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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뜨고 레벨업-60화 (60/326)
  • < 훈련 2 >

    던전 안에 들어온 양동욱은 경이로운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문득 더 이상 체내에 깃든 마력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이거 어쩌면…….’

    어쩌면 이대로 여기 있다 보면 플레이어로 각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가정이 양동욱의 심장을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뒤이어 들어온 현석의 말에 산산이 부서졌다.

    “일반인은 아무리 던전에 오래 있어도 각성하지 않아.”

    양동욱이 발끈해서 현석을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래에 수많은 실험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플레이어는 애초부터 타고나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각성 능력이 애초에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마력을 몸에 들이 부어도 모조리 밖으로 빠져나가고 만다.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순수한 마력일 경우 말이다.

    마력이 보통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어떤 식으로든 변형이 가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마력을 통해 육체적인 능력이 올라가면 그것 역시 변형의 일종이다.

    그때부터 일반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력에 대한 연구는 현석이 회귀하기 전 시대에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미지의 세계를 더듬는 정도에 불과했다.

    마력에 대한 근원적인 연구는 그때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자자, 여기서 제일 급한 사람은 나라고요. 오빠가 같이 들어온 게 엄청 신기하긴 하지만, 자세한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훈련이라는 거, 이제 시작하죠.”

    양세희가 나서서 그렇게 말하고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도발적인 눈빛 깊은 곳에 긴장감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양동욱이 함께 이 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여러 가지 걱정이 밀려왔다.

    일단 양동욱의 안전에 대한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양동욱은 일반인이다. 일반인이 마수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더 얘기할 것도 없이 즉사다. 아무리 약한 마수라도 맨몸의 인간이 상대할 수는 없었다.

    무기라도 들고 있다면 모를까.

    그리고 다음으로 현석이 일주일 동안 버티라고 한 얘기가 그리 단순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어쩌면 정말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

    ‘뭐…… 그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진짜 죽게 내버려 두겠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다른 플레이어까지 데려올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 확신만 있다면 죽음의 공포 따위 얼마든지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에도 수없이 참고 견디던 감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양세희의 생각과 달리 현석이 류지혜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는 정말 별 거 없었다.

    마침 그때 류지혜가 나타났기 때문에 그냥 함께 온 것이다.

    류혜연은 아직도 지하실 투명 던전 안에 있는 저택에서 마력 컨트롤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류지혜가 이렇게 밖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류혜연이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한 번 열고 닫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다시 여는 게 잘 안 된다는 점이었다.

    류지혜의 실력으로는 문을 연다는 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으니 결국 집 밖으로 나왔고, 마침 길에 서 있던 현석을 발견하고 달려온 것이다.

    류지혜가 이 일행에 합류하게 된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따라오시죠.”

    현석이 양세희를 대하는 모습을 본 류지혜의 눈이 살짝 가느다래졌다.

    생각해보면 자신도 처음 현석을 만났을 때는 저렇게 대해주었다.

    류지혜는 과연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생각하며 현석의 뒤를 따라갔다.

    일행이 현재 지나는 곳은 나무가 빽빽히 서 있고, 군데군데 바위가 있는 숲이었다.

    가장 흔한 형태의 던전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별 던전인 만큼 등장하는 마수는 평범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걷다보니 들판이 나왔다. 던전 자체는 그리 넓지 않았다. 방금 지나온 숲과 눈앞에 펼쳐진 들판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그리 넓지 않았다. 문제는 아직까지 마수를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마수가 없는 던전도 있나요?”

    물론 있을 수 있다. 화이트홀 중에는 그런 던전이 제법 많다는 얘기도 들었다. 물론 양세희도 화이트홀에는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녀가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건 생각보다 신기한 일이었다.

    양세희뿐 아니라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화이트홀에는 잘 들어가지 않으려한다.

    호기심에서라도 한 번쯤 들어가볼 법한데, 그런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지도 또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그저 호기심만 잠깐 품었다가 말 뿐이었다.

    “아까 들어올 때 분명히 블랙홀인 거 확인했는데…….”

    양세희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판의 끝에서 뭔가가 불쑥 솟아났다.

    땅을 뚫고 위로 꾸물꾸물 올라오고 있었는데, 모양은 영락없는 지렁이였다.

    현석은 이곳이 어떤 던전인지 알고 왔기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저, 저게 뭐야!”

    양세희가 기겁을 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반응이었다.

    던전을 돌다보면 생각보다 곤충형 마수를 자주 만난다. 그렇기에 곤충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는 플레이어는 초반에 상당히 고생한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계속 하다보면 결국은 아무리 징그럽게 생긴 곤충이 나와도 별로 동요하지 않는 법이다.

    양세희가 딱 그런 케이스였다.

    하지만 아무리 곤충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해도 지렁이는 아니지 않은가.

    양세희뿐 아니라 류지혜조차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솔직히 지렁이 모양의 마수가 있다는 얘기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

    그녀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렁이 모양의 마수는 꾸물꾸물 열심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들판이 넓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것 같았다.

    현석은 양세희를 보며 말했다.

    “힘으로 버텨.”

    “예?”

    양세희가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힘으로 버티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현석의 표정은 더없이 냉정했다. 당장은 힘들고 괴롭겠지만 이걸 잘 버텨내기만 하면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저 마수의 이름은 군체지렁이다.”

    “구, 군체지렁이…….”

    이름에서 풍기는 불길한 예감에 양세희의 입가가 덜덜 떨렸다. 간신히 곤충의 벽을 넘었는데, 난데없이 이런 복병이 튀어나올 줄이야.

    “체력으로 상대를 제압해 먹어치우는 놈이지.”

    “체, 체력으로 제압한다고요?”

    양세희는 지금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어느새 현석이 자신에게 말을 놓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현석을 보며 무서운 상급자가 명령을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 군대에서 높은 사람이 위압감으로 명령을 내리면 딱 이럴 것 같았다.

    “방패는 이걸 쓰도록.”

    현석이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둥근 철방패 하나를 휙 던졌다.

    그걸 받은 양세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방패가 풍기는 느낌이 정말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방패와 현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시간이 없다. 빨리 장착하고 군체지렁이를 정면에서 막도록.”

    “아, 알았어요.”

    양세희는 허둥지둥 방패를 장착하고 돌아섰다. 어느새 군체지렁이가 거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익!”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자세를 낮췄다.

    쿠웅!

    육중한 충격이 그녀의 온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힘 스탯이 높은 플레이어답게 다리와 허리에 힘을 꽉 주고 버텨냈다.

    그녀는 일단 스킬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들려온 현석의 목소리가 그녀의 행동을 막았다.

    “스킬 사용 금지.”

    “에엑! 그런 게 어딨어!”

    물론 그렇게 외치긴 했지만 스킬을 쓰지는 않았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렁이의 크기는 상당했다. 높이가 양세희의 키보다 훨씬 컸다.

    ‘이놈…… 힘이 센데?’

    양세희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점점 더 힘들어졌다. 스킬을 쓰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지렁이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군체지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나로 뭉쳐져 있던 몸체가 수만 마리의 지렁이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서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마치 거대한 지렁이 앞에 수천 개의 촉수가 튀어나온 것 같은 모양이 되었다.

    “꺄아아악!”

    양세희는 비명을 질렀다. 지렁이 모양의 촉수가 꿈틀거리며 그녀의 몸 곳곳을 밀어내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가게 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거기서 밀려나면 몸의 구멍이란 구멍을 몽땅 지렁이가 차지하게 될 거야.”

    “아아아악! 너무 싫어!”

    양세희가 비명을 지르며 지렁이를 밀어 붙였다.

    물론 워낙 거대했기에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양세희는 그 상태 그대로 끝없이 버티고 또 버텨야만 했다.

    * * *

    “우린 잠시 쉬지.”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근처 평평한 바위에 캔커피 몇 개를 내려놓았다.

    다들 어이없는 눈으로 현석과 캔커피, 그리고 양세희와 지렁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래도 되나요?”

    류지혜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현석을 보며 물었다. 그녀는 양세희가 어떻게 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괜찮으니까 좀 쉬어둬.”

    하지만 류지혜와 양동욱은 그럴 수 없었다. 양세희가 당장에라도 저 지렁이들한테 잡아먹힐 것 같은데 어떻게 마음 편히 쉰단 말인가.

    “아무 일도 안 생길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예? 정말인가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세희는 결국 저 지렁이를 사냥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군체지렁이 사냥의 정석을 지금 양세희가 하고 있었다. 군체지렁이는 아주 단순한 마수였고, 온몸의 힘이 모조리 빠져나갈 때까지 사냥감을 밀어붙여 힘으로 짓누른다.

    그렇게 제압한 사냥감의 체액을 아주 천천히 빨아먹는 것이 군체지렁이의 사냥방식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버티기만 하면 절대 다른 사고가 터질 일이 없었다.

    군체지렁이는 워낙 단순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저러다가 힘이 다하는 순간 그대로 쓰러져 지쳐 죽는다.

    그렇게 사냥을 해야만 제대로 된 마정석을 채취할 수 있었다.

    한데 군체지렁이의 사체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에는 마정석보다도 더 귀한 게 있었다.

    그건 아무리 정확한 사냥을 한다고 해도 매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얻기만 하면 그 효용이 무궁무진했다.

    ‘토룡란.’

    지렁이는 원래 암수한몸이다. 하지만 마수인 군체지렁이는 가끔 알을 품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게 진짜 알은 아니고, 알 모양이기 때문에 알이라 부르는 것뿐이었다.

    군체지렁이를 백 마리쯤 사냥하면 하나 정도 나오는 새하얀 구슬이 바로 토룡란이었다.

    현석은 캔커피를 따서 마시며 양세희 쪽을 지켜봤다.

    정말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거의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이대로 내버려둘 겁니까? 제가 보기엔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데?”

    양동욱의 말에 현석이 앉은 채 그를 올려다봤다.

    그의 표정은 현석의 지극히 담담한 표정과 대비될 정도로 시뻘게져 있었다.

    “그 한계를 왜 당신이 정하지?”

    “뭐라고?”

    현석은 고개를 돌려 양세희를 쳐다봤다. 그러자 양동욱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돌아갔다.

    “잘 지켜봐. 당신 동생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과연 그동안 당신이 저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그게 전부인지.”

    현석의 말은 한동안 양동욱의 뇌리를 맴돌았다.

    양동욱은 아무 대답도 못한 채 힘겹게 버티며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양세희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로……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다.

    “안 쉴 건가?”

    현석의 말에 양동욱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어금니를 꽉 물고는 양세희와 돌 위에 놓인 캔커피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캔커피를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거칠게 딴 다음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걸 본 현석의 입가가 희미하게 위로 올라갔다.

    < 훈련 2 > 끝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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