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85화 (85/326)

< 지하감옥 2 >

[흑철간수]

[마력금속인 에르네움으로 만든 후, 마력 차단제인 흑철을 특별한 방법으로 도금한 금속병기. 에르네움의 힘을 이용하기 때문에 강한 힘과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으며 흑철의 힘으로 상대의 마력 공격을 중화시킬 수 있다.]

현석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마력을 이용한 힘이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일단 테스트가 필요하다.

‘약점 같은 것도 알려주면 좋은데.’

하지만 설명도 간신히 확인했는데 약점까지 확인할 수 있을 리 없다.

만일 심안의 등급이 좀 더 올라간다면 약점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이 상태 그대로 저놈을 상대해야만 했다.

쿵! 쿵! 쿵!

흑철간수가 현석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러면서 주먹을 슥 들어올렸다.

저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현석은 빠르게 옆으로 이동했다가 땅을 박차고 폭발적으로 돌진했다.

마력을 발에서 폭발시키듯 뿜어냈기에 그 속도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 순간 흑철간수의 주먹이 쏘아져 나갔다.

꽈앙!

방금 현석이 서 있던 바닥에 주먹이 푹 파고들었다.

그리고 현석은 이미 흑철간수의 가슴 아래로 파고든 상태였다.

꽈과과과광!

현석이 진마검을 눈부신 속도로 휘둘렀다. 수십 번의 검격이 흑철간수의 가슴과 옆구리를 마구 두드렸다.

흑철간수가 나머지 한 손을 휘둘렀다.

후웅!

현석은 몸을 한껏 낮춰 공격을 피해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꽈득!

현석이 서 있던 자리에 흑철간수의 발이 틀어박혔다.

“후우. 쉽지 않겠는데?”

지금까지 싸웠던 마수들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마수였다.

억지로 꿰맞추면 회귀 전에 마계에서 만났던 데스나이트나 듀라한 정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과도 많이 달랐다.

가슴과 옆구리에 그렇게 많은 공격을 했는데 끄떡도 없었다. 너무 어두워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검으로 타격할 때의 손맛만 생각하면 아마 생채기도 안 났을 것 같았다.

‘정확히 약점을 공략해야 돼.’

현석은 심안을 최대한으로 발동시켰다. 일단 집중력을 점점 끌어올리면서 싸워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무조건 해내야만 했다.

쿵쿵쿵쿵쿵!

흑철간수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서 기이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현석은 빠르게 달려오는 흑철간수보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에 더 신경이 쓰였다.

얼른 비스듬하게 몸을 피했다. 흑철간수의 주먹이 날아왔지만 검으로 그걸 빗겨내며 그 힘까지 이용해 뒤로 쭉 물러났다.

현석은 그렇게 하면서 주변을 장악해가는 마력의 흐름을 파악해봤다.

흑철간수가 내뿜는 마력은 특이하게도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저기 걸리면 절대 좋은 꼴 못 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석은 마력을 내뿜으며 더 뒤로 물러났다. 현석의 마력이 흑철마수의 마력과 뒤섞였다.

그리고 그 순간 현석은 마력의 통제권을 순간적으로 잃었다.

현석은 깜짝 놀라 마력 컨트롤에 더 집중했다.

‘이거…… 디버프 계열 스킬인 모양인데?’

마력이 순간적으로 경직되는 걸 분명히 느꼈다. 아마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아니면 몸이 굳어버리는 종류의 디버프 스킬이 깃든 마력일 가능성이 높았다.

현석은 저걸 어떻게 방어할지 고민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흑철간수가 보내는 마력의 진동을 정확히 상쇄시켜 버리면 된다.

물론 지금으로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시도는 해볼 수 있지.’

현석은 마력을 진동시키려 해봤다. 하지만 진동 자체가 쉽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 정도로 빠른 진동이 가능할까?’

현석은 좀 답답했다. 하지만 그래도 진동이 되긴 했다. 현석의 마력이 길고 느리게 진동하며 퍼져 나갔다.

그 진동은 흑철간수의 마력을 마치 통과하듯 지나가 흑철간수를 뒤덮었다.

흑철간수의 움직임이 순간 느려졌다. 그놈이 뿌려대던 마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현석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흔든 마력이 저놈에게 뭔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생각보다 행동을!’

현석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진마검 끝에 모든 마력을 모았다.

흑철간수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력을 뿜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현석의 검이 흑철간수의 목을 정확히 찌른 뒤였다.

쩌어어어어엉!

격렬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진동파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현석의 검이 흑철간수의 목을 푹 쑤시고 들어갔다.

현석은 검 끝을 통해 강력한 마력을 방출했다.

키이이이이이이잉!

흑철간수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흑요석처럼 새까만 눈동자에서 번들거림이 사라졌다. 그저 새까만 구슬로 돌아갔다.

“후욱! 후욱!”

현석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 다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앉아 쉬면서 방금 전의 전투를 잠시 복기해 봤다.

아슬아슬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시도한 마력 흔들기는 최고였다.

‘그게 안 먹혔으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어.’

흑철간수의 목을 진마검으로 찌를 수 있었던 건 그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마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니, 사라졌다기보다는 순간적으로 마력이 움직이지 않았다.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그것이 외부에 코팅된 흑철의 효용을 순간적으로 사라지게 했고, 결국 안으로 검을 찔러 넣는 게 가능해졌다.

‘대체 그게 뭐지?’

현석은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자마자 방금 했던 것을 다시 해 봤다.

한데 마력을 뿜어내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까는 잘 되다가 지금은 잘 되지 않았다.

역시 위기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때와 여유를 되찾았을 때가 다르다.

하지만 한 번 해봤으니 그 감각이 어디 가겠는가. 이렇게 몇 번 하다보면 결국 해낼 것이다.

현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력을 진동시키는 일을 계속 해 나갔다.

기능이 정지된 채 탑처럼 서 있는 흑철간수를 앞에 두고서 말이다.

* * *

“아직도 못 찾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공항 쪽은 어떻게 됐지요?”

“일단 인상착의를 확인하지 못해서 비슷한 체형의 사람들만 따로 조사해 리스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칼슨이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리스트에 포함된 인원이 몇 명이나 되죠?”

“그게…… 3432명입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수였다.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뒷조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범인이 꼭 공항을 통해 도망쳤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그놈이 사라진 지점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됐죠?”

“일단…… 마력 반응은 전혀 없습니다.”

“최신판 마력 감지기도 써 봤습니까?”

“예. 최신 감지기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그냥 고가도로 위일 뿐입니다. 다른 아티팩트를 숨겨둔 것도 아니고, 마력이 흐르지도 않는 곳입니다.”

“경찰은?”

“일단…… 철수하겠다는 연락을 방금 받았습니다. 그들도 언제까지 그곳을 감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 동안 그 근처를 포위하다시피 장악하고 있었던 것만 해도 충분히 무리한 일이었다.

하지만 칼슨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보고하던 사내, 필립을 가만히 노려봤다.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게 필립의 일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까지도 충분히 안 되는 걸 되도록 억지를 썼습니다. 더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칼슨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무능한 사람을 보는 저 시선은 언제나 받는 사람의 가슴이 서늘하게 한다.

필립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우리 쪽 사람들이라도 보내세요.”

“이, 이미 보낸 상태입니다.”

칼슨이 얼굴을 필립에게 살짝 들이대며 차가운 눈으로 그의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더 보내란 말입니다, 더. 경찰이 사라진 빈자리를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네. 아, 알겠습니다.”

필립의 머릿속으로 오만 생각이 다 스쳐지나갔다. 이제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 했다.

‘경찰이 몇 명이나 동원됐는데 그 빈자리를 다 메우지?’

칼슨이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다.

“뭐 하고 있습니까?”

“아, 가, 갑니다.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필립이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자, 칼슨이 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래. 한국 쪽에서는 연락 없었나?”

잠시 상대의 얘기를 듣던 칼슨의 얼굴이 구겨졌다.

“실패? 실패라고? 고작 천둥새 몇 마리 처리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 뭐? 용? 용이라고?”

칼슨의 표정이 굳었다.

그 던전에서 용이 나왔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용이 아니라 벼락을 뿌리는 용이.

“그래서? 안에 들어간 놈들은? 그래?”

안에 들어간 플레이어 중 절반이 죽고 나머지 절반만 간신히 돌아왔다는 보고였다.

“일단…… 보류해. 그 근방 땅 싹 사들여. 그리고 그 산에 울타리 치고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해.”

대충 용건을 마친 칼슨은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았다.

“이거…… 미카엘이 알면 난리 나겠군.”

미카엘은 렉스턴 에너지의 회장이었다. 실질적으로 칼슨의 위에 있는 사람은 딱 그 한 명뿐이었다.

렉스턴 에너지에서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칼슨에게 복종하는 부하라고 보면 된다.

아니, 칼슨은 그들을 노예로 여겼다.

사실 그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클이나 필립도 칼슨에게 있어선 그저 쓰다가 필요 없어지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노예나 다름없었다.

이 안에서 그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은 단 한 명, 미카엘뿐이었다.

어쨌든 이번 일이 미카엘의 귀에 들어가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벼락을 뿌리는 용이라…….”

칼슨은 서랍에서 패드 하나를 꺼내 손가락을 슥슥 움직여 조작했다.

이내 문서 하나가 떠올랐다.

벼락과 용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자, 몇 장의 문서가 나왔다.

그걸 모두 읽은 칼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까다로운 놈인 것 같은데…… 이놈을 잡으면 뭘 얻을 수 있는지도 안 나와 있고…….”

다행히 미카엘이 움직일 것 같지는 않았다. 미카엘은 철저히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에만 움직이니 말이다.

“후우. 그나저나…… 대체 어떤 놈이지?”

그놈은 이번에 회사에 쳐들어와 당당히 회장실의 벽을 부수고 금고를 털어갔다.

정말 깔끔하게 싹 털렸다.

그 안에 있던 서류들과 메모리스틱은 그동안 던전과 관계된 일을 처리하면서 연구하고 얻은 결과물들이었다.

지금 맹렬히 자료를 수집해 다시 복구 중이긴 했지만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부서진 회장실도 수리 중이었다.

“피해가…… 극심하군.”

칼슨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잘못 건드렸다. 무슨 수를 쓰든 잡아서 관계된 모든 놈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칼슨은 머리를 한 차례 환기시키고 표정을 지웠다.

“그럼…… 이제 슬슬 길드 쪽 일을 시작해 볼까?”

엠페러 길드가 발족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대외적으로 공표할 생각은 없었다.

엠페러 길드는 어디까지나 장막 뒤에 존재해야 한다.

일은 각국에 만들어질 기사단이 알아서 할 테니까.

칼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그의 눈빛은 야망으로 화려하게 빛났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더없이 잔인하고 섬뜩해 보였다.

* * *

현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력을 진동시키는 일에 열중했다.

하다 보니 배가 고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오랫동안 집중한 모양이었다.

현석은 일단 멈춘 흑철간수를 아공간에 넣은 다음 감옥에서 밖으로 나갔다.

이러다가 굶어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간단한 식품들을 꺼냈다.

통조림을 비롯한 보관식품들이 컨테이너 박스 한가득 있기에 먹을 것이 부족할 염려는 할 필요가 없었다.

현석은 정신없이 음식을 탐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니 이제 슬슬 진짜 감옥을 샅샅이 뒤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거 너무 어두워서 조사가 쉽지 않네.”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과 그저 감각과 마력으로 확인하는 것에는 차이가 많았다.

현석은 모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다.

“안에 있는 암흑석을 모조리 빼 버리면 될까?”

가장 단순무식한 방법을 떠올린 현석이 눈을 빛내며 지하감옥을 가만히 쳐다봤다.

< 지하감옥 2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