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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67화 (67/326)
  • < 두 번째 원정 2 >

    [마계13지역]

    숲 끝에 있는 나무를 부수고 나온 화이트홀에 붙은 이름이었다.

    6개월 전에 들어갔던 곳이 마계19지역이었다.

    왠지 숫자가 작을수록 더 위험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곳이 지난번에 갔던 19지역보다 더 위험하다. 현석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말이다.

    다만 규모가 좀 더 작을 뿐이었다. 또한 규모가 작은 만큼 등장하는 마족의 수도 훨씬 적었다.

    현석은 심호흡을 하며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 죽을 뻔했다. 실제로 함께 들어갔던 플레이어 대부분이 죽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훨씬 강해질 수 있었다.

    아무리 현석이 대단해도 사실 혼자서 이곳 마계를 평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여기에 들어가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갔던 마계19지역에는 마족 말고도 무수한 마수들이 판을 쳤다.

    사실상 마족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레벨이 비교적 낮았어도 충분히 해볼 만했다.

    물론 그럼에도 죽음의 경계를 항상 오가야 했다.

    반면 이곳 마계13지역은 마수는 거의 없었다. 마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 사는 마수라고는 마족들이 키우는 것들뿐이었다.

    마족은 마수를 떼로 키우진 않는다. 각자 심혈을 기울여서 한두 마리만 키운다. 하지만 그렇게 키운 마수의 강력함은 엄청나다.

    실제로 마계19지역을 평정할 때도 마족보다 그들이 키운 마수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19지역의 마족이 약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진짜 마족은 절대 마수 따위와 비교할 수 없었다.

    이곳 13지역이 바로 그런 진짜 마족들이 사는 곳이었다.

    ‘말이 좀 통하면 좋겠는데…….’

    마족은 높은 지성을 가진 종족이다. 당연히 언어와 문자로 소통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쓰는 언어와 문자는 보통 사람이 절대 알아보거나 들을 수 없었다.

    일단 마족의 언에는 음역대가 인간의 가청 주파수를 넘나들기 때문에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사실 아직 현석이 마족의 문자를 본 적은 없지만 경험해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말 그대로 보이지가 않는다고 했다.

    문자가 있는 건 확실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특수한 방법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회귀 전에 같은 길드에 있던 플레이어가 알려준 사실이었다. 그 플레이어는 현석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플레이어였다.

    물론 당시의 길드장인 진대호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그때의 진대호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현석은 투명던전을 클리어하다가 죽었다. 투명던전에 연결된 마계로 간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투명던전 안에서 죽었다.

    당시 진대호는 K나이츠 길드의 최정예를 이끌고 투명던전 공략에 나섰다. 현석이 거기에 포함된 건 당연했다. 현석은 K나이츠 길드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였으니까.

    그동안 투명던전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고, 그곳과 연결된 마계가 진짜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좀 가벼운 마음으로 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투명던전은 그동안 봐 왔던 다른 투명던전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죽을 때 몇 명이 살아 있었지? 다섯이었나? 여섯이었나?”

    어쨌든 그랬으니 아마 진대호도 쉽게 살아 돌아가진 못했을 것이다.

    그 투명던전은 들어감과 동시에 입구가 닫히는 특수한 형태의 던전이었으니까.

    아마 현석이 살아남았으면 다시 문을 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죽었으니 결국은 굶어서라도 죽었을 것이다.

    ‘그나마 통쾌하다고 해야 하나?’

    진대호는 현석의 뼛골을 쪽쪽 빨아먹고 부려먹었다. 그러니 그의 죽음이 통쾌해야 정상이다.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지.’

    아마 이번 생에는 그렇게 될 것이다. 역시 그때의 쓰레기는 지금도 쓰레기였다.

    아마 레드드래곤 길드는 현석이 아니었다면 회귀 전과 똑같은 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K나이츠 길드와 대적하며 골수까지 뽑아먹힌 다음 해체되는 것 말이다.

    길드 마스터는 생체실험의 도구가 될 것이고.

    어쩌면 진대호는 그 계획을 지금 미리 세워뒀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미래까지 예측해 가며 계획을 준비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젠 그 짓 못하게 해주지.”

    현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이트홀에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 * *

    현석은 화이트홀에 들어가자마자 마력을 넓게 퍼트리며 주위를 살폈다.

    마계에서 가만히 서 있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렇게 주위를 확인하면서 숨을 만한 곳을 찾았다.

    마침 근처에 바위가 보였기에 그 아래에 몸을 숨겼다.

    마계에 오면 이게 좋다.

    이곳에 있는 모든 존재는 마력을 품기 때문에 마력장을 펼친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대기에 녹아있는 마력의 양도 엄청나기 때문에 체내의 마력량을 늘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레벨에 비해 월등히 높은 현석의 마력량은 마계에서 레벨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호흡도 힘들었다. 그래서 전투가 길어지면 더더욱 힘들어진다.

    마계13지역은 규모가 작다고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넓다. 안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하기만 하면 여러 마족을 동시에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현석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족을 하나씩 처단할 수 있다면 위기상황을 최소화 하면서 토벌이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마족이 죽으며 뿜어내는 마력의 파동은 어마어마하다. 웬만한 던전을 박살 낼 때 나오는 마력 파동과는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엄청난 마력을 뿜어낸다.

    또한, 마족과 싸울 때도 굉장한 마력 파동을 견뎌내야만 한다.

    마력파동 때문에 움직임이 거슬릴 정도였다.

    그러니 마족 하나를 처단하는 것이 웬만한 던전 수십 개를 클리어하는 것보다 래벨업을 하거나 스탯을 올리는 데에는 훨씬 유리했다.

    아무튼 숨어 있던 현석은 주변을 확실히 파악한 다음에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사는 마족들은 하나하나가 강하다. 하지만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은 현석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현석이 회귀 전 이곳에 왔을 때의 레벨은 100이 살짝 넘었을 때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레벨은 낮지만 오히려 더 강했다. 그러니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 놈씩 따로 분리해서 싸운다는 전제 하의 일이지만 말이다.

    천천히 마력을 퍼트리며 이동을 시작한 현석은 마족의 기척을 찾아 나섰다.

    마족들은 백이면 백 응축된 마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사실 찾기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마족은 마력을 워낙 꽁꽁 응축하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마족을 찾는 건 정말로 신중하고 세심한 작업이었다.

    반면 마수들 틈에 몸을 숨긴 마족을 찾는 건 정말 쉬웠다. 마수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찾았다!’

    현석은 이질적인 마력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췄다. 처음에는 그저 이질적인 묘한 위화감만 느꼈지만 그쪽에 집중하니 고도로 응축된 마력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마족 하나가 서 있었다.

    말 그대로 그냥 서 있었다. 마치 나무가 서 있는 것처럼.

    미동도 않고 서 있었기에 잘못하면 나무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

    마족의 피부색이 짙은 갈색이었는지라 더더욱 그랬다.

    현석은 그걸 보면서도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가 아는 마족들의 성향은 타인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싸우는 소리나 마력 파동 때문에 다른 마족이 다가올 확률이 지극히 낮았다.

    그래도 최대한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현석이 파악한 성향이 모든 마족에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현석은 그 마족을 중심으로 크게 원을 돌며 다른 마족의 기척을 확인했다. 두 바퀴나 돌았지만 다른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섰다.

    기습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족들은 무방비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럴 때는 오히려 기습하는 것이 손해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석이 기척과 모습을 드러내자 마족을 중심으로 강력한 마력파동이 일어났다.

    마족이 현석을 바라봤다.

    마족의 모습은 인간과 상당히 흡사했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절대 인간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이질적이기도 했다.

    마족의 몸이 고목나무처럼 바짝바짝 말라갔다.

    현석은 그것이 마족이 전투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눈으로 봐서 아는 게 아니라 마력의 흐름을 보고 아는 것이다.

    마족이 현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묘한 소리가 들리다 끊기다 했다.

    마족이 내는 소리는 가청주파수를 넘나들기에 들릴 때도 안 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 들리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는 고주파 음이었기에 별 의미가 없었다.

    말은 못 알아들어도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대충 무슨 말을 한 건지 유추는 할 수 있었다.

    물론 별 의미는 없지만.

    꽈앙!

    마족의 발아래가 폭발했다. 그리고 마족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현석을 향해 쇄도했다.

    ‘그래. 이게 마족이지.’

    현석의 눈이 번득였다. 그 안에는 긴장과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희열이었다.

    현석은 어느새 꺼내든 검으로 마족의 공격을 막았다.

    쩌엉!

    현석이 가진 검은 마족을 죽이고 빼앗은 진마검, 마왕의 뼈를 가공해 만든 검이었다.

    당연히 상대 마족도 그 검의 정체를 알아봤다.

    마족의 입이 열리고 삐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을 보니 놀라서 뭐라고 떠든 모양이었다.

    물론 현석은 상관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길게 솟아난 마족의 손톱과 현석의 검이 연달아 충돌했다.

    그때마다 경악할 정도로 막대한 마력의 파동이 현석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현석의 눈빛에 어린 희열이 더욱 짙어졌다. 그의 입가가 길게 늘어났다.

    ‘그래. 이게 진짜 싸움이지.’

    쩌저저정!

    피슉!

    현석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하지만 현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거의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꽈득!

    진마검이 마족의 어깨를 꿰뚫었다.

    마족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귀가 아프지 않아서 좋군.’

    현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비틀어 뽑았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곧장 검격을 날렸다.

    쩌저정! 서걱!

    마족의 팔이 날아갔다. 이제 승기는 이쪽으로 왔다.

    비교적 약한 마족이었기에 생채기 하나로 싸움을 끝낼 수 있었다.

    꽈득!

    현석의 검이 마족의 머리를 꿰뚫었다.

    마족은 그 상태로도 죽지 않았다. 마족의 눈이 갑자기 새까맣게 변했다. 마치 까만 유리알을 눈에 박아 놓은 것 같았다.

    현석의 뇌리에 위기감이 벼락 같이 내리 꽂혔다.

    현석은 검을 놓고 옆으로 몸을 굴렸다.

    꽈아아아앙!

    방금 현석이 있던 자리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의 여파로 마족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아마 현석이 그 자리에 그냥 있었다면 온몸이 가루로 변했으리라.

    “진짜 지독한 놈들이군.”

    현석은 온몸에 쏟아지는 진한 마력의 파동을 만끽하며 중얼거렸다.

    몸과 영혼의 격이 한 층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레벨업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현석의 눈이 커다래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을 받았으니 놀라는 게 당여했다.

    ‘설마…… 이제 레벨업도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건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건 다른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마력의 주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뒤로도 마력 수련을 꾸준히 했으니 마력에 관한 감각이 올라가는 게 당연했다.

    현석은 심안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 두 번째 원정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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