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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93화 (93/326)
  • < K나이츠 길드 2 >

    양동욱은 갑자기 울리는 전화를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전화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이 번호로 전화가 오면 일이 터졌다는 뜻이었으니까.

    양동욱은 일을 배우고 교육을 받은 뒤, 종로 암시장에서 한동안 일했다.

    그러다가 그의 형인 양진욱이 후계자로 선택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놓았다.

    비록 일에서 손을 떼긴 했지만 그렇다고 눈까지 돌려버린 건 아니었다.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확인했으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넓은 인맥도 쌓았고, 또 이 일을 하다보면 어떤 위험을 겪게 되며, 그걸 어떻게 극복하고 대비해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양동욱은 생각보다 겁이 많은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2중 3중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해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전화였다.

    이 번호로 전화가 오면 누군가 자신을 노린다는 뜻이니 서둘러 몸을 피해야 한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노린다는 건 이미 충분히 감시를 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이럴 때를 대비해 비밀통로 세 개쯤은 마련해 두는 게 정석 아니겠어?”

    양동욱은 일단 태블릿을 켜고 앱 하나를 실행시켰다. 간단한 CCTV앱이었는데, 아주 비밀스럽게 장치해 뒀기에 거기에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직 양동욱뿐이었다.

    “일단…… 첫 번째랑 세 번째는 이미 드러났네. 하, 이 자식들 준비성 철저한 거 봐라.”

    양동욱은 망설임 없이 두 번째 비밀통로로 달려갔다.

    쓰레기통과 연결된 곳이었다.

    뚜껑을 여니 쓰레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 양동욱은 안에 있는 통을 슬쩍 들어올렸다. 그곳에 사람 한 명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구멍이 수직으로 뚫려 있었다.

    양동욱은 구멍으로 들어가며 안쪽 통을 끼웠다. 그러자 뚜껑이 자동으로 닫히며 쓰레기통이 옆으로 빙글 회전했다.

    이제부터 이 쓰레기통은 아무리 뒤져도 그냥 보통 쓰레기통에 불과할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구멍이 아예 막혀버렸으니까.

    양동욱은 그렇게 두 번째 비밀통로를 이용해 밖으로 피신했다.

    * * *

    임형석은 서서히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아주 넓은 방이었다.

    방을 보니 여기가 어딘지 떠올랐다. 여긴 현석의 집이었다.

    “하여간 이상한 놈 쫓아와서 내가 별 고생을 다 하는구나.”

    류혜연의 치료를 받다가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에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실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임형석이 정신을 잃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는 생살을 뚝뚝 뜯어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고통이 아닌 뭔가 다른 이유로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임형석은 천천히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몸 곳곳을 관조했다.

    단전에 뭉쳐 있는 기운을 슬쩍 움직여 몸 구석구석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면서 아주 살짝살짝 몸을 움직이며 그에 따른 근육이나 관절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그 어떤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어. 진짜 다 고쳤어? 정말…… 대단하구나.”

    임형석은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그뿐 아니라 고질적으로 갖고 있던 통증이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옷을 들춰 몸을 살펴보니 흉터들도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지금 그의 모습은 그저 운동 열심히 한 동네 아저씨 같았다.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하나…….”

    임형석의 뇌리에 어제 마지막으로 본 류혜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정말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에서 식은땀을 비 오듯 흘렸다.

    그러면서도 집중을 잃지 않았다. 오직 임형석을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걸 버티고 이겨낸 것이다.

    그동안 은혜든 원한이든 받으면 100배로 돌려주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뭐…… 힘쓰는 거 빼고는 할 게 없군.”

    그것도 싸움질밖에 할 줄 모른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건 류혜연을 지켜주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저 능력이 알려지면 제법 고초가 클 텐데…….”

    임형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류혜연의 치료능력을 몸소 겪어보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을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무수히 많을 것이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능력을 원하지 않을까?

    그리고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누구보다 간절히 그런 능력을 원할 것이다.

    자신이 건강하게 지금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해줄 보험 같은 존재일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새삼 또 고마워졌다.

    그런 중요한 비밀을 개의치 않고 자신을 치료해 주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렇게 임형석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임형석이 직접 걸어가 문을 열었다. 누가 왔는지 벌써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문을 여니 류혜연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임형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들어와라.”

    임형석의 말에 류혜연이 헤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몸은 좀 어떠세요? 이제 아프신 데 없으시죠?”

    류혜연은 그렇게 물으며 임형석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녀의 눈에는 치료가 필요한 위치가 훤히 보였기에 혹시 이상이 없나 확인한 것이다.

    “제가 보기엔 이제 크게 문제될 만한 곳은 없는 것 같은데…….”

    류혜연이 그렇게 말을 흐리며 임형석을 바라봤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유독 귀여워 보였다.

    임형석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다. 아주 멀쩡해. 너무 지나쳤어. 이 녀석아.”

    임형석의 친근한 말투에 류혜연이 잠시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어제는 정말 심각해 보였거든요.”

    “그 정도였어? 그래도 그럭저럭 움직일 만은 했는데.”

    류혜연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대로 뒀다면 정말 큰일 나셨을 거예요. 그러니…….”

    류혜연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임형석을 바라봤다.

    임형석은 그걸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몸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아프면 언제든 제게 말씀해 주시고요. 아셨죠?”

    “그, 그래. 그, 그러마.”

    임형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흠칫 놀라 어느새 배시시 웃고 있는 류혜연을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이 녀석 아주…… 요물이네.’

    물론 의도하고 하는 짓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저 외모나 행동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들었다 놨다, 아주 정신이 없었다.

    임형석은 그동안 웬만한 일로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부동심을 쌓았다고 자부했다.

    한데 그런 자신이 이 정도인데, 아마 보통 남자들 같으면 홀딱 넘어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이다.

    문득 현석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그놈…… 진짜 보통이 아닐세.’

    임형석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이런 여자들과 함께 살면서 전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걸 보면 그게 독심인지 아니면 부동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제도 분명히 봤다. 그녀들을 보는 현석의 눈에는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아니, 있지만 감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대단하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제 또 던전에 가야 하는 게냐?”

    임형석이 최대한 자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류혜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좀 쉬면서 몸 추스르고 나면 가야해요.”

    아마 가기 싫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한창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나 할 나이다. 한데 던전에서 마수와 놀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시무룩한 표정은 이내 씩씩한 표정으로 휙 바뀌었다.

    류혜연은 작은 주먹을 꼭 쥐며 결연하게 말했다.

    “그래도 제가 더 성장해야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으니까 꼭 하고 싶어요. 절대 지지 않을 거예요.”

    임형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너라면 꼭 할 수 있을 거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류헤연은 그렇게 말하며 꾸벅 인사를 하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배시시 웃어주는 걸 잊지 않고 말이다.

    임형석은 멍하니 류혜연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휘휘 저어 정신을 차렸다.

    “젠장. 이게 아니지. 어이! 거기! 잠깐 기다려라!”

    임형석은 류혜연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제대로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고 소리치며 방에서 나갔다.

    류혜연은 막 던전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한데 임형석이 크게 부르며 따라 나오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왜요, 아저씨?”

    “지금 던전에 가려는 게냐?”

    류혜연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밖에서 언니들이 기다려요. 오라버니도.”

    “나도 같이 가자.”

    임형석의 말에 류혜연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거기, 굉장히 위험한 곳이에요. 아!”

    류혜연은 임형석을 말리려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말을 끊고는 미소를 지었다.

    “같이 가셔도 되겠네요. 아니, 같이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집에 혼자 계시면 심심하실 거잖아요. 그러니 같이 가요. 헤헤.”

    류혜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으며 임형석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임형석은 마치 다리에 힘이 없는 사람처럼 그 손길에 이끌려 터벅터벅 류혜연을 따라갔다.

    그렇게 밖에 나가니 류혜연의 말대로 류지혜와 양세희, 그리고 현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형석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현석의 얼굴이었다.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현석의 눈빛 말이다.

    “이놈아! 그런 거 아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소리친 임형석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크흠, 크흠. 뭐…… 나도 같이 가도 되지? 혹시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제법 힘이 될 테고. 그렇지?”

    임형석은 그렇게 말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현석의 시선을 피했다.

    “같이 가시죠.”

    현석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담담한 표정과 말투가 임형석을 더 불편하게 했다.

    ‘어이구, 저 목석같은 놈. 이거 뭔가…… 나만 이상한 늙은이 되는 거 아냐?’

    임형석은 또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걱정을 지금 하고 있었다.

    * * *

    현석 일행은 승합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운전수는 양동욱이 보내준 그 사람이었다.

    던전까지 절반쯤 갔을 때, 운전수의 전화가 울렸다.

    “예. 형님, 아, 그렇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대답만 하다가 전화를 끊은 운전수가 현석 쪽을 힐끗 보며 말했다.

    “K나이츠 쪽에서 움직였답니다.”

    그 말에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드디어 그놈들이 움직였다.

    현석은 K나이츠 길드 뒤에 분명히 뭔가 거대한 조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정체를 아직 모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놈들이 있었다. 바로 렉스턴 에너지였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짐작일 뿐이었다. 현석은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 외에 얽힌 다른 조직들에 대해서도 줄줄이 캐내고 싶었다.

    “아무래도 우리의 동선을 제대로 파악한 모양인데 어쩔까요? 차 돌릴까요?”

    운전수의 물음에 현석은 옆에 앉은 임형석을 힐끗 쳐다봤다.

    ‘뭐…… 예상보다는 훨씬 이르지만……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굳이 피할 필요는 없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현석은 가볍게 말했다.

    “중간에 적당한 장소가 있으면 내려주고 숨어있어.”

    운전수가 화들짝 놀랐다.

    “예? 그놈들 50명도 넘게 움직이고 있다는데요?”

    현석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운전수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현석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들을 태운 승합차가 중간에 방향을 살짝 틀었다.

    그리고 싸우기 좋은 장소로 향했다.

    < K나이츠 길드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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