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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64화 (64/326)
  • < 준비 1 >

    현석은 오명국과 헤어진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오늘 투명 던전 하나를 클리어 하고, 그곳과 연결된 마계도 토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당분간 뒤로 미뤄야만 했다.

    ‘탱커라…….’

    양세희의 등장 때문에 계획이 미뤄졌지만, 현석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혼자서 모든 걸 다 해먹을 수 있는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지만, 최근 여러 번 느꼈다시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쓸 만한 팀을 한두 개쯤 꾸려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양세희는 그런 면에서 아주 보석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레벨도 제법 높아서 조금만 신경 써주면 금방 제대로 된 탱커로 만들 수 있을 듯했다.

    현석이 마계에 다녀온 6개월 동안 플레이어들의 성장세가 급격히 빨라졌다.

    사실 현석은 마계에서 돌아오면 웬만한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날 거라고 예상했었다.

    한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그때도 이랬는지 기억이 희미했다.

    하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예상보다 다른 플레이어의 성장이 빠르다면 자신도 더 빠르게 강해지면 되니 말이다.

    현석에게는 그럴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토룡란이었다.

    현석은 아공간에 든 토룡란을 떠올리며 걸음을 빨리했다.

    집 공사는 이제 마무리 단계였기에 일하는 사람도 몇 명 없었다.

    현석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가 지하실로 향했다. 한데 지하실 입구에 류지혜가 멍하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현석의 물음에 류지혜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문을 못 열어서요.”

    그 말에 현석이 이상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나올 때는 혜연이가 열어줬거든요. 그리고 다시 닫았는데, 여기서 안쪽으로는 연락할 방법이 없네요.”

    그제야 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던전을 이용해 아지트를 만들면 그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외부와의 연결이 끊어진다는 점 말이다.

    ‘방법을 한 번 고민해 봐야겠는데?’

    만일 그게 가능해진다면 정말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다. 현석은 왠지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래에 대한 지식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냥에 관한 것들이었다.

    아티팩트나 던전에 관해서 특별히 공부를 하거나 연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솟아났다.

    틀림없이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현석은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느낌이 그렇다 뿐이지 딱히 뾰족한 방법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이런 건 나중에 진짜 시간이 남았을 때 차분히 고민하고 연구해 보는 편이 나았다.

    “따라와.”

    현석은 앞장서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류지혜가 그 뒤를 쭈뼛쭈뼛 따라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현석은 빈 공간에 손을 넣어 한 차례 빙글 돌렸다.

    딸깍.

    현석의 귀에만 들리는 던전 열리는 소리가 났다.

    “먼저 들어가도록.”

    류지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금 현석이 손을 휘저었던 곳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녀가 던전으로 들어가자, 현석은 주위를 한 번 확인해 본 다음 뒤이어 던전에 입장했다.

    던전에 들어가니 류지혜가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현석은 그녀를 슬쩍 쳐다본 다음 던전을 다시 잠갔다.

    “잘 안 되나보지?”

    현석이 지나가듯 묻자, 류지혜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무래도…… 쉽지가 않네요. 혜연이는 곧잘 하는 것 같던데.”

    이곳 장교숙소는 마력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못 쓰는 시설이 너무나 많았다.

    심지어 화장실을 쓸 때도 마력을 움직여야 했다.

    지금 당장은 류혜연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이나 샤워실을 쓰고 있지만, 아무리 친동생이라도 그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디까지 가능하지?”

    “이제 간신히 화장실만 쓸 수 있어요.”

    볼일을 볼 때마다 류혜연을 불러 처리하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 정말 죽어라 애썼다.

    만일 류혜연에게 일이 있어서 나가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 그러니까 현석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그건 정말 죽기 보다 더 싫었다.

    ‘뭐…… 여기 있는 것보다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이니 그럴 가능성이야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그런 상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벌써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중에 혼자 있으면 굶어 죽겠는데?”

    “여, 열심히 할 거예요!”

    류지혜는 전의를 불태우며 주먹을 꼭 쥐었다.

    이내 현석이 걷기 시작하자, 류지혜가 그 옆에 쪼르르 따라붙었다.

    그녀는 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그렇게 반쯤 걸어갔을 때, 류지혜가 물었다.

    “세희 씨랑 한 팀이 되는 건가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류지혜와 류혜연, 그리고 양세희가 한 팀이 될 것이다.

    ‘두 명 정도 더 추가하면 제법 괜찮은 팀이 되겠어.’

    공교롭게도 세 명 전부 여자다. 그럼 나머지 두 명도 여자로 구해서 여자만의 팀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을 모아 남자 팀도 따로 만들고 말이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류지혜도 자신의 재능에 대해 제법 자부심을 갖고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류혜연은 척척 해내는데 자신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마력 컨트롤도 그렇고, 오늘 만난 양세희도 류지혜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자신은 아무리 해도 양세희처럼 독기를 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죽음을 무릅쓸 용기도 없었고, 또 그 징그러운 지렁이가 온몸을 핥아대는데 거기에 맞서 싸울 정도로 독하지도 못하다.

    그런 자신이 과연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팀이 될 수 있을까?

    현석은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류지혜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현석을 바라봤다.

    “네 위치는 팀장이다. 네가 중심이 되어서 양세희와 류혜연을 이끌어야 돼.”

    “예에?”

    류지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녀는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저, 절대 불가능해요!”

    “가능하다. 이유나 변명은 필요 없다. 무조건 해.”

    현석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휙 가버렸다.

    류지혜는 그런 현석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독재 쩐다.”

    류혜연이 이걸 봤으면 또 대박 카리스마니 어쩌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을 것이다.

    류지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팀장이라니. 그건 저 사람이 하는 거 아니었어? 내가 팀장을 하면 자기는 뭘 하겠다는 거야? 설마 팀원으로 있겠다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 아니어야만 해.”

    현석은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기 전에 고개를 돌려 류지혜를 쳐다봤다.

    쪼그리고 앉아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며 쥐어뜯는 류지혜의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언제쯤 스킬을 각성하더라…….’

    어쩌면 현석의 기억과 다른 스킬을 각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류지혜의 미래를 현석이 나서서 바꿔 놓았으니 그녀가 원래 얻게 될 스킬을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현석은 왠지 그녀가 그 스킬을 그대로 얻게 될 것 같았다. 막연한 느낌이었지만, 또 확신에 가깝기도 했다.

    ‘플레이어를 통틀어 몇 명 되지도 않는 버퍼인데 자격이야 충분하지.’

    버퍼는 팀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버퍼를 통해 팀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나면 전투 시야를 넓게 가져가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지원과 통솔에 가장 적합한 플레이어가 바로 버퍼였다.

    현석은 혼자 괴로워하는 류지혜를 뒤로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안에는 기본적으로 현석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몇 군데 있었다.

    현석보다 마력 컨트롤 능력이나 마력 패턴 분석이 더 뛰어난 플레이어라면 그 보안을 뚫고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런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석은 복도를 걸어가며 사방으로 마력을 뿜어냈다. 그가 뿜어낸 마력이 여러 패턴을 만들며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에 달라붙었다.

    그것이 바로 보안 해제 방식이었다. 걷는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거나 하면 바로 튕겨나가기 때문에 해제 자체가 정말로 어려운 복도였다.

    물론 현석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걸 해낼 수 있었다.

    최근 마력 컨트롤 능력이 더 향상되면서 이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더 자유자재로 마력 패턴에 의한 보안을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복도 끝에는 세 개의 방이 있었는데, 현석은 그 중 가운데 방으로 들어갔다.

    양 옆에 있는 방에는 각각 현석이 마계나 던전에서 구한 특별한 재료와 아티팩트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방은 현석이 뭔가를 연구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쓰는 장소였다.

    애초에 이 장교숙소 자체를 향후 만들 팀의 아지트로 쓸 작정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자신만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만든 방이었다.

    방은 제법 넓었다. 한쪽 벽에는 푹신한 침대까지 있었다.

    가장 지위가 높은 장교가 쓰는 침대였는데, 당연히 특별한 마력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앉아 있기만 해도 소모한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고, 누워서 자면 가벼운 치료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아티팩트에 가까운 침대였다.

    현석은 거기에 앉아 아공간에 있던 토룡란을 꺼냈다.

    오늘 사냥에서 얻은 토룡란은 딱 이거 하나뿐이었다. 처음 잡은 군체지렁이에서 하나 얻은 뒤로 마정석은 계속 뽑아냈지만 토룡란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현석은 사냥이 끝나고 토룡란을 보며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서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걸 정리할 생각으로 이 방에 왔다.

    ‘첫 번째 사냥에서 토룡란이 나온 게 과연 운이 좋아서일까?’

    현석이 가진 의문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회귀 후, 눈을 뜨게 되고 심안을 얻으면서 현석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이름과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큰 힘이었다.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정보를 얻게 되면서 이 던전 시스템 자체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의문들이 생겨났다.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건, 투명던전과 그 안에 연결된 화이트홀의 이름을 확인하면서부터였다.

    보급창고와 마계라니.

    어쨌든 한 가지 확신에 가까운 가정은 투명던전에 대한 것이었다.

    투명던전은 어떤 특별한 집단이나 국가의 기반시설이었다. 대체 왜 투명던전 속에 그것을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현석이 발견한 모든 투명던전은 그랬다.

    지금 이곳만 해도 장교숙소가 아닌가.

    ‘장교숙소에 보급창고…… 꼭 무슨 군대 같군.’

    지금까지는 군 관련 시설만 발견했지만 아마 더 찾아다니다보면 다른 것들도 분명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좀 더 많은 의문을 풀어낼 수 있겠지.’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자신이 회귀하게 된 이유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 알게 될지도 모르지.’

    현석의 상태는 회귀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비단 눈이 보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심안을 얻고 타이틀을 얻은 것을 빼고도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자신이 모를 만한 지식들이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머릿속에 지식을 주입하고, 필요할 때 그게 조금씩 떠오르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현석은 손에서 굴리고 있던 토룡란을 다시 내려다봤다.

    ‘어쩌면…… 처음 던전에 들어갔을 때, 이런 중요한 재료를 얻을 확률이 높은 게 아닐까?’

    아니, 그냥 확률이 높은 게 아니라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정확한 방법으로 사냥을 하고 재료를 채취해야겠지만 말이다.

    그저 가정에 불과했지만 현석은 점점 더 거기에 대한 확신이 강해졌다.

    어쩌면 수많은 귀중한 재료들이 플레이어의 무지에 의해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이 아니라 회귀 전의 세상에서 말이다.

    ‘이걸 어떻게 확인해보지?’

    방법이야 뻔하다. 중요한 재료가 나오는 개별던전을 최초로 들어가 사냥하면 된다. 현석이 직접 말이다.

    현석의 뇌리로 수많은 개별던전의 정보가 주르륵 지나갔다. 그리고 그 중에서 엄청나게 희귀한 재료를 토해내는 던전이 떠올랐다.

    < 준비 1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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