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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72화 (72/326)

< 새로운 가능성 5 >

현석은 경기도 쪽 창고를 모두 훑었다. 그리고 다음 약속까지 잡은 다음에야 추경훈을 놓아줬다.

추경훈은 헤어지는 순간 질린 눈으로 현석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봤다.

현석은 그런 추경훈을 뒤로하고 집으로 걸어가며 피식 웃었다.

‘아마 뭐에 홀린 기분이겠지.’

아무리 추경훈이 환상 때문에 협박을 당한다 해도 원래라면 이렇게 쉽게 현석이 그를 다룰 수는 없었다.

그 역시 오랫동안 수라장 같은 삶을 겪어온 사람이었다. 한데 현석처럼 어린 사내에게 맥없이 끌려다니기만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추경훈이 이렇게 된 건 마족의 알 때문이었다.

현석이 추경훈 일당에게 한 건, 정신계 마족의 알을 이용해 진실 같은 환상을 심는 것이었다.

더불어 마족의 알을 가진 주인에게 정신적 반항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현석은 마족의 알을 얻은 후, 거기에 꾸준히 자신의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 때문에 마족의 알은 현석을 주인으로 인식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했지만 현석은 미래를 위해 그 정도 수고를 아낄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렇게 훌륭하게 나타났다.

아마 추경훈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던 50명의 플레이어도 비슷할 것이다.

물론 추경훈과는 살짝 다르다. 추경훈은 마족의 알에 좀 더 깊이 중독되어 있었다.

현석이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추경훈만 제대로 제압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테니까.

어쨌든, 추경훈은 이제 현석과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생각할 것이다. 정상적으로 계산이 가능해지면 또 다음 수작을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어차피 현석을 만난 순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현석은 추경훈에 대한 생각은 거기까지로 접고, 오늘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떠올렸다.

오늘처럼 심안을 혹사시킨 건 아마 처음일 것이다.

일단 던전관리센터의 창고에 들어간 순간부터 쏟아지는 글자의 향연에 머리가 지끈지끈 녹아버릴 것 같았다.

게다가 창고 안을 돌아다니며 마력의 정수를 찾느라 모든 물품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런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하다보니 당연히 과부하가 걸렸다.

현석은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 끊임없이 창고를 돌아다녔다.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심안의 성장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예상했던 대로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혹사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현석의 심안은 이제 한 단계 성장할 준비에 들어갔다.

[심안-마음의 눈을 뜬, 과거로 되돌아온, 마력의 주인 타이틀이 있어야 획득 가능한 스킬. 능력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마력이 담긴 모든 것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3단계 성장 중(1/100)]

심안의 스킬 설명에 새로운 것이 추가되었다. 3단계 성장 중이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1을 성장시켰다. 저걸 100까지 성장시키면 3단계가 개방된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그럼 지금까지 2단계였단 뜻이네.’

단계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현재 2단계라는 것도 몰랐다. 그저 편리하니 썼을 뿐이다.

현석은 문득 과연 심안은 몇 단계까지 성장이 가능하며 모두 성장시키면 어떤 효능을 발휘할지 궁금해졌다.

‘설마 사람 마음을 읽고 그러는 건 못 하겠지?’

현석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아마 이번 성장이 끝나면 전에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 효과는 있지만 글로 나타나지 않던 것이 나타나게 된다거나, 아니면 예전 추광열에게 받은 팔찌처럼 ???로 표기되던 것들이 명확하게 표시된다거나.

어쨌든 오늘은 심안의 성장 발판을 마련할 정도로 혹독하게 몰아붙인 덕분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력의 정수를 얻었다.

대부분이 4등급이었고, 4등급을 제외한 나머지의 대부분은 또 3등급이었다.

하지만 1등급도 13개나 얻었으니 정말로 대단한 성과였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마력의 정수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장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현석이 그걸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레인보우 엘릭서의 제조법은 상당히 비밀스러웠다. 그걸 만들 수 있는 회사도 세 군데밖에 없었다.

그 세 회사가 레인보우 엘릭서의 제작과 판매를 도맡아 했고, 그걸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그러니 현석이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어 복용하려면 누군가 만드는 법을 개발해 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마력의 정수를 제대로 보관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내야 하고 말이다.

‘방법이 있긴 한데…….’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회귀 전에 주워들은 방법이었는데, 마력의 정수를 1차 가공하는 것이었다.

왠지 그렇게 하면 더 이상 마력 응집력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방법 역시 모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지식이 있지. 그리고…….’

현석은 자신이 등에 메고 있는 백팩을 힐끗 쳐다봤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샘플이 있고.”

일단 4등급조차 안 되는 것들을 나중에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굳이 써먹지 않을 것이다.

실패율이 높은 재료를 굳이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마력의 정수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은 마력의 정수를 이용해 실험을 하면 된다.

‘그래도 맨땅에 헤딩을 할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방법을 찾아보긴 해야 하는데…….’

현석은 문득 처음 레인보우 엘릭서를 개발한 사람은 대체 그걸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의 정수라는 건 사실 특별한 장치를 이용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도 없는 물건이다.

현석처럼 마력의 주인 타이틀을 가진 마력 컨트롤과 감각의 달인이나 되어야 그냥 구분할 수 있다.

그런 마력의 정수를 애써 구해서 그걸 이용해 레벨업을 도와주는 엘릭서를 만들었다?

왠지 앞뒤가 잘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빛을 발했던 현석의 감이 발동했다.

‘던전이야!’

현대 인간은 마력에 대해서는 정말로 무지하다. 그건 나중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력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 아이러니한 상황은 모두 던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인간들이 마력에 대한 지식을 얻는 방법은 연구도 있지만, 던전으로부터 얻는 것이 정말로 컸다.

‘슬슬 화이트홀에 가봐야 하나?’

아직까지 화이트홀에 대해 알려진 건 별로 없다.

사실 던전생성지역 내에 발생하는 화이트홀은 별 쓸모가 없기도 하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화이트홀도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개별던전이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직 발견된 화이트홀이 없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발견되었을 수도 있지.’

그리고 그 화이트홀을 탐사해 여러 가지 지식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현석의 뇌리에 DM케미칼이 떠올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DM케미칼을 망하게 하는 회사, 렉스턴 에너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렉스턴 에너지는 석유자본의 힘으로 세워진 회사였다. 그들은 DM케미칼이 개발한 방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효율의 에너지 추출법을 개발한 회사였다.

‘과연 이 짧은 시간 동안 마정석을 그렇게 잘 다룰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사실 DM케미칼도 의심스러웠다. 마정석에서 에너지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던전에서 나오는 물품이 반드시 필요했다.

즉, 마력이 담긴 재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한 세밀하면서도 정확한 정보가 무수히 필요했다.

과연 그런 정보를 어떻게 얻었을까?

‘던전밖에 없지.’

렉스턴 에너지에 대해서 조사할 필요가 생겼다. 더불어 DM케미칼 쪽도 말이다.

‘일단…… 빠른 쪽부터.’

현석은 전화기를 꺼냈다. 이럴 때마다 종로의 황 노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종로로 직접 연락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 직접 부려먹을 사람이 생겼으니까.

현석이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양동욱이 전화를 받았다.

“정보 수집도 가능한가? 종로에 의뢰해도 돼.”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오늘은 아주 즐거운 날이다. 또 아주 기념할 만한 날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린 날이니까.

* * *

진대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사내를 노려봤다.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나? 뭐? 실패? 고작 정보 몇 개 캐는 게 그렇게 어려워?”

“하지만…… 레드드래곤 쪽 보안이 너무 철저해졌습니다. 저희 쪽에서 심어 놓은 자들도 다 잘려나갔고…… 파고들 여지가 너무 없습니다.”

“그걸 해내는 게 네가 할 일 아닌가? 그렇게 말로 다 때울 거면 왜 그 자리에 앉아 있어?”

사내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 말이 옳기 때문이다.

그가 할 일은 사실 한국 플레이어 세상의 정보를 관리하는 것이다.

진대호는 그에게 레드드래곤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데 다른 모든 걸 포기하다시피 하고 레드드래곤에 매달렸는데도 성과를 얻지 못했다.

“레드드래곤이 요즘 얼마나 성장이 빠른지 알고 있나?”

“아, 알고 있습니다.”

“왜 빠른지도 알고 있나?”

“힐링포션 때문입니다.”

진대호가 피식 웃었다.

“힐링포션은 우리도 있는데? 게다가 우리 쪽이 양이 훨씬 많아. 그런데 우린 어쩌고 있지?”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다고 대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알아내. 그리고…… 레드드래곤에 힐링포션 제공하는 놈, 누군지 알지?”

“예. 채현석 말씀입니까?”

“그래, 그놈. 그놈…… 아무래도 거슬려. 우리가 포션 제작법 뽑아낸 거 분명히 알 텐데도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해. 그렇지 않아?”

“맞습니다. 그래서 사람 몇 명 일단 붙여뒀습니다.”

“뭐 좀 알아낸 거 있나?”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사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래저래 못한다거나 없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처참했다.

“그놈 뒤 좀 캐봐. 약점 같은 거 말이야. 그놈…… 분명히 뭔가 있어.”

“예. 좀 더 집중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진대호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내 감은 말이야…… 그놈이랑 레드드래곤이 급격히 강해지는 거랑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사내가 눈을 빛냈다.

“예.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조사해 보겠습니다.”

사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가자, 진대호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등을 의자에 푹 기댔다.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군.”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일단 레드드래곤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그들을 무너뜨리겠다는 계획부터 어긋났다.

그들은 진대호가 빠지는 걸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위로 휙하고 날아올랐다.

훨씬 강해지고 훨씬 탄탄해졌다.

‘오명국이라고 했지? 이 괘씸한 놈.’

그 중심에 오명국이 있다는 건 아주 유명했다. 오명국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동안 무시당하며 죽은 듯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보상심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타이밍 좋게도 레드드래곤의 비상과 맞물려 업계의 스타 중 한 명이 되었다.

지금의 레드드래곤을 일으킨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반면 진대호는 반사적인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오명국의 의도인지 한중현의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오명국을 내세울 때는 반드시 진대호와 비교해 대비시켰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진대호가 만든 K나이츠 길드는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성장이 더뎠다.

그나마 힐링포션이 있어서 이 정도지 그게 아니었다면 훨씬 더 힘들 뻔했다.

힐링포션도 그렇다.

그걸 만들려면 종로 암시장에서 마력수를 공급받아야 하는데, 그쪽에서 공급하는 마력수의 양이 너무 적었다.

“마력수의 원천기술을 얻어야 돼.”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래서 힐링포션을 양산하는 것이 지금 이 지루한 정체기를 타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력수의 원천기술을 누가 가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원천기술에 대한 정보를 가진 사람은 안다.

‘채현석.’

어쨌든 모든 열쇠는 현석이 쥐고 있었다. 진대호의 눈빛이 음험하게 빛났다.

< 새로운 가능성 5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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