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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94화 (94/326)
  • < K나이츠 길드 3 >

    진대호는 허탈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진짜…… 쥐새끼 같은 놈이로군.”

    그가 말하는 쥐새끼 같은 놈은 바로 양동욱이었다. 그는 양동욱을 별 어려움 없이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한데 양동욱은 어떻게 알았는지 감쪽같이 집에서 빠져나갔다고 한다.

    흔적이 너무 없어서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다고 하니 보통 놈이 아니었다.

    집안을 샅샅이 뒤지라고 지시해 뒀으니 뭐든 쓸 만한 걸 얻긴 할 것이다.

    “양동욱…… 그놈한테 분명히 뭔가 중요한 열쇠가 있는 것 같은데…….”

    진대호는 힐링포션 제작을 하면서 나름대로 거기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했다.

    현재 힐링포션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은 두 군데였다.

    하나가 바로 현석이었다. 제작한 모든 힐링포션을 레드드래곤 길드에 공급하고 있고, 그 힐링포션을 몽땅 한중현이 쓰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진대호의 K나이츠 길드였다.

    힐링포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마력수였다. 물론 다른 재료도 중요했다. 하지만 힐링포션을 분석하고 연구해보면 마력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모든 힐링포션이 현석으로부터 나오는 거나 다름없었다.

    마력수의 공급처도 바로 현석이었으니까.

    모든 마력수를 힐링포션으로 만들어 팔지 않을까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

    막상 힐링포션을 만들어보니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상당한 품과 시간이 들어가니 개인이 만들어 파는 건 한계가 분명했다.

    사실 그 과정조차도 현석이 레시피를 통해 조절한 거라는 사실을 진대호가 알 수는 없었다.

    어쨌든 진대호는 마력수의 제작법을 쥐고 있는 현석을 확보하기 위해 그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힐링포션이나 마력수 제작의 열쇠를 양동욱이 쥐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래서 양동욱부터 확보하고자 했는데 결국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짜증이 나고 초조했다.

    원래는 별 거 아니었는데, 갑자기 일이 커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남았지?”

    진대호의 물음에 옆에 있던 사내가 서둘러 대답했다.

    “목표가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고 합니다. 급한 대로 열 명 정도 보냈습니다. 아마 위치를 파악하는 데에는 문제없을 겁니다.”

    “하여간 촉이 좋아. 양동욱도 그렇고 채현석도 그렇고…….”

    “그런데 채현석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살려둬봐야 후환만 만들 텐데.”

    “같이 있는 여자들이 상당히 괜찮다고 합니다.”

    진대호가 그 말에 인상을 썼다.

    “여자? 아주 여유가 넘치시네? 여자한테 한눈 팔 시간도 있고?”

    “죄, 죄송합니다.”

    “예쁜 것들은 칼 맞아도 멀쩡하대? 우리한테 필요한 건 채현석뿐이야. 나머지는 그냥 싹 처리해.”

    “명심하겠습니다.”

    차 안이 조용해졌다. 진대호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창 밖을 내다봤다.

    ‘이번 일이 중요해. 무조건 마력수 제작법을 얻어내야 돼.’

    이젠 힐링포션이 문제가 아니었다.

    위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마력수 제작법을 알아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원래는 진대호 혼자만의 일이었는데, 이제 조직의 일이 되어버렸다.

    더 큰 문제는 조직에서 이번 일을 진대호에 대한 평가의 일환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직 입장에서는 진대호가 실패해도 상관이 없었다. 이미 K나이츠 길드가 실패했을 때의 상황에 대비해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뭔지는 진대호도 모른다.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어떤 놈들이 우리 길드를 대신하게 될지는 몰라도 그냥 호락호락 물러날 수는 없지.’

    진대호는 피곤한 표정을 감추려 두 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쓸었다.

    조직에서 한국에 하나의 길드만 심어 놓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분명히 대체할 만한 다른 길드가 최소 2개 이상 더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원래는 그래도 상관없었다. 진대호는 자신의 계획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으니까.

    한데 시작부터 계획이 꼬여 버렸다.

    레드드래곤 길드를 밟으며 시작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국 레드드래곤 길드와 경쟁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놈들을 대부분 흡수했어야 하는데 그걸 실패했다.

    예상대로 되었다면 레드드래곤 길드는 운영이 힘들어 허덕허덕 했어야 하고, K나이츠 길드는 지금의 두 배 이상 성장했어야 한다.

    한데 어느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충 어떤 놈들일지는 예상이 되는데…….’

    하지만 그놈들을 몰래 방해하고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어차피 조직의 일원이다.

    그들을 없애면 조직에서 진대호를 곱게 볼 리 없다. 그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래서 이번 일이 중요했다.

    이걸 멋지게 처리해야 조직의 신뢰를 얻어 좀 더 특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반면 자신은 실패하고 다른 길드에서 성공한다면 그 뒤는 굳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 멀었나?”

    진대호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내가 다급히 대답했다.

    “다 왔습니다. 그놈들이 이동을 멈췄다고 합니다.”

    진대호의 표정이 굳었다.

    “이동을 멈춰? 근처에 뭐가 있지?”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혹시 던전 같은 거 없는지 확인해 보라고 해.”

    “이미 지시했습니다. 없답니다. 게다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를 것 같은 장소라고 합니다.”

    그 말에 진대호가 눈을 빛냈다가 이내 표정이 굳었다.

    “주변 샅샅이 뒤져보라고 해. 뭔가 함정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네. 이미 지시 내렸습니다.”

    “애들 다 그쪽으로 오라고 하고.”

    “불렀습니다. 양동욱 쪽으로 갔던 흑기사단 애들도 모두 오는 중이랍니다.”

    “그래? 그 녀석들만 와도 안심이 되지.”

    진대호가 가장 믿는 힘이 바로 흑기사단이었다. 물론 원래 이름은 달랐지만 이제 진대호도 그냥 흑기사단이라고 불렀다.

    그게 더 편하고 뭔가 있어 보였으니까.

    어쨌든 흑기사단은 진대호의 모든 것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만들 수 있는 모든 힐링포션을 흑기사단에 지급해 그들의 성장을 도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곧 도착합니다.”

    “흑기사단은?”

    “10분후 도착한답니다.”

    “그럼 그때까지 기다려.”

    진대호는 느긋하게 앉아 쉬었다. 이곳에도 흑기사단이 함께 왔지만 왠지 모든 흑기사단을 모아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10분 후, 양동욱을 잡으러 갔던 흑기사단 20명이 도착했다.

    진대호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가자.”

    * * *

    “여기 마땅히 숨을 데가 없어 보이는데…….”

    운전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현석이 원하는 장소로 오긴 했는데, 정말로 숨어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어설프게 숨었다간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르고 죽을 수도 있었다.

    “여기 같이 있는 게 낫겠군. 다들 장비 꺼내.”

    현석의 말에 세 여인이 서둘러 장비를 착용했다. 던전에 가는 줄 알고 차에 장비를 다 싣고 왔기에 금방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네가 제일 중요해. 알지?”

    현석의 말에 양세희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맡겨만 두세요.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할 테니까.”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는 양세희의 모습은 참으로 믿음직스러웠다.

    현석은 류지혜와 류혜연 자매를 쳐다봤다.

    “잘 할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류혜연이 현석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쓰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도 다치게 두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별로 걱정할 건 없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서 있는 임형석을 힐끗 쳐다봤다.

    임형석이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주먹으로 텅텅 두드렸다.

    “가까이 오는 놈들 다 박살 내면 되는 거잖아. 아냐?”

    현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다가오는 놈들이 다신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만 패주시면 됩니다.”

    임형석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거야말로 내 전문분야지.”

    현석은 마지막으로 운전수를 보며 말했다.

    “저 사이에 들어가 있어. 괜히 나서지 말고.”

    “절대 안 나섭니다.”

    운전수는 자신 있게 말하고는 류지혜와 류헤연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걸 본 임형석이 인상을 구겼다.

    “자리가 마음에 안 드는데? 저놈 꼭 살려야 되나?”

    운전수가 뜨악한 표정으로 임형석을 바라봤다. 농담을 너무 과하게 한다 싶었다. 한데 왠지 임형석의 표정에서 지금 한 말이 진심이라는 게 팍팍 느껴졌다.

    운전수는 더 뜨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이미 이쪽에는 관심도 없었다. 저 멀리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운전수가 그대로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절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임형석은 그런 운전수를 보며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고개를 돌려 현석이 보는 쪽을 바라봤다.

    “슬슬 오는군. 이거…… 오랜만에 몸 좀 제대로 풀어보겠는데?”

    임형석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몸 상태가 지금 더없이 좋았다. 류혜연의 치료를 받아 완벽해진 몸으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내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몸이 좋아져 움직임도 좋아졌고, 더 유연해졌다. 그리고 왠지 힘도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천 명이 몰려와도 다 때려눕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멀리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사나운 기세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임형석은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당장에라도 뛰어나가 저들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오늘 내 역할은…… 저 귀여운 녀석을 지키는 거니까.’

    임형석은 류혜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검은 놈들에게 돌렸다. 그의 눈에서 전의와 투기가 활활 타올랐다.

    현석은 그런 일행을 두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들은 현석 혼자 모두 상대할 생각이었다. 계산을 해봤지만 충분했다.

    일단 장비가 달랐다. 그리고 레벨도 달랐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51명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현석은 자신 있었다.

    오늘 싸움은 절대 질 수가 없었다.

    오늘의 진짜 싸움은 저들이 아니라, 저들 외의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

    반대쪽에서 이리로 다가오고 있는 자들 말이다.

    물론 그들 역시 진대호가 불렀다. 하지만 진대호는 그들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진 않았다.

    그저 흑기사단과 싸우다가 도망치는 놈들이 있으면 놓치지 않고 잡아내기 위한 포위망으로 써먹기 위해 데려온 놈들이었다.

    현석의 감각은 그들만 잡아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쪽을 감시하듯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파악하고 있었다.

    몇 명 되진 않았지만 그들이야말로 진짜 강자였다.

    ‘그래도 내가 이긴다.’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더 걸어갔다. 이내 흑기사단과 아주 가까워졌다.

    현석과 흑기사단은 거의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흑기사단 중심에 있던 진대호가 저벅저벅 걸어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입니다. 채현석씨.”

    현석은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진대호를 쳐다보기만 했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길드로 들어오시죠. 저 뒤에 있는 분들도 모두 영입하겠습니다. 최고의 조건을 맞춰드릴 테니 그냥 고개만 끄덕이시면 됩니다.”

    현석은 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거절은 안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어리석은 분으로는 안 보이니까요. 그냥 제 밑으로 들어오시는 게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진대호는 현석 뒤쪽 멀리 서 있는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동료들 생각도 좀 하셔야지요?”

    현석은 그런 진대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고작 저 정도 밖에 안 되는 놈에게 옛날에는 왜 그렇게 이용만 당하고 살았을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현석의 말에 진대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의 몸에서 살기가 확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현석은 조금도 동요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예 감정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건 끝난 게임이었다.

    저들이 현석이 만들어준 특별한 레시피의 힐링포션을 열심히 먹고 사냥을 했을 때부터 말이다.

    < K나이츠 길드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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