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 2 >
양동욱은 현석에게 노트북을 받으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뭡니까?”
물음과 동시에 핸드폰에 문자가 수신되었다. 물론 문자가 왔다고 지금 당장 확인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의 고용주인 현석이 앞에 있었으니까.
“확인해.”
그 말에 양동욱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현석이 보낸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하니 아이디와 비밀번호였다.
“이게…… 뭡니까?”
“자금관리.”
양동욱은 뜨악한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현석은 턱짓으로 노트북을 가리켰다. 확인해보라는 뜻이었다.
노트북에는 아무것도 깔려있지 않았다. 화면에는 딱 하나 인터넷뱅킹만 떠 있었다.
양동욱은 일단 은행잔고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그 액수에 기겁을 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제게 맡겨도 되는 겁니까?”
“자신 없나?”
“그럴 리가요!”
양동욱의 눈이 번득였다. 현석이 뭘 원하는지 알기에 머릿속으로 빠르게 견적을 냈다.
이 정도 자금이라면 현석이 어제 말했던 걸 모두 하고도 절반 정도가 남는다.
‘그 남는 절반을 굴려서 자금을 불리고…….’
양동욱의 머릿속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는 당분간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한다. 그러니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창 그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양동욱을 지켜보던 현석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쓸데없이 돈을 굴려 자금을 불리겠다느니 그런 생각은 버려.”
“예? 하지만 이 돈은…….”
“내가 가진 자금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진짜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은 꺼내지도 않았어.”
현석의 말에 양동욱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많은 돈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니. 그럼 대체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단 말인가.
현석이 종로 암시장에다 내다 판 아티팩트나 마정석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대부분을 돈이 아닌 금으로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다른 루트를 통해 이 돈을 마련했다는 뜻인데,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고작 저 나이에 이런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을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모를 잘 둬서 재산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다. 현석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수중에 돈이 거의 없는 빈털터리였다.
‘돈도 돈이지만 진짜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이 있다고?’
양동욱은 멍하니 현석을 바라봤다.
형과 양세희의 수작에 넘어가는 바람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짜증도 좀 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자신이 있을 자리가 딱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면서 자신이 뭐든 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 아닌가.
양동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소박한 커피숍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장소는 좀 마음에 안 들지만.’
그거야 곧 해결된다. 자신이 정말 멋진 건물을 하나 구할 테니까.
‘새로 짓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니 패스. 적당한 건물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사람도 필요해. 믿고 일을 맡길만한 놈들이…….’
자신만의 세계로 금세 빠져든 양동욱을 보며 현석이 피식 웃었다.
아직 아이템에 대한 얘기는 하지도 않았다. 현석은 그것까지 양동욱이 알아서 관리하길 원했다.
‘충분할 테지.’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사업을 크게 확장해 나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양동욱은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아직 자기 가치가 어느 정도인 줄도 모르고 있겠지만.’
양동욱이 진짜 꽃을 피우는 건 양진욱의 뒤를 이어 종로 암시장을 맡았을 때부터였다.
그 전에는 거의 한량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암시장을 맡은 뒤, 고작 5년 만에 전 세계 아티팩트 시장을 주름잡을 정도로 사업체를 성장시켰다.
“대충 생각은 정리됐나?”
현석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린 양동욱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너무 좋은 계획들이 떠올라서……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아이템 얘기를 할 차례지.”
“아이템.”
양동욱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이기에 제법 돈이 된다고 말하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현석을 본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됐지만, 그것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양동욱이 보기에 현석은 절대 뭔가를 과장해서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절대 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 모든 걸 종합해서 봤을 때, 저 제법 돈이 된다는 얘기는 떼돈이 굴러들어올 거라는 뜻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파워업 키트라는 거야.”
“파워업 키트…… 이름부터 아주 돈 냄새가 물씬 나는군요.”
현재 플레이어들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던전 관련 사업들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정석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는 기술까지 개발되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던전 출토 물품들이 실생활에 조금씩 스며드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에게 막대한 돈이 몰려가고 있었다. 그런 플레이어들을 노린 사업이 당연히 대박을 칠 확률도 높았다.
플레이어들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하기에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워낙 버는 돈이 많기도 했고 말이다.
플레이어의 수입과 위상은 날마다 급격히 높아졌다.
사실 현석이 마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6개월 전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한데 최근 몇 달 사이 급격히 달라졌다.
이는 신기술이 빠르게 개발되고 발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책의 변화가 가져온 일이기도 했다.
현재 던전과 플레이어에 관련한 모든 것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던전관리센터 중심에서 사업체들이 주관하는 길드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지금 좋은 아이템을 내놓으면 빵 하고 터질 확률이 높았다.
“종로 쪽에서 지원하기로 한 사람들, 직접 관리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그 사람들 말고 제가 개인적으로 사람을 더 구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양동욱의 자신만만한 말에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워업 키트가 어떤 아이템인지 설명해주지.”
현석은 파워업 키트에 대한 설명을 아주 간략하게 해주었다. 물론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얘기는 쏙 뺐다. 그런 이런 열린 공간에서 함부로 할 만한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그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양동욱을 경악하게 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그, 그, 그 거짓말 같은 얘기가 진짜입니까?”
양동욱은 찢어지기 일보직전까지 확장된 눈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현석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고, 아주 가볍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양동욱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이템 관리를 제게 맡기시겠다고요?”
“생산부터 판매까지 모두 다. 다만 초반에는 좀 잡고 있어야 할 거야. 레드드래곤 길드와 손잡기로 했으니까.”
현석은 애초에 파워업 키트를 이용해 레드드래곤 길드를 좀 키워주려고 했다.
한데 거기에 진대호가 끼어드는 바람에 상황이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깊어졌다.
그래서 좀 더 작정하고 키워줄 생각이었다.
오명국은 자신에게 힘이 있는 한 절대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손 놓고 믿고 기다리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적절한 안전장치도 만들어 놓을 것이다.
한중현은 성향 자체가 배신하지 않을 사람이다. 더구나 큰 성공을 거둬 더 큰 힘을 갖게 되면 더더욱 배신 같은 쪽 팔리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키워주면 언제고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진대호의 K나이츠 길드를 상대하는 것이 그들과 손을 잡은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그 제반 사정을 다 양동욱에게 말해주진 않았지만 양동욱은 거기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좀 더 확실히 설명은 해줄 것이다. 하는 걸 좀 더 지켜본 다음 말이다.
어쨌든 양동욱은 현석의 대답을 듣고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런 대단한 아이템을 이렇게 쉽게 내놔도 돼?’
막말로 자신이 그걸 들고 튀기라도 하면 어쩔 셈인가.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될 사업 아이템이었다.
양동욱의 머릿속으로 이걸 어떻게 이용하면 더 큰 돈이 되고 오랫동안 돈을 뽑아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계획, 수십 가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상상만으로도 흥분되고 가슴이 떨려 미칠 것만 같았다.
한데 그런 걸 그냥 내준다고? 어제 처음 만난 자신을 믿고?
“정말 제게 그냥 맡겨도 되겠습니까? 우리 어제 처음 본 사이입니다.”
“종로 영감님이 소개해준 사이이기도 하고.”
현석의 대답에 양동욱이 입을 다물었다. 현석은 지금까지 한쪽 옆에 앉아서 두 사람의 얘기를 모두 듣고 있던 양세희를 슬쩍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팀원의 가족이기도 하고.”
“그래도…….”
그래도 이런 큰돈을 맡기고 이런 엄청난 아이템을 그냥 턱 맡기기에는 모자라지 않을까?
현석은 양동욱을 가만히 쳐다봤다. 양동욱은 현석의 깊은 눈빛을 보며 왠지 주눅이 들었다. 현석의 표정이나 눈빛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차례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뒤통수를 치고 그걸 꿀꺽 먹어치울 생각인가?”
“당연히 안 그럴 겁니다! 그래도 이건……!”
“그럼 됐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건지는 다 알겠지? 파워업 키트 레시피는 따로 적어서 주지. 외운 다음 버려라. 그리고 레시피가 밖에 나돌지 않게 관리 잘 해야 할 거야.”
그런 거야 말하지 않아도 안다. 양동욱이라면 현석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을 쓸 것이다. 그런 쪽으로 머리가 잘 굴러가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래서 양동욱을 현석이 쓰는 것이기도 하고.
양동욱은 현석이 쏟아낸 말을 들으며 또 한 번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좀 떨어진 곳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여동생, 양세희를 바라봤다.
양세희의 표정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양동욱은 다시 고개를 돌려 현석을 바라봤다.
‘이게 비정상이고.’
이제 진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그냥 다른 사람이었다. 나이고 뭐고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나이 생각이 떠오르니 문득 묻고 싶어졌다.
“근데 진짜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현석은 양동욱의 멍한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마흔둘이다.”
“역시.”
양동욱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나이라야 맞다. 저 사람이 스물하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어쩐지 막 하대를 하는데도 전혀 거부감이 들거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더라니.
“그럼 지금 쓰는 신분은 위장한 거로군요? 얼굴은 성형을 한 거고. 이야, 어느 병원에서 했는지 진짜 티가 하나도 안 나게 잘 했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는 양동욱을 양세희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여기 오기 전에 자기가 직접 철저히 조사해 놓고 이제 와서 왜 저딴 소리를 한단 말인가.
물론 반쯤은 농담이고, 또 나머지 반도 그의 기대감이 섞여서 나온 말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저렇게 진지하게 하면 누가 농담으로 받아들이겠는가.
하지만 양동욱은 그 나름대로 절박했다.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오직 현석 주변에만 산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하아.”
양동욱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현석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조금 전까지 보여주던 그 흐리멍덩한 눈과는 전혀 달랐다.
더없이 반짝반짝 빛났고, 그 안에 날카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럼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양동욱은 의지를 불태웠다. 상식을 넘어서는 괴물같은 사람을 모시게 되었으니 이제 자신도 눈높이를 한껏 높여야만 한다.
옷에 맞춰 사람이 은연중 달라지듯, 현석이라는 사람에게 맞춰 양동욱도 달라질 준비를 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현석은 가만히 앉아서 양동욱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양세희를 쳐다봤다.
현석을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친 양세희가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다.
“준비는 끝났나?”
양세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과 현석을 번갈아 가리켰다.
“우리 둘이 가는 거예요?”
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너 혼자 간다.”
“예?”
양세희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 준비 2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