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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77화 (77/326)

< 그들의 계획 1 >

현석은 집으로 들어갔다. 공사는 이미 끝났고, 내부 인테리어도 완벽하게 마무리 된 상태였다.

그러니 그냥 집에서도 충분히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최근에는 되도록 투명 던전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현석의 집은 3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마당도 상당히 넓었고, 담장도 높았다.

마당의 조경도 훌륭했다. 확실히 돈을 많이 들인 티가 확 났다.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간 현석은 지하실로 향했다. 거실과 지하실이 연결된 구조였다.

마당에서는 지하실로 뚫린 구멍이 아예 없었다. 사방을 두꺼운 콘크리트로 도배해 버렸기 때문에 밖에서는 들어갈 방법이 거의 없었다.

어쨌든 거실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간 현석은 아래로 깊이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몇 번의 굴곡이 있었기에 설사 밖에서 문을 열어 놓는다 해도 외부의 빛이 모두 차단되는 구조였다.

물론 그것만으로 빛을 모두 차단할 수 있을 리 없다. 현석은 이곳 지하실에 아주 특별한 아티팩트를 장치해 놓았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 때, 그 안에 [암흑석]을 파묻어 놓았다.

암흑석은 이름 그대로 어둠속성을 잔뜩 품은 돌이었다. 웬만한 성능의 마력감지기로는 찾아낼 수조차 없는 아티팩트였다.

사실 아티팩트라기보다는 재료에 훨씬 가까웠다. 어둠속성만 잔뜩 갖고 있다뿐이지 이렇다 할 효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이런 경우에는 아주 훌륭한 쓰임새가 완성된다.

이 지하실 안은 군데군데 박힌 암흑석 덕분에 외부에서 어떤 강력한 빛이 들어오더라도 항상 어두운 상태가 유지된다.

심지어 손전등이나 횃불을 가지고 들어온다 하더라도 딱 그 부분만 빛이 날 뿐이지 그 빛이 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곳이 어떤 구조인지 길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나가지 못하고 끝없이 헤맬 수밖에 없었다.

이 안은 복잡하진 않지만 빙글빙글 도는 구조의 미로로 되어 있었으니까.

현석이 나름대로 투명 던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대책이었다.

그리고 그 대책은 제법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류혜연이나 류지혜조차 가끔 길을 못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곤 했으니까.

안이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 해도 아차하는 순간 잃어버리곤 했다.

물론 현석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현석은 이 안에서 마력의 흐름을 통해 길을 찾으니 말이다.

투명 던전이 품은 그 희미한 마력을 감지해 길을 찾는 방식이었다.

어쨌든 현석은 그렇게 지하실로 들어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렇게 몇 번의 갈림길을 지난 다음 투명 던전 앞에 서서 문을 열었다.

딸깍.

문 열리는 소리가 귓가에 천둥처럼 들렸다. 물론 현석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현석은 문이 열리자 던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

던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세 명이서 쓰는 던전이었는데, 함께 쓰는 류지혜와 류혜연 자매는 지금 열심히 던전에서 사냥 중이었다.

그래서 더 안심하고 아공간 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놓을 수 있었다.

일단 현석은 금고부터 꺼냈다.

마정석 찌꺼기가 있는 컨테이너 박스는 일단 금고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꺼내서 차츰 살피면 된다.

커다랗고 튼튼한 금고였다. 귀한 물건을 보관하는 금고이니 당연했다.

현석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이 금고를 가지고 나온 이유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오늘 DM케미칼의 공장을 살펴봤을 때 확신 쪽으로 무게추가 좀 더 기울었다.

진짜 총을 가지고 경비를 설 정도면 그놈들도 그리 떳떳하지 않다는 뜻이다.

현석은 진마검을 꺼냈다.

상당히 튼튼하게 제작된 금고였지만 마력의 힘이 깃든 검격을 버텨내지는 못할 것이다.

현석이 노리는 부분은 금고의 이음새였다. 워낙 잘 만들어 이음새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럼에도 그곳이 빈틈이자 약점이라는 건 분명했다.

현석은 마력을 진마검에 밀어 넣었다. 진마검은 현석의 마력을 받아들여 응축하고 또 응축했다.

이렇게 마력을 많이 받아들일수록 좋은 무기라 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위력이 배가되니 말이다.

현석이 가진 모든 마력을 밀어 넣었지만 진마검이 가진 한계치에는 아직 한참이나 못 미쳤다.

‘절반쯤 찼나?’

최근 레벨업을 한 이후, 마력이 대폭 늘어났지만 그렇게 늘어난 마력으로도 진마검의 한계를 볼 수 없으니, 이 검이 얼마나 좋은 검인지 알 수 있다.

현석은 이음새를 정확히 노려 온 힘을 다해 검을 찔러 넣었다.

슈각! 쩡!

꽈드드드득!

이음새를 파고든 진마검이 응축해 놓았던 마력을 일시에 방출해 버렸다.

금고의 이음새가 확 벌어지더니 금고 일부가 찌그러지며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꽈앙!

문짝은 형편없이 우그러진 채 나뒹굴었다.

현석은 드러난 결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위력이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마수는 다 상대할 수 있으리라. 물론 약점을 정확히 찌를 수 있다면 말이다.

현석은 금고 안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금괴들이었다.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공장 금고에 이런 걸 보관한다는 자체가 충분히 수상했다.

그 다음으로는 아티팩트들이 있었다.

현석은 그걸 보며 눈을 빛냈다. 다섯 개의 아티팩트가 있었는데, 품은 마력이 상당했다. 아마 어설픈 아티팩트는 아닐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서류였다.

현석은 금괴나 아티팩트보다는 오히려 서류에 더 눈이 갔다. 현석의 감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서류였다.

현석은 서류를 꺼내 하나하나 확인했다.

서류를 확인하는 현석의 표정이 차츰 굳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비자금 명단이 있었다. 수많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에게 비자금을 넘기고 그 증거를 이 안에 남겨 두었다. 아마 돈을 받는 사람들 모르게 증거를 만들었을 것이다.

서류는 물론이고 돈을 받는 장면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까지 있었다.

정말로 철두철미한 놈들이었다.

‘그러니 무장병력으로 지키고 있지.’

마정석 정제 시설 자체는 아마 별로 중요치 않을 것이다. 경비병력들이 진짜로 지키고 있던 건 바로 이 금고였다.

그걸 확신한 건 두 번째 문건을 본 다음이었다.

“렉스턴 에너지가 만든 회사였어?”

정확히는 렉스턴 에너지가 아니라 렉스턴 에너지의 이사인 칼슨이 투자해서 만든 회사였다.

아니, 칼슨의 지시를 받은 그의 심복들이 투자해서 만든 회사였다.

렉스턴 에너지는 앞으로 정말 유명해질 회사였다.

플레이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회사를 꼽으라면 언제나 첫 손에 꼽히는 곳이 바로 렉스턴 에너지였다.

그들은 마정석을 정제해 에너지를 뽑아내는 것 외에 던던에 관련된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 성공시킨 굉장한 회사였다.

던전 세상의 절반 이상을 그들이 지배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 정도였으니 얼마나 거대하고 유명한 회사인지 알 수 있다.

그곳의 수뇌부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연예인과 비슷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칼슨 이사였다.

그리고 덩달아 그의 직속 수하들도 유명세를 얻었다.

그 직속수하 중 두 명의 이름이 지금 현석이 확인하는 서류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DM케미칼에 넘긴 에너지 정제법까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망하게 하려고 세운 회사였군.”

현석은 회귀 전의 일을 떠올렸다.

DM케미칼에 10개월 동안 몰린 돈은 어마어마했다. 국내 투자자들뿐 아니라 해외 투기 자본까지 모여들어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 상황에서 DM케미칼이 무너졌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세계 경제 지도가 바뀌었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무수한 투자사가 무너졌고, 자살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DM케미칼을 무너뜨린 거나 다름없는 렉스턴 에너지는 그 모든 걸 밟고 위로 쭉 올라갔다.

한데 그 모든 것이 계획된 일이었다니.

현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역시 뒤가 구린 놈들이었다. 그것도 그냥 구린 게 아니라 아주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놈들이었다.

‘렉스턴 에너지의 마정석 정제법도 확인하고 싶은데…….’

DM케미칼의 정제법은 현석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들의 정제법은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

한데 그 떨어지는 효율로도 엄청난 성과를 얻었다. 세계 에너지 시장을 흔들 정도로 말이다.

문득 그들이 거의 견제를 받지 않고 급격히 성장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기존의 에너지 사업의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연료가 나온 셈인데, 아무 방해 없이 안착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막상 이렇게 결과를 보고 나니 그 모든 일의 배후에 렉스턴 에너지가 있는 거였다.

렉스턴 에너지 자체가 기존 에너지 사업의 강자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형태였으니까.

현석은 서류를 모두 확인한 후,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런 현석의 눈에 금고 안쪽에 붙은 작고 동그란 검은 스티커 하나가 보였다.

“이게 뭐지?”

스티커를 떼어보니 그냥 스티커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금고 벽에 붙은 쪽에 정교한 회로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뭔지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위치추적기인 모양이었다.

현석은 피식 웃었다.

금고를 아공간에 넣은 다음, 던전으로 들어와 꺼냈으니 위치추적기가 아무런 역할도 못한 셈이 되었다.

현석은 위치추적기를 힘주어 부순 다음 금고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모두 2개의 위치추적기가 더 발견되었다.

혹시 모르니 그것들도 다 부숴 버렸다. 어차피 아무 영향도 못 미치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현석은 자신이 지금 여기에 대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저 앞으로 주시하면서 그들의 움직임을 계속 관찰하며 힘을 키우는 것이 현석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사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현석과 그들이 얽히지 않는 한, 서로 모르는 존재로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한데 왠지…… 나랑 강하게 얽힐 것 같단 말이지.’

이것 역시 묘한 예감이었다.

현석은 과거로 돌아온 순간부터 그런 묘한 예감과 항상 함께 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들…… 정체가 뭘까?’

단순한 사업가이거나 연구자는 아닐 것이다.

마정석에서 에너지를 뽑아내는 방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단 DM케미칼 쪽에서 쓰는 방법에는 플레이어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즉, 플레이어가 직접 연구해서 알아냈다는 뜻이다.

던전이 세상에 드러난 지 아직 4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아티팩트를 만들어 냈다고?’

마정석 정제법에는 특별한 아티팩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현석이 보기에 이 아티팩트는 던전에서 발굴한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분명했다.

‘뭔가 있어.’

현석의 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렉스턴 에너지를 제대로 조사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문득 현석의 시선이 금고 안에 있는 아티팩트로 향했다.

현석은 그것을 밖으로 꺼내 확인했다. 항상 심안을 발동하고 있기에 이름은 이미 읽은 뒤였다.

[충성서약의 증거]

[기사의 검]

[기사의 방패]

[기사의 명예]

[기사의 힘]

이름만 들어서는 얼른 와 닿지 않는 아티팩트였다. 하지만 현석은 그걸 보며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다섯 아티팩트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기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K나이츠 길드와 연결된 것 같다면 오버일까?

현석은 그 아티팩트들의 정보를 차분히 확인했다.

< 그들의 계획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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