟아졌다.

    현석은 그걸 몸으로 견디며 앞으로 달려갔다.

    “크으윽!”

    짜릿했다. 전격 속성이 워낙 높았기에 타격이 크지는 않았지만 데미지가 제법 있었다.

    한 번은 몸으로 견뎌야만 했다.

    그래야 이렇게 뇌룡 아래로 파고들 수 있을 테니까.

    ‘여기다!’

    뇌룡 아래로 파고든 현석은 목표를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진짜 사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뇌룡의 둥지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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