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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97화 (97/326)
  • < 뇌룡의 둥지 1 >

    “그러니까 네 말은 저기에 던전이 있다 이거냐? 그것도 아주 위험천만한?”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임형석이 당장에라도 주먹을 날릴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플레이어 아닌 거 알지?”

    “압니다.”

    현석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자, 임형석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허! 이런 어처구니없는 녀석을 봤나.”

    임형석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현석을 노려봤다.

    “그럼 저 총 든 위험하고 재미없는 놈들은 내가 상대하고 너 혼자 던전에 들어가겠다, 이거냐? 나도 사람이야 이놈아! 총 맞으면 뒈져!”

    현석은 그 말에 빙긋 웃었다.

    “안 맞을 거잖습니까. 아까 싸우는 거 보니까 아주 끝내주시던데.”

    아까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흥겹게 싸운 건 맞다. 플레이어들은 보통 사람에 비해 월등히 강한 체력과 힘, 그리고 속도를 자랑한다.

    그런 플레이어가 100명이나 있는데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모조리 박살을 낸 걸 보면 임형석도 분명히 평범한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임형석은 코웃음을 쳤다.

    “흥. 넌 더 쉽게 할 수 있잖아.”

    임형석은 막상 플레이어와 붙어 보니, 그들을 상대할 아주 간단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플레이어가 가진 모든 힘의 근원은 마력이었다.

    마력을 통해 체력을 보충하고, 또 마력을 통해 강한 힘을 발휘하고, 또 마력을 이용해 빠른 속도를 낸다.

    게다가 마력이라는 것이 온몸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즉, 격렬하게 움직이다보면 반드시 약점을 드러내게 되어 있었다.

    임형석은 초인적인 감으로 그 약점을 즉시 파악해서 가격하는 방식을 썼다.

    마력에 대해 그저 어렴풋이 감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자신이 그럴진대 과연 현석은 어떻겠는가.

    “넌 더 쉽게 할 수 있잖아 이놈아.”

    현석은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그렇게 음흉하게 웃는 걸 보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야. 그렇지?”

    “저 던전, 이름이 뇌룡의 둥지라고 합니다.”

    “뇌룡의 둥지? 거 이름 한 번 무시무시하군. 벼락 쏟아내는 용이 산다는 거 아냐?”

    “간단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물론 그리 간단한 곳은 아니었다. 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천둥새가 산다.

    천둥새는 뇌룡의 먹이 중 하나였다.

    즉, 이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선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천둥새 무리를 뚫거나 싸워 전멸시키고 뇌룡까지 쓰러뜨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다. 뇌룡의 둥지에는 뇌룡이 먹는 다른 것들도 존재했다.

    뇌룡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천둥새일 뿐이지 꼭 그것만 먹고 사는 건 아니었다.

    뇌룡이 천둥새 다음으로 좋아하는 먹이가 바로 불돼지였다.

    천둥새만큼 많지는 않지만 충분히 위협이 될 정도로 많은 불돼지가 던전 안에 서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뇌룡의 던전에 존재하는 모든 건 뇌기를 품고 있었다.

    뇌룡은 호흡에도 지독한 뇌기가 담겨 있었다.

    그런 막대한 뇌기가 끊임없이 흐르니, 뇌룡의 둥지 안에는 공기조차 뇌기를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전격 저항력이 약한 플레이어는 안에서 맥을 못 춘다는 뜻이다.

    현석은 그런 모든 설명을 생략했다.

    임형석은 일단 몸으로 경험해야 뭐든 받아들이는 타입이었다. 특히 싸움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마 안에 들어가면 본능적으로 누구보다 먼저 어떻게 싸워야 할지 파악할 것이다.

    임형석은 가만히 현석을 바라봤다. 더 이상 노려보지는 않았다. 대신 신중하게 물었다.

    “아직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이름만 들어도 왠지…… 무시무시한 놈 같은데, 잡을 수는 있는 거냐?”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변수가 몇 가지 존재하고, 임형석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잡을 수는 있었다.

    현 시점에서 뇌룡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현석이다.

    현석은 뇌룡의 약점이나 공략법을 훤히 꿰고 있었다.

    뇌룡의 둥지는 나중에는 가장 유명한 개별 던전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예약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유명했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던전을 소유한 길드가 그것을 외부에 공개해 입장료를 받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기 때문이긴 하다.

    하지만 덕분에 뇌룡의 둥지는 무수한 공략법을 가진 던전 중 하나가 되었다.

    ‘문제는 그 공략법 중에 1인 레이드 공략은 없다는 건데…….’

    그래서 임형석을 데려왔다. 그리고 저들을 이쪽으로 유인했다.

    지금 저 아래에는 DM케미칼에서 보낸 플레이어들과 렉스턴 에너지에서 보낸 플레이어들이 잔뜩 있었다.

    저들이 공략에 성공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 없었다.

    회귀 전, 뇌룡의 둥지 레이드에 참여하려면 최소 100레벨은 넘어야 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레이드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정작 뇌룡과 싸우는 건 레이드에서 가장 강한 플레이어 두세 명이었다.

    나머지는 천둥새와 불돼지를 정리하기 위한 인원이었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 거냐?”

    임형석은 분노와 짜증을 일단 접어두었다. 그런 건 나중에 일이 다 끝난 뒤에 차근차근 계산해주면 된다.

    그러니 지금은 눈앞에 있는 목표에 집중할 때였다.

    “저랑 같이 던전에 들어가서 제가 뇌룡과 싸우는 동안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뭐?”

    임형석이 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화를 참으려는 듯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우. 네가 자꾸 까먹는 모양인데…… 나 플레이어 아니라니까?”

    “어르신이야말로 자꾸 잊으시는 모양인데…… 전 승산 없는 일에 나서지 않습니다.”

    “웃기고 있네.”

    임형석이 피식 웃었다. 그가 보기에 승산이고 뭐고 그 누구보다 불길처럼 앞으로 미친 듯이 내달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현석이었다.

    그럴 때는 아마 앞뒤 가리지 않고 계산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놈이 저런 말을 하니 절로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괜한 말을 할 놈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그래서 뭘 어쩌자고?”

    임형석은 한 가지 기대감을 안고 현석을 바라봤다. 어쩌면 저놈이라면 플레이어가 아닌 보통 사람을 던전으로 끌고갈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물론 현석은 그 방법을 알고 있다. 현석은 언제 준비했는지 2리터짜리 물통 하나를 내밀었다.

    임형석은 물통과 현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게 뭐냐? 냉수 먹고 속 차리라고?”

    임형석의 뚱한 반응에 현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력수입니다.”

    “마력수? 뭐…… 마력이 담긴 물, 그런 거냐?”

    “맞습니다.”

    “나보고 이걸 마시라고? 지금 여기서?”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이걸 마시면서 던전에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마력수를 마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일반인에게 마력이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 말이다.

    그 얘기를 모두 들은 임형석은 멍하니 현석을 바라보다가 진지하게 물었다.

    “너 정체가 뭐냐?”

    물론 현석은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현석의 시선과 관심은 벌써 건너편 산에 있는 목조건물, 그러니까 던전에 가 있었다.

    아마 지금 던전에 들어가 나름대로 공략하는 팀이 있을 것이다. 아마 최소한 수십 단위의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팀일 것이다.

    최고의 장비를 갖추고 최상의 레벨에 오른 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팀이 던전 안에서 생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밖에는 플레이어가 많지 않아.’

    밖에 있는 자들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경비병이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용병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모두 총을 들고 있는데다가 숫자도 많아서 섣불리 치고 들어가면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단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저 건물 안에는 고작 다섯 명의 플레이어만 있었다.

    그 정도면 교묘하게 숨어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문제는 목조 건물 주위에 깔린 빈틈없는 감시망이었다.

    현석은 상황을 파악한 다음 임형석을 쳐다봤다. 그러자 놀랍게도 임형석이 침투로를 제안했다.

    “저 쪽으로 가면 지붕으로 그냥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건물이 산 중턱에 있다 보니 필연적으로 건물보다 높은 부분이 존재했다.

    하지만 거긴 절벽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냥 뛰어내린다고 바로 건물에 올라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상당히 멀리까지 뛰어야 건물에 닿을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은 거기까지 뛰지도 못 할 정도로 먼 거리였다. 그러니 그쪽에 대한 방비가 거의 안 되어 있는 것이고 말이다.

    “뛸 수 있겠습니까?”

    현석의 물음에 임형석이 피식 웃었다.

    “난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착지할 수 있다. 너나 걱정해. 넌 할 수 있겠냐?”

    건물 위에 총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지만 그 정도야 얼마든지 제압하고 감쪽같이 다른 사람들을 속여 넘길 수 있었다.

    “제가 먼저 합니다.”

    현석은 혹시라도 임형석이 뛰어내리다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 자신이 먼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임형석도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붕에 정확히 뛰어내릴 자신은 있지만 소리를 내지 않을 자신은 없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목표로 한 장소로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했다.

    * * *

    커다랗다기보다는 거대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은 목조건물 위, 사내 한 명이 총을 두 손으로 들고 비스듬하게 내린 채 서 있었다.

    그는 지루한 표정으로 멍하니 앞을 보며 가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리저리 시선을 주었다.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저 시간만 때울 뿐이었다.

    “더럽게 지루하군.”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이 위에 오르는 건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하는데, 오늘이 마침 그의 차례였다.

    아래에서 동료들과 함께 있는 건 그래도 할 만한데, 이 자리는 진짜 고역이었다.

    벌써 이 짓을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넘었다.

    그동안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않은 플레이어의 수가 50을 넘어섰다.

    이번에는 훨씬 더 철저히 준비한 인원이 200명이나 들어간다니 아마 끝장을 보고 나올 것 같았다.

    “부디 잘 끝났으면 좋겠군. 그래야 이 지루해 미칠 것 같은 일도 끝날 테니까.”

    사내는 전형적인 용병이었다. 사실 이렇게 경비나 서다가 끝나는 일이 최고이긴 했다.

    어차피 싸움을 하든 가만히 서 있은 매일 지급받는 돈은 별 차이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피와 화약 냄새가 그리웠다.

    이젠 피 튀기는 전쟁에 몸도 정신도 푹 젖어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참여하면 아무리 잔혹한 짓을 저질러도 다들 모른 척해준다.

    웬만한 일은 다 무마가 되는 것이다. 단, 아군에게 총구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만 말이다.

    사내는 바로 직전에 나갔던 작전이 떠올라 입맛을 다셨다. 그의 눈이 잠시 빛나더니 이내 회상에 잠겨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사내의 뒤에는 어느새 현석이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정말로 위에서 뛰어내려 소리와 기척 없이 착지한 것이다.

    용병 사내의 목에는 바늘호랑이의 털이 박혀 있었다. 아마 이 털을 뽑기 전에는 깨어날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사내의 교대시간은 아직도 6시간이나 남았다. 아슬아슬하지만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석은 미리 준비한 긴 철근을 이용해 사내의 몸을 똑바로 세웠다. 그리고 대충 자세를 갖추도록 모양을 만들었다.

    철근은 지붕에 꽂아 고정시켰기 때문에 웬만한 일로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고개를 돌린 현석의 눈에 거대한 몸을 붕 날려 떨어지는 임형석의 모습이 보였다.

    현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그렇지. 은밀은 무슨.’

    저렇게 떨어지면 아주 확실한 확률로 지붕이 박살 날 것이다.

    임형석이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현석은 떨어지는 임형석의 목을 낚아채며 몸을 한 바퀴 빙글 회전했다.

    허공에서 부웅 한 바퀴 돈 임형석의 몸이 지붕에 가볍게 안착했다.

    임형석도 몸 쓰던 가락이 있는 사람인지라 거기까지 해주니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착지하는 정도는 충분히 해냈다.

    임형석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현석을 노려봤다.

    하지만 현석은 신경쓰지 않고 지붕을 조심스럽게 뚫었다.

    아래에 흩어져 쉬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다들 던전 입구 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현석은 임형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임형석은 물통 뚜껑을 열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면서 그대로 뚝 떨어졌다.

    임형석의 몸이 던전 속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다들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 있었다.

    현석은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확인하며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 뇌룡의 둥지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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