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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66화 (66/326)
  • < 두 번째 원정 1 >

    “저 혼자 가라고요? 그 징그러운 지렁이가 나오는 던전에요?”

    현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양세희가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싫어요!”

    현석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말든가. 그동안 잠깐이지만 재미있었다.”

    양세희는 현석의 반응에 기겁하며 얼른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자, 잠깐만요!”

    현석이 일어선 채 가만히 양세희를 내려다보자, 양세희가 잠시 멍하니 현석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아니, 사람이 뭐 그렇게 여유가 없어요? 저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준비 시간 10초 주지.”

    “자, 자, 잠깐만요!”

    “하나, 둘, 셋…….”

    “할게요! 한다고요!”

    양세희는 그렇게 소리치고 난 다음 어이가 없는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요?”

    생각할 시간을 빼앗아서 무조건 대답하게 만들다니. 그리고 그런 뻔한 수에 자신이 넘어가다니. 그 모든 상황 자체가 어이없었다.

    “던전이 어디인 줄은 알지?”

    “알죠. 그런데 진짜 혼자 가요? 제가 그 지렁이들한테 잡아먹힐지도 모르는데요?”

    “아주 괴롭겠지.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으로 지렁이가 꽉 차면 기분도 더러울 거야. 아, 내가 말 안 해줬던가? 그놈 사람의 체액을 빨아먹는데, 무슨 짓을 하는지 생각보다 늦게 죽어. 그래서 그 과정을 고스란히 다 느낄 수 있지. 아마 아주 독특한 경험이 될 거야.”

    양세희는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들은 모든 말 중에서 가장 기네요. 저 놀리는 거 재미있어요?”

    현석은 빙긋 웃으며 양세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힘내라는 듯이.

    “나중에 반드시 나한테 고마워할 거야.”

    “그럴 일 없을 거거든요? 흥.”

    양세희는 토라진 듯 고개를 휙 돌렸다.

    현석은 그걸 보고는 빙긋 웃으며 자리를 떴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더 강해져야 한다.

    그걸 위해 양세희가 잡을 군체지렁이의 마정석을 포기하고, 혹시 또 나올지도 모를 토룡란도 포기했다.

    ‘뭐…… 내 가정이 맞다면 토룡란은 당분간 안 나올 게 뻔하지만.’

    현석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커피숍에서 나갔다.

    양세희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토라진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너무 반응이 없어서 다시 현석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진짜 어이없고 허탈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허! 없네? 내가 고개 돌린 그 잠깐 사이에 가버린 거야? 인사도 안 하고?”

    양세희는 잠시 씩씩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커피솝을 나섰다.

    이제 약속한 대로 혼자 그 지렁이 던전에 가야한다.

    “내가…… 혼자서 할 수 있을까? 정말 괜찮을까?”

    어제는 그래도 다들 지켜보고 있어서 나름 힘이 되었다. 한데 혼자서 거길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어려울 건 없었다. 군체지렁이는 정확히 한 마리씩 나타나니까.

    아마 예상컨대 던전에 존재하는 마수 자체가 한 마리뿐이고, 그걸 잡으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나는 식인 듯했다.

    그러니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있는 것이다. 만일 연달아 나타나기라도 하면 아마 지금의 양세희로서는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양세희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현석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절대 그 꼴로 죽을 생각은 없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당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는다. 무조건 해내고야 말 것이다.

    “일주일만 버티자.”

    양세희는 주먹을 꼬옥 쥐며 전의를 불태웠다.

    * * *

    현석은 최대한 서둘러 이동했다. 이번에 가려는 곳은 경기도 파주 쪽이었다.

    사실 파주에 있는 투명던전은 그가 알고 있던 투명던전 중에서 가장 영양가 없는 곳이었다.

    다른 투명던전과 달리 아티팩트가 널려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마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곳은 마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곳과 연결된 마계는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 굉장히 위험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가는 것이 딱 적당했다.

    안에서도 최대한 서두르면 일주일 안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컨테이너 박스에 각종 물품을 잔뜩 담아뒀으니 지난번에 마계에 갔을 때처럼 그곳에서 나는 것들로 끼니를 해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사람 몰골이 아닌 꼴로 다녔다. 알몸에 아티팩트만 걸치고 미친듯이 싸웠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때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사실 회귀 전, 현석이 문을 연 투명던전의 수는 제법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투명던전을 다 확인해본 건 아니었다.

    대부분은 그저 문만 열어주고 길드에 맡겨버린 경우가 많았다.

    처음 몇 번은 같이 들어가 싸웠지만 나중에는 현석만 의도적으로 배제 당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정보는 약간씩 남아 있었다. 어디서 누가 뭘 얻었다는 소문이야 자주 들었으니까.

    현석은 남달리 귀가 밝았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얘기한다고 속삭이는 것들도 곧잘 주워들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의 양도 상당했다.

    어쨌든 지금 가는 던전은 현석도 함께 들어갔던 던전 중 하나였다.

    즉, 초기에 발견한 던전이라는 뜻이었다.

    이 던전을 초기에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던전생성지역으로 가는 도로 근처에 있었다.

    평소라면 잘 몰랐겠지만 조금만 도로에서 벗어나도 금세 마력 파장이 느껴질 정도로 존재감도 상당했다.

    ‘다 왔군.’

    아직 차만 샀지 면허가 없기에 택시를 타고 와야 했다. 도로 중간쯤이 목적지였기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도로 중간에 택시를 세웠다.

    택시 기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현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택시비를 지불한 후,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도로 밖으로 이어진 수풀로 들어가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생각해보니 나중에 다시 집으로 갈 때도 미리 대비해 둬야 한다. 택시 기사에게 5일 후쯤 이곳으로 다시 와달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오명국한테 전화하면 오겠지.’

    얼른 면허를 따든, 아니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비서나 운전기사를 한 명 고용하든 해야 할 것 같았다.

    현석은 일단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잡았다. 택시에서 내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택시 기사의 존재가 왠지 좀 거슬렸다.

    자신이 이곳으로 왔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 시점에 나한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대한 조심할 건 조심하는 게 좋았다. 방향만 안 들키면 누구도 현석이 가려는 곳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현석이 가려는 던전은 눈에 아예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던전이니까.

    * * *

    현석은 마력을 몸 밖으로 뿜어내 최대한 넓게 퍼트렸다. 아마 현존하는 플레이어 중에서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오직 현석뿐일 것이다.

    마력을 자유자재로 밖으로 뽑아내는 것도 정말 어려운 작업인데, 그걸 이렇게 넓게 퍼트리면서 그 모든 마력을 확실하게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석은 그걸 아주 간단히 해내고 있었다.

    현석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근처에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현석에게는 마력에 대한 확실한 감지 능력이 있었다. 이것이 플레이어를 찾아내는 데에는 정말 귀신같은데, 그렇지 않은 일반인을 찾는 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대안이 이것이었다.

    지금 현석은 밖으로 뿜어낸 마력에 살짝 변형을 가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반인의 몸을 마치 투명한 공간을 지나가는 것처럼 아무 반응 없이 통과해 버릴 테니까.

    지금처럼 변형된 마력을 통해 거기에 걸려드는 사람이 있나 확인하는 것이다.

    이건 그 사람이 어디에 숨어 있건 상관없었다. 일정 공간 안에 들어와 있으면 반드시 알아낼 수 있었다.

    문제는 아직 그리 멀리까지 마력을 펼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근처에 숨은 사람들은 다 알아낼 수 있으니 그래도 제법 쓸 만했다.

    현석은 일부러 투명던전 주변을 멀리까지 샅샅이 훑었다. 혹시라도 숨어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실히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한 시간을 낭비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충분히 조심해야 할 일이고, 또 나름대로 마력 컨트롤 훈련에도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어쨌든 현석은 투명던전 입구로 왔다.

    [수련장]

    이 투명던전에 붙은 이름이었다.

    현석은 그걸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보니 이 안에 왜 아무것도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그저 수련을 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뛰어난 장비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저 공간만 있으면 되는 장소이니 말이다.

    현석은 일단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여는 마력패턴도 상당히 단순했다. 아무래도 수련장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던전 안은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었다. 천 평쯤 되어 보이는 공간이었는데, 바닥에는 매끈한 돌이 쫙 깔려 있었고, 공터 주변을 울창한 숲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 숲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회귀 전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으니까.

    현석은 공터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리고 여기가 예전에 알던 것처럼 진짜 아무것도 없는 곳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는 눈이 안 보여서 몰랐을 뿐이다. 이곳에는 바닥에 특이한 문양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이 공터는 바닥에 넓적하고 반듯한 돌이 쫙 깔려 있었다. 돌과 돌이 어찌나 딱 달라붙었는지 이음새가 잘 안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촘촘하게 돌이 깔린 바닥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문양에서 희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마력이 제대로 흐르지 않았기에 남아있는 마력 자체가 너무나 희미했다.

    아마 예전에는 그래서 아예 못 알아봤을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마력에 대한 감도가 떨어졌으니까.

    어쨌든 희미한 마력이 흐르는 그림이라면 거기에 어떤 특별한 기능이 담겨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현석에게는 그런 경우 거의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현석은 심안을 통해 바닥을 확인했다.

    [마력수련장]

    역시 마력을 품고 있어서 그런지 이름이 떠올랐다. 한데 예상과는 살짝 다른 이름이었다.

    ‘마력수련장? 충격흡수바닥이나 뭐 그런 비슷한 류의 이름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마력수련장이라니. 그럼 여기서 마력을 수련하면 효과가 더 좋단 말인가?

    현석은 의아한 생각이 들어 서둘러 [마력수련장]의 자세한 설명을 확인했다.

    [마력수련장]

    [충격흡수마법과 마력증폭마법이 중첩되어 설치된 복합 수련장. 마력 수련의 효율을 50% 증가시킨다. 각종 충격으로부터 바닥을 보호하고 주변을 보호한다.]

    현석이 눈을 빛냈다. 이런 걸 두고 득템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일단…… 제한이 있으면 곤란한데…….’

    설치 장소에 제한을 받으면 이 마력수련장을 옮겨가기가 곤란하다.

    현석은 바닥에 흐르는 마력을 자세히 분석했다.

    마력의 흐름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어디까지 가져가서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한참을 확인하던 현석이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딱 이 석판들만 가져가면 될 것 같았다.

    석판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는 마력이 흐르지 않았다. 마법진을 활성화 시키면 마력의 흐름 자체가 달라지겠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주변에 마력에 반응하게 만들어 놓은 구조물도 없고…….’

    만일 마력에 반응해 작동하는 구조물이 근처에 있다면 그것까지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이곳과 똑같이 설치해야 한다.

    어쩌면 그렇게 해도 마법진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석은 조심스럽게 석판을 하나씩 떼어냈다. 막상 석판을 떼어내니 반듯한 모양이 아니었다. 살짝 굴곡이 있어서 그걸 딱 맞추게 되어 있었다.

    ‘꼭 퍼즐 같군.’

    이동 설치의 편의를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든 듯했다.

    현석은 마음 놓고 빈 컨테이너 박스를 아공간에서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 석판들을 하나하나 떼어서 차곡차곡 쌓았다.

    모든 석판을 수거한 현석이 뿌듯한 표정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아공간에 다시 넣었다.

    이제부터 진짜 이곳에 온 목적을 해결해야 할 때가 되었다.

    현석은 휑해진 바닥을 가로질러 숲으로 향했다. 그곳에 목적지가 있었다.

    < 두 번째 원정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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