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84화 (84/326)
  • < 지하감옥 1 >

    현석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좋은 스킬임이 분명하다. 한데 거기 달린 조건들이 애매하다.

    ‘레벨과 마력이라니. 대체 기준이 어느 정도인 거지?’

    붕괴는 직접 써보니 아직은 쓰레기에 가까운 스킬이었다. 그러니 아마 저 두 스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레벨이 200은 넘어야 쓸 만한 스킬이 될까?’

    마력을 넘어선 자들만 쓸 수 있다는데, 현석은 마력의 주인인데도 쓸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마력의 주인]이 [마력을 넘어선]보다 더 상위 등급이라는 뜻이다.

    즉, 마력 컨트롤 능력은 제법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지금 현석에게 모자라는 것은 레벨뿐이리라.

    현석은 두 스킬 중 복종에 관심이 갔다. 그 이유는 얼마전 DM케미칼 공장에서 탈취해온 기사 관련 아티팩트들 때문이었다.

    [충성서약의 증거]라는 아티팩트는 가진 바 위력은 대단했지만 왕에게 종속된다는 이유 때문에 쓰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뒀다.

    한데 만일 그것이 이 복종이라는 스킬에 관계된 거라면 정말로 이 ????가 왕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목표를 복종시킨다…… 마력 컨트롤 능력과 레벨에 따라서 복종시킬 수 있는 대상의 수준이 달라진다…… 아니야. 충성서약이랑은 달라.’

    충성서약은 일종의 계약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이 복종이라는 스킬과는 큰 관계가 없을 확률이 높았다.

    이 복종 스킬은 상대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현석은 이 증표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따로 정리해 챙기고는 다른 아티팩트들을 확인했다.

    [현자의 지팡이]

    [대현자의 축복과 마법이 깃든 지팡이. 사용자의 머리를 항상 맑게 유지해주고, 평정심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지력+15, 스킬 평온이 깃들어있다.]

    [아르포르의 눈]

    [하늘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아르포르의 힘이 깃든 구슬. 정신+5, 스킬 천리안을 쓸 수 있다.]

    [벼락의 검]

    [벼락의 힘이 깃든 검. 힘+5, 민첩+15, 스킬 낙뢰가 깃들어있다.]

    각각 스킬이 하나씩 들어 있는 아티팩트들이었다. 다만 현석이 갖고 다니면서 쓰기에는 살짝 애매한 것들이었다.

    ‘내다 팔 수도 없는 것들이니…… 적당한 사람들한테 나눠주든 해야겠군.’

    이건 렉스턴 에너지에서 탈취한 아티팩트다. 이것이 암시장이든 어디든 판매되는 순간 그 정보가 바로 렉스턴 에너지 쪽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럼 이렇게 조심해서 정체를 숨긴 노력이 다 허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차츰 시간을 두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하나씩 빌려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들이 이걸 내다 팔지 못하게 단단히 주의 시키고 새 장비를 얻으면 바로 반납하도록 해두면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현석은 각각의 아티팩트에 깃든 스킬들을 확인해봤다.

    [평온-일정 범위에 있는 자들의 상태이상을 일시에 제거한다.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천리안-멀리 떨어진 곳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거리와 시야는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낙뢰-검에 벼락의 힘을 담는다. 마력 컨트롤 능력에 따라 벼락을 검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제법 쓸 만한 스킬들이었다. 특히 평온은 정말 유용한 스킬이었다.

    지금이야 마수들이 단순해서 쓸 일이 없겠지만, 나중에 높은 등급의 블랙홀이나, 진짜 제대로 된 화이트홀에 들어가면 상태이상을 거는 마수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들로부터 상태이상을 방어하기 위해선 정신력과 지능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전사형 플레이어들은 상대적으로 정신력이나 지능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수가 상태이상을 거는 족족 당하곤 했다.

    한데 상태이상을 단숨에 풀어버리는 스킬이, 그것도 범위를 지정해 펼칠 수 있는 스킬이 있다면 얼마나 유용하겠는가.

    ‘지팡이 형태라는 게 좀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서 무기 대용으로 쓰기에는 좀 문제가 있지만 소지하고 있다가 언제든 착용해 스킬만 쓰면 되니 전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주면 된다.

    ‘류지혜가 슬슬 각성을 한 번쯤 할 때가 되었는데…….’

    회귀 전의 류지혜라면 버퍼 스킬을 각성할 때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성장속도 자체가 확연히 달랐다.

    일단 동생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좌절하고 방황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또한 현석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 초고속 성장의 길이 열렸다.

    그러니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각성할 수 있을 것이다.

    류지혜가 버퍼로 각성하면 이 지팡이가 상당히 쓸모있을 것이다.

    일단 정신력과 지능을 올려주니 버프의 효율이 올라갈 것이다.

    거기에 상태이상을 해제할 수 있는 능력까지 덤으로 얻는 셈이니 류지혜의 능력이 두 배로 뻥튀기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머지 재료나 아티팩트도 상당히 많았지만 현석의 눈에 들어올 정도로 뛰어난 것들은 별로 없었다.

    다만 희귀한 것들이 끼어있어서 일괄적으로 판매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뭐…… 그럼 나중에 쓰면 되지.’

    나중에 반드시 이런 것들을 쓸 일이 생길 것이다. 현석은 눈을 빛내며 그것들을 잘 정리해 배낭에 다시 넣었다.

    아티팩트와 재료, 그리고 서류까지 모두 정리해 배낭에 넣은 현석은 그 배낭을 공터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나무들 사이에 내려놓았다.

    이제 확인할 건 다 확인했으니, 진짜를 시작할 차례였다. 본격적으로 이곳 투명던전을 공략할 때가 되었다.

    공터 중앙으로 걸어간 현석은 다시 문에 손을 올렸다.

    그그그그긍!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마력 패턴을 조합하자 천천히 문이 열렸다.

    문이 활짝 열리자, 안에서 음습한 기운이 훅 풍겨왔다.

    “마계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곳이네. 진짜 조심해야겠어.”

    게다가 안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만일 현석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이대로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석은 오히려 어둠이 더 반가운 사람이었다.

    현석은 망설임 없이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아래로 내려가자 어둠이 밀려왔다. 위에 문이 열려 있는 채라서 빛이 들어올 법도 하건만 마치 입구 자체가 빛을 차단시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래는 깜깜하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위를 보니 입구가 마치 허공에 붕 떠있는 것처럼 따로 놀았다.

    중간에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암흑석]

    현석의 심안이 그 이유를 단숨에 파악했다. 입구 자체가 암흑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아무리 암흑석이라지만…… 이건 뭐 상식에서 너무 벗어나는데?’

    빛이라는 건 원래 이런 식이 아니다. 저 입구가 눈에 보인다는 건 여기까지 빛이 전달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안 보이고 딱 입구만 보이고 있으니 참으로 신기했다.

    ‘하긴, 그런 게 마력이지.’

    마력에는 물리법칙을 비틀고 부정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마력을 제대로 써먹으면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바꿀 수 있다.

    어쨌든 현석은 귀를 활짝 열고, 마력을 사방으로 퍼트리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얼마나 오래 내려갔는지 어느새 입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현석은 지금 내려가는 계단 주변이 단단한 벽으로 막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굳이 손을 뻗어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심안이 계속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벽과 계단이 모조리 암흑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내 계단이 끝났다. 갑자기 공간이 확 넓어졌다.

    “으으으으.”

    “흐으으으.”

    기이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신기하게도 계단에 있을 때는 전혀 들리지 않던 소리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들려왔다.

    저 계단이 단순히 임흑석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마 소리를 차단하는 무언가도 함께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소리들이 다 신음소리 같은데?’

    느낌이 딱 그랬다. 현석은 상념을 털어내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방으로 마력을 퍼트리고 그걸 초음파처럼 이용해 지형을 파악하는 건 현석의 특기 중 하나였다.

    그걸 워낙 순식간에 해버리기 때문에 현석은 근방의 지형을 마치 지도처럼 머릿속에 바로 그려낼 수 있었다. 그것도 3차원 입체 지도로 말이다.

    주변 지형을 확인한 현석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이건…… 모양이 꼭 감옥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투명던전에 들어올 때 봤던 이름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지하감옥]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이 안에 어떤 마수들이 있으며, 또 어떤 이득을 현석에게 안겨줄 것이냐였다.

    현석은 거침없이, 하지만 신중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넓고 긴 복도 양쪽에 쇠창살로 막힌 감옥들이 나란히 있었다. 현석이 마력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그랬다.

    한데 신기하게도 감옥 안쪽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 안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나오는 게 확실한데, 그 소리의 주인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마치 감옥이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감옥을 가로막은 쇠창살이 특별한 역할을 하거나…… 아니면 실체가 없는 마수이거나.’

    아마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실체가 없다고 해도 마력까지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이 마수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마력에 분명히 반응할 것이고, 그걸 현석이 파악하지 못할 리 없었다.

    거기까지 계산한 현석은 일단 첫 번째 감옥 입구로 다가갔다.

    ‘안 보이니까 답답하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진짜 답답한 걸 어쩌란 말인가.

    현석은 솨창살에 살며시 손을 갖다 댔다.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심안으로 이름도 안 보였는데?’

    마력이 흐르고 있는데 이름이 안 보였다. 현석은 살짝 긴장하며 쇠창살에 더욱 집중했다.

    그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가 되어서야 쇠창살이 이름을 드러냈다.

    [차단의 기둥]

    ‘역시 이 기둥이 차단하고 있었어.’

    설명까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보다 더 집중해야 하는데 될 듯하면서도 잘 안 됐다.

    현석은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끝을 봐서 설명을 확인하느냐, 아니면 일단 문부터 열고 안을 확인하느냐.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뭐, 시간은 많잖아?’

    현석은 끝을 보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심안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으니까.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현석은 집중에 집중을 거듭했다.

    그리고 한 시간 만에 끝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싱거운 승리였다.

    [차단의 기둥]

    [주변 마력을 차단한다. 기둥을 중심으로 마력을 회전시켜 인식장애를 깃들게 한 후 되돌려 보낸다.]

    설명을 확인한 현석은 혀를 내둘렀다. 왜 이 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인식장애 때문이었다.

    현석은 새삼 이런 대단한 아티팩트를 만들어낸 기술에 감탄했다.

    어쨌든 이로써 심안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수단 하나를 얻었다.

    이 차단의 기둥을 자연스럽게 심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한 단계 성장한 것 아니겠는가.

    현석은 심안을 유지하며 차단의 기둥에 손을 갖다 댔다. 그곳은 쇠창살로 막힌 곳 중에서도 문이 위치한 곳이었다.

    쇠창살에 흐르는 마력과는 별개로 문 자체에 만들어진 마력 패턴이 있었다.

    아까 감옥 입구를 열 때보다 더 복잡하게 뒤섞인 패턴이었다. 물론 현석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거 감옥 치고는 너무 허술한 거 아냐?’

    아무리 차단의 기둥으로 막아놨다지만, 이런 식으로 마력 패턴만 풀어낼 수 있으면 얼마든지 문을 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어설픈가.

    “지키는 사람도 없고.”

    현석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복도 안쪽 깊은 곳에서 뭔가가 빠르게 날아왔다.

    현석은 반사적으로 손을 떼고 진마검을 휘두르며 동시에 몸을 날렸다.

    꽈앙!

    진마검을 쥔 손에 짜릿한 통증이 일었다. 현석은 자신이 후려친 것이 금속으로 만든 주먹이라는 걸 확인했다.

    ‘무슨 주먹 발사 로보트야?’

    어느새 주먹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날아갔다. 자세히 보니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스르르. 철컹!

    보지 않아도 주먹이 원래 있던 곳에 장착되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온몸이 시커먼 존재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몸이 새까만 존재가 서 있으니 그냥 어둠 그 자체였다.

    물론 현석은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째…… 감옥에 있는 놈들은 정체 확인이 힘드네.’

    물론 힘들 뿐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흑철 간수]

    ‘그러니까 흑철로 만들어진 간수라는 뜻이지?’

    말하기 무섭게 감옥을 지키는 간수가 나타나다니. 현석은 역시 사람은 말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며 진마검을 들어올렸다.

    간수와 현석 사이에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며 마력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현석은 굳은 표정으로 심안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이 싸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지하감옥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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