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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69화 (69/326)
  • < 새로운 가능성 2 >

    “여보세요?”

    양세희는 오빠인 양동욱의 동의도 얻지 않고 자신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속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양세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겪은 지독한 꼴을 풀어놓을 상대가 나타났으니 그냥 쏟아내면 된다.

    “어떻게 그런 데에다 날 처박아 놓고 그냥 사라질 수가 있어요? 지금 어디죠? 집 근처 그 커피숍인가요? 제가 지금 온몸이 지렁이 때문에 끈적거리거든요? 씻고 바로 갈 테니까 거기서 딱 기다려요!”

    양세희는 그렇게 쏟아낸 다음 전화를 끊고 얼른 욕실로 달려갔다.

    양동욱은 어이없는 눈으로 양세희의 뒷모습과 꺼진 전화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뭐 저런…….”

    양동욱은 투덜거리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일단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 * *

    현석은 양세희의 행동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어서 오히려 좀 놀랐다.

    마계에 다녀온 현석은 분위기가 좀 달라져 있었다.

    첫 마족과의 싸움 이후로 매번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정보를 미리 알고 간다고 해서 전투 자체에 큰 도움을 주는 건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 마계를 토벌할지에 대한 계획 수립에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면 계획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은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것까지 다 감안했지만 그럼에도 위기는 매번 찾아왔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마계13지역을 토벌했다. 죽을 정도로 힘들었던 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일단 타이틀의 효과가 달라졌다.

    [마력의 주인-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호칭. 손발을 움직이거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마력을 다룰 수 있다. 마력+700]

    원래 마력의 주인 타이틀은 마력을 100 올려주는 부가효과가 있었다.

    한데 이 부가효과가 레벨 100을 넘는 순간 700으로 올라가 버렸다.

    마력은 보통 1레벨에 10이 오르지만 현석의 경우 그동안 레벨업을 마계에서 했기에 약간의 보정치가 있었다.

    한데 이번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마력 상승치가 높았다.

    열 번 이상 레벨업을 해야 얻을 수 있는 마력을 한 번에 얻었으니 말이다.

    지난번 마계 토벌과 달리 이번 마계 원정에서는 팔찌나 반지 같은 악세사리 종류의 아티팩트를 많이 얻었다.

    문제는 얻은 건 많은데 그 중에서 현석이 쓸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단 아공간이 깃든 아티팩트를 총 두 개 얻었다. 아직은 그걸 현석이 가진 아공간과 결합시키진 않았다.

    각각 다차원 공간이 10개 깃든 아티팩트와 20개 깃든 아티팩트였는데, 거기에 걸린 보안 마법패턴을 해제하는 작업을 아직 마치지 못해 그냥 가지고만 있었다.

    두 아티팩트 모두 절반이 채워져 있었으니 그곳에 있는 물건을 모두 빼낼 수 있으면 총 15개의 새로운 물건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아마 대부분 아티팩트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아주 특별하고 희귀한 재료 아이템이거나.

    어쨌든 이번 원정에서 현석은 그런 아공간 아티팩트를 제외하고도 팔찌나 반지, 혹은 귀걸이나 목걸이 형태의 아티팩트를 여러 개 구했다.

    그 중 현석이 착용하기로 한 건 딱 하나뿐이었다.

    [진마안]

    [마왕의 눈동자를 가공해 만든 팔찌. 마왕이 죽으며 남긴 육체에서 뽑아낸 눈동자를 마계 최고의 보석세공사인 메켈루가 제작했다. 스킬 어둠의 힘이 깃들어 있다.]

    진마안이라는 팔찌는 그저 스킬만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석이 최근 심안을 쓰며 느낀 것은 심안에 의해 확인한 설명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심안으로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이 진마안이 대표적이었다.

    진마안은 그저 스킬 하나 담긴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진마안을 착용하면 마력과 체력 회복 속도가 올라간다.

    대단히 빨라지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효과를 볼 정도였다. 그래서 진마안을 가진 마족을 상대할 때 상당히 애를 먹었다.

    끝없이 쏟아내는 스킬 때문에 빈틈을 찾아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물론 현석이 이 아티팩트를 착용한다고 해서 그 마족처럼 무지막지한 스킬을 끝없이 쏟아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마족의 아티팩트는 기본적으로 마족에게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니 인간인 현석이 쓸 때는 아무래도 온전한 힘을 이끌어 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쓸모 있는 장비임은 분명했다. 만일 그걸 얻지 못했다면 마계에서의 싸움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현석은 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파주에서 다시 이곳까지 오는 건 오명국이 해결해 주었다. 오명국은 현석이 있는 쪽으로 레드드래곤 길드에서 자신이 심복으로 삼은 사람들 중 하나를 보내주었다.

    길드 마스터인 한중현의 신임이 대단했기에 길드 내에서 오명국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레드드래곤 길드에서 가장 중추적 역할을 하던 진대호가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를 오명국이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당연히 오명국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파주로 직접 가서 현석을 데리고 오는 일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현석은 그런 상황에 대단히 만족했다. 오명국은 현석의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었다.

    현석의 목표는 레드드래곤 길드를 더 크게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중에 현석이 진짜 필요로 할 때 큰 힘을 제공해 주어야 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정말 잘 버티고 있는 모양이네.”

    현석은 양세희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군체지렁이를 사냥하던 그 던전의 이름은 지렁이굴이었다. 그곳에 등장하는 마수가 꼭 군체지렁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은 군체지렁이가 나오지만 가끔 대왕지렁이가 나올 때가 있었다.

    대왕지렁이의 사냥도 기본적으로는 군체지렁이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군체지렁이보다 더 힘이 세고 체력도 강할 뿐이었다.

    분명히 대왕지렁이를 한 번쯤 만났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잠깐 웃고 있을 때, 커피숍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양세희가 들어왔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현석을 만나면 정신없이 불만을 쏟아내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었다.

    한데 막상 현석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갑자기 할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현석 앞에 털썩 앉았다.

    “대왕지렁이를 만난 건가?”

    현석의 물음에 양세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게 대왕지렁이였구나. 나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대왕지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치 봉인이 해제된 것처럼 말이 쏟아져 나왔다.

    “깔려죽을 뻔했는데, 정말 간신히! 간신히 버텨서 살아남았다고요!”

    현석은 빙긋 웃으며 양세희의 정보를 확인했다.

    ‘레벨이…… 64!’

    아무리 군체지렁이를 사냥했다고 하지만 고작 일주일 사이에 레벨이 무려 3이나 올랐다.

    이는 재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류혜연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현석이 본 사람 중 플레이어로서의 재능, 즉, 레벨업에 대한 재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바로 류혜연이었다.

    아마 100레벨이 될 때까지는 그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류혜연보다는 좀 못해도 양세희의 재능은 상당했다.

    ‘체력은…… 40!’

    체력이 무려 9나 올랐다. 레벨이 하나 오를 때마다 체력이 3씩 증가했다는 뜻이다. 힘은 1이 올랐고, 나머지는 변화가 없었다.

    역시 지렁이둥지였다. 예상했던 대로 체력위주의 성장을 했다.

    이대로 레벨을 좀 더 올려 체력이 50을 넘어가면 그때부터 진짜 제대로 된 탱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석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양세희와 류지혜, 류혜연이 한 팀이 되어 사냥을 하는 때가 말이다.

    물론 현석은 따로 할 것이다.

    재능은 현석이 가장 떨어지지만 성장속도는 그 누구보다 빠를 테니까. 그도 그럴 것이 현석은 주로 마계에서 사냥을 하니 너무나 당연한 얘기였다.

    “합격.”

    현석의 말에 양세희가 입을 다물고 현석을 잠시 노려봤다. 그녀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안 그래도 막 두 번째 폭풍 수다를 쏟아내려는 참이었는데, 저 말을 듣고 나니 말문이 콱 막혀 버렸다.

    ‘그래…… 나 지금 테스트 받는 중이었지…….’

    그조차 잊고 매달렸다. 나중에는 오기로 버텼다. 왜 버티는지도 잊고 그저 버티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텨냈다.

    덕분에 레벨도 3이나 올랐다. 최근 정체기가 온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것까지 보기 좋게 깨버린 것이다.

    “테스트는 합격했으니 이제 슬슬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갈까하는데, 어때?”

    “보, 본격적이라고요? 그 지렁이가 끝 아니었어요? 같은 팀이 되어서 사냥하는 거 아닌가요?”

    양세희가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현석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걸 보고는 절망에 빠졌다.

    “일단 100레벨부터 넘기고 다시 얘기하지.”

    “예에? 100이요? 100레벨이 누구 애 이름이에요? 추광열 말고는 아무도 못 넘었다는 거 혹시 알고 있긴 해요?”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아마 이제부터는 좀 달라질 거야.”

    “달라진다고요?”

    “본격적인 던전시대가 열릴 테니까.”

    “던전시대…….”

    양세희는 던전시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짜릿한 뭔가가 가슴을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매력적인 말이었다.

    “100레벨이 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시대가 열릴 거야.”

    양세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당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게 말이 돼요? 세계에서 100레벨을 넘은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아요? 열 명도 안 될 걸요?”

    그나마도 추산이었다. 확실히 100레벨이 넘었다고 알려진 사람은 딱 두 명뿐이었으니까.

    한데 100레벨을 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니. 양세희가 보기엔 얼토당토않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현석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일단 파워업 키트가 대중화되면 40레벨만 넘어도 거의 100레벨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파워업 키트는 모든 능력치를 2.5배 향상시키니 말이다.

    게다가 한계레벨이 100이다. 100레벨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사람마다 레벨에 따른 스탯의 편차가 있기에 정확히 100레벨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능력치가 100레벨에 고정된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파워업 키트는 무수한 100레벨 능력자를 양산한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강해졌기에 상대적으로 고레벨로 가기가 어려워진다.

    즉, 100레벨 이상으로 올라가는 건 여전히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오히려 파워업 키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공들여 레벨을 올리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게 된다.

    “파워업 키트 얘기를 같이 듣지 않았었나?”

    양세희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있었다. 애초에 없는 물건이니 거기에 대해서는 아예 떠올리지도 않고 있었다.

    현석의 말이 대충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40레벨까지 올리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플레이어들의 레벨업 속도가 상당히 빨라지고 있었다. 그걸 감안하면 아마 40레벨을 넘어가는 플레이어의 수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그걸 정말로 세상에 뿌릴 건가요?”

    “뿌리지 않을 이유가 있나?”

    “하지만…….”

    “왜? 너도 그걸 쓰고 싶나?”

    “있으면 당연히 쓰고 싶죠.”

    현석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양날의 검이기도 해.”

    현석의 말에 양세희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쉽게 강해지면 거기서 만족하게 될 테니까.

    아마 40레벨부터 100레벨이 될 때까지는 정말로 지루한 사냥의 연속이 될 확률이 높았다.

    ‘뭐…… 게임을 하는 게 아니니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양세희의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졌다. 파워업 키트가 가져올 플레이어 세상의 변화가 얼른 계산되지 않았다.

    별의 별 변수가 다 있을 것이고, 별의 별 사람이 다 있을 것이다.

    아마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양세희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는 현석을 바라봤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죠?”

    현석이 씨익 웃었다.

    “아까부터 얘기하잖아.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해보자고.”

    그 말을 들은 양세희가 불길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새로운 가능성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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