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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79화 (79/326)
  • < 그들의 계획 3 >

    현석은 자신을 중심으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는 11개의 마력 덩어리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곳은 건물 안이었다. 안에서만 돌아다니면 저 11명에게 붙잡힐 수밖에 없겠지만, 여기서 몸 하나 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막 몸을 빼려는 순간, 현석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만, 저놈들이 렉스턴 에너지에서 보낸 자들이라면…… 아는 것도 많겠지?’

    직접 보고 확인해야 정확한 레벨과 능력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저 어떤 마력을 얼마나 품었는지만 봐도 대강의 실력을 유추할 수 있었다.

    현석이 보기에 그들이 가진 장비가 그리 좋지 않다면 혼자서도 저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쓸 만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면…….’

    아마 싸워 이기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몸 하나 빼는 건 어렵지 않을 듯했다.

    대충 견적은 나왔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과연 저들을 잡아 정보를 캐내도 뒤탈이 없을까?

    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저들을 잡아 뭔가를 캐내면, 렉스턴 에너지가 훨씬 더 본격적으로 현석을 찾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아직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또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굳이 그들을 움직일 필요는 없지.’

    현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하고 빠르게 움직여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현석이 있던 곳에 마이클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마이클의 팀원들이 그곳에 하나둘 들이닥쳤다.

    “마이클, 타겟은?”

    “사라졌어.”

    마이클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이런 흔적을 찾아 추적하는 건 그들이 항상 하는 일이었다.

    마이클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나머지 팀원들도 움직였다.

    다들 눈을 빛내며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흔적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즐기고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기는 틀린 것 같았다.

    * * *

    마이클은 황당한 표정으로 산속 깊은 곳에 어지럽게 흩어진 흔적을 둘러봤다.

    이 장소는 불과 얼마 전 도명욱으로부터 보고 받은 바로 그 장소였다.

    목표는 다시 이곳으로 도망친 것이다. 흔적을 줄줄 흘리면서.

    “우릴…… 이쪽으로 유인한 거였어.”

    마이클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의 팀원들은 한창 주변 흔적을 면밀히 조사 중이었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서부터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도망칠 자신이 있기에 이쪽으로 온 것이 분명했다.

    잠시 인상을 쓰고 서 있던 마이클이 섬뜩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좋아…… 그럼 왜 굳이 이쪽으로 왔는지…… 반드시 알아내주지. 어디, 나중에 내 얼굴을 마주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한 번 두고 보자고.”

    마이클은 배낭에서 몇 가지 장비를 꺼내 조립했다. 그것은 특별하게 제작된 드론이었다.

    잠시 후, 마이클의 드론이 특수 카메라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현석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DM케미칼의 본사에서는 별로 얻은 게 없었다.

    하지만 아예 빈손으로 온 건 아니었다.

    현석은 아공간을 열고 그 안에서 작은 금고 하나를 꺼냈다.

    대표이사실에서 가져온 금고였다.

    아마 DM케미칼의 대표이사도 지금쯤 금고가 사라졌다는 걸 알고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금고를 가져올 생각이 없었다.

    한데 창문이 부서지고 금고뭉치가 벽에 충격을 주면서 금고가 드러나 버렸다.

    그것도 대표이사실 쪽이 아니라, 그 반대쪽 벽이 약간 부서지며 금고의 일부가 드러난 것이다.

    마침 그 앞을 지나던 현석이 그걸 발견하고 뽑아서 아공간에 그대로 넣어 버렸다.

    설마 이런 식으로 금고를 탈취당할 줄은 도명욱도 몰랐으리라.

    도명욱의 금고는 공장의 것과는 달리 그리 튼튼하지 않았다.

    현석은 아주 간단히 문짝을 떼고 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고 안에는 통장 몇 개와 서류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정말 별 거 없는 금고였다.

    통장이야 써먹을 일이 없으니 관심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서류는 관심이 갔다.

    달랑 한 장뿐인 서류라서 확인하기도 좋았다.

    서류를 확인한 현석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서류에 쓰여있는 제목 때문이었다.

    “레인보우…… 프로젝트?”

    서류는 렉스턴 에너지에서 보낸 공문이었다. 레인보우 프로젝트 지원요청서였다.

    내용은 별 거 없었다.

    렉스턴 에너지에서 레인보우 프로젝트라는 걸 진행하려 하는데, 거기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레인보우…… 프로젝트?”

    왜 갑자기 레인보우 엘릭서가 떠오르는 걸까?

    현석은 보고서 내용을 찬찬히 몇 번이나 확인했다. 혹시 단서가 될 만한 정보가 없나 싶어서였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양의 재료?”

    렉스턴 에너지에서 원하는 협력은 던전에서 출토된 재료를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한데 그 요구사항이 참으로 특이하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양의 재료라니.

    현석은 그 문구를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그걸 보고 있으니 뭔가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얼른 떠오르는 재료는 불꽃나무였다.

    이름은 나무였지만, 사실 마수의 뿔이었다.

    뿔이 마치 불꽃으로 이루어진 나무처럼 생겼는데, 플래티넘 1등급 던전에서 나오는 불꽃용이라는 마수의 이마에 달려 있었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건 서리꽃이었다.

    이건 마수와 관계없이 던전에 서식하는 식물의 일종이었다. 마력이 깃든 바위에 자라는데, 서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의 꽃이었다.

    그런 식으로 몇 가지 재료가 머릿속에 차례차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재료들의 공통점을 떠올려봤다.

    모든 재료가 가진 공통점은 아니었지만, 그중 절반 이상이 가진 공통점은 찾아낼 수 있었다.

    ‘초창기 발견된 마력의 정수!’

    최초로 발견된 마력의 정수가 바로 불꽃나무였고, 그 뒤를 이어 서리꽃에서 발견되었다.

    “확실히…….”

    현석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쭉 늘어놓고 보니 확실히 초기에 발견된 재료는 화려하게 피어나는 모양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벌써 마력의 정수를 발견했다 이거지?”

    현석의 입매가 살짝 비틀렸다.

    자신이 마력의 정수를 모조리 선점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먼저 시작한 놈들이 있었다.

    역시 렉스턴 에너지에는 뭔가 중요한 비밀이 있다.

    “뭐…… 아직 마력의 정수를 제대로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진 못한 모양이지만.”

    그래서 이런 식으로 협조공문을 띄웠겠지만 말이다. 아마 이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찾고 있을 것이다.

    확실한 재료 이름을 표기하지 않은 건, 그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겠다는 뜻이리라.

    현석은 다시 한 번 서류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 어디 열심히 모아봐라.”

    화려하게 피어나는 재료? 그게 세상에 몇 가지나 존재하겠는가. 그리고 그 재료를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불꽃용이든 서리꽃이든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마수였다.

    서리꽃은 마력을 잔뜩 머금은 바위에서만 자라는데, 그걸 발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웠다.

    또한 불꽃용은 일반 블랙홀의 마수처럼 아무리 죽여도 다시 태어나는 마수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특수 마수였다.

    운이 좋으면 어쩌다 한 마리씩 등장하는 희귀 마수였다. 당연히 그 재료의 값어치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고작 저런 정보로 마력의 정수를 모으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현석은 다르다. 현석은 일반 재료에 섞여 있는 마력의 정수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렉스턴 에너지 놈들이 마력의 정수를 찾아내는 아티팩트를 개발해 보급하지 않는 한,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현석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럼…… 이놈들을 털어야 마력의 정수 보관법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인가?”

    현석은 잠시 고민했다.

    과연 이들이 마력의 정수 보관법을 벌써 개발해 뒀을까? 지금은 그저 마력의 정수를 얻어 그걸로 레인보우 엘릭서에 대한 연구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보관법 자체가 없을 수도 있지.’

    보관법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마력의 정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현석일지도 모른다.

    저들은 마력의 정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마력 응집력이 줄어들어 결국 평범한 재료로 변해버린다는 사실을 끝까지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재료가 특수하거나.’

    불꽃나무나 서리꽃 같은 재료에 깃든 마력의 정수는 응집력이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현석이 모든 재료를 다 확인한 건 아니었으니까.

    ‘등급은 높겠네.’

    그 재료들의 등급이 높을 거라는 예상은 할 수 있다. 그러니 쉽게 마력의 정수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을 테고 말이다.

    현석은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렉스턴 에너지를 확인해 봐야겠어.”

    렉스턴 에너지는 미국에 있다. 회귀 전의 지식에 의하면 맨하탄에 본사가 있는데, 어쩌면 지금은 좀 다를 수도 있었다.

    ‘양동욱이 거기까지는 알아놨겠지.’

    현석은 문득 렉스턴 에너지가 어떤 특별한 비밀을 품고 있다면, 그리고 그 비밀이 던전의 비밀과 연결된 무언가라면, 이렇게 함부로 뒷조사를 하는 것도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 금고를 정리하고는 밖으로 향했다.

    * * *

    양동욱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현석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저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물론 지금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현석은 양동욱의 집에 있는 그의 방에 들어왔다.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초인종이라도 좀 누르시고 오시지…….”

    양동욱의 투덜거림을 깔끔히 무시한 현석은 자기 할 말만 했다.

    “DM케미칼이랑 렉스턴 에너지.”

    “아, 그 부분은 좀 더 기다리셔야합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곳이니까요. DM케미칼 쪽은 종로에 의뢰를 따로 넣었고, 렉스턴 에너지는 미국쪽 정보기관에 의뢰를 넣었습니다.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고 봐야 합니다.”

    그 말에 현석은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중지해라.”

    “예? 왜요?”

    “위험하니까.”

    그 말에 양동욱의 표정이 굳었다. 어차피 남의 비밀을 캐는 건 위험한 일이다. 한데 위험하니 그만 두라고? 그건 자신을 무시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양동욱은 금세 새로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간다.”

    “예? 왜요?”

    “직접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거긴…….”

    양동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DM케미칼과 렉스턴 에너지의 초기 조사를 자신이 직접 했다. 그렇기에 그 두 기업이 보통 일반적인 회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석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했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하는 건 얘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위험한 곳에 왜 직접 가려고 한단 말인가. 그건 뒤를 캐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었다.

    “그 두 회사는 포기해. 대신 찾아줘야 할 사람이 있다.”

    “사람이요?”

    양동욱의 눈이 반짝였다. 사람을 찾아달라는 현석의 말투가 왠지 평소와 약간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 보통 중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 사람의 인간관계를 알아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임무가 되겠군.’

    인간관계는 그 사람 자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니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유지했느냐만 파악해도 그 사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석은 메모지를 건넸다.

    “임형석?”

    밑도 끝도 없이 달랑 이름만 던져준 것이다. 양동욱은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우리나라에 임형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아십니까?”

    “그걸 내가 알아야 하나?”

    “아니, 이런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다른 간단한 정보라도 있어야 정확한 사람을 찾을 거 아닙니까.”

    “무술 체육관 관장이다.”

    그제야 양동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야…… 한데 무슨 무술을 가르치는 분입니까?”

    “모른다.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 밖에는.”

    “엄청나게 강한 무술도장 관장님이라…… 이틀 주십쇼.”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 다녀올 테니 그 동안 찾아놓도록.”

    현석은 그 말을 남기고 휙 나가 버렸다.

    양동욱은 간만의 재미난 일거리에 손을 비비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 그럼 오랜만에 실력을 좀 발휘해 볼까?”

    양동욱의 손이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그들의 계획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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