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눈 뜨고 레벨업-76화 (76/326)
  • < DM케미칼 4 (3권 끝) >

    3층은 1층에 비해 비교적 한산했다. 1층이 중요하다고 여겼는지 경비 인력도 1층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대부분 휴식이나 식사를 위한 공간이었고, 중요한 곳은 사무실 하나였다.

    한데 그 사무실 앞을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총?’

    건물 내부의 경비원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총을 소지하는 건 불법인데도 버젓이 저러고 있는 걸 보니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현석은 주변을 더 확인했다. 마력을 통한 감각에는 한계가 있으니 이제 진짜 몸이 가진 감각을 활용할 때가 되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현석은 청각에 집중했다. 소리를 통해 문 안쪽에 있는 사람의 수와 행동을 파악하고자 함이었다.

    사실 이 방식은 회귀 전에는 제법 자주 써먹던 방법이었다.

    현석은 시력을 잃기 전에도 상당한 감각의 소유자였다. 특히 청각은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그런 감각이 시력을 잃으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예민하게 단련이 되더니 나중에는 거의 초능력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 감각을 회귀 후에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평소에는 별로 쓸 일이 없어서 쓰지 않을 뿐, 이렇게 필요하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었다.

    눈을 감거나 하지는 않았다. 눈을 감는 것이 집중에는 훨씬 도움이 되지만, 지금은 그렇게 안심하고 일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청각에 잡히지 않고 시각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겠는가.

    그럴 일이 벌어질 확률이 낮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조차 조심해야할 때였다.

    문 안쪽 사무실에서 미약한 소음이 들렸다.

    ‘한 명.’

    그 한 명은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책을 보는 건 아니었다.

    현석은 CCTV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복도 전체를 찍는 것이 하나 있었고, 저 사무실의 문만 찍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안쪽에 두 개.’

    사무실 안에 두 개의 CCTV가 있었다. 아주 희미하고 미약하지만 CCTV자체에서도 나는 소리가 있다. 현석은 그걸 파악할 수 있었다.

    CCTV의 위치를 파악한 현석은 자신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일단 복도 쪽 CCTV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CCTV를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물론 시간 여유가 줄어들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일을 벌이자마자 필요한 서류만 챙겨서 도망칠 계획이었으니까.

    ‘그리고 운이 좋으면 시간을 좀 더 벌 수도 있고.’

    현석은 품에서 비수 두 개를 꺼냈다. 현석은 가슴에 비수가 나란히 꽂힌 띠를 두르고 있었다.

    총 12개의 비수가 착착착 꽂혀 있었는데, 필요할 때 써먹고 버리기 위해 싼 가격의 비수를 아공간에 잔뜩 넣어 두었다.

    필요할 때 쓰고 틈나는 대로 보충하는 식이었다.

    현석은 CCTV가 있는 곳으로 비수를 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경비원에게 바늘호랑이의 털을 던졌다.

    푹푹푹!

    뭔가가 박히는 소리 세 번이 울렸다.

    CCTV의 전원 선이 끊어졌다. 그리고 경비원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현석은 가볍게 몸을 날려 경비원을 받아 바닥에 살며시 눕혔다.

    굳이 목숨을 취할 필요는 없었다. 총을 들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지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다 죽여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적대하는 사람을 살려둘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현석은 비수 두 자루와 바늘호랑이 털을 미리 꺼내 준비한 다음 문을 슬며시 열었다.

    고개를 드는 사내의 목에 바늘호랑이의 털이 푹 박혔다. 그리고 번개처럼 날아간 비수 두 자루가 CCTV의 전원 선을 끊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이 근방의 CCTV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경비하는 자들이 뚫어져라 CCTV화면을 보고 있으면 대번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잠시 후에 알게 될 것이다.

    현석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안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담아 가져가야 한다.

    일단 현석은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챙겼다. 마침 적당한 가방이 보였다. 아공간이 담긴 보스턴백은 가져오지 않았기에 알아서 가져가야 한다.

    현석은 사방으로 마력을 흘리며 바닥을 가볍게 발로 굴렀다.

    쿠웅!

    근처에 마력 반응은 없었다. 그리고 진동이 벽 한 부분에서 잘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현석은 서류들을 쓸어담으며 확인한 벽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꽈앙!

    벽이 부서지며 금고가 드러났다. 정말 커다란 금고였다. 안에 사람 두세 명은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물론 사람을 보관할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현석은 망설이지 않고 금고를 번쩍 들어 아공간에 넣었다. 이렇게 하나로 된 물건은 아공간에 넣기 편해서 좋다.

    거기까지 한 현석은 다시 한 번 벽을 발로 후려찼다.

    꽈앙!

    벽이 그대로 뚫렸다.

    현석은 쓰러진 사람의 옷을 찢어 얼굴을 둘둘 감았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 박힌 바늘호랑이의 털을 회수한 다음 뚫린 구멍으로 몸을 날렸다.

    퉁퉁퉁퉁!

    마당에 있던 경비원들이 스턴건을 일제히 발사했다. 발사형 스턴건이었다.

    강력한 전류를 머금은 줄이 두 개의 추를 매달고 빙글빙글 돌며 날아왔다.

    상당히 빠르고 정확했다.

    현석은 손을 휘저어 그것들을 받아냈다.

    빠지지지지직!

    전류가 현석의 팔을 온통 휘감았다. 하지만 현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버티며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갔다.

    퉁퉁퉁퉁!

    당황한 경비원들이 스턴건을 마구 쏘아댔다. 하지만 현석이 워낙 빠르게 지그재그로 달려 대부분이 빗나갔다.

    그나마 몇 개가 적중했는데, 강력한 전기충격을 주긴 했지만 현석의 움직임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현석은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그곳에서 사라졌다.

    다들 허탈한 눈으로 현석이 사라진 담장을 바라봤다.

    “뭣들하고 있어! 가서 쫓아! 어서 차 가지고 와!”

    팀장의 외침에 경비원들이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둘러 차를 가져와 현석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현석은 이미 그곳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 * *

    “도둑질 한 번 제대로 했군.”

    현석은 팔과 다리에 감긴 줄을 빙글빙글 돌려 풀며 중얼거렸다.

    저들이 쓰는 스턴건은 정말 강력했다. 아마 현석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맞았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강력했다.

    설사 플레이어가 맞더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전류가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현석은 그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다.

    그것이 전기라는 점에서 이미 현석은 그걸 몸으로 받아내며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현석의 전격 저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현존하는 스턴건으로 현석에게 타격을 입히는 건 불가능했다. 설사 그것이 제대로 개조되어 높은 전압과 전류를 가진다고 해도 말이다.

    현석에게 전격으로 큰 타격을 입히려면 벼락을 맞혀야 한다. 그 정도로 전격 저항이 높았다.

    어쨌든 덕분에 현석은 큰 피해 없이 DM케미칼의 금고를 가져올 수 있었다.

    현석은 금고를 열어볼 가장 좋은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역시 제일 안전한 곳은 집이지.’

    현석의 집은 투명던전으로 이어져 있다. 그 안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현재로서는 현석과 류혜연 밖에 없었다.

    문득 현석은 집에 가기 전에 양세희 일행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훈련장에 잠깐 들렀다갈지 말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흔적을 확실히 남기면서.

    아마 DM케미칼측 경비원들은 오늘 깊은 산에서 고생 좀 해야 할 것이다.

    현석은 깊은 산속으로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이동한 후, 최대한 혼란스러운 흔적을 사방으로 남긴 다음 유유히 사라졌다.

    * * *

    “털렸다고? 그 큰 금고를? 그동안 너희들은 뭘 했는데?”

    “그게…… 열심히 쫓았습니다만…… 워낙 미꾸라지처럼 재빠른 놈인지라…….”

    DM케미칼의 대표이사인 도명욱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짚었다.

    “아니…… 그 금고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몰라? 그걸 훔쳐서 달아났다는 건 큰 차를 동원했다는 건데, 그런 차가 공장 근처에 오는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거잖아. 안 그래?”

    만일 그랬다면 확실한 직무유기다. 그리고 그런 놈들에게 공장의 경비를 맡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게…… 그놈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도명욱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그럼 그 무거운 금고를 어깨에 짊어지고 갔다고? 그리고 너희는 그것도 못 쫓아가서 놓치고?”

    “도망칠 때도 빈손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쫓지 못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놈은 날렵하게 담을 뛰어넘었습니다.”

    “담을 뛰어넘었다고? 하긴…….”

    그런 일이 있는데 문을 활짝 열어 두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담을 넘어야 하는데, 공장의 담장은 제법 높기에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그럼 뭐야? 그냥 금고가 사라졌단 말이야? 그럼 근처에 숨겨뒀겠지. 잘 찾아본 거 맞아?”

    “그 큰 금고를 숨길만한 장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금고에는 위치추적기까지 달려있습니다.”

    “그렇지. 위치추적기. 그걸로 찾으면 되겠군. 시도는 해봤나?”

    “신호가 잡히지 않습니다.”

    “고장 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추적기는 제대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금고에 부착한 장치는 워낙 단순해서 고장 날 리 없습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세 개나 붙여뒀는데, 그게 전부 고장났을 리 없습니다.”

    도명욱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럼 대체 뭐야! 금고가 말 그대로 사라진 거야? 이 세상에서 지워져 버린 거냐고!”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 그런 대답을 잘도 하는군. 위치추적기 절대 끄지 말고 그놈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 당장!”

    사내가 꾸벅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후다닥 물러났다.

    도명욱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인상을 썼다.

    “젠장. 거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 갖다 둔 건데, 대체 일이 왜 이렇게 꼬인 거지?”

    도명욱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 일이 알려지면 자신은 끝장이었다.

    안 그대로 DM케미칼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후에는 렉스턴 에너지의 이사가 되기도 약속이 되어 있었다.

    한데 이런 식이면 그 일 자체가 틀어질 수도 있었다.

    “젠장. 그냥 돈이나 쭉 빨아서 튀어야 하나?”

    현재 DM케미칼의 위상은 대단했다. 마음만 먹으면 수천억 정도 땡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걸 들고 잠적해 버릴까 하는 유혹이 순간 들었다가 사라졌다.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절대 도망칠 수 없어.’

    그런 식으로 도망쳤다가 잡히면 답도 없다. 아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 채 고통 속에서 평생을 썩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화가 왔다.

    그것도 평소에는 절대 쓰지 않는 폰으로 온 전화였다.

    도명욱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예. 도명욱입니다.”

    도명욱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전화를 건 사람은 렉스턴 에너지의 칼슨 이사였다.

    실질적으로 렉스턴 에너지를 이끌어 가는 자이기도 했고, 또 지금 벌이는 이 모든 일의 계획을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아닙니다.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니, 무조건 찾아내겠습니다.”

    전화가 길어질수록 도명욱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하게 질려갔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명욱은 전화를 끊고 소파에 털썩 앉아 축 늘어졌다.

    “후우. 그 미친놈을 다시 봐야 한다니 정말 짜증 나는군.”

    칼슨은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칼슨 직속 팀 하나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확실히 전문가였다. 또한 전원이 플레이어로 이루어진 강력한 팀이기도 했다.

    그들이 나선다면 아마 충분히 도망친 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상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미친놈들이었다.

    그런 미친 것들을 받아들여 접대하고 관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래도…… 그놈들을 받기만 하면 이번 일을 눈감아주겠다니 어쩔 수 없지.”

    도명욱은 그 잠깐 사이에 10년은 늙은 것 같았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도명욱의 눈이 번득였다.

    ‘어떤 놈인지 잡히면 절대 가만 안 둔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놓고 평생 괴롭혀주지.’

    도명욱은 그렇게 다짐하며 이를 갈았다.

    < DM케미칼 4 (3권 끝) > 끝

    ⓒ 김강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