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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70화 (70/326)

< 새로운 가능성 3 >

“여깁니다.”

양동욱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이었다. 그런 허허벌판 위에 번듯한 빌딩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어떻습니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황당했다. 여긴 도로도 없는 곳이었다. 한데 빌딩이라니. 그것도 10층이나 되는 제법 높고 큰 빌딩이었다.

만일 주변이 번화한 곳에서 저런 빌딩을 하나 사려면 수백억은 줘야 할 것이다.

한데 이곳은 빌딩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저런 빌딩을 완공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다 제대로 지어지긴 한 건가?”

“주변 인프라가 없어서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아직 전기도 안 끌어왔고, 물도 안 끌어왔습니다.”

그런 공사는 개인이 나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자가발전을 하고 지하수를 끌어오지 않는 한, 저 건물은 죽은 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이런 헐값에 매매가 나온 것이고 말이다. 물론 저 건물 주변의 땅까지 몽땅 산다는 전제 하에 파는 것이다.

아니, 사실상 저 건물은 덤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주변 땅을 파는 것이다.

“원래 개발 예정지였는데, 그게 취소되는 바람에 건물이 붕 뜨고 말았답니다. 주인이 빚더미에 앉아서 지금 급처분 중입니다.”

본래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양동욱도 그렇게 생각해서 제법 상세히 알아본 모양이었다.

“주인과 적대 관계에 있는 놈들이 작업을 건 모양입니다.”

“사기?”

“사기인 건 맞는데, 좀 폭력적인 사기입니다. 사채업자들도 제법 끼어있는 모양입니다.”

한 마디로 지저분한 건물과 땅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그놈들이 여길 노리고 작업을 건 걸 수도 있었다. 헐값에 인수하려고 말이다.

“아마 이걸 사더라도 뒤에 잡음을 좀 감수하셔야 할 겁니다.”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잡음은 괜찮다. 이곳을 제대로 써먹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사기꾼이나 조직폭력배 정도는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현석은 그럴 힘도 독한 마음도 다 갖고 있으니까.

문제는 이걸 과연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제가 좀 알아봤는데…… 조만간 개발 발표가 날 예정이랍니다. 그런데 여기가 아니라 이 옆 지역이죠.”

“그럼 괜히 시끄럽기만 할 거 같은데?”

옆 지역에서 개발을 시작하면 이곳까지 그 여파가 미칠 것이다. 아마 시끄럽고 먼지만 날릴 것이다.

과연 그런 곳에 길드 건물을 세워도 될까? 싸다는 것 외에는 매리트가 하나도 없는 듯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외진 곳에 있어야 파워업 키트를 제작할 때 비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에 관한 설계도 이미 끝난 상태였다.

“근처에 낮은 건물 몇 채를 더 지을 겁니다. 옆 지역에 개발 발표가 나면 이쪽으로 전기와 물이 지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제야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진짜 공사가 시작되려면 발표 후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양동욱이 손을 쓰면 이쪽의 시설과 기반을 다지는 건 충분히 앞당길 수 있다.

그도 안 되면 이쪽에서 알아서 공사를 진행해도 되고 말이다.

“돈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들어올 테니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현석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면 돈을 더 내놓을 생각도 있었다.

사실 현석의 자금은 아직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다.

예전에 투자했던 주식들이 현재 미친듯한 속도로 값이 뛰어오르는 중이었으니까.

이제 그걸 적당한 시점에 팔아치우고 그 다음 우량주로 갈아타는 작업을 한 번 거쳐야 한다.

현석은 그렇게 우량주 갈아타기를 향후 두 번 정도 할 예정이었다.

거기까지는 제법 세밀하게 계획을 세워뒀다.

그렇게 불어난 돈을 조금만 빼내도 이 정도 부지를 건물로 꽉 채워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어. 탄탄한 게 중요해. 아직 진짜 할 일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

현석의 말을 듣는 양동욱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이려고 하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다니. 그럼 앞으로 대체 어떤 일을 하게 된단 말인가.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파워업 키트 제작은 일단 다른 곳에서 소규모로 진행하고, 향후 이쪽 시설이 완비되면 그쪽을 폐기한 다음 이쪽에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현석은 손을 내저었다.

“그런 건 다 알아서.”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걸 알아서 하라고 양동욱을 끌어들인 것이다.

얘기가 잘 마무리 되자, 양동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요즘 류지혜 씨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혹시 어디 갔습니까?”

양동욱의 질문에 현석이 피식 웃었다.

요즘 안 보이는 사람이 류지혜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양세희도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훈련 중이야.”

“훈련…… 말입니까?”

양동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훈련…… 굉장히 힘들겠지요?”

현석은 양동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죽을 만큼 힘들겠지.”

딱 그 정도로 힘든 던전을 찾아 류지혜와 류혜연, 그리고 양세희를 함께 넣었다.

지금 그 세 여인은 한계를 넘나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단히 위험한 건 아니었다. 물론 실수를 하면 죽을 수도 있다. 애초에 던전이라는 것이 그렇게 생겨먹었으니까.

하지만 진짜 목숨을 걸고 하는 사냥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 그들이 있는 던전은 그저 훈련의 일환으로 현석이 준비한 던전에 불과했다.

“걱정되네요. 몸도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던데…….”

“누가?”

“지혜 씨요.”

양동욱의 어이없는 말에 현석이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동생 걱정은 안 되나보지? 양세희도 같이 있는데 말이야.”

양동욱은 뭘 그런 당연한 얘기를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 녀석은 튼튼하잖습니까. 전에 지렁이랑 싸우는 거 보니까 어디 내놔도 끄떡없겠던데요? 그 녀석이 지혜 씨, 잘 지켜줘야 할 텐데…….”

“류지혜 쪽이 레벨이 더 높다는 거 알지 않나?”

“레벨이 뭐가 중요합니까? 누가 봐도 세희 쪽이 훨씬 튼튼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반면 지혜 씨는 바람 불면 훅 하고 날아가 버릴 것 같이 생겼고.”

그리고 그런 류지혜는 손가락 하나로 양동욱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말이다.

현석은 굳이 그런 얘기까지 하지는 않았다. 괜히 환상을 깰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만 류지혜가 아직 양동욱에게 남자로서의 그 어떤 감정도 없다는 걸 알기에 좀 불쌍한 눈으로 쳐다봤을 뿐이다. 아주 잠깐 동안 말이다.

현석은 다시 시선을 건물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현석은 여전히 심안을 유지 중이었다. 이렇게 마력이 희미한 곳에서는 허공에 떠오르는 글자 역시 거의 없기에 별로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부하가 걸리지 않는다는 건 수련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연히 현석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어디 던전에라도 들어가 봐야 하나?’

현석은 문득 종로 암시장과 던전관리센터가 떠올랐다.

그곳들이라면 심안을 수련하기에 아주 적절했다. 마력을 품은 물건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을 테니 말이다.

현석의 마음은 종로 암시장 보다는 던전관리센터 쪽으로 기울었다.

거기에는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지 않은가.

‘종로 암시장 말고 다른 암시장들도 한 번씩 가 보긴 해야 하는데…….’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현재 암시장이 우후죽순으로 열리고 있지만 그 중에서 현석이 관심을 갖고 찾아가 훑어야 할 정도로 성장한 곳은 아직 없었다.

최근 종로 암시장의 성장이 더욱 두드러지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할 물건들이 종로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경우도 대단히 많았다.

그러니 당장은 종로 쪽만 주기적으로 확인하면 될 듯했다. 그 와중에 놓치는 일부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로 했다.

아무리 현석이 대단하고 미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 모든 걸 싹쓸이 할 수는 없었다.

현석은 일단 던전관리센터에 가 보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가야 한다. 현석은 최근 지난번에 얻은 마력의 정수를 확인하다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아냈다.

대체 왜 미래에는 마력의 정수가 그렇게 귀한지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마력의 정수에 담긴 마력이 미세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냥 마력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마력의 응집력이 약해진다고 해야 정확하다.

즉, 오랜 시간이 지나면 마력의 정수가 그냥 평범한 재료 아이템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회귀전 세상에서는 새로 등장하는 마력의 정수만 남고 과거의 정수들은 모두 평범한 재료로 변해 사라진 것이다.

현석은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연구 중이었다.

마력의 정수는 설사 아공간 안에 넣어 놓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응집력이 약해진다.

그러니 어떤 특별한 방법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결국 모조리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 사라질 운명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는 그렇게 되더라도 지금은 마력의 정수를 쓸어 담아 놓는 것이 정답이라는 건 분명했다.

“어디 가십니까?”

양동욱이 갑자기 몸을 돌리는 현석을 보며 물었다. 아직 얘기가 다 안 끝났는데 가려고 하니 다급해진 것이다.

돈 문제가 남았다. 방금 양동욱이 말한 계획대로 하려면 지금 가진 자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적어도 그 다섯 배는 있어야 시도라도 해볼 수 있었다.

“차 대기시켜. 던전관리센터에 갈 테니까.”

“예? 그럼 여기는…….”

“알아서 하도록. 필요한 자금은 바로 보내줄 테니까.”

양동욱이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잠시 후 양동욱의 친구가 운전하는 차가 도착했다. 현석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양동욱의 배웅을 받으며 그곳에서 떠났다.

* * *

추경훈은 최근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날의 기억들이 계속 그를 괴롭혔다.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생생해졌다. 그리고 중간 중간 사라졌던 기억들이 이어지며 더욱 현실성 넘치는 기억을 구성해냈다.

그건 추경훈뿐 아니라 그날 함께 참여했던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들 활동을 중지한 채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물론 추경훈이 지시를 내리면 다들 나타날 것이다. 어차피 추경훈은 조만간 관리센터 지부장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때를 대비해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다.

한데 거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괴로운 기억 때문이었다.

수많은 일반인을 모아놓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짓들을 무수히 저질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자신이 미쳤었던 게 분명하다. 지금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혐오스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비서가 들어왔다.

“지부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군데?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지금 만날 기분 아니니까 바쁘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해.”

“채현석이라는 사람인데, 일단 돌려보내겠습니다.”

“잠깐! 채현석?”

“예. 플레이어인 모양입니다.”

추경훈은 채현석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실종되었다가 다시 나타난 놈이었다. 그리고 뭔가 안 좋게 엮여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데 정말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건 그놈에 대한 기억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저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 계속해서 머릿속을 채울 뿐이었다.

“오라고 해.”

“예? 아, 알겠습니다.”

비서는 의외의 결정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수긍하고 물러났다. 최근 추경훈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니 괜히 토 달았다가 곤란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비서가 물러가고 잠시 후, 채현석이 방에 들어왔다.

채현석을 본 순간 추경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

추경훈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현석이 씨익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아주 맛있게 잘 먹던데? 그렇게 맛있었어?”

추경훈의 얼굴이 더욱 딱딱해졌다. 그는 현석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 새로운 가능성 3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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