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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71화 (71/326)
  • < 새로운 가능성 4 >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대체 뭐가 맛있었다는 거야?”

    추경훈은 억지로 표정을 풀며 말했다. 지부장 실은 비밀 보장이 안 되는 장소다.

    물론 이곳의 기록을 누군가 들춰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기록이 남더라도 추경훈이 알아서 그걸 찾아 삭제할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무조건 조심해야만 한다.

    추경훈은 허튼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현석을 노려봤다.

    “자세히 말하길 원해? 여기서?”

    추경훈이 현석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조용한 데로 가지.”

    추경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절대 드러나선 안 될 얘기를 할 테니 정말 보안이 좋은 곳으로 가야 했다.

    그의 뇌리에 방 하나가 떠올랐다.

    ‘4응접실.’

    거기라면 일을 아주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경훈은 현석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봤다. 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희한하게 현석에 관계된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마치 유리에 성에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했다.

    ‘혹시 모르니 그놈들도 싹 불러야 하나?’

    어쩌면 이 자리에서 처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데 상대의 정보를 잘 모르고 있으니 최대한 과할 정도로 준비를 하는 게 낫다.

    추경훈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뒤따라 가던 현석이 나직이 말했다.

    “4응접실로 가려고?”

    추경훈이 걸음을 딱 멈췄다. 그리고 뒤로 돌아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거길…… 어떻게 알지? 설마 관계자인가? 내가 모르는 관계자가 있을 리 없는데?”

    추경훈이 말하는 관계자라는 건 던전관리센터의 고위층을 말한다. 웬만한 직위로는 4응접실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우리 거기 같이 있었어. 기억 안 나?”

    추경훈의 표정이 굳었다. 그랬겠지. 그러니까 이런 협박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일단…… 나가지.”

    상대가 4응접실에 대한 걸 알고 있다면 그리로 데려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아마 따라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는 편이 나았다.

    추경훈은 관리센터에서 밖으로 나갔다.

    차로 멀리 이동하고 싶었지만 현석이 거부했기에 좀 떨어진 곳의 한적한 공원으로 들어갔다.

    평일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추경훈은 공원에서도 가장 으슥한 곳으로 현석을 데려갔다.

    추경훈은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서서 현석을 노려봤다.

    “너…… 대체 뭐야?”

    현석이 피식 웃었다.

    “네가 그 미친 짓을 하는 걸 똑똑히 본 사람.”

    추경훈이 이를 갈았다.

    “웃기지 마.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했잖아. 4응접실에서. 왜? 더 자세히 말해주길 원해? 사람이라고?”

    “그만!”

    추경훈은 불똥이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뜬 눈으로 현석을 노려보며 나직이 외쳤다.

    더 얘기 듣고 싶지 않았다. 아니, 혹시라도 누군가 지나가다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몸이 살짝 떨렸다.

    “원하는 게 뭐야?”

    “별 거 없어. 창고 좀 구경하고 싶어서.”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냥 개인 창고를 얘기하는 건 아니리라. 당연히 던전관리센터의 창고를 보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곳의 물건은 아무리 경기지부장인 추경훈이라고 해도 함부로 반출할 수 없었다.

    “설마 내 약점을 쥐고 한몫 잡아보겠다, 이건가? 웃기지 마. 그렇게 되면 어차피 난 몰락하는데 내가 왜 굳이 네게 협조해야 하지?”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한몫 잡아보겠다는 게 아니야. 혹시라도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정당한 값을 치르고 살 거야.”

    “뭐?”

    추경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의 상식 안에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였다.

    그럴 거면 차라리 가서 목록을 얘기해주고 사면된다. 문득 추경훈의 뇌리에 특별관리물품이 떠올랐다.

    “설마 특별관리 아티팩트를 원하는 건가? 그건 아무리 나라도 구하지 못해.”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창한 걸 원하는 게 아니야. 그저 관리센터의 창고들을 한 번 쭉 훑고 싶을 뿐이야.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말이야.”

    “고작…… 고작 그것 때문에 날 협박했다고? 나보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추경훈이 입을 다물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난 그저 구경하고 원하는 게 있으면 살 뿐이야. 경기 지부장이 고작 그런 것도 못 하나?”

    못 할 리 없다. 추경훈 정도 위치에 있으면 창고를 둘러보는 건 업무 중 하나이고, 그 중 원하는 물건을 따로 구입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가 할 수 없는 건 물건을 대가없이 빼돌리는 것이다. 그것만 하지 않으면 별로 문제될 게 없었다.

    “정말…… 빼돌리지 않을 건가?”

    “빼돌릴 이유가 없지. 그렇게 하면 과연 너 하나로 끝날까? 난 무사할 거 같아?”

    추경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그는 한참이나 고민했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추경훈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창고에 가자. 대신, 비밀을 지킨다는 보장이 필요해.”

    “각서라도 써? 머릿속에서 기억을 지울 수는 없잖아?”

    “네놈이 눈에만 담았을 리 없지. 영상을 내놔.”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래가 끝나면 그걸 주지. 복사가 불가능한 영상이라서 아마 믿을 수 있을 거야.”

    추경훈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쇠뿔도 단숨에 빼랬다고, 이런 일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당장 가지.”

    추경훈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마음을 대변하듯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현석은 느긋하게 그 뒤를 따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던전관리센터의 그 막대한 재료들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 * *

    현석은 창고로 들어선 다음 그 거대한 위용에 살짝 놀랐다.

    사실 던전관리센터의 창고를 구경하는 건 회귀 전에도 없었다.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관리센터의 창고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입구에서 안이 한눈에 다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사방에 뜨는 글자의 향연에 현석은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최대한 투명하게 했음에도 글자들이 겹치고 또 겹쳐서 투명도가 낮아질 정도였다.

    그 정도로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게다가 정리는 어찌나 잘 되어 있는지 종류별로, 또 알려진 효과대로 착착 분리가 되어 있었다.

    아티팩트들도 잔뜩 있었는데, 다들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진짜 중요한 아티팩트들은 특별관리 대상이 되어 따로 보관된다. 당연히 그건 볼 수 없었다. 물론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투명 던전을 찾아다니면 그보다 훨씬 좋은 아티팩트를 무수히 얻을 수 있는데 왜 그런 성능 떨어지는 아티팩트에 욕심을 내겠는가.

    지금 현석이 이 장소에서 욕심내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어디…… 그럼 마력의 정수를 찾아볼까?’

    기대감이 물씬 들었다. 아마 어마어마하게 많은 마력의 정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은 창고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따로 추경훈이 안내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곳에 함께 들어오기 위한 통행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던전 생성지역이 가장 많은 경기도 지역의 창고라 그런지 창고 규모도 컸지만 물건도 정말 많았다.

    현석은 심안은 물론이고 마력 감지능력까지 최대한 발휘하며 걸었다.

    사방에서 진한 마력의 향기가 쏟아졌다. 마력의 정수에도 등급이 있다.

    마력의 정수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레인보우 엘릭서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성공률이 있었다. 등급이 낮은 놈으로 만들면 실패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았다.

    반면 최고 등급의 정수를 쓰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었다.

    마력의 정수는 순수하게 확률로 등급을 나눴다. 1부터 10등급까지 있었는데, 10등급 정수로 엘릭서를 만들면 성공 확률이 고작 0.5%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번에 현석이 종로 암시장에서 얻은 정수들은 대부분 4등급 정도였다. 그 정도면 성공률이 30%쯤 된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마력의 정수 취급을 받으려면 6등급은 넘어야 한다.

    6등급 마력의 정수는 성공률이 10%였다. 열 개 중 하나 성공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자그마치 레벨을 강제로 하나 올려주는 위대한 아이템이니 말이다.

    현석은 이 안에 1등급 마력의 정수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향기가 날 수 없다. 창고에 들어오자마자 아주 짙은 농도의 마력이 현석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급할 거 없어. 그러니 천천히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싹 찾아내야지.’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번득였다.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마력의 정수 하나를 찾았다. 척 보니 4등급짜리였다.

    ‘4등급 이하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군.’

    아마 던전 초창기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등급이 떨어지는 건 마력 응집력이 약해져 마력이 흩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4등급보다 낮은 등급의 정수를 오히려 찾기 어려웠다.

    ‘이걸 어떻게 다 가져가지?’

    현석은 아직 찾지도 않은 마력의 정수를 떠올리며 씨익 웃었다.

    이런 행복한 고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현석은 천천히 걸으며 눈에 띄는 정수를 집어 뒤로 툭툭 던졌다.

    그리고 현석의 뒤를 따라가는 추경훈이 똥 씹은 표정으로 그것을 주워 미리 준비한 커다란 손수레에 담았다.

    ‘하인이 따로없군.’

    추경훈은 이 굴욕을 어떻게 갚아줄지 궁리하고 고민하며 현석의 뒤를 따랐다.

    그가 끄는 손수레의 짐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 * *

    “많이도 골랐군.”

    추경훈은 질린 눈으로 산처럼 쌓인 물건을 바라봤다. 다들 별 쓸모도 없는 재료들이었다.

    어디에 쓰는지 모를 놈들이 30%쯤 있었고, 또 효용성이 떨어져 그저 보관만 하고 있던 놈들이 30%, 나머지는 그럭저럭 쓸 만한 놈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쓸모없다고 해도 관리센터가 책정한 가격이 있기 때문에 싸게 후려칠 수는 없었다.

    이미 CCTV가 현석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찍었다. 어떤 물건을 가져가는지 똑똑히 기록되었기에 수를 속일 수도 없었다.

    “대체 이걸 어디에 쓰려는 거지?”

    추경훈의 질문은 너무나 당연했다. 현석이 고른 물건들은 수준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다.

    ‘저걸 왜 돈을 주고 사?’

    아마 좀 더 기다리다보면 관리센터에서 창고를 정리할 것이다. 그때 잘 하면 공짜로 얻을 수도 있을 만한 것들도 여럿 보였다.

    하지만 현석에게는 그런 걸 기다릴 시간이 더 아깝다는 사실을 추경훈이 알 리 없었다.

    “가져갈 수는 있나? 저렇게 많은데?”

    커다란 트럭으로 몇 번은 날라야 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수가 많았다.

    하지만 현석은 조금도 걱정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바로 입금하지.”

    관리센터 직원 몇 명이 참관한 자리에서 현석이 바로 계좌이체를 했다.

    이제 이 물건들은 합법적으로 현석의 것이 되었다.

    현석은 계속 등에 짊어지고 있던 백팩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재료들을 모조리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걸 구경하는 추경훈과 관리센터 직원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 그게 대체 뭐지?”

    물론 현석에게는 거기에 대답할 의리가 없었다.

    ‘슬슬 아공간 아이템이 하나쯤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이런 가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도 상관없는 시기가 되었기에 과감하게 공개했다.

    이걸 공개하지 않고서는 관리센터의 창고를 모조리 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재료를 모두 담은 현석이 추경훈을 보며 말했다.

    “다음 창고로.”

    “뭐? 이거 하나가 아니었어?”

    추경훈이 황당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추경훈을 담담히 쳐다봤다.

    결국 추경훈이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창고를 향해서 말이다.

    < 새로운 가능성 4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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