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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81화 (81/326)
  • < 레인보우 프로젝트 2 >

    현석이 렉스턴 에너지 본사를 활개치고 다니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건, 무장 경비원도 아니었고, 이곳을 지키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아니었다.

    현석에게 가장 까다로운 건 빌딩을 도배하다시피 설치한 첨단 보안장비들이었다.

    하지만 그 첨단 보안장비는 약점도 뚜렷했다.

    그건 전기였다.

    그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장치들은 전력의 힘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과전류가 흐르면 망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현석에게는 그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이 여럿 있었다.

    일단 전격을 쓰는 마수들에게는 그 힘과 관계된 재료들이 최소 하나 이상 있었다.

    현석은 그동안 그걸 잘 챙겨 모아두었다.

    그리고 이럴 때 써먹을 수 있는 아주 획기적인 아이템도 구할 수 있었다.

    현석은 어둠에 숨어 품에서 푸른색 구슬 하나를 꺼냈다.

    그 구슬 표면에는 끊임없이 파직거리며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막대한 전격의 힘을 머금은 구슬이었다.

    [천둥새의 뿔]

    모양은 구슬이었지만 이건 천둥새의 뿔이었다. 그리고 천둥새는 이번에 현석이 마이클 팀을 위해 마련한 던전에 서식하는 마수이기도 했다.

    [천둥새의 비명이 깃들어 있다. 깨지는 순간 천둥새가 죽음의 순간 내지르는 비명이 울려 퍼진다.]

    이걸 채취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 천둥새가 죽기 전에 뿔을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천둥새는 죽는 순간 뿔에 담긴 힘을 터트리며 비명을 지르는데, 그 비명은 소리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그건 막대한 전자기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즉, 이 천둥새의 뿔은 EMP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성능이 어마어마한 EMP폭탄이었다.

    아마 이게 터지면 렉스턴 에너지 본사의 모든 전자장비는 다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말 것이다.

    물론 근처 빌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렉스턴 에너지 빌딩처럼 전자장비가 싹 망가지는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일단 렉스턴 에너지 빌딩은 EMP폭탄에 대한 대비도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모든 상황을 가정해 보안을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EMP탄이 외부에서 터졌을 경우에 그렇다. 지금처럼 내부 깊숙한 곳에서 이런 강력한 EMP탄이 터진다면 얘기가 많이 달라진다.

    현석은 머릿속으로 다음 계획을 차분히 짚어본 다음 천둥새의 뿔을 쥔 손에 힘을 꾸욱 주었다.

    퍽!

    너무나 손쉽게 구슬이 깨졌다.

    그리고 깨진 구슬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크윽!”

    현석은 미리 이렇게 될 걸 알고 대비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몸을 뒤흔드는 충격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물론 진짜 폭발이 아니라 전자기력의 폭발이었지만.

    퍼버버버벅!

    빌딩 전체의 등이 나가 버렸다. 그리고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말 그대로 빌딩 전체에 혼란이 내려 앉은 것이다.

    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었다. 천둥새의 뿔이 터질 때 받은 충격을 해소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환하게 불이 켜진 공간을 움직이듯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이런 어둠은 현석에게는 익숙한 환경이었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을 하며 현석은 목적지로 빠르게 다가갔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렉스턴 에너지의 경비 책임자인 존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던 일이 벌어졌다.

    아니,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터졌다.

    이곳 렉스턴 에너지에는 보조 발전기가 있었다.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그 보조 발전기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파악했나?”

    “아무래도 EMP폭탄이 터진 모양입니다.”

    존은 어이없는 눈으로 부하를 노려봤다. 물론 너무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EMP폭탄?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것만이 지금 상황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 내부로 EMP폭탄을 가져와 터트린 것 같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강력한 폭탄이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해봐야 욕만 먹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 렉스턴 에너지는 EMP폭탄에 대한 대비가 아주 철저했다. 그런 대비를 무시하고 이런 위력을 냈다면 정말 엄청나게 강력한 폭탄임이 분명했다.

    “지원요청은 했나? 보조 발전기 공수하는 건 어떻게 됐어? 그리고 랜턴 있는 대로 싹 긁어 모아오라고 했잖아!”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1팀 2팀을 회장실로 보내! 3팀, 4팀은 마정석 창고로 보내고! 거기가 제일 중요해! 누군가 폭탄을 터트린 거라면 거길 노릴 테니까!”

    존의 말에 부하가 즉시 대답했다.

    “예! 바로 지시사항 전달하겠습니다!”

    “경찰은?”

    “오고 있답니다. 삼중으로 포위망을 구축한다고 했으니 아마 절대로 도망치지 못할 겁니다.”

    주변 빌딩까지 모두 병력이 배치되었다. 하늘을 날거나 땅을 뚫고 갈 능력이 없다면 무조건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해. 들어오는 건 가능해도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줘!”

    “예. 걱정 마십시오. 우리는 충분히 뛰어납니다.”

    그제야 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좀 가라앉혔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부디……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만일 뭐라도 하나 사라지는 날에는 오늘 이 빌딩 안에 있던 경비와 관계된 모든 사람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었다.

    회장과 칼슨 이사의 그 독사처럼 차가운 눈빛을 떠올린 존이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 * *

    현석은 목표로 한 방 앞에 도착했다. 전자식으로 열고 닫는 문이었는데, 전원이 나가니 잠긴 채였다.

    물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꽈득!

    현석의 손이 거침없이 문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잠금쇠가 있는 부분을 뜯어 버렸다.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현석은 방 안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현석은 방에 들어가며 몸을 한껏 낮췄다.

    푸슉!

    소음기가 달린 총구가 불을 뿜었다. 방금 현석의 가슴이 있던 곳을 총알이 훅 뚫고 지나갔다.

    현석은 이미 방안에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침없이 움직였다.

    전원이 나감과 동시에 차단막이 창문을 막았기 때문에 방안은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 속이었다.

    현석은 들어오며 문을 다시 닫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라도 밖에서 빛이 흘러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자세를 낮춘 채 안으로 스며들어온 현석은 바닥을 몇 바퀴 구르며 총을 들고 긴장한 사내 앞으로 이동했다.

    어찌나 빠르고 조용하게 움직였는지, 그 사내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쩌억!

    사내의 턱에 현석의 손바닥이 작렬했다. 사내는 그것만으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소리가 난 쪽으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푸슉! 푸슉! 푸슉! 푸슉! 푸슉!

    방안에는 모두 세 명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동료의 총에 벌집이 되어 버렸다.

    현석은 그곳에 없었다. 그는 이미 두 번째 목표의 턱을 올려치는 중이었다.

    꽈득!

    턱뼈가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렸다.

    남은 한 명이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총을 난사했다.

    푸슉! 푸슉! 푸슉!

    물론 동료의 몸에만 구멍을 뚫었을 뿐, 현석은 멀쩡했다.

    현석은 마지막 한 명의 턱도 박살을 내 버렸다. 그는 죽지 않았지만 현석이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절대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현석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그의 목에 바늘호랑이의 털 하나를 꽂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곳이 바로 이 건물에서 가장 많은 마력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마정석 창고는 아닌 모양이군.’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방에 흩어진 마력을 파악했다.

    이 방에서도 마력이 응집된 부분이 있었다. 아마 거기가 진짜이리라.

    현석은 망설임없이 그곳으로 걸어갔다.

    방해하는 물건들이 많았지만 애초에 눈을 감고 살아가던 현석에게 그건 방해도 아니었다.

    마치 환한 방을 걸어가는 것처럼 응집된 마력 앞에 선 현석은 손바닥으로 벽을 확인했다.

    이 벽 너머에 마력이 모여 있었다.

    ‘금고인가?’

    DM케미칼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금고를 벽에 묻은 모양이었다.

    다만 거기와 달리 이곳은 반대쪽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게 어마어마한 두께의 콘크리이트로 사방이 막혀 있었다.

    현석은 손가락에 힘을 주고 벽을 훑듯이 쓸어내렸다.

    꽈드드득!

    벽이 부서지며 안에 보관된 금고가 드러났다. 아니, 정확히는 금고의 문이 드러났다.

    생각보다 금고가 작았다. 가로세로 각각 1미터쯤 되는 금고였다. 이런 곳에 그렇게 막대한 마력이 모여 있다니 대체 안에 뭐가 들어있단 말인가.

    벽을 없애는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아마 지금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것 역시 전기장치로 움직이는 것일 테니까.

    금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금고에 적용된 전자장치는 보안에 관계된 거라서 문을 여닫는 거랑은 상관없었다.

    이 금고는 전자장치와 수동 기계식 장치가 동시에 적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금고 표면에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현석은 눈을 빛냈다. 이건 그냥 금고가 아니라 마력이 깃든 금고였다. 아니, 마력이 깃든 무언가와 절묘하게 연결된 금고였다.

    [확장금고]

    현석의 심안에 나타난 이름이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이름이었다.

    그제야 현석은 왜 이 작은 금고 안에 그렇게 많은 마력이 깃들어 있는지 이해했다.

    금고 안의 공간이 확장되어 내부가 생각보다 넓은 모양이었다.

    [내부 공간이 특별한 마력에 의해 확장된 금고. 사방 20미터의 입체 공간을 쓸 수 있다.]

    사방 20미터나 되는 공간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현석은 금고를 이대로 아공간에 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좀 아쉬웠다.

    공간 계열 마법이 적용되어 있기에 이대로 아공간에 들어가면 마력이 충돌해 더 약한 쪽이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공간이 깃든 아티팩트도 함부로 현석의 아공간에 넣을 수 없었다.

    오직 같은 계열의 아공간만 결합해서 공간의 수를 늘릴 수 있었다.

    어쨌든 현석은 금고를 뽑아 가져가는 건 포기하고 일단 문부터 열기로 했다.

    마력이 공간에 관계된 거니 그저 힘으로 열어도 그만이었다. 현석은 진마검을 꺼내 금고 입구를 싹둑 잘라 버렸다.

    내부가 드러난 금고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금고 안쪽으로 거대한 공간이 보였다. 상당히 거대한 진열장이 있었고, 그 진열장 안에 아티팩트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이름들이 쭉 보였다.

    투명 던전에서 장비를 구한 현석이 보기에도 쓸 만한 것들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그 중 현석을 가장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첫 번째 증표], [두 번째 증표]

    둘 다 반지 형태였다. 현석은 일단 내용 확인은 뒤로 미루고 안에 있는 물건부터 챙겼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벌써 건물 주변으로 경찰들이 모여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현석은 배낭을 꺼냈다. 이럴 때 써먹기 위해 가져온 아공간 아티팩트였다.

    현석은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닥치는대로 다 쓸어담았다.

    대부분이 아티팩트였지만, 서류나 특별해 보이는 재료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작은 저장장치도 보였다.

    ‘천둥새의 뿔에 망가졌으면 곤란한데…….’

    이렇게 보관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중요한 물건임이 분명했다.

    현석은 금고 속의 모든 것을 챙긴 다음 서둘러 방을 나섰다.

    챙긴 물건 중에 레인보우 엘릭서와 관계된 것이 없어도 할 수 없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나머지는 운에 맡길 뿐이었다.

    ‘하지만…… 내 운이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으니까.’

    오늘 아주 중요한 것들을 손에 넣었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현석은 빠르게 방을 벗어나 계단으로 향했다. 여전히 렉스턴 에너지 빌딩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 레인보우 프로젝트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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