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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73화 (73/326)
  • < DM케미칼 1 >

    현석은 양동욱으로부터 받은 보고서를 쭉 읽었다. 별로 특별할 건 없었다.

    원래는 평범한 회사였는데, 1년 전부터 던전 관련 물품을 이용한 연구소를 설립해 막대한 지원을 했고, 결국 거기에서 대박이 터졌다.

    아직 렉스턴 에너지 쪽은 조용했다. 거기에 대해 아는 건 아직 현석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벌써 그쪽으로 주식 투자 방향을 바꿨다.

    DM케미칼 쪽 주식은 이미 모두 처분했다.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앞으로 벌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현석은 그 모든 돈을 렉스턴 에너지에 집어넣었다.

    역시 주가도 바닥이었기 때문에 쉽게 그걸 사들일 수 있었다.

    양동욱은 자신의 보고서를 찬찬히 읽는 현석을 긴장한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양동욱의 물음에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정리가 잘 됐네. 한데…… 내가 원하는 정보는 이런 게 아니야.”

    “예? 그럼 뭘 원하시는 겁니까?”

    “좀 더 비밀스러운 부분에 대해 알고 싶은 거지.”

    “비밀스러운 부분? 그러니까 비리 같은 거 말씀하시는 겁니까? 혹시 거기랑 원한관계라도…….”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어차피 그 회사는 오래 못 가. 그러니 그 전에 최대한 알아볼 건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예? 여기가 오래 못 간다고요? 여기 어떤 회사인지 모르십니까?”

    양동욱이 황당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여긴 지금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 주식은 현재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당연했다. 마정석에서 에너지를 뽑아내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회사였으니까.

    게다가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언제든 마정석을 통해 에너지를 뽑아낼 준비가 된 것이다.

    “아마 특별한 일만 없으면 앞으로도 최소 10년은 승승장구 할 겁니다. 그런 회사가 곧 망한다고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특별한 일이 벌어질 테니까. 혹시 그 회사 주식 갖고 있으면 서둘러 파는 게 좋을 거야.”

    현석의 말에 양동욱이 움찔 몸을 떨었다.

    “설마 내가 준 자금에 손을 댄 건 아니겠지?”

    양동욱이 맹렬히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까지 쳤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투자하지 말라고 해서 그 돈은 손 안 댔습니다. 전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입니다.”

    현석은 그런 양동욱을 가만히 쳐다봤다. 현석이 준 자금이야 안 건드렸겠지만, 분명히 뭔가 사고를 쳤다.

    “뭐…… 그동안 세희가 모아놓은 돈을 좀 빌려서 썼을 뿐입니다.”

    멋적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던 양동욱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말했다.

    “저도 이제 돈 좀 모아야 장가도 가고 할 거 아닙니까. 솔직히 이렇게 해서 돈 좀 불리면 세희한테도 좋은 거니까…….”

    “당장 팔아.”

    “이거 오늘 간신히 구한 건데요?”

    그냥 구한 게 아니라 웃돈까지 얹어서 샀다. 만일 여기서 그냥 시세대로 판다면 본전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할 만큼 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결정은 양동욱이 하는 것이다. 물론 한 마디 정도 더 해주는 친절은 잊지 않았다.

    어쨌든 양동욱은 앞으로 오랫동안 현석과 함께 해야 할 사이인데 굳이 나쁜 길로 가는 걸 방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마 군체지렁이한테 온몸의 구멍을 점령당하게 될 거야. 장담하지.”

    현석의 말에 양동욱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군체지렁이가 뭔지는 봐서 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지독한지도 안다.

    양동욱은 현석의 말을 들으며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이 지렁이로 꽉 차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으웨엑!”

    헛구역질을 했다. 하마터면 진짜로 토할 뻔했다. 양동욱은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저 말만 한 것뿐인데 마치 머릿속에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하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저거…… 분명히 능력이야. 젠장.’

    양동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고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앉은 자리에서 생돈이 훅훅 날아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니 속이 쓰렸다.

    “조사는 가능한가?”

    현석의 질문에 양동욱이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번 일은 자기 힘으로 해보고 싶었다. 한데 저 정도 조사를 원한다면 종로 쪽에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뭐…… 인맥도 능력이지. 게다가 나만 인연이 있는 게 아니니까. 자고로 쓸모 있는 건 써먹어야 하는 법이지.’

    거기까지 계산을 마친 양동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 가능할 겁니다. 종로 쪽이 실력 하나는 끝내주니까요.”

    “다행이군. 그런데 외국 쪽 정보를 얻을 방법이 있나?”

    양동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단치 않은 정보는 종로 쪽에 의뢰하는 게 어설픈 외국 정보조직보다는 나을 겁니다. 하지만 난이도가 좀 있는 정보를 원한다면 큰 업체를 이용해야 합니다.”

    “그것도 같이 알아보도록.”

    “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종로 쪽이랑 연계하는 유명한 조직이 세 군데 정도 있으니까요.”

    종로 쪽에 얘기하면 연결은 시켜준다는 뜻이었다.

    “그 셋 중에서 어디가 제일 낫지?”

    “각자 영역이 다릅니다. 실력이야 다들 비슷하니 어떤 정보를 원하느냐에 따라서 고르시면 됩니다.”

    “렉스턴 에너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렉스턴 에너지?”

    양동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 유명한 회사가 아니었기에 이름이 생소했다.

    “DM케미칼처럼 비밀스러운 부분에 대해 조사하면 된다.”

    양동욱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냥 의뢰하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요. 그 비밀스러운 부분에 대해 좀 더 명확히 해주셔야 일 진행이 편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이든 알아내라고 하면 돼. 최종 목적은…… 배후가 되겠지.”

    “배후? 그놈이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습니까? 설마 테러단체 지원하고 그런 겁니까?”

    현석은 양동욱의 질문에 돈 얘기를 꺼냈다.

    “의뢰금은 얼마가 되든 상관없으니 최고 수준의 정보를 원한다고 전해.”

    양동욱이 기겁을 했다.

    “거기 어마어마하게 비쌉니다.”

    현석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어마어마한 가격에 걸맞은 정보라면 좋겠군.”

    양동욱이 질린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현석이 가진 돈도 만만치 않았다. 그 어마어마한 의뢰금이 푼돈처럼 느껴질 정도로 막대한 부를 쌓은 사람이니까.

    물론 양동욱은 현석이 가진 재산을 전부 파악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그 정도니 진짜 돈은 얼마나 많겠는가.

    양동욱은 현석을 잠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노트북을 닫았다.

    ‘주식도 팔았고……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양동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걸 본 현석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정 주식을 사고 싶으면 렉스턴 에너지를 사는 게 좋을 거야.”

    “예?”

    양동욱은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설마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가만, 그럼 렉스턴 에너지를 조사하라는 것도…… 설마 주식 때문인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는 양동욱을 뒤로하고 현석은 그 자리를 떴다.

    ‘DM케미칼 쪽은…… 내가 직접 한 번쯤 가보는 게 좋겠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마정석에서 에너지를 뽑아냈는지 말이다.

    * * *

    “하아. 하아. 하아.”

    양세희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이젠 때려 죽여도 더는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은빛 가루가 몸 위로 쏟아졌다. 아니, 사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런 기분이 들었을 뿐이다.

    양세희의 몸에 활력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는 죽어도 못 일어날 것 같았는데, 이젠 좀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문도 아니고 이 무슨…….”

    양세희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안타깝지만 힘 내세요. 저기 또 오고 있어요.”

    류혜연의 말에 양세희가 울상을 지었다.

    “차라리 날 죽여…….”

    그런 양세희의 어깨를 어느새 같이 누워있다가 일어난 류지혜가 토닥여 주었다.

    “저놈만 잡으면 끝이야. 힘 내.”

    저 멀리서 산처럼 거대한 흑곰 한 마리가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긴 뿔 철갑곰이었다.

    이름 그대로 곰의 이마에는 길쭉한 뿔이 나 있었는데, 달려오는 폼이 그걸로 적의 배를 꿰뚫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팍팍 느껴졌다.

    “아오! 그만 좀 와!”

    양세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켜 방패를 들었다.

    꽈앙!

    격렬한 폭음이 울렸다. 철갑곰의 뿔이 양세희의 방패와 충돌한 것이다.

    놀랍게도 양세희는 한 발도 밀리지 않았다.

    “하아압!”

    양세희의 몸에서 마력이 뭉텅뭉텅 쏟아져 나왔다. 스킬 철벽을 펼치는 중이었다.

    철갑곰은 돌진이 먹히지 않자, 큰 몸을 일으켜 양팔을 맹렬히 휘저었다.

    꽝! 꽝! 꽝! 꽝!

    하지만 양세희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 모든 공격을 버텨냈다. 방패를 이리저리 움직여 철갑곰의 팔공격을 모조리 막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류지혜가 움직였다.

    그녀는 은밀하게 양세희의 몸을 이용해 철갑곰의 시야에서 슬쩍 벗어나 빠르게 접근했다.

    철갑곰은 온몸이 철갑처럼 단단하다. 그렇기에 웬만한 물리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리 공격만으로 공략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겨드랑이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턱 아랫부분이었다.

    그 두 군데에는 철갑이 없는 부드러운 살이기에 칼로 찌르면 아주 깊숙한 곳까지 푹 들어간다.

    류지혜는 일단 파고들었다. 겨드랑이든 턱밑이든 먼저 빈틈이 드러난 쪽에 칼을 쑤셔 넣을 작정이었다.

    ‘겨드랑이!’

    파고들자마자 빈틈이 보였다. 양세희가 방패로 팔공격을 막는 순간 타이밍 좋게 후려치는 바람에 철갑곰의 팔이 잠깐 멈칫한 것이다.

    푸욱!

    류지혜의 검이 철갑곰의 겨드랑이를 깊이 파고들었다.

    “꾸어어어어어엉!”

    철갑곰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마구 발광했다.

    양세희와 류지혜가 황급히 거기서 벗어났다.

    철갑곰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히 쓰러져 버렸다.

    쿠웅!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사냥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아야 하는 심력과 체력과 정신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치유의 힘을 담은 마력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살짝 떨어진 곳에 서서 이쪽으로 손을 뻗고 있는 류혜연을 바라봤다.

    치유의 힘을 뿌리는 순간의 류혜연은 또 평소와 달랐다. 예전 마력중독에 걸렸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 팀에 남자는 절대 안 돼.’

    두 사람이 동시에 떠올린 생각이었다.

    “저 또 레벨 하나 오른 거 같아요!”

    때마침 들려온 류혜연의 외침에 두 사람의 표정이 그대로 일그러졌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두 사람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류혜연을 멍하니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 상식에서 벗어난 레벨업은 언제까지 계속되는 걸까?

    물론 류혜연의 레벨이 높아지면 이쪽도 살 확률이 높아지니 좋은 일이긴 했다.

    사실 방금 사냥은 운도 좋았고, 호흡도 잘 맞아서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하지만 원래 류지혜의 전투감각은 별로 뛰어나지 않아 부상을 달고 살아야 했다.

    시기적절하게 터져 나오는 류혜연의 치료 스킬이 아니었으면 벌써 어디 한 군데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죽었거나.

    류혜연의 치료스킬인 비단결 같은 손길은 이제 제법 긴 거리를 격하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일단…… 나가죠.”

    양세희의 말에 류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제 다섯 시간은 있어야 다시 마수가 생겨날 것이다.

    그들은 던전에서 나가며 생각했다.

    ‘대체 그 사람은…… 이런 개별 던전을 몇 개나 알고 있는 걸까?’

    < DM케미칼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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