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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74화 (74/326)
  • < DM케미칼 2 >

    밖으로 나온 세 여인은 근처에 마련된 휴식 시설을 이용하며 적절히 쉬었다.

    이 개별 던전이 있는 장소는 경기도에 있는 산자락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산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는데, 현석은 그 근처의 땅을 모두 사들였다.

    그리고 가건물을 지어 던전을 감췄다.

    그 과정에서 정보가 새 나갈 염려는 없었다. 건축 자체를 종로 쪽에 의뢰해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격은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충분히 비싼 값을 치를 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현석은 그렇게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땅을 사고 건물을 지었다. 물론 건물을 지을 때는 종로 암시장의 도움을 받았다.

    건물도 그냥 대충 짓기만 한 게 아니었다. 건물 외벽과 내벽에 충분한 조치를 취해 밖에서 마력탐지기로 감지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20년쯤 후에는 이런 식으로 마력을 감추는 기술이 상당히 대중화 되어 있었다.

    현석은 그저 대중적인 방식의 보안체계만 갖췄을 뿐이었다. 그보다 상위의 체계는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조차 현 시대에서는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개별 던전을 하나하나 확보하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기억에 강하게 남은 개별 던전들을 찾아다니면서 확보했는데, 이제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 기억을 뒤져야 간신히 하나 떠오르곤 했다.

    현석은 일단 어떤 식으로든 쓸모가 있는 개별 던전만 확보했다.

    예를 들어 양세희가 군체지렁이와 싸우던 지렁이굴이라든가, 아니면 지금 세 여인이 팀을 이뤄 사냥 중인 긴 뿔 철갑곰 사냥터 같은 던전들 말이다.

    개중에는 정말 특별한 던전들도 있었다. 아주 특별한 재료를 얻을 수 있는 던전들이었는데, 레인보우 엘릭서의 재료 중 상당수를 확보한 셈이었다.

    레인보우 엘릭서의 재료들은 절반 이상이 개별 던전이 아니면 구할 수 없기에 이런 식으로 개별 던전을 확보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했다.

    현재 현석은 비단 레인보우 엘릭서의 재료뿐 아니라 다른 특별한 재료를 토해내는 던전들을 다수 확보하거나, 혹은 확보를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맡아 진행하는 사람이 바로 양동욱이었다.

    현석은 양동욱을 얻은 뒤로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슬슬 또 들어가야 할 시간이에요.”

    류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류지혜와 양세희가 질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세상 너무 타이트하게 사는 거 아니니? 좀 더 쉬어도 돼. 그리고 아직 5분이나 남았잖아.”

    양세희의 말에 류혜연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서 목적지까지 가는데 5분 넘게 걸리잖아요. 지금부터 들어가면 돼요. 현석 오라버니께서 하신 말씀 잊으셨어요?”

    “그놈의 현석 오라버니, 아주 귀에 딱지가 앉겠다.”

    양세희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여기에 오기 전에 현석이 해준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던전의 마수를 한 차례 소탕한 후, 시간이 지나 다시 마수가 등장하는데, 그 순간에는 던전 안에 있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마수가 던전에 등장하는 순간 상당히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던전에 꽉 차는데, 그것이 레벨업에 제법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들었는데 여기서 시간을 뭉개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양세희도 나름 야심찬 사람이었다.

    ‘언젠가는 세계 최고가 되는 게 꿈인데…… 저 녀석 때문에 안 되겠네.’

    양세희의 시선이 류혜연에게로 향했다.

    사실 류지혜의 재능을 처음 확인했을 때도 놀랐지만 류혜연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추광열이나 라이언이 저런 식일까?’

    만일 그렇다면 자신은 평생 노력해도 그들을 쫓아갈 수 없으리라.

    양세희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 버렸다.

    현석을 믿고 따르다 보면 언젠가는 꿈에 근접하지 않겠는가. 세계 최고는 못 되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 수 있을 것이다.

    “자, 가자!”

    양세희가 기세 좋게 한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그리고 그녀는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몸도 표정도.

    마침 건물 안으로 들어온 현석과 정통으로 눈이 마주친 것이다.

    ‘아우! 쪽팔려!’

    류지혜나 류혜연에게는 워낙 볼 꼴, 못볼 꼴을 서로 확인했기에 더 이상 무슨 짓을 해도 부끄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현석은 아니었다. 아니, 다른 사람에게는 다 들켜도 현석에게만큼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어, 언제 왔어요?”

    “귀에 딱지가 앉을 때부터.”

    양세희의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뭐야, 그때부터 왔으면 왔다고 말이나 좀 해주지!’

    양세희는 살짝 원망을 담아 현석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좀 떨어진 곳에서 둘이 딱 붙어 있는 류지혜, 류혜연 자매를 바라봤다.

    둘 역시 놀란 표정으로 현석을 보고 있었다. 현석이 들어온 줄도 몰랐다는 뜻이다.

    ‘무슨 사람이 유령처럼 기척도 없이 다녀?’

    양세희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현석을 바라봤다.

    “여긴 왜 왔어요? 잘하나 감시하려고요?”

    현석은 대답 대신 세 여인의 정보를 확인했다. 각자 여기 오기 전보다 레벨이 대폭 향상되었다.

    레벨뿐 아니라 각자의 특성에 맞게 성장한 스탯을 보고 있으니 내심 고개가 끄덕여졌다.

    ‘계획대로야.’

    하지만 아직 멀었다. 보아하니 이곳에서 하루나 이틀쯤 더 사냥을 하다가 다음 단계로 옮기면 될 듯했다.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요?”

    마침 양세희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사실 계속 같은 사냥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일주일.”

    현석의 대답에 양세희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일주일이나 더 여기서 버티면 아마 반쯤은 미쳐버리지 않을까?

    힘없이 축 늘어지는 양세희를 보는 현석의 눈가가 살짝 가늘어졌다.

    그것이 웃음을 참고 있는 표정이라는 걸 류혜연이 대번에 알아봤다.

    그녀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양세희와 현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틀 후에 다음 던전으로 이동한다.”

    현석의 말이 바뀌자, 양세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는 양팔을 번쩍 들고 외쳤다.

    “만세!”

    현석은 양세희가 만세를 부르건 말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류지혜와 류혜연 쪽을 쳐다봤다.

    ‘놀랍군.’

    류지혜야 애초에 재능을 알고 있었으니 놀랄 것도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예상보다 좀 못했다. 사실 이보다 훨씬 더 성장이 빠를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데 류혜연은 정말로 놀라웠다. 천재가 있다면 바로 저런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조만간…… 나머지 두 사람을 앞지르겠는데?’

    원래 있던 레벨 차이를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레벨업 속도였다.

    그뿐 아니라 스킬의 발전 속도도 놀라웠다.

    류혜연이 가진 스킬, 비단결 같은 손길은 그 숙련도가 벌써 76에 달했다. 이것 역시 상식을 초월하는 성장속도였다.

    심지어 목숨 걸고 훈련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니, 만일 진짜 제대로 마음먹고 달려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사실 지금 이 던전에서 이틀을 더 있겠다는 건 대부분 양세희 때문이었다.

    다음 던전은 양세희가 체력 50을 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곳이었다.

    철벽 스킬이 두 배로 뻥튀기 되지 않으면 갈 엄두도 못 내는 던전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던전이었다.

    “그런데 진짜 여긴 어쩐 일이죠? 이틀 후에 이동할 거면 그때 와도 되는데. 바쁜 거 아니었어요?”

    류지혜가 조심스럽게 나서서 물었다.

    “마침 근처에 볼일이 좀 있어서.”

    공교롭게도 이 근처에 DM케미칼의 공장이 있었다. 그곳은 오직 마정석을 특별한 방법으로 정제만 하는 곳이었다.

    실제 연구실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정제 공정의 대부분이 이뤄지기에 보안이 더없이 철저한 곳이었다.

    DM케미칼은 마정석을 한 차례 정제해서 액체 형태로 변형시켜 에너지를 뽑아낸다.

    일단 액체 형태로 만들면 그걸 응용하기도 생각보다 편하다. 용기의 모양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서울에 있었지만 공장은 이곳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 부근에 있었다.

    “아…… 따로 볼일이 있으셨구나.”

    류혜연이 살짝 아쉬운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왕 이렇게 오셨으니 우리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 안 되나요?”

    양세희가 류혜연의 표정을 보고는 얼른 제안했다.

    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밥 한 끼 먹는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이들은 미래에 현석에게 큰 도움이 될 인재들이었으니까.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류혜연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류지혜와 양세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왠지 풋풋한 느낌이 들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디서 뭐 먹을 거예요?”

    “여기서 먹지. 마침 괜찮은 식재료도 있으니까.”

    현석의 말에 양세희는 순간 불길한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설마 그 껍질 꺼내시려는 건 아니죠?”

    그 껍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류혜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석과 양세희를 번갈아 바라봤다.

    하지만 그 진실을 직접 목격한 류지혜는 창백한 얼굴로 현석을 바라봤다. 설마설마 하는 표정이었다.

    “맞는데? 왜? 맛이 없나? 내 생각엔 맛이나 식감이 상당히 뛰어난 것 같은데?”

    “아니거든요!”

    양세희와 류지혜가 동시에 외쳤다. 그녀들은 현석에게 달려들어 각각 한 팔씩 꽉 끌어안았다. 절대 여기서 뭘 해결하게 둬선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손아귀에 꽉 담겼다.

    “우리 나가서 먹어요. 근처에 고깃집 있는 거 같더라고요.”

    “어떤 고기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고기가 훨씬 맛있을 것 같은데?”

    “아니라고요!”

    두 여인이 또 동시에 외쳤다.

    그녀들은 억지로 현석을 끌고 건물에서 나갔다. 물론 나가기 전에 문을 꼭 잠그는 걸 잊지는 않았다.

    현석은 굳이 저항하지 않고 그녀들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에서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영문을 모르는 류혜연이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따라갔다.

    * * *

    현석은 적당한 높이의 야산에 올랐다. 그 산은 DM케미칼의 공장 뒤쪽에 있는 산이었다.

    제법 높은 곳이었고, 공장과 가까운 편이었기에 공장 내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하지만 그건 담장 안쪽일 뿐이고 건물 안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건물에는 창문도 없었다.

    현석은 굳이 망원경이 없어도 공장 안쪽을 마치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공장 전체를 기묘한 마력이 감싸고 있었다. 저 안에서 분명히 마력 적인 장치가 가동되고 있었다.

    그게 아마도 마정석을 정제하는 장치일 것이다.

    현석은 마력의 흐름을 가만히 분석해 봤다. 물론 마정석 정제 과정을 알아내겠다는 심산은 아니었다.

    마정석 정제 말고 다른 곳에 쓰이는 마력 물품이 있을지도 몰라 확인하는 중이었다.

    제법 거리가 멀었지만 현석은 거대한 마력의 흐름 사이에 불협화음처럼 끼어들어 있는 이질적인 마력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마력에 대한 감각이 점점 예민해지고 있었기에 이런 일에 큰 도움이 되었다.

    ‘플레이어들이로군.’

    특별한 아티팩트가 아닌 플레이어들이 품은 마력이 분명했다. 저 안에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한데 왠지 플레이어들이 저 공장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기엔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품은 마력이 너무 적었다.

    고작해야 20레벨 정도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아무래도…… 담을 넘어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안에서 확인한다고 해서 뭔가 중요하고 특별한 걸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꼭 확인해봐야 할 것만 같았다. 이건 그냥 순수한 현석의 예감이었다.

    언제나 잘 들어맞는 예감 말이다.

    현석은 야산에서 내려가 공장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공장 주변은 삼엄한 경계 중이었다. 경비업체와 계약을 한 건지, 아니면 자체적으로 고용한 건지 모르지만, 수십 명의 경비원이 공장 주변을 빈틈없이 순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스턴건과 삼단봉, 그리고 방탄조끼로 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일반인이었다. 반면 현석은 100레벨이 넘은 플레이어였다.

    현석이 마음먹고 움직이면 그들이 제대로 그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스으윽.

    현석은 미약한 바람만 남기고 경비원들을 지나쳤다.

    이미 야산 위에서 담장 안쪽은 확인했기에 어느 쪽으로 넘어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동선을 머릿속에 다 짜뒀다.

    현석은 순식간에 담장을 넘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 DM케미칼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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