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82화 (82/326)

< 레인보우 프로젝트 3 >

경찰들이 렉스턴 에너지 빌딩을 빈틈없이 포위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저 안에서 폭탄을 터트린 거야?”

“그냥 폭탄이 아니라 EMP탄이야.”

“그거나 저거나.”

“폭탄이었으면 저 건물이 무사할 거 같아? 여기 난리 났을 걸?”

“근데 대체 여길 왜 테러했대? 사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회사 아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솔직히 말하면 진짜 테러를 당했는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은데.”

“어? 저기!”

커다래진 눈으로 손가락을 들어 뒤쪽을 가리킨 동료의 모습에 방금 전까지 투덜거리던 경찰이 뒤를 돌아봤다.

커다란 배낭을 멘 사내 하나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렉스턴 에너지 빌딩에서 나온 놈이 확실했다.

“멈춰!”

경찰들이 총을 겨눴다. 하지만 달려오는 사내는 멈추지 않았다.

타앙! 타앙!

총소리에 놀란 다른 경찰들이 이쪽을 주시했다. 그리고 저마다 총을 들어 현석을 향해 쐈다.

타타타타탕!

현석은 지그재그로 뛰며 총을 피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강행돌파 하려고 마음먹었기에 거침이 없었다.

경찰들은 크게 당황했다. 설마 이런 총탄 세례를 뚫고 이쪽으로 달려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총을 쏘는 것 밖에 없었다.

“쏴!”

타타타타탕!

현석은 그대로 도약했다. 뛰어오른 현석의 발밑으로 무수한 총알이 지나갔다.

뛰어오른 현석은 그대로 경찰의 첫 번째 포위망을 벗어났다.

“안 돼!”

“잡아!”

타타타탕!

악다구니와 총소리가 섞여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가 펼쳐졌다.

현석의 등에 총알 몇 개가 정통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건 현석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티티티팅!

총알이 현석의 등에 맞기 직전, 희미한 유리막 같은 것이 나타나 총알을 튕겨냈다.

퍼석!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고, 현석은 두 번째 도약을 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렉스턴 에너지 빌딩에서 플레이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빠르게 현석의 뒤를 쫓아갔다.

하지만 경찰의 포위망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경찰이 그들을 제지한 게 아니라, 바리케이트와 경찰차 때문에 길을 막은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고레벨 플레이어이니만큼 그런 장애물 쯤이야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현석은 마지막 경찰 포위망을 돌파하고 빠르게 사라져갔다.

“놓치면 안 돼!”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 괴성에 가까운 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모든 플레이어들의 속도가 더욱 높아졌다.

그들은 가까스로 현석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사방으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에 헬기가 떴다.

본격적인 추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렉스턴 에너지의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자는 마이클과 더불어 칼슨의 심복인 필립이었다.

필립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여기서 저놈을 놓친다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것이다. 아니, 칼슨이 자신을 가만 둘 리 없다.

‘하필이면 이럴 때!’

필립은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부하를 보며 물었다.

“저놈 얼굴은 확인했나?”

“검은 천으로 둘둘 감고 있어서 확인 못했습니다.”

“헬기에 연락해서 확실히 찍으라고 해!”

“예!”

필립은 목표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헬기까지 동원했는데 놓치면 이런 개망신도 없다.

지금 하늘에서 목표를 쫒고 있는 헬기 세 대 중 하나는 렉스턴 에너지에서 직접 보낸 헬기였다.

“저격팀은 뭐 하고 있나!”

필립은 체력을 박박 긁어 달리면서도 이런저런 지시를 했다.

목표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필립은 인원을 셋으로 나눠 다른 길로 가게 했다. 사방에서 경찰들이 차로 목표를 쫒고 있었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붙잡고만 있으면 돼!’

목표는 건물 안에서 폭탄을 터트릴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놈이었다.

방금 연락을 받았는데, 회장실에 있던 금고가 털렸다고 한다. 금고를 털겠다고 폭탄을 터트리는 미친놈이 보통 놈일 리 없다.

지금 달리는 속도만 봐도 저놈을 플레이어가 분명했다. 그것도 신체 능력이 극도로 발달한 고레벨 플레이어였다.

‘하여튼 저런 놈들 때문에 플레이어들 입지가 좁아진다니까.’

필립은 이를 갈며 더욱 힘을 내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목표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물론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사방에서 차가 달리고 있고, 하늘에는 헬기가 세 대나 떠 있다.

절대 목표를 놓치진 않을 것이다.

필립이 그렇게 확신한 순간 무전이 날아왔다.

-목표가 사라졌습니다!

“뭐?”

필립은 깜짝 놀라 앞을 확인했다. 잠깐 딴 생각을 한 사이 목표가 없어졌다.

필립은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목표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달리는 걸 멈춘 필립이 허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동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사라지다니?”

“그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갑자기 확 사라져 버렸습니다.”

“갑자기 확 사라져? 그게 말이 돼? 근처 다른 건물로 들어간 거 아냐?”

“근처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가도로 위에서 그냥 사라져 버렸습니다.”

“일단 근처를 샅샅이 뒤져. 경찰에 연락해서 포위망 구축하라고 해. 개미새끼 한 마리 못 빠져나가게 해! 어서!”

필립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후다닥 흩어졌다.

“젠장!”

필립은 주먹으로 마침 옆에 있던 차를 때렸다.

꽈앙!

차가 우그러지며 수 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화기 풀리지 않았다. 회장의 금고가 털렸으니 이제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피바람이 한 차례 불겠군.’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마 자신이 서 있게 될 것이다. 필립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 * *

현석은 배낭은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바닥에 누워 숨을 골랐다.

“후우우.”

자연회복이라는 강력한 회복스킬을 보유하고 있기에 이 정도는 숨 몇 번 쉴 정도면 끝이었다.

다섯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은 현석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택시를 타고 오다가 발견한 장소였다.

미국 쪽에 있는 투명 던전은 거의 공략해 본 적이 없기에 설마 이렇게 고가도로 한복판에 투명던전이 있을 줄은 몰랐다.

현석은 그 던전을 발견한 순간 도주 계획을 다시 세웠다.

원래는 훨씬 불확실한 계획을 세웠었는데, 덕분에 안전한 계획으로 깔끔하게 바뀌어 버렸다.

이 던전은 다른 투명 던전에 비해 열기도 쉬웠다. 그래서 거의 순간적으로 던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온 다음 더 강력하게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문제는…… 아직 여기가 어떤 던전인지 모른다는 거지.”

사실 살짝 걱정되기는 했다. 어쨌든 지금은 현석 때문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당분간은 여기서 버텨야 한다. 최소 사흘은 버텨야 저들이 일차적으로 철수할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버텨야 저들도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테고 말이다.

그 동안 이 안에서 버텨야 한다.

그런데 만일 여기가 상당히 위험한 던전이라면, 즉, 회귀 전에 현석이 마지막으로 갔던 그 던전과 비슷한 곳이라면 여우를 피해 호랑이 입으로 뛰어든 셈이나 다름없었다.

현석은 그런 던전이 그리 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석은 주위를 세심히 살피며 감각을 예리하게 가다듬었다.

역시 던전답게 온 세상이 마력으로 꽉 차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력이 너무 많은데?’

현재 현석이 있는 곳은 숲 한가운데 있는 널찍한 공터였다. 사방이 빽빽하게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근처에 마수는 없는 듯했다. 일단 여기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이 근처에 어떤 마수가 있는지였다.

하지만 현석의 감각이 미치는 범위 안에는 마수가 한 마리도 없었다.

그저 마력만 가득했다.

‘그래도 투명던전이면 뭔가 의도를 갖고 만들어 놓은 공간일 확률이 높은데…….’

지금까지 발견한 모든 투명던전이 그랬다.

현석은 기억을 뒤져 여기 택시를 타고 지나갈 때 확인한 투명던전의 이름을 떠올려봤다. 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름이 뭐였지?’

항상 심안을 발동시킨 채로 다니기에 대부분의 이름을 확인하지만, 거의 모든 이름을 그냥 넘겨 버리기에 오히려 기억에 저장된 이름은 많지 않았다.

집중해서 확인하지 않는 글자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나가듯 투명던전의 존재만 확인하는 바람에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은 최소한의 정보를 담고 있기에 이곳이 어떤 던전인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한데 기억나지 않으니 직접 몸으로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석은 장비를 점검한 다음 배낭을 메고 조심스럽게 공터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숲이 끝나고 강이 나타났다. 강은 숲을 둘러싸듯 흐르고 있었다.

현석은 강줄기를 따라 걸어갔다.

‘강이라기보다는…… 해자에 가까운데?’

숲을 빙 둘러서 흐르고 있었다. 강이 숲을 가둔 셈이랄까?

강을 건너 보았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던전의 끝이 바로 이 강이었다.

던전의 끝은 투명한 막 같은 걸로 막혀 있었다. 실감나는 그림이 그려진 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이기는 하는데, 지나갈 수는 없었고, 보이는 곳에도 변화가 거의 없었다.

‘마치…… 공간을 뽑아다가 따로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아마 그렇게 생각하면 눈에 보이는 광경은 공간을 뽑는 순간 저 벽 너머의 모습일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네.”

강을 휘저어보니 물고기는 잔뜩 있는 것 같았다. 마력을 머금은 물고기였지만 먹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물도 깨끗한 것 같고…….”

물론 아공간에 보관한 컨테이너 박스 중에는 생필품을 비롯해 식수와 음식이 가득 담긴 것들도 있었으니 여기서 1년을 버티라고 해도 할 수 있었다.

현석은 다시 중앙 공터로 돌아왔다.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도 되는 거야? 아니,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걸까?’

문득 현석은 하늘을 바라봤다. 저 하늘도 아마 이 공간을 뽑는 순간 보인 광경이리라.

이번엔 땅을 내려다봤다. 순간 현석의 표정이 묘해졌다. 눈에서는 반짝반짝 광채가 일었다.

“왠지…… 이 땅이 좀 수상한데?”

현석은 바닥을 유심히 살피며 공터를 천천히 걸었다. 그냥 살피는 게 아니라 마력의 흐름을 확실히 파악하며 걸었다.

그 결과 바닥에 흐르는 마력의 패턴이 확연하게 변화하는 구간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현석은 그렇게 패턴이 다른 부분을 파내기 시작했다. 아공간에는 땅을 팔 수 있는 도구도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바닥의 흙은 잘 다져져 있어 그리 부드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석은 강한 힘과 체력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퍽퍽 소리와 함께 바닥을 덮고 있던 흙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깡!

삽자루가 부러져 버렸다. 바닥에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드러난 것이다.

현석은 부러진 삽으로 나머지 흙을 싹 걷어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지하실이 있는 던전이었던 모양이네.”

현석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아래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부디…… 쓸모 있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현석은 문에 손을 올렸다. 문에 흐르는 마력의 패턴을 파악해 그것을 여는 방법을 파악했다.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지금까지 확인한 그 어떤 문보다 까다로운 패턴을 가진 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석이 못할 건 없었다.

현석은 마력 패턴을 맞춰갔다. 문 위에 복잡한 문양이 떠올라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문이 서서히 옆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긍.

시커먼 공간이 드러났다.

< 레인보우 프로젝트 3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