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M케미칼 3 >
렉스턴 에너지의 이사인 칼슨은 눈살을 찌푸리며 앞에 선 사내를 노려봤다.
“우리 뒤를 캐는 놈들이 있다고? 그거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수두룩했잖아? 굳이 새삼스럽게 그런 보고를 하는 이유가 뭐지?”
“이번 놈들은 좀 다릅니다.”
“달라? 뭐가? 우리 연구를 빼먹으려는 놈들이겠지.”
“우리와 DM케미칼을 동시에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칼슨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동시에 조사한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같은 놈들이 양쪽을 동시에 캐고 있습니다. 그것도 연구에 대한 정보가 아닌 다른 쪽으로 접근 중인 듯합니다.”
그 말에 칼슨이 묘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그런 걸 알아내다니 대단하군.”
“운이 좋았습니다. 우연히 이상한 점을 발견해서 조사하다보니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연이라…… 우연도 결과가 좋으면 실력이 되는 법이지. 그래서 어떤 놈들이지?”
“한국의 종로 암시장입니다.”
칼슨이 코웃음을 쳤다.
“고작 암시장 놈들이 우리 뒤를 캔다고? 우리가 굳이 거기 신경을 쓸 필요가 있나?”
“그들이 한국 최고의 정보조직입니다.”
그제야 칼슨의 눈이 빛났다.
“특이한 놈들이군. 그럼 암시장은 위장인가?”
“암시장도 정보조직도 다 진짜입니다. 양쪽 모두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으니까요.”
사내는 종로 암시장에 대해 제법 자세히 조사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더 자세한 조사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권한과 힘이 필요했다.
“그놈들이 정보조직이라면 반드시 의뢰한 놈이 있을 텐데? 아닌가?”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하고 조사 중입니다. 한데 그놈들 실력이 상당해서 거기까지 정보를 캐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 흥미로운 놈들이로군.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어떤 놈들이 노리는지 파악했으면 그걸 막는 건 별 거 아닐 텐데?”
“그놈들 뒤를 캐서 의뢰자를 알아내려면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칼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로군.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 원하는 만큼 지원해주지.”
사내가 감사를 표하고 밖으로 나가자 칼슨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너무 싱거워서 재미가 없었는데, 앞으로 제법 즐거워지겠군.”
누군지 모르지만 보통 놈은 아니었다. 렉스턴 에너지와 DM케미칼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말이다.
더구나 렉스턴 에너지는 아직 마정석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에서 렉스턴 에너지를 찾아냈다는 건데,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 그쪽도 운이 따랐겠지.”
그래서 별 걱정은 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그냥 맥없이 당할 놈은 아니니 제법 갖고 놀 만하지 않겠는가. 위험부담도 그리 높지 않을 테고 말이다.
“그나저나…… 슬슬 DM케미칼 쪽은 정리를 시작해야겠군. 괜히 꼬리가 드러나기 전에 말이야.”
칼슨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 * *
담장을 넘은 현석은 빠르게 몸을 숨겼다.
은신 관련 스킬이 있다면 훨씬 쉽고 간단하게 잠입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스킬을 얻지는 못했기에 최대한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안쪽에도 경계를 서는 경비원들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숨을 만한 곳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현석은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동원해 그들의 사각을 잘도 파악해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내부 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물론 들키지 않고 말이다.
‘무슨 공장에 창문도 없어?’
마정석을 정제하려면 어떤 약품이 필요한지 모른다. 하지만 마정석을 녹여 액체 상태로 정제하는 약품이 몸에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마력 기반이라면 얘기가 살짝 달라지긴 하겠지만…….’
마력이 깃든 약품을 쓴다면 사람 몸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몸에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형된 마력이 아닌 순수한 마력을 이용한다면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마력이 보통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최소한 한 번 이상 변형이 이뤄져야 한다.
현석은 아직까지 변형이 이뤄졌는지 아닌지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건물 안쪽이 마력으로 꽉 차 있다는 것만 알뿐 그것이 어떤 작용을 어떻게 해서 어떤 결과를 내고 있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마력 패턴 맞추듯이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점이 좀 아쉬웠다. 밖에서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석은 어렴풋이 마력의 주인이라는 타이틀 효과가 극대화 되면 그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의 주인을 능가하는 타이틀이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마력의 신쯤 되지 않을까? 왠지 있을 것만 같았다.
현석은 건물에 바짝 붙어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봤다.
창문도 없고 통풍구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위로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현석은 위로 점프한 다음 벽을 디디고 더 위로 쭉 올라갔다.
그렇게 몇 번 벽을 디딘 것만으로 옥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옥상에도 경비 인력이 있었다. 하지만 아래처럼 많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래를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다.
이들의 눈을 피해 올라오느라 상당히 힘들었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올라온 이상, 들키지 않고 몸을 감추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아래와 달리 옥상에는 숨을 곳이 제법 있었다.
벽에 보이지 않던 환풍구가 옥상으로 이어져 있었다. 공기를 펌핑해서 위로 쭉쭉 뽑아올리는 구조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환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는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게다가 마력이 섞여있어.’
아무래도 마력이 담긴 약품으로 마정석을 정제하는 모양이었다.
통풍구는 상당히 좁았다. 작은 동물이라면 몰라도 사람이 통과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래로 내려갈 방법이 통풍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과 문이 있었으니까. 물론 잠기긴 했지만 말이다.
현석은 빠르게 문으로 다가갔다. 다들 아래쪽만 주시하고 있기에 소리나 기척만 내지 않으면 들킬 염려는 없었다.
옥상의 중앙은 완벽한 사각이나 다름없었다.
현석은 문고리를 잡았다. 잠긴 문을 여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현석에게는 말이다.
소리 없이 잠금이 풀렸다. 그리고 역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문이 스르르 열렸다. 현석은 문으로 들어간 다음 다시 문을 닫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건물 안은 방비가 덜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비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현석은 일단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3층 건물이었는데, 진짜 공장은 1층에 있었다.
1층과 2층을 터서 커다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마정석을 정제했다.
그리고 3층에는 사람들이 지내는 데 필요한 시설과 공장 관리자들이 머무는 사무실이 있었다.
현석은 일단 공장 쪽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오니 들킬 염려가 대폭 줄어들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럴수록 허를 찔려 당할 확률이 높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공장의 마정석 정제는 지극히 단순했다.
커다란 상자에 담긴 마정석들을 특이하게 생긴 틀에 하나씩 올려놓고, 그 위에 사람이 투명한 액체를 조금씩 뿌려주면 끝난다.
그렇게 하면 틀에 있던 마정석이 녹으면서 틀 아래로 흘러가는데, 틀 위에는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가 걸러지고, 에너지로 변환이 가능한 마력이 담긴 액체가 아래에 있는 통으로 흘러가는 구조였다.
현석은 저 정제 과정을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지만 아래쪽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문득 액체를 흘리는 사람들이 모두 플레이어라는 것을 발견했다.
현석은 반사적으로 사방에 떠오른 글자들을 확인했다. 심안은 끊지 않고 계속 펼치고 있는데, 막상 떠오른 글자를 잘 확인하지 않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어쨌든 글자를 확인한 현석의 눈이 살짝 빛났다.
[화력정제수-마정석을 녹여 불의 힘을 담는다. 마력에서 불의 힘만 뽑아내기 때문에 나머지 마력이 담긴 부분은 찌꺼기로 남는다.]
‘저래서 효율이 떨어진 거였군.’
확인을 하고 나니 왜 DM케미칼 쪽의 효율이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마정석에서 화력으로 뽑아내기 좋은 마력만 정제해 에너지로 변환한 것이다.
현석은 남은 찌꺼기에 눈이 갔다.
‘저건 아마…… 아무나 이용할 수 없을 텐데.’
[마정석잔재-마정석에서 특정 마력을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 마력을 넘어서야 이용이 가능하다.]
마력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저건 타이틀을 말하는 게 분명하다.
문제는 자신이 가진 마력의 주인이 더 상위인지 아니면 저 마력을 넘어선 것이 더 상위인지 애매하다는 점이었다.
‘해보면 되지.’
아마 저 찌꺼기들은 한데 모아 보관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써먹을 수 없다는 걸 지금쯤 깨달았을 테니 실험에 쓰는 약간을 제외하면 아마 대부분 방치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역시 와보길 잘했어.’
사실 DM케미칼에 대해 조사하려면 3층에 있는 사무실을 살펴보는 것이 빠르다. 그런데도 굳이 여기 공장을 확인한 것은 특별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저기에 불의 마력을 집어넣으면 다시 마정석으로 돌아가는 건가?’
현석의 눈이 흥미로 빛났다. 한 번쯤 해볼 만한 실험이었다. 그리고 실험 자체가 어렵지도 않았다.
불을 내뿜는 마수만 있으면 된다. 그놈들이 내뿜는 불이 바로 불의 마력이 응축된 힘이니까.
‘아니면…… 수련 삼아 내가 직접 해도 되고.’
현석은 저렇게 특정 성질을 가진 마력만 따로 다루는 것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만일 저게 자유자재로 가능해진다면, 그저 마력을 컨트롤 하는 것만으로 스킬에 준하는 위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현석은 일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충분히 확인했다. 그래서 마정석 찌꺼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냈다.
밖으로 내다 버리지는 않았다. 공장 내에 마련된 페자재 창고에 쌓아놓는 모양이었다.
현석은 3층으로 가기 전에 일단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 몇몇이 마정석 찌꺼기를 모아 폐자재 창고로 가는 중이었다. 현석은 은밀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페자재 창고는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마정석 찌꺼기의 양도 엄청났다.
폐자재라서 그런지 안에는 흔한 CCTV하나 없었다. 여기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은 결국 버려야 한다. 그러니 굳이 이런 곳을 감시하고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현석은 부담 없이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꺼냈다.
창고는 컨테이너 박스를 꺼내도 전혀 무리 없을 정도로 충분히 넓고 높았다.
현석은 마정석 찌꺼기를 모조리 컨테이너 박스 안에 담았다. 아무리 양이 많다고 해도 마정석을 쓰는 일인데 그것이 컨테이너 박스를 가득 채울 정도는 되지 않았다.
절반도 채 못 채웠지만, 만일 이걸 전부 마정석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양이 정말 어마어마할 것이다.
DM케미칼이 마정석을 통한 에너지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6개월이 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이 정도 마정석을 사들일 수 있는 것이고 말이다.
어쨌든 다시 컨테이너 박스를 아공간에 넣은 현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창고에서 나왔다.
물론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아직 일이 다 끝나지 않았으니 절대 들켜선 안 된다.
현석은 곧장 3층으로 향했다. 이제 이곳에서의 진짜 볼일을 해결할 때였다.
< DM케미칼 3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