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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83화 (83/326)
  • < 레인보우 프로젝트 4 >

    문이 닫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문을 여니, 한없이 불길한 느낌이 아래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현석은 잠시 표정이 굳었다. 왠지 느낌이 마계에 발을 들일 때와 비슷했다.

    그렇다고 이 아래 공간이 마계인 건 절대 아니었다.

    현석은 일단 다시 문을 닫았다.

    그그그긍.

    닫는 것은 여는 것보다는 훨씬 쉬웠다. 사실 패턴을 맞추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약간의 마력을 흘리는 것만으로 끝이었다.

    마력이 들어가자 문이 닫혔고, 패턴들이 자동으로 움직여 마력으로 문을 잠가버렸다.

    ‘닫는 건 쉽게 하고 여는 건 어렵게 꼬아놓은 문이라…….’

    현석은 이 아래로 들어가는 건 조금 나중으로 미뤘다.

    일단 지금은 그것보다는 렉스턴 에너지에서 가져온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했다.

    거기에 과연 현석이 원하는 것이 있는지 보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현석은 배낭에 넣은 것들을 모조리 꺼냈다.

    문 위에서 이런 일을 하는 건 왠지 꺼림칙했기에 좀 떨어진 곳에서 물건들을 바닥에 나란히 정리해 놓았다.

    시간은 많았다. 어차피 여기서 며칠은 버텨야 하니까.

    현석은 일단 아티팩트들은 한쪽으로 정리해 두고, 서류부터 확인했다.

    메모리 스틱은 서류부터 확인한 다음에 보기로 했다. 그걸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아공간 안에 이럴 때를 대비해 노트북과 배터리도 충분히 보관 중이었으니까.

    역시 아공간은 편리한 힘이었다.

    현석은 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양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확인하는 건 금방이었다.

    “이놈들 정체가 뭐지?”

    서류를 확인하자마자 현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첫 번째 서류에 적힌 내용은 마력독 제작이었다.

    마력독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독을 말한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후에나 등장하는 아이템이었다.

    엄청나게 강력하긴 하지만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가 너무 어마어마하고, 정말로 강력한 마수에게는 통하지 않아서 결국 사장된 비운의 아이템이었다.

    한데 이게 왜 여기 서류에 떡하니 있단 말인가.

    “게다가…… 효과와 원리만 있고 재료나 제작법은 없네? 가진 마력이 어마어마한 마수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도 빠져있고…….”

    하긴, 그랬으니 아등바등 이걸 만들어 내서 그 처참한 실패를 겪었겠지만 말이다.

    현석은 그렇게 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대부분 마력독과 마찬가지로 미래에나 개발되어 쓰이는 아이템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가장 마지막 장에 그토록 원하던 것이 있었다.

    “레인보우 엘릭서…….”

    레인보우 엘릭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다른 서류와 마찬가지로 원리와 효과만 있고 제작법은 없었다.

    “그나마 마력의 정수를 이용해야 한다는 건 나와있네.”

    그리고 마력의 정수가 어떤 건지도 나와 있다. 그러니 저들이 마력의 정수를 모으기 위해 그런 협조문을 휘하 업체들에게 돌렸겠지만 말이다.

    “이래서 화려하게 피어난 재료를 원했군.”

    딱 이 서류에 그렇게 나와 있었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양의 재료일수록 마력의 정수가 깃들 확률이 높아진다고.

    “이건 나도 모르던 건데.”

    물론 알든 모르든 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마력의 정수를 얼마든지 구분할 수 있으니까.

    현석은 서류들을 모두 확인한 다음 메모리스틱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이 서류에 적힌 아이템에 대한 연구 결과나 진행사항이 이 메모리스틱 안에 보관된 듯했다.

    “그럼 이것도 확인을 해 봐야지.”

    서류에 있는 아이템 중 절반은 별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가성비가 지나칠 정도로 떨어져서 차라리 다른 방법을 쓰는 편이 훨씬 나은 그런 아이템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럭저럭 쓸 만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 중 상당수가 미래에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것들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지금 당장 나온다면 사냥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대단한 아이템이 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윈드포션 같은 것들 말이다.

    윈드포션은 일정 시간 민첩을 대폭 올려주는 포션이었다. 물론 그 반작용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쓸모 있는 아이템이었다.

    민첩이 대폭 올라간다는 건 그만큼 빨라진다는 것이고, 또 상대의 속도가 느리게 느껴지도록 감각까지 올려준다는 뜻이다.

    그러니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물론 늘어난 속도로 인해 몸이 받는 충격을 생각하지 않으면 오히려 낭패를 당할 수도 있지만 그거야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윈드포션 역시 파워업 키트와 마찬가지로 한계가 정해져 있다.

    이것 역시 100레벨이 넘어가는 사람은 써봐야 소용이 없다.

    그러니 낮은 레벨에서 엄청난 효과를 보이다가 레벨이 올라갈수록 조금씩 쓸모가 떨어지는 아이템이었다.

    지금처럼 고레벨 플레이어가 거의 없는 시점이라면 굉장한 아이템이 되겠지만, 나중에 100레벨 넘어가는 사람이 수두룩해지면 저레벨 플레이어를 성장시키기 위한 아이템으로 전락하게 된다.

    어쨌든 이 윈드포션이 나온 시점 자체가 이미 고레벨 플레이어가 엄청나게 많은 때였기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유용해 보이지만 큰 효용이 없는 아이템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레인보우 엘릭서는 얘기가 전혀 다르다.

    이건 아무 페널티 없이 레벨을 하나 올려주는 아이템이었다.

    어쨌든 현석이 이 서류에 언급된 아이템들 중 지금 이 시점에서 써먹을 수 있고 필요한 건 레인보우 엘릭서뿐이었다.

    물론 아직 이들도 만들지 못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현석은 서둘러 노트북을 꺼냈다. 아직 충전만 하고 쓰지 않은 거라서 배터리는 빵빵했다.

    메모리스틱을 꽂아 확인하니 문서 파일이 한가득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연구 과정과 결과를 기록한 문서였다. 그걸 모두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현석은 레인보우 엘릭서 쪽을 찾았다.

    “있다.”

    마력의 정수를 가지고 한 갖가지 실험과 그 결과가 쭉 기록되어 있었다.

    시료의 양을 달리해서 수십 번 반복한 실험과 그 결과 변하는 데이터의 수치까지 면밀히 기록되어 있었다.

    아마 이것이 따로 복사되어 있지 않다면 당분간 레인보우 엘릭서에 대한 연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리라.

    ‘그럴 리는 없지만 말이야.’

    아마 따로따로 조각나서 여기저기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취합하는 과정이 좀 복잡할 뿐이지 결과적으로는 다시 연구를 이어가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것을 한참 살피던 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들 역시 마력의 정수가 차츰 응집력이 사라져 평범하게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그 부분에 대한 데이터나 실험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변환 과정 중에 한 가지는 분명히 그걸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석은 좀 더 간단히 가장 유효한 과정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현석은 레인보우 엘릭서에 들어가는 재료를 현 시점에서 그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일단…… 익숙한 재료가 13가지나 있네.”

    정제 과정이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몇 단계를 거치기에 그때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달랐다.

    정말 별의 별 재료를 다 갖다 별 방법을 다 써서 실험해본 모양이었다.

    이 레인보우 프로젝트에 쏟는 노력이 가장 많다는 걸 이 문서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른 것들에 비해 실험하는 양이나 투입되는 노력과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으니까.

    일단 이름을 모르는 재료가 들어간 것들은 다 뺐다. 그렇게 해도 남은 수가 엄청났다.

    이제 이 남은 건 현석이 직접 실험을 해서 테스트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하면 정말 정제가 되긴 하는 건가?”

    얼핏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실험과정을 가진 것들이 있었다. 마력이나 재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다면 결코 시도하지 않았을 실험들이었다.

    “일단…… 이것들은 혹시 모르니까 따로 빼고.”

    그것들도 다 제외시켰다.

    그렇게 해도 남은 수가 많았다. 물론 이건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다 해볼 것이다.

    마력의 정수가 이렇게 많은데 이걸 시간 때문에 다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발견할 마력의 정수까지 고려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사라지는 광경을 그냥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셈이었다.

    그러니 반드시 응집력이 사라지지 않는 방법을 알아내고야 말 것이다.

    ‘뭐…… 결국 이것도 한계는 있겠지만.’

    아마 레벨업 횟수에 제한이 있든 아니면 한계레벨이 있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파워업 키트나 윈드포션처럼 말이다.

    현석이 보기에 레인보우 엘릭서는 레벨업 횟수에 제한이 있을 확률이 더 높았다.

    아직까지 그렇게 많은 수의 엘릭서를 섭취해 본 사람이 없어서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지 한정없이 이것만으로 레벨업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래도 충분히 엄청난 힘이었다.

    현석은 서류를 다시 정리해서 배낭에 넣었다.

    문득 렉스턴 에너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놈들은 정체가 뭘까?

    “이런 지식을 어떻게 얻었지? 이건 마치…….”

    마치 미래에서 정보의 일부만 쏙 빼와서 정리한 느낌 아닌가.

    현석은 자신의 사례도 있고 해서 처음에는 누군가 미래에서 회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이런 방식으로 서류를 정리했을 리 없었다.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제반지식이나 상식이 지나칠 정도로 결여되어 있었다.

    “그럼 대체 뭐지? 던전과 관계된 유적이라도 연 건가?”

    일단 그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뭔가가 기록된 유적을 통해 던전으로 할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이나 아티팩트를 알아냈을 수도 있었다.

    “그럼 이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군.”

    생각해보면 미래에는 수많은 아티팩트가 등장한다. 그것들은 비단 던전에서 얻은 것만 있지는 않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아티팩트도 있었다. 그건 마력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업적이다.

    오랫동안 마력을 연구해서 알아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인류는 마력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

    오히려 지금의 현석이 회귀 전의 플레이어들이나 연구원들보다 훨씬 더 마력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

    한데 그런 현석도 마력을 이용해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겠냐고 하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제작 지식 문제가 아니라, 마력을 어떻게 이용해야 그런 기능을 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체에 마력이 깃든 채 흩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도 감이 안 잡히고 말이다.

    그런 걸 다 고려하면 정말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 렉스턴 에너지를 비롯한 비밀스러운 플레이어 조직에서 보관 중인 다른 정보나 문서가 분명히 더 있을 것이다.

    물론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 현석에게는 레인보우 엘릭서만 있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걸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나보다 좋은 장비를 더 잘 찾아낼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테고.’

    투명던전의 장비보다 더 좋은 장비가 과연 보통의 던전에서 나올까?

    또한 투명던전과 연결된 마계에서 얻는 아티팩트보다 더 신기하고 뛰어난 아티팩트를 누가 구할 수 있겠는가.

    그 가능성은 지금 확인하면 된다.

    현석은 바닥에 쭉 늘어놓은 아티팩트들을 보며 하나하나 이름을 확인했다.

    뛰어나거나 중요한 것들이니 이렇게 금고에 따로 보관했을 것이다.

    [현자의 지팡이], [아르포르의 눈], [벼락의 검]

    일단 가장 눈에 띄는 아티팩트는 이 세 가지였다. 나머지는 얼핏 보기엔 좋아 보여도 막상 쓰려고 하면 큰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진짜 관심이 가는 것은 따로 있었다.

    [첫 번째 증표], [두 번째 증표]

    현석이 네 번째 증표를 갖고 있으니 이제 네 가지 증표 중 세 가지가 모인 셈이었다.

    ‘세 번째 증표는 어디 있을까?’

    현석은 문득 추광열이 떠올랐다. 그는 내기로 어이없이 네 번째 증표를 빼앗겼다. 그리고 다시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헤어질 때 그가 보여준 눈빛과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라이언한테 빌려서라도 갖고 오겠다고 했지?’

    그럼 라이언이 세 번째 증표를 갖고 있다는 뜻이리라. 아니면…….

    ‘아니면 라이언도 렉스턴 에너지에 소속된 인물이거나.’

    현석은 일단 증포부터 확인했다.

    [첫 번째 증표]

    [????을 증명하는 네 가지 증표 중 첫 번째. ????의 권능 중 일부가 깃들어 있다. 120레벨 이상 사용가능. 마력을 넘어선 자만이 사용 가능. 스킬 복종이 깃들어 있다.]

    [두 번째 증표]

    [????을 증명하는 네 가지 증표 중 두 번째. ????의 권능 중 일부가 깃들어 있다. 110레벨 이상 사용가능. 마력을 넘어선 자만이 사용 가능. 스킬 위압이 깃들어 있다.]

    정보를 확인한 현석은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레벨제한이란 말인가.

    “120? 110? 그럼 세 번째는 제한이 100이야?”

    네 번째의 제한이 90이었으니 10씩 차례대로 올라가는 셈이었다.

    일단 아직 110레벨이 안 되었으니 둘 다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마계에 한 번 더 다녀와야겠는데?’

    가볍게 한 차례 원정 다녀오면 110레벨은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목숨도 한 번 걸어야 하겠지만.

    어쨌든 현석은 두 아티팩트에 걸려 있는 스킬을 확인했다.

    [복종-목표를 복종시킨다. 마력 컨트롤 능력과 레벨에 따라 복종시킬 수 있는 대상의 수준이 달라진다.]

    [위압-일정 지역에 있는 존재에게 정신적 압박을 가한다. 마력 컨트롤 능력과 레벨이 낮으면 상대가 저항할 수 있다.]

    < 레인보우 프로젝트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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