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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78화 (78/326)
  • < 그들의 계획 2 >

    [충성서약의 증거]

    [왕에게 충성하는 기사의 마음을 증명한다. 기사는 왕에게 종속되며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한다. 배신이 확인되는 순간 모든 힘을 잃고 언데드 노예가 된다. 힘+10, 정신+10, 체력+10]

    설명을 읽은 현석의 눈이 커다래졌다. 말이 충성 서약이지 이건 노예계약서나 다름없었다.

    “언데드 노예라니…… 듀라한이나 데스나이트라도 만들 생각인가?”

    물론 충성만 지키면 된다. 하지만 배신이 확인된다는 문구가 참으로 애매하다.

    현석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손목에 찬 팔찌를 쳐다봤다.

    [????의 증표]

    혹시 이 ????가 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의 네 가지 증표 중 하나에 저 기사를 다루는 아티팩트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현석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고는 말았다.

    일단 이 팔찌를 차고 있긴 하지만 자리가 남아서 찼을 뿐,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일단 붕괴 스킬의 위력이 너무 보잘 것 없었다.

    일정 공간을 붕괴시킨다는데, 아직까지 현석의 레벨과 마력 컨트롤 능력으로는 고작 10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에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 힘도 어찌나 약한지 그 안에 있는 휴지뭉치나 뭉갤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아주 정교한 컨트롤을 발휘한다면 사람이나 마수의 내부를 붕괴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난관이 많았다.

    일단 생명체 내부를 붕괴시키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상대의 움직임도 읽어야 하고, 또, 생명체는 특유의 방어력이 있기에 그 안에 스킬을 밀어 넣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레벨이 얼마나 더 올라야 할지 모르지만 아마 이 상태면 200레벨이 넘어도 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듯했다.

    현석은 나머지 기사의 물품들도 확인했다. 다들 눈이 커다래질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가진 아티팩트들이었다.

    하지만 이건 쓸 수가 없었다. 너무 꺼림칙했으니까.

    현석은 손목에 찬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여기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심안의 수준을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얼마나 더 수준이 올라야 이걸 확인할 수 있는 거지?’

    지금도 처음 이 팔찌를 확인했을 때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졌다. 이렇게 계속 심안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거의 무리가 가지 않으니 말이다.

    한데도 아직 먼 모양이었다. 그래도 성장 가능성을 찾았으니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면 된다.

    ‘아마…… 물음표가 많은 놈을 계속 찾아야 할 것 같은데…….’

    현재 수준으로 볼 수 없는 걸 많이 접해야 숙련도가 많이 오를 것 아닌가.

    어쨌든 이 팔찌가 중요했다. 이런 종류의 아티팩트를 더 많이 찾아야 한다.

    현석은 아티팩트들을 자신의 방에 있는 금고에 넣었다. 그리고 금괴는 금만 따로 보관하는 컨테이너 박스를 꺼내 그 안에 보관했다.

    ‘그럼 다음은…….’

    다음 계획은 DM케미칼의 본사를 확인하는 것이다. 아마 별 거 없을 확률이 높았다.

    금고를 확인하니 오히려 공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중요한 서류나 금괴 아티팩트를 공장에 있는 금고에 보관했으니 말이다.

    아마 경비 문제도 있을 것이다. 진짜 총을 지급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진짜 총을 들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혹시라도 진짜 총을 쓸 일이 생겼을 때, 마음껏 그걸 쓸 수 있는 환경도 중요했을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건…… 렉스턴 에너지지.’

    현석의 마음속이 렉스턴 에너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든 거기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레벨업도 게을리 하면 안 되고, 또 아티팩트도 모아야 하고, 류지혜 팀의 성장도 도와야 한다.

    “정말 바쁘네.”

    현석은 괜히 마음이 급해지는 듯해 심호흡을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급할 때 가장 많은 실수가 나온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해야 한다. 서두르지 말아야한다.

    현석은 금고 안에 있던 모든 걸 정리한 다음 서류를 태워 버렸다.

    그리고 금고는 우그려 똘똘 뭉친 다음 아공간에 넣었다. 이제 이걸 다시 돌려주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 * *

    칼슨 이사의 심복 중 한 명인 마이클은 DM케미칼 본사에서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금고를 도둑맞았는데도 아직 아무 단서조차 못 찾았단 말입니까?”

    마이클의 냉소적인 미소에 DM케미칼의 대표이사인 도명욱은 속으로 갖은 욕을 다 했다. 물론 얼굴은 비굴한 미소로 꽉 차 있었다.

    “저희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니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마이클을 초빙한 것 아닙니까. 하하하.”

    마이클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보고서를 휙 날려 버렸다.

    보고서 뭉치가 펄럭거리며 도명욱의 얼굴을 한 차례 때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굴욕적인 상황이었지만 도명욱의 얼굴에 드리운 미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놈의 흔적이 남은 마지막 장소를 알려드릴까요?”

    도명욱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내일 합시다.”

    그렇게 말을 하는 마이클의 눈을 바라본 도명욱은 속으로 한숨 섞인 욕을 내뱉었다.

    ‘이런 와중에도 여자를 찾고 싶은 거냐? 이 미친놈을 진짜!’

    마이클의 눈에는 진한 욕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흥분된다는 듯, 기대어린 표정이었다.

    “우리 애들이랑 다 같이 가고 싶은데?”

    도명욱이 억지로 한숨을 참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바로 모시겠습니다.”

    마이클이 벌떡 일어났다.

    “그럼 난 우리 애들을 불러오지.”

    마이클이 밖으로 나가자 도명욱이 인상을 쓰며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후우.”

    짜증을 어찌나 많이 참았던지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힘없는 놈이 참아야지.

    갑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을의 슬픈 숙명 아니겠는가.

    ‘일만 다 끝나봐라. 네놈들이랑은 상종도 안 한다.’

    이번 일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제대로만 하면 세상을 다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무사히 끝나서 막대한 돈을 얻은 뒤, 미국에 자리 잡고 평생 호의호식하면서 평안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마음도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이번에 온 마이클은 정상에 더 가까운 놈이었다. 굴욕만 좀 참으면 되니까.

    하지만 다른 놈들은 그냥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 제대로 미친놈들이었다.

    도명욱은 그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얼른 눈에 떠오른 공포를 지우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어, 나야. 예약 좀 해줘. 누구겠어? 미국에서 온 손님들이지. 그래. 총 열한 명.”

    간단한 지시 전화를 끝낸 도명욱은 의자에 축 늘어져 앉았다. 그리고는 이번에 벌어진 일을 떠올렸다.

    ‘이거…… 조짐이 안 좋아. 아무래도…… 조금 일정을 서둘러야겠어. 칼슨 이사가 승인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일정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었다. 상부의 허락과 지시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도명욱은 칼슨이라면 자신의 의견을 그냥 무시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가 보기에 칼슨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중에 세상의 왕이 될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버텨봐?’

    칼슨을 떠올리자, 도명욱의 마음속에 욕심이라는 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사실 그가 이런 꼴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모두 칼슨 때문이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도명욱은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이 울렸다.

    꽈아아앙!

    도명욱은 깜짝 놀라 눈을 뜨고 허둥대다가 의자에서 떨어졌다.

    쿠웅.

    “크윽! 대, 대체 무슨 일이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무실 한쪽에 커다란 쇳덩어리가 보였다.

    처음에는 대체 저게 뭐고, 이게 무슨 일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쇳덩어리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눈이 커다래졌다.

    “금고!”

    저건 분명히 금고였다. 공장에 있던 잃어버린 금고 말이다.

    도명욱은 벌떡 일어나 부서진 창문으로 달려갔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광경은 높은 빌딩숲들이었다.

    저 빌딩 중 한 군데에서 이걸 날린 모양이었다.

    ‘그놈이 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야!’

    도명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실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꽝!

    도명욱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마이클이 섬뜩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놈이지? 그렇지?”

    마이클은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고는 우그러진 금고뭉치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품에서 돋보기를 꺼내 금고를 살폈다.

    “역시 마력 반응이 있어. 이놈 마력 좀 쓰는데?”

    마이클의 표정이 더욱 환해졌다.

    금고를 던질 때 마력을 이용했다. 그 잔여 마력이 금고에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곧 모두 사라질 것이다.

    마이클은 금고뭉치가 만든 흔적과 놓인 자리, 그리고 창문을 슥 둘러본 다음 전화기를 들어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3번 빌딩에서 던졌을 확률이 제일 높아. 셋으로 쪼개서 2번, 3번, 4번을 확인해.”

    그렇게 지시를 내린 마이클은 방안을 슥 훑어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도명욱은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기분에 표정이 멍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마이클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당장 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마이클이 나섰으니…… 분명히 잡겠지.’

    마이클의 팀이 가진 장비와 실력을 생각하면 그게 너무나 당연했다.

    한데 도명욱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이번 놈은…… 이상하게 보통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마이클은 그놈이 어떻게 저 큰 금고를 옮겼는지 아는 눈치였다. 그는 그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니 끝까지 쫓겠지.’

    마이클이 얼마나 지독한 독종인지는 도명욱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명욱은 마이클을 떠올리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는 방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좀 치우자.”

    아직은 사무실다워야 한다. 이제 곧 그럴 필요가 없게 되겠지만 말이다.

    * * *

    현석은 DM케미칼 본사를 조용히 돌아다녔다. 지금 본사 건물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금고를 돌려준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마이클이 예상한 것처럼 들어서 던진 것이다.

    물론 마이클이 예상한 빌딩에서 던진 건 아니었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던졌다.

    마수의 힘줄을 꼬아서 만든 밧줄에 금고를 걸어 DM케미칼 본사 옥상에서 그걸 휘둘러 정확히 대표이사실에 때려 넣었다.

    계산에서 한 치의 오차도 벗어나지 않고 금고뭉치를 대표이사실 구석에 처박을 수 있었다.

    현석은 유유히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DM케미칼 본사를 조사해 나갔다.

    ‘예상대로 마력 반응이 빠져나가는군.’

    현석은 DM케미칼 본사에 아주 강력한 플레이어가 11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을 보지 않아서 레벨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현석의 감각을 자극하는 느낌이 제법 강한 걸로 봐서 최소 90레벨 이상의 강자들이었다.

    최근 플레이어들의 레벨이 급격히 높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90레벨이 넘는 플레이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데 그런 자들이 무려 11명이나 한곳에 모여 있으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현석은 어쩌면 그들은 DM케미칼 소속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렉스턴 에너지에서 보내준 플레이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런 높은 레벨의 플레이어들을 건물 밖으로 내보냈으니 좀 더 수월하게 본사를 뒤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얻을 건 금고에서 다 얻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왔는데, 과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1명의 고레벨 플레이어들도 한 번쯤 확인해 봐야 했다. 그들의 이름이나 레벨, 그리고 가진 스킬도 파악해 두면 결국은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아마…… 적으로 만날 확률이 높겠지.’

    현석은 빠르게 움직이며 본사 곳곳을 확인했다. 역시 평범한 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남은 곳은 대표이사실뿐이었다.

    ‘그나저나…… 한 놈은 아직도 이 안에 있네.’

    11명의 플레이어 중에서 10명은 밖으로 나갔는데, 한 명은 여전히 본사에 남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 날 잡으러 다니는 거겠지.’

    그럴 것이다. 저런 소란을 피운 이유가 여길 조사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만했으니까.

    ‘만나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딱 그 생각을 했을 때, 현석은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움직임을 멈췄다.

    “이놈들 봐라?”

    11명의 마력이 감지되었다. 그들은 막 본사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본사에 한 명 남은 플레이어가 현석이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여기 있다고 가정하고 움직였군.’

    현석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 그들의 계획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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