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인보우 프로젝트 1 >
마이클은 드론을 동원해 목표가 사라진 산 근처를 샅샅이 뒤졌다.
드론만 동원한 게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산 전체를 이 잡듯 헤집고 다녔다.
목표가 남긴 흔적은 그렇게 했는데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뭔가 특별한 방법을 써서 사라진 듯했다.
아니면 하늘을 날아서 이동했거나.
‘헬기가 움직인 흔적은 없었는데…….’
그래서 더 이상했다. 자신들의 눈을 피할 정도로 흔적을 모두 없앤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마이클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대로 목표를 놓친 채 그냥 돌아가야 한다는 말인데,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동안 도명욱을 상대로 얼마나 큰소리를 쳤는데, 이런 굴욕을 감수한단 말인가.
‘뭐라도 하나 찾아가야 돼.’
마이클은 그런 마음으로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결국 하나를 발견했다.
시커먼 소용돌이, 블랙홀이었다.
넝쿨로 교묘하게 가려져, 생각 없이 지나가면 발견하기도 어려운 장소에 있었다.
“개별던전?”
마이클은 황급히 팀원들에게 신호를 보내 모두를 모았다.
다들 모이자마자 개별던전을 확인하고는 마이클을 바라봤다.
“마이클이 한 건 했군.”
“그놈이 이곳으로 도망쳤을 확률은?”
“반반?”
팀원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마이클은 그놈이 여기로 도망쳤을 거라고 확신했다.
“일단 도명욱한테 연락해. 우리가 산에서 개별 던전을 찾았다고.”
마이클은 그렇게 말하고 팀원들을 둘러봤다. 그의 눈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여기에 들어간다.”
“우리끼리? 마이클, 여기 개별 던전이야. 생성지역 안에 있는 어설픈 블랙홀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놈이 여기로 도망쳤다면 별 거 아닌 던전일 확률이 높지. 안 그래?”
“그놈이 여기로 도망쳤다는 확신이 있다면 모를까, 그냥 우리끼리 들어가는 건 절대 안 돼. 준비가 필요하다고.”
마이클이 반박하는 팀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던전을 클리어하겠다는 말이 아니야. 그냥 간단한 정찰 정도지.”
마이클의 말에 반박하던 팀원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개별 던전은 초기 정찰이 중요했다. 자신들은 초기정찰의 베테랑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달리 이런 개별 던전을 제법 많이 겪어봤고 말이다.
그리고 과연 목표가 여기로 도망가서 버틸 수 있을지도 확인해야 했다.
그놈이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던전이라면 그냥 클리어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말이다.
“좋아. 일단 연락하는 동안 쉬자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 알지?”
그 말에 마이클이 씨익 웃었다.
“내가 너보다 열 번은 더 경험했거든?”
그들은 도명욱은 물론이고 칼슨에게도 연락을 했다. 아니, 칼슨에게 먼저 보고를 하고 도명욱은 나중이었다.
마이클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칼슨에게 보고하는 것을 우선했다. 보고는 간단히 문자만 남겨도 된다.
칼슨은 그런 간단한 보고를 상당히 중요시했다. 마이클은 칼슨이 중요하게 여기는 걸 어겼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항상 메뉴얼에 충실했다.
“자…… 보고도 했고, 그럼 슬슬 들어가 볼까? 장비 점검은?”
“오케이.”
“그럼 들어가자고.”
마이클과 그의 팀원들은 던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오지 않았다.
* * *
현석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미국에 가는 건 사실 절차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게다가 현석에게는 여권도 없었다.
하지만 양동욱은 그 모든 걸 아주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
현석은 현대의 분장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으로 느끼며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아직 미국 공항에서 거쳐야 할 관문이 남아있긴 했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새삼 양동욱의 영입이 얼마나 괜찮은 선택이었는지 깨달았다.
처음에는 양세희가 더 탐났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양세희 백 명을 갖다 줘도 양동욱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문득 자동차 면허도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미국에 다녀오면…… 그리고 그분을 만난 다음에 시간을 좀 내야겠군.’
아무래도 면허는 따두는 게 나을 것이다. 차도 샀는데 말이다.
새로 산 차는 너무 오래 방치하는 것 같아서 양동욱에게 줘 버렸다.
면허를 따면 차를 새로 사기로 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렉스턴 에너지가 아는 곳에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야.’
렉스턴 에너지의 본사는 맨하탄에 있었다. 그곳의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시작부터 아주 뻑적지근한 셈이었다.
하긴, 거대 석유자본들이 모여 만든 회사인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석의 생각에 그 건물 안에 최첨단은 물론이고 던전에서 나오는 아티팩트를 이용해 굉장한 보안체계를 갖춘 것이 분명했다.
‘그걸 뚫어야 한단 말이지.’
그 안에 아마 연구시설도 있고, 또 중요한 것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경비가 삼엄한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은 총기를 쓸 수 있는 나라였다. 렉스턴 에너지 본사에는 총보다 훨씬 더한 무기로 도배해 놨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것들을 피해 원하는 정보만 쏙 빼내야 한다.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지.’
현석은 자신 있었다. 만일 안 되더라도 몸 하나 빼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세계 제일의 플레이어라는 라이언이 온다 하더라도 현석은 그를 압도할 거라 확신했다.
비록 레벨은 세계 제일이 아니지만, 스택이나 마력량은 현석이 세계 제일일 테니까.
‘아니, 어차피 레벨 측정은 마력으로 하니까 측정기로 하면 내 레벨이 제일 높겠군.’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비행기가 뉴욕에 도착했다.
* * *
공항에서는 허무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현석은 공항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맨하탄으로 향했다.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그냥 오늘 당장 일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아마…… 지금쯤 거길 발견하지 않았으려나?’
현석은 자신을 쫓던 마이클 팀에게 선물 하나를 남겨뒀다.
엄밀히 말하면 꼭 마이클 팀에게 주려고 준비한 선물은 아니었다. 다른 의도로 준비한 거였는데, 공교롭게도 마이클 팀에게 선물을 준 셈이 되어 버렸다.
그 개별 던전을 산에 끌어 놓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모른다.
그래도 블랙홀은 투명 던전에 비해 다루기가 훨씬 수월해서 그나마 나았다.
만일 투명 던전을 거기로 끌고 가야 했다면 분명히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이 가진 힘을 대충이나마 파악했기 때문에 그 선물은 아마 제대로 먹혔을 것이다.
‘타이밍이 잘 맞았으면 좋겠는데.’
만일 마이클 팀이 그 던전에서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렉스턴 에너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상당한 규모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로 플레이어들이 한국을 향해 이동할 테고 말이다.
즉, 렉스턴 본사의 힘이 약간이나마 분산될 확률이 생긴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노리고 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괜찮은 수법이 되었다.
아마 렉스턴 본사에서도 그 던전을 클리어 하려면 애 좀 먹을 것이다.
그 던전의 수준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현석은 맨하탄 초입에서 내렸다. 렉스턴 에너지는 맨하탄 중심에 있지만, 일부러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약간이라도 연상이 될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어차피 가짜 얼굴에 가짜 신분이니 아무 상관없었지만 말이다.
현석은 맨하탄을 가로질러 렉스턴 에너지 본사로 향했다.
맨하탄은 굉장히 복잡했다. 사람도 차도 엄청나게 많았다. 물론 현석은 그런 것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새 렉스턴 에너지 본사에 도착한 현석은 건물에서 풍기는 거대한 마력에 살짝 놀랐다.
하나의 마력이 거대한 게 아니라 저 안에 마력을 품은 것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다.
마계의 작은 성 정도에서 풍기는 마력과 비슷했다. 그러니 대체 얼마나 많은 아티팩트와 플레이어, 그리고 던전 출토 물품이 있단 말인가.
‘일단…… 들어가는 게 문제네.’
확실히 경계가 대단했다. 건물로 그냥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주변 다른 건물을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낮보다는 밤이 일하기 훨씬 좋을 것 같았다. 낮에는 아무래도 보는 눈이 너무 많았으니까.
현석은 마침 근처에 보이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발견하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 * *
밤이 되었다. 현석은 그때까지 렉스턴 에너지를 지켜보면서 제대로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다는 걸 확인했다.
하루종일 마력의 흐름이 상당히 분주했다. 그리고 상당량의 마력이 빌딩에서 빠져나갔다.
아마 강력한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있던 고레벨 플레이어들일 것이다.
‘나름대로 DM케미칼 쪽에서도 조사를 했을 것이고…… 그들과 관계된 길드들을 움직여 던전 탐사까지 마쳤겠지.’
그렇다면 그 던전이 단순한 방법으로 사냥해서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알아냈을 것이다.
또한 모든 힘을 집중해서 던전을 공략할 가치도 충분하다는 것 역시 파악했을 것이다.
‘이번에 어떤 놈들이 움직였는지 알면 이쪽과 관계된 길드가 어디인지도 확실히 알 수 있겠지.’
그걸 대비해서 양동욱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다. 아마 위험하게 파고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들이 움직이는데 그걸 완벽하게 감추고 비밀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양동욱이 가진 능력이라면, 또 그의 인맥 중 하나인 종로 암시장의 능력이라면 그쯤이야 식은 죽 먹기이리라.
여러모로 이번 미국행은 득이 많았다. 아마 돌아갔을 때도 충분한 이득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마력의 정수를 1차 가공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아낸다면 최고인데…….’
현석이 렉스턴 에너지 본사를 한 차례 휘젓고 사라지면, 아마 이쪽에서도 비상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또 수많은 플레이어와 길드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던전관리센터까지 움직일지 모른다.
그 모든 것들을 다 파악하고 나면 렉스턴 에너지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일이 훨씬 편해질 것이다.
현석은 커피숍에서 나가 밤이 드리운 그림자를 따라 빠르고 은밀하게 이동했다.
렉스턴 에너지 본사의 경계는 낮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경계 인원이나 방식이 낮과 똑같았다.
하지만 현석은 그럼에도 그렇지 않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밤이라서 써먹기 편한 방법들도 많고.’
일단 어둠은 이렇게 몰래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아주 강력한 도움을 준다.
현석처럼 눈만이 아닌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세상을 파악하는 사람과 달리 보통 사람은 시력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즉, 필연적으로 사각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현석은 그렇게 만들어진 사각을 빠르게 지나갔다.
첫 번째 관문을 아주 간단히 넘었다. 이제 남은 건 빌딩을 도배하고 있는 첨단장비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현석은 거기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 왔다.
‘시간제한이 생길 테니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틴 다음에…….’
현석은 처음부터 목표를 정하고 움직였다.
애초에 이 거대한 빌딩을 모조리 훑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목표 하나를 선택해 그곳만 집중적으로 털어 버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현석이 목표로 선정한 곳은 빌딩에서 마력 밀집도가 가장 높은 장소였다.
아마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 모여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티팩트를 보관하는 금고일 확률이 높지.’
이때 주의할 점은 마정석을 보관하는 곳과 구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렉스턴 에너지는 마정석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기 위해 만든 회사다.
그러니 높은 등급의 마정석을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목표로 한 장소가 그곳이라면 반쯤은 헛고생을 하는 셈이었다.
그러니 목표를 잘 설정해야 한다.
현석은 자신이 찍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하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더 이상 그냥 움직여선 답이 없는 상황까지 왔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목적지였지만 여기서 그렇게 했다간 오히려 시간을 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럼…… 진짜 작전을 시작해 볼까?’
현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 레인보우 프로젝트 1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